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95
* * *
제우스가 미래에 있다.
미미르의 눈 하나가 사라졌다…….
‘혹시나 싶긴 하지만.’
짚이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원의 시선이 손오공에게로 향했다.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
아직까지도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녀석.
손오공에게 들었던 미래 중, 바뀐 건 제우스가 살아 있다는 것뿐이었다.
자신과 손오공은 미래에서 과거인 이곳으로 넘어왔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못할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대체 왜?’
유원의 한쪽 눈썹이 구겨졌다.
시계태엽은 크로노스와 미미르, 오딘이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건 ‘시간’에 대한 원리와 힘을 가지고 있던 크로노스였고, 시계태엽을 구상하고 만들어 낸 건 미미르였다. 오딘은 그 두 사람의 보조에 불과했다.
시계태엽을 이용한 시간을 넘나든 세계의 이동.
그 어려운 일을 시도한 건, 미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제우스를 보낼 이유가 있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드니 어딘가 확신이 없어졌다.
제우스는 정말 미래로 간 걸까.
만약 그렇다면 미미르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왜 그는 제우스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준 걸까.
그게 아니라면…….
‘모르겠군.’
복잡하게 얽히는 생각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써는 추측만 할 뿐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미미르는 유원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과거의 그가 계획하는 게 어떤 것인지는 그를 깨우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슈브 니구라스가 죽고 난 후에 그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미미르는 그 나름대로 변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에 빠져 있어야 하는 만큼, 그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할 터.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한다.’
유원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늘 하루.
하루가 지나고 나면, 눈앞의 자고 있는 원숭이에게 신세를 질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드르렁-.
* * *
손오공은 잠이 많았다.
그는 싸우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자는 데 사용했다.
이틀이었다.
무려 유원이 기다린 시간이.
그러다 결국.
퍼억-.
“컹!”
자다가 옆으로 구른 손오공이 코 먹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이내 사나워진 눈을 한 그가 고개를 들어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언제까지 잘 거냐?”
“깨울 거면 좀 곱게 깨우지.”
“말로 깨우다, 손으로 흔들다, 찬물을 들이부어도 안 일어나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렇다고 발로 차?”
으르렁거리는 손오공.
아무래도 단잠을 방해받은 게 어지간히도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이런 때의 손오공이 요구하는 건 단 두 가지뿐이었다.
“밥 먹으라고 깨운 거거나 싸우자고 깨운 게 아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라.”
“내가 널 모르냐? 그냥 깨우게.”
“응?”
손오공이 눈을 반짝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손오공의 눈에 담겼다. 그리고 그 기대에 따라 유원이 고개를 까닥였다.
“마침 딱 좋다. 다행히 여긴, 사람이 살지 않는 층이 됐으니까.”
“그 말은…….”
손오공의 눈동자가 가로로 쭉 찢어지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분위기가 단순한 대련 때와는 달랐다. 유원은 조금 더 진심을 원하고 있었다.
바라던 바였다.
“서둘러 이동하자고.”
하르간은 이미 떠난 뒤였다. 하지만 근처에는 아직 판도라가 남아 있었다.
둘의 싸움에 어쩌면 그녀가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
근두운을 부른 손오공이 유원을 태운 채 이동을 시작했다.
투확-!
화아아아아-.
순식간에 주위의 풍경이 뒤바뀐다.
잠깐 사이에도 층을 오갈 수 있는 기동성을 지닌 근두운이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장소, 폐허가 된 땅으로 향했다.
우보 사틀라가 사라진 땅.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구덩이.
그 위가 또 다른 전쟁터로 변했다.
“이쯤이면 되겠지?”
“딱 좋네.”
펑-.
유원의 발을 지탱하고 있던 근두운이 사라졌다. 자연스레 아래로 떨어져 내린 유원이 툭 튀어나온 돌부리에 내려앉았다.
여전히 근두운의 주인인 손오공은 그대로 있었다.
더 이상 편하게 태워 줄 친절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부웅, 붕-.
손끝에서 여의봉이 부드럽게 돌아간다.
아까까지 침 흘리면서 잠들어 있던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싸움에 임하는 손오공은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했다.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랑 싸우자고 할 일은 없을 거 아니야? 비싼 녀석이.”
미래에 있을 때, 손오공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울 상대를 찾아다녔다.
어린아이가 놀아 달라고 떼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지치지도 않고 덤벼드는 손오공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당시, 손오공이 가장 많이 달라붙었던 사람이 바로 유원과 헤라클레스였다.
“어? 뭐냐니까?”
“이번엔 좀 위험할 수도 있다.”
“경고냐?”
“그래.”
스칵-.
유원이 칼을 뽑아 들었다.
이계검은 손오공을 상대로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계검이 반응하는 건 오직 아우터를 상대할 때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계의 대적자’ 역시 마찬가지.
유원의 능력은 대부분 손오공을 상대하기에 썩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다.”
유원은 손오공에게 평소 하지 않던 경고의 말을 남겼다.
탑에서도 손꼽히는 사기적인 특성, ‘불사(不死)’를 가지고 있는 손오공에게 말이다.
“누가? 내가?”
“그때 봤던 거 기억하지?”
유원의 질문에 손오공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우보 사틀라를 집어삼킨 거대한 그림자.
그 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때 봤던 녀석도.”
“아…….”
손오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면 아무리 머리가 나쁜 그라고 해도 유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 그걸 다시 써 볼 생각이다. 그럼 그 녀석도 다시 나오겠지.”
“재밌겠는데.”
씨익-.
손오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시 그 힘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손오공은 저것과는 가급적 싸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이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떠오른 공포, 두려움, 거부감과 같은 것들로부터 기인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과 싸울지 말지를 누군가 선택하라 한다면.
손오공은 기꺼이 싸우는 쪽을 택할 것이다.
콱-.
여의봉을 쥔 손오공의 몸에서 투기가 끓어올랐다.
스으으-.
그리고 그 투기에 맞서, 유원의 몸에서 그림자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모습을 드러냅니다.]유원의 발끝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무정형의 혼돈.
그리고 그 속에 감춰져 있는 날카로운 이빨.
그것이 비로소 손오공을 향해 벌어지는 그 순간.
파앗-.
팟-.
유원과 손오공.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어올랐다.
쩌어엉-!
* * *
쩡, 쩌저정-!
슈앗-, 뻐억-!
칼과 봉이 빠르게 오가고, 유원의 발길질이 손오공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두 사람은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색을 가진 두 쌍의 화안금정(火眼金睛)이 빠르게 움직이며 서로의 움직임을 쫓았다.
팟-.
순간, 유원과 손오공의 거리가 벌어졌다.
칼을 쥐고 있던 반대쪽 손.
치지지-.
유원의 손아귀에 기다란 벼락이 쥐어졌다.
콰릉-!
눈부신 빛과 함께 벼락이 손오공의 심장을 꿰뚫고 날아갔다.
휘릭-
순식간에 몸을 돌려 피한 손오공이 유원을 향해 접근해 왔다.
쩌엉-!
다시금 부딪치는 칼과 봉.
그렇게 두 자루의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유원의 팔이 부풀어 올랐다.
꾸득-.
[거인의 힘이 팔에 깃듭니다.]거인화.
헤라클레스를 있게 만든, 최강의 근력계 강화 스킬.
그러나 스킬 하나만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격차란 분명 존재했다.
“후웁-!”
꾸득-.
여의봉을 움켜쥔 손오공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전신에 힘을 준다.
자연스레 힘의 저울추가 맞춰졌다.
아니.
오히려 유원의 힘이 뒤로 밀려 나간다.
카가가가-.
정말 무식한 힘이었다.
거인화를 사용한 상태에서도 힘으로 밀리다니.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기술적인 부분으로 손오공을 넘어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우웅-.
칼과 봉이 맞대어진 채 여의봉이 돌아간다.
쩡, 쩌저정, 경쾌하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유원의 몸이 밀려났다.
나름대로 괜찮았다 생각했건만, 제대로 적중시킨 감이 없었다.
“쳇.”
아쉬움에 혀를 차는 손오공.
빠르게 휘둘렀던 봉을 회수하자, 유원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게 보였다.
“치사하게 그것까지 쓰기냐.”
“치사한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지.”
[‘예지안’이 잠시 후의 미래를 예지합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주위의 모든 기척이 손바닥 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1초 남짓한, 아주 짧은 미래가 몸으로 체득하여 들어온다.
예지안과 감각지대.
두 개의 스킬은 화안금정을 사용한, 요괴화를 마친 손오공의 전투 감각을 따라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바로 그 천하의 제천대성을 말이다.
하지만.
“제법이긴 한데.”
어느새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
스읏-.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툭-.
여의봉의 봉 끝이 유원의 가슴팍에 맞닿았다.
“커져라, 여의.”
투쾅-!
뻗어 나간 여의봉이 유원의 몸을 밀어내고 벽에 처박았다. 산 하나는 우습게 날려 버릴 위력의 봉이 유원의 몸을 뒤덮었다.
쿵, 쿠구구구-.
여의봉과 함께 땅을 뒤집으며 그 속에 깔렸다.
다행히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 번 정도.
[‘바다의 가호’가 몸에 깃듭니다.] [‘바다의 가호’가 손상되었습니다.]유원에게는 웬만한 공격을 흘려 낼 수 있는 한 수가 있었으니까.
후두둑-.
몸에 묻어 있던 작은 돌멩이나 모래 따위가 흘러내린다. 유원의 몸은 바위에 단단히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잠시.
복기의 시간이었다.
‘까다롭다.’
예지안을 사용하고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몇 개나 되는 미래. 몇 명의 손오공이 눈에 보였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미래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미래조차도 불안하게 흔들려 유원의 눈을 어지럽혔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화르르-.
계속해서 눈앞에서 불타오르는 거대한 불꽃.
자신의 것과는 다른, 완숙한 경지에 다다른 화안금정.
그것이 계속해서 예지안을 흔들고 있었다.
‘같은 편이지만……. 돌파구가 안 보이는군.’
칼과 봉을 맞대는 순간, 손오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도저히 이대로는 쓰러뜨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녀석과 마찬가지로 화안금정을 손에 넣어도,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스킬인 예지안을 가져도.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거인화, 벼락을 다룰 수 있는 우라노스의 심장.
그 모든 수단이 짧은 순간에 모두 파훼되었다.
이 정도만으로는 역시.
“이게 다야?”
요괴의 힘을 얻은 손오공을 상대로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
근두운에 몸을 태운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날아오른 손오공.
녀석은 이죽거리는 웃음과 함께 벽에 처박혀 있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도발이었다.
여기서 멈출 거냐는.
보통 저런 웃음을 지어 보이면 유원도 자존심이 상해 다시 일어나서 손오공을 향해 달려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뒤.”
“응? 뭐?”
작은 목소리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 손오공이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이어진 유원의 말을 듣는 순간.
“뒤나 잘 보라고, 이 원숭아.”
휙-.
손오공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