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86
85장. 정체 모를 남자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졌다.
책임지라는 말에 미대 누나 손유리는 멘붕에 빠졌다.
자신이 어떻게 뭘 했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텐데 나의 꼼수에 걸려 파닥거렸다.
그런 그녀를 집까지 친절히 모셔다 드렸다.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빠른 시간 안에 답을 달라고 했다.
고개를 푹 숙이던 손유리는 대답도 못 했다.
미대 3학년 손유리는 아직 소녀 같았다.
본인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젖살이 빠지지 않은 뽀얀 볼 살은 귀여웠다.
“밥까지 싹싹 비우고 그러면 안 되지. 내 등판을 최초로 사용했으면 대가를 지불해야지.”
손유리 덕분에 어제부터 즐거웠다.
회귀한 일상을 돈만 버는 돈 귀신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인 걸 알기에 틈틈이 유쾌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로버트 아직 잘 시간은 아니겠지.”
한국 시간으로 오전 11시.
미국 뉴욕 시간으로는 저녁 10시다.
로버트의 사적인 시간이었지만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로버트 핸드폰 발신음 소리는 나와 똑같았다.
배경 음악 대신 기계적인 소리만 들렸다.
“보스. 로버트입니다.”
로버트가 바로 받았다.
“개인 시간에 미안합니다. 로버트.”
“보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새벽에 전화하셔도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보스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괜찮았다.
관상 대로 로버트는 나에게 아낌없이 충성했다.
“급히 주식 좀 매입해 주세요.”
“어떤 주식입니까?”
“팰튼 호텔입니다.”
“팰튼 호텔요?”
“현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 정도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경기 불황의 첫 번째 타깃이 여행과 호텔업입니다. 앞으로 주가가 쭉쭉 빠질 겁니다.”
로버트는 역시 월가 출신이었다.
개별 주식에 대해서도 정보를 놓치지 않았다.
“최소 40프로 이상 매입하십시오. 시장가와 시장외가 둘 다 공략하십시오.”
“바로 말입니까?”
“아침 장이 열리면 바로 착수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보스.”
“공격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매도로 가격을 다운시키고 밑에서 받아내세요. 3일 정도 작업하면 현 시세의 반값에 매입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돈 다 주고 살 바보는 아니다.
철저하게 아메리카 스타일을 고수했다.
아직 공매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미국 시장이다.
화끈하게 공매도로 밀어붙이면 제한폭 없는 팰튼 호텔 주가는 쭉쭉 빠질 것이다.
상식적으로 호텔 업계가 불경기라는 건 모두 다 아는 바다.
이런 시절에 인수합병은 욕을 거의 안 먹는다.
그냥 주워 담으면 끝이다.
로버트도 계약서대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정도 주식이면 호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팰튼 호텔 경영자도 바꿀 수 있는 최대주주입니다.”
“상황이 좋다면 51프로 이상 매입하십시오. 목요일을 넘기지 마시고 마무리 지어주십시오. 유니온스 사모펀드 계좌를 주로 이용하고 몇 개를 보조로 투자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로버트. 당신이 있어 든든합니다.”
“보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저 아저씨 진짜 인간성이 괜찮다.
그래서 내가 돈을 맡기는 거다.
요즘 여러 사모펀드를 통해 구입하고 매매한 선물과 주식 투자로 인해 투자 잔고가 팍팍 쌓이고 있다.
30억 달러 정도는 부담도 되지 않았다.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다.
팰튼 호텔 주가는 이 위기 시대를 극복하고 승승장구한다.
연말쯤 세계 각국의 주가가 바닥을 치겠지만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호텔 계열사 하나쯤 구입하고 싶었다.
여행할 때 이것저것 귀찮게 예약하는 일은 이제 사양이다.
돈도 아끼면 똥 되는 건 진리다.
특히 이번 주 토요일에 팰튼에서 벌어질 어머니 동창생 모임을 위해서 반드시 팰튼 호텔에 대한 영향력이 필요했다.
세상에 이런 아들 없다.
엄마 기 한번 살려주겠다고 세계적 기업 주식을 화끈하게 사들이는 자식이 어디 있을까.
“그럼 홍콩에서 보도록 하죠.”
“쉬십시오. 보스.”
전화가 끊겼다.
아마 로버트는 완벽하게 일처리를 끝내놓을 것이다.
“다음 코스는.”
겉옷을 걸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문 밖이 바로 엘리베이터다.
현관에서도 버튼을 조작할 수 있다.
1개 동을 전부 매입한 까닭에 게스트 주차장까지 16대 지하주차장이 개인 차고다.
안전은 문제없었다.
강남은 본래 허술한 곳이 아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 면면히 대한민국 상류층이다.
전문 경호업체에서 인력을 파견해 철저하게 관리했다.
아파트 내외부가 CCTV로 24시간 상시 관리됐다.
단단한 현대의 성채 안에 집이 있는 것과 같았다.
주차장에도 따뜻한 히터 바람이 들어왔다.
관리비가 아무 이유 없이 비싼 게 아니다.
차에 올랐다.
주차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엔진소리까지 좋다.
부우우우웅!
시동을 켜고 바로 출발했다.
엄마의 기 살리기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
“어머머머머~ 저, 정말 잤어? 둘이서?”
“무, 무슨 소리야! 그냥 잠만 잤다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우리 유리 다 컸네. 처음 만난 남자 집에서 잠도 다 자고~.”
“야! 강아린! 너 죽을래!”
“지금 이거 협박이지? 유리야, 협박죄 그거 생각보다 큰 죄다.”
“하아…….”
손유리는 펄펄 열이 오르는 이마를 짚고 침대에 쓰러졌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강아린에게 전화했던 게 더 패착이 됐다.
정신없는 와중에 대화를 하다가 장태산 집에서 자고 왔다는 사실까지 까발려졌다.
진짜 친한 친구 사이지만 얼굴 화끈거리는 사건이다.
“유리야, 그래서 장태산 그 녀석이 뭐래? 책임진대?”
“헛소리 그만해! 걔가 나에게 책임…….”
소리를 지르다 손유리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뭐? 책임이 어떻다고?”
미래 법관을 목표로 하는 강아린의 질문은 집요했다.
“책임질 짓 하지 않았다고! 도대체 넌 왜 이렇게 사상이 불순해!”
“내 사상이 어때서? 길 막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청춘남녀가 처음 만난 날 술이 떡이 돼서 같이 잠을 잤다는 게 정상인가.”
“너……,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고등학교 때……, 선배랑 방송실에서…….”
“스톱! 유리야, 그만! 우리 과거는 잊자. 야!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잊고 있어. 한강에 배 지나간 지 오래됐다.”
“정말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장태산이 해주는 밥 먹고 조용히 집에 왔단 말이야.”
“자취방에서 밥도 해줬어? 허어~ 기특한 녀석 일세~. 곱게 재워준 것도 감사한 일인데 밥까지?”
“에휴……,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냐.”
“히히히히~ 꿀잼이다. 천하의 손유리가 이제 19금의 세계로 진입한 거국적인 날일세. 달력에 기록해 놔야지.”
“너……, 너 죽는다!”
“아우 속이 다 후련하네. 장태산 그 녀석 요물일세. 잘난 녀석답게 재주도 좋다니까. 우리 고등학교 얼짱인 손유리를 단박에 낚아채다니……, 법대 선배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여럿 슬퍼서 죽을 거야. 내가 광고해야겠다. 미대 서양화과 손유리 유부녀 됐다고. 크크.”
강아린은 친구를 화끈하게 놀렸다.
모태솔로인 손유리의 예상치 못한 외박이 믿기지 않아 더 그랬다.
“너 그러기만 해봐! 나 혼삿길 막히면……, 너도 시집 못 갈 줄 알아!”
“아유~ 무서워라~. 네네. 쇤네가 알아서 조심하겠사옵니다.”
손유리는 강아린과 통화하면서 무거웠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걸 느꼈다.
‘도대체 나한테 어떻게 책임이라는 말야! 내용을 알아야 대처를 하지!’
집에 돌아와 내내 짱 박혀 있던 손유리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키스 정도는 했을 수 있다.
술 취하면 여자도 개가 될 수 있는 거다.
그 정도로 장태산은 멋진 놈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음이 확실한데 장태산은 책임을 언급했다.
“야! 장태산 자취방 어때? 오피스텔이야? 어디에 살아? 막 이상한 지하 자취방 그런 곳 아니지? 그런 데서 첫날밤은 좀 그렇지?”
눈치 없는 강아린이 계속 물었다.
“가……, 강남에 살아.”
“강남? 호오, 강남 오피스텔이라 이거지?”
강아린은 혼자 소설을 썼다.
손유리는 그 이상 답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알아본 장태산 거주 집 시세는 예상대로 수십 억대다.
엄마 집이라고 했지만 인테리어는 장태산 스타일이다.
대단히 수상했다.
“손유리, 너 복 받은 줄 알아라. 우리 과 여자애들 문자로 장태산 잘났다고 난리다. 사실 너만 아니면 내가 확 꼬시는 건데……, 오만둥이라고 쓸데없는 소리를 뱉어가지고…….”
“오만둥이? 그게 뭔데?”
“흐흐흐. 장태산 별명이 오만방자한 주둥이야~. 별명 완전 세지?”
“그건 좀 아니다. 장태산 그 정도로 무례하지 않아.”
“와아! 너 하룻밤 만리장성 쌓았다고 님에 대해 변론까지 하는 거야? 그런 거야?”
“…….”
손유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다.
“침묵은 긍정! 오케이. 접수했다.”
“돼, 됐어! 오늘은 전화 끊자. 나 그림 그려야 해.”
“네네. 유리 마마. 푹 쉬십시오. 어젯밤 밤새 큰일을 치렀사온데 쇤네가 눈치가 없었사옵니다.”
“야! 강아린!”
“호호호호호호호호호~.”
마녀의 광소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뚝. 전화가 끊겼다.
“으으으……, 언젠가 복수해 주마!”
손유리는 악독한(?) 친구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그런데 왜 문자가 없어? 오늘은 오후까지 나 시간 많은데…….”
잠을 푹 자고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어 피로가 싹 풀렸다.
산뜻한 겨울 햇살이 창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런 날 차를 타고 외곽으로 드라이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핏! 피피!”
손유리는 핏 소리를 내며 애꿎은 핸드폰을 침대 한쪽에 던졌다.
장태산만 생각하면 울렁거리는 낯선 감정.
신입생임에도 예비역들보다 행동에서 무게감이 더 느껴지기도 했다.
정체 모를 남자 장태산이다.
손유리는 침대에 쓰러져 베개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풋~.”
장태산의 에이프런 두른 모습을 생각하자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내가 미쳤네……, 미쳤어…….”
손유리의 고백이 햇살과 함께 방안에 가득 깔렸다.
***
“이번 달에도 공치는 거야……, 젠장.”
도산대로에 위치한 벤틀리 매장 영업부장 최승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마시는 커피가 오늘따라 더 썼다.
강남은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정보가 빠른 곳이다.
미국발 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부자들은 알았다.
서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개미처럼 자기 자리에서 일만 했다.
부자들은 현금 사용을 절제하고 때를 기다렸다.
세계적 금융위기는 곧 기회라는 걸 그들은 눈치챘다.
그런 영향으로 고가 사치품 매장은 죽을 쒔다.
특히 한 대에 3억씩 하는 슈퍼카 매장의 타격은 더 컸다.
광내고 때 뺀 차들이 전시장 말고 지하 차고에도 몇 대나 있다.
본래 그렇게 많이 팔리는 모델은 아니지만 본사에서 물량을 밀어내기로 했다.
세계적 불경기에 명품을 주장하는 본사도 감당이 안 됐다.
직원들 몇몇은 눈치껏 차를 닦거나 청소를 했다.
‘이번 달에는 두 대는 팔아야 애들 등록금이라도 나올 텐데…….’
최승태는 대학생 딸과 아들을 두고 있었다.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다.
고급차여서 한 달에 한 대만 팔아도 수입이 짭짤했다.
하지만 대학생 등록금 시기에는 그도 감당하기가 벅찼다.
고객들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다.
상류층일수록 구매 전화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평소 인맥관리만 철저히 하면 알아서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까지 강태공의 심정으로 기다리는 게 고급차 딜러들의 영업 방식이다.
스르르륵.
그때 먼지 하나 없는 영업소 자동 유리문이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직원들 둘이 할 일을 찾아 다가갔다.
강남 거주자인 듯 옷을 잘 차려입은 대학생이 들어왔다.
어린 애들이 구입할 수 있는 차가 아니다.
직원들 의지가 꺾이는 게 보였다.
들어선 젊은 남자는 가볍게 전시된 차를 둘러봤다.
‘뭔가……, 있다!’
다년간 딜러로 살아왔던 영업계의 달인 최승태는 순간 필을 팍 하고 느꼈다.
바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에게 다가갔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업부장 최승태입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객은 나이나 성별, 외모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세단하고 GT 모델이…….”
“이 모델입니다. 고객님.”
이미 검색하고 찾아온 고객이다.
부모님을 대신해 보러 왔을 수도 있었다.
최승태는 VIP를 상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라는 게 그의 영업지론이다.
젊은 남자는 검은 광택이 반짝이는 세단과 GT 모델을 바라봤다.
“세단 모델은 원목 우드로 내부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스마트 스타트 버튼과 자동조절 좌석, 자동 6단의 미션에 6,000cc급 절묘하게 어우러져 고객님들의 명예와 품격을 보조합니다. 그와 반대로 GT 모델은 역동적 스타일로…….”
최승태 부장은 자부심 가득 담긴 목소리로 차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직원들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대학생이 3억에 가까운 차를 구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장의 헛심에 딜러들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며 자기 할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귀에 들려오는 놀란 부장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네? 두, 두 대를 다 구입……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일시불 할인되죠?”
“네!!! 특별가로 모시겠습니다! 사장님!”
딜러들은 망부석이 되어 지켜봤다.
직원들에게 한없이 깐깐한 최 부장이 허리를 90도 폴더 폰처럼 꺾어 숙이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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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