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18
* * *
64층.
아스가르드의 영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세계였으며, 발할라(Valhall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
아스가르드의 화합은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바글바글하네.”
“여기저기서 많이들 몰려왔으니까 말이야. 참여하는 거대 길드만 해도 몇 군데인데.”
욜체는 손에 들고 있는 빵을 뜯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인파 사이에서 함께 걷고 있던 하르간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뭐 축제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가.”
“너랑 저 녀석들은 입장이 다르지. 저들에게 있어서 화합은 다른 세계 이야기니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거대 길드의 이권이나 화합 같은 것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랭커들이 모이는 곳은 축제가 된다. 이름난 탑의 하이랭커들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장사꾼들.
이 정도 규모의 화합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자리가 아닌데…….”
“저 사람들이나, 너나.”
욜체는 하르간의 손에 들려 있는 술병을 힐끗 바라보았다.
발할라에서 즐겨 마시는 특산품. 하르간은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발할라의 술을 보며 바로 지갑을 열었다.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욜체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하르간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하르간이 향한 곳은 거리의 한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투기장이었다.
“으와아아아-!”
“엘다! 엘다!”
“이겼다!”
“에이. 배당이 뭐 이렇게 짜?”
1층의 콜로세움과 비견될 규모의 투기장.
그곳은 전사들의 세계, 발할라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였다.
투기장은 발할라의 전사들에게 성역(聖域)처럼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포인트를 걸고, 승자와 패자를 맞추는 일종의 도박장이었다.
제아무리 전투를 신성시하는 발할라의 전사들이라 해도 돈 한 푼 벌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발할라의 투기장인가.”
하르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발할라의 투기장은 하르간이 탑 전체에서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급하게 탑을 오르던 중에는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해 겉으로만 보고 지나쳤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생긴 것이다.
“오오…….”
“……어휴.”
투기장에 한눈이 팔려 있는 하르간의 모습에 욜체는 고개를 저었다.
정작 그녀조차도 벌써 몇 개씩이나 군것질을 하고 있다는 걸 잊은 채로.
“다음 도전자는 무림계 출신의 고수! 거대한 창을 나뭇가지처럼 휘두르는 랭커! 반무율!”
“반무율?”
“무림계에서 최근에 배출한 랭커지? 창을 귀신같이 쓴다던.”
“이제 슬슬 진짜배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가.”
다음 시합이 시작되었다.
하르간은 넓은 투기장 가운데, 소인족의 랭커와 무림계의 랭커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법 격렬한 싸움.
가만히 있으려니 도통 좀이 쑤셔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항복! 항복이다!”
소인족의 랭커, 엘다가 양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요정처럼 작은 덩치로 잘 싸운다 싶었지만, 이미 앞서 몇 경기를 치른 터라 상대적으로 체력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승자는 반무율!”
“와아아-!”
“반무율! 반무율!”
“좋았어! 두 배다!”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절망했다. 포인트를 걸고 싸우는 투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음 도전자! 다음 도전자 있습니까? 시합에서 승리할 경우, 투자된 포인트 중 0.4퍼센트의 수수료를…….”
어느새 함께 시합에 빠져 구경하고 있던 욜체는 몸을 돌렸다.
한 경기 시합을 봤으니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경 다 했으면 이만 가자.”
“잠깐만.”
“뭘 더 하려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뭐? 너 설마…….”
아무리 그래도 설마 했는데 역시나.
하르간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도전한다!”
* * *
저벅-.
하르간이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하르간은 한 번 하기로 마음먹은 건 반드시 하는 성격이었다.
“저 성격은 언제 고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 욜체.
그런 그녀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르간은 싱글벙글 웃으며 손에 장갑을 씌웠다.
“하르간. 이름은 많이 들었지.”
반무율이 손안의 창을 한 손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머리카락이라고는 한 올도 찾아볼 수 없는 중년의 무림인.
머리는 싸울 때 거치적거릴 뿐이라며 플레이어가 되기 한참 전부터 삭발을 결행한 그는 최근 랭킹이 급부상한 랭커였다.
“올림포스의 직계라지? 최근에 98층까지 도달했고.”
“내 이름이 벌써 랭커들에게까지 알려졌나?”
“너 역시 이제 곧 우리와 같은 세계에 들어올 테니 말이야. 그것도 꽤 빠르게. 그러니 이름 정도는 들릴 수밖에.”
휘리리릭-.
부웅, 부우웅-.
반무율의 손안에서 돌아가는 창이 점점 빨라졌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플레이어가 이 투기장에 도전하려거든 아침에 왔어야지. 지금은 랭커들의 시간이다.”
발할라의 투기장은 이제 막 64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들부터 상위권의 랭커들까지, 모두가 참여해 즐기는 무대였다.
승자가 남고, 패자는 퇴장하는 투기장.
자연스레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한 실력자가 나타난다. 그렇게 발할라의 투기장은 오전에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무대가, 그리고 오후에는 랭커들을 위한 무대가 되어 갔다.
“랭커가 된 후 다시 돌아오거라.”
부우우웅-.
척-.
손안에서 현란하게 창을 놀리던 반무율이 창끝을 하르간에게로 겨누었다.
애들은 가라.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틀렸다.”
파짓, 파지지-.
하르간은 그런 반무율의 말을 비웃듯 전격을 뿜어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늦은 게 아니라 오히려 빠르지.”
“뭐야?”
[경기를 시작합니다.]때마침 울린 시작 메시지.
동시에 하르간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번쩍-!
콰우우우웅-!
손바닥을 타고 뿜어진 황금빛의 전격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전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반무율이 휘청거리며 바닥에 창을 짚은 채 반쯤 무너진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끄어…….”
“뭐야? 버텼네?”
대견하다는 듯, 하르간은 두 손을 모아 작게 박수를 쳤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반무율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가…… 어떻게…….”
“당연한 걸 뭘 물어봐.”
하르간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가 너보다 더 세니까 그렇지.”
콰릉-!
손가락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는 전격.
그렇지 않아도 힘없이 부들거리던 반무율의 무릎이 꺾이며 그가 정신을 잃었다.
한순간에 끝난 시합.
“오…….”
“와…….”
실감이 나지 않기라도 한듯.
“와아아아-!”
함성은 한 박자 늦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욜체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 관종.’
시합을 지켜보느라 몸이 달아오른 건 이해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함께 있는 동료들의 몫. 아마 내일이면 하르간에 관한 기사가 키트에 쫙 뜨게 될 것이다.
‘뭐…….’
그렇게 한 손으로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있던 욜체는 사람들의 함성 가운데 손을 흔들어 보이며 화답하고 있는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제 두 걸음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단 두 걸음.
하르간의 팀이 100층까지 남은 거리였다.
순혈 출신인 욜체는 하르간과 함께 팀을 이뤘을 때부터 자신이 랭커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자신이 살던 층에서는 플레이어가 아니면 상대가 없을 만큼 재능이 출중했으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렇게 빨리 랭커를 목전에 두게 될 거라고는 그녀 역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다 하르간 덕분이었다.
제우스의 직계로, 처음에도 같은 층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었던 그였다.
김유원이라는 벽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가 규격 외의 대상일 뿐.
하르간은 역대 어느 랭커들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날 이후부터 엄청 강해졌어.’
올림포스 부수기 이후.
하르간은 급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전격의 힘은 이미 한참 전에 어지간한 랭커들을 웃도는 정도.
더군다나 랭커를 목전에 둔 지금은 웬만한 랭커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벼락의 조각을 얻었다고 했나?’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하르간이 했던 이야기였다.
제우스가 사용하던 벼락.
그 힘의 일부를 자신이 얻었다며, 하르간은 술에 잔뜩 취해 이야기했다.
‘오늘 투기장 우승자는 정해졌군.’
발할라의 수장, 브룬힐데가 직접 오지 않고서야 이런 투기장에 기웃거리는 랭커들로 하르간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콰릉-!
하르간의 손에 도전장을 던진 랭커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승자, 하르간!”
“와아아…….”
“배당이 너무 짠데, 이거.”
“발할라의 전사로도 어려운 건가.”
“압도적이구만.”
“어지간한 랭커들로는 어림도 없겠네.”
마지막에 도전한 랭커는 발할라의 전사, 발키리로 아스가르드 소속의 랭커였다.
그녀는 확실히 가장 오래 버텼다.
한 발이지만 하르간의 전격을 피해 내고, 꽤 가까이 근접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접근전이 더 문제지.’
욜체의 눈에 그것은 호랑이의 아가리에 고개를 들이미는 어리석은 여우의 몸부림처럼 보일 뿐이었다.
‘원래 저 녀석의 특기는 근접전이었으니까.’
하르간은 인파이터 성격의 플레이어였다.
전격을 날리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제우스처럼 창을 만들어 던지는 건 하르간의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주먹에 전격을 둘러, 보다 확실한 한 방을 날리는 쪽을 더 선호했다.
화끈한 성격과 어울리는 전투방법.
“도전자 더 없으십니까?”
“…….”
“…….”
서로 눈치를 보는 랭커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간혹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랭커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왜 도전하지 않느냐는.
하지만.
‘도전 못 하겠지. 하이랭커 정도면 또 모를까.’
그만큼 현재 하르간의 실력이 압도적이라는 뜻.
욜체는 키트를 꺼내 하르간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돌아와.]도전자가 없어 따분해 하던 하르간은 무대 위에서 키트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답장은 바로 돌아왔다.
하르간에게서 돌아온 문자에 욜체는 그가 왜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올림포스의 왕이 되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랭킹을 올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지금 이건, 그때를 위한 준비였다.
‘여기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랭커들을 꺾는 모습을 보여 주면, 랭커가 된 직후 측정되는 랭킹이 훨씬 높아질 테니까.’
평소에는 무식해 보이다가도 이럴 때 보면 역시 비상했다.
방법이 과격할 뿐, 하르간의 행동에는 늘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다른 도전자 없으십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차례에 걸친 압도적인 격차에 더 이상의 도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발키리를 끝으로 십여 분.
다른 도전자가 나오지 않자, 사회자는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 도전자가 없으면…….”
“여기.”
저벅-.
사회자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
“이번엔 내가 도전하지.”
다음 도전자가 무대에 올라왔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전자의 얼굴을 확인한 하르간은 곧이어 턱이 빠질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야! 네가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