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19
* * *
유원은 천천히 눈을 떴다.
순간, 환한 빛이 눈을 찔렀다.
오랫동안 어두운 타르타로스나 검은 숲에 있었던 탓이다.
시력은 금방 돌아왔다.
새하얀 손 하나가 유원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획, 휙-.
“깼어?”
기절한 사람이라도 깨우는 양, 판도라는 유원의 얼굴 위로 손을 휘적였다.
황당함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깼어.”
판도라는 손을 치우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레 유원의 시선이 그녀를 따라갔다.
“재도 깼어.”
붕대로 상처를 감은 채, 그 위에 옷을 챙겨 입는 제우스.
그는 판도라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어색했겠네.’
저 녀석은 대체 언제 깬 건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건만, 벌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다니.
대단한 회복력이었다.
하긴.
‘헤라클레스만은 못하겠지만, 저 녀석 몸뚱이도 보통은 아니겠지.’
제우스의 주력은 어마어마한 위력의 전격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우스가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단지 벼락이라는 능력이 더 뛰어나기에 창을 던질 뿐이었다.
스윽-.
“빚졌군.”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제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갚도록 하지.”
자존심이 강한 제우스였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그가 다른 무엇보다 비싼 목숨 값을 빚졌으니 아마 보답은 확실할 것이다.
“셈은 나중에 하자고. 다 끝나고 나서.”
“원하는 대로.”
“그보다, 소개할 녀석이 하나 있는데.”
“소개를?”
마치 네가 아는 사람이 있냐는 듯한 표정.
십 년 전 그날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원을 잊어버렸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현 시점에서 유원을 기억하는 건 여기 있는 제우스와 판도라를 비롯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는 얼굴이야.”
하지만.
“당분간은 친하게 지내자고.”
유원이 소개할 친구는, 유원은 물론이고 제우스도 아는 얼굴이었다.
츠츠츠-.
[‘우라노스의 심장’이 ‘타르타로스’의 주민을 부릅니다.] [‘괴물왕 아난타’를 소환합니다.]반지를 통해 문이 활짝 열렸다.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 속에서 상처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벅-.
“벌써 풀어 주는 겁니까?”
오랜만에 보는 환한 빛에 싱글벙글 웃는 아난타.
그는 제우스와 눈이 마주치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순간, 제우스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썩을 것처럼 일그러졌다.
“풀어 주기는, 자유는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
“저도 압니다. 이게 있으니 저도 허튼짓은 안 할 겁니다.”
아난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용의 심장부 쪽.
이질적인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그대로 심장을 집어삼킬 것 같은 위험한 느낌이었다.
확실한 컨트롤을 위해 유원이 심어 놓은 힘이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아난타는 넉살 좋은 얼굴로 제우스에게 다가갔다.
“잘 부탁합니다, 그쪽도.”
“…….”
악수를 위해 앞으로 내민 손.
제우스는 그 손을 빤히 내려다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많은 생각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뭘 한 거지?”
그는 유원을 돌아보았다.
이게 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앞으로 괴물들의 왕 노릇은 못할 거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이 녀석을 이용하자는 거냐?”
“도움이 될 거다. 지금은 그때보단 못하지만, 실력은 확인되지 않았나? 그것도 두 번이나.”
실력 면에서는 당연히 논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왜?’에 있었다.
제우스는 아는 아난타는 한 번 졌다고 순순히 자신들을 도울 녀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음번에는 더 완벽을 기할 녀석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정말로 이 녀석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난타가 과연, 무엇 때문에 자신들을 돕겠노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제우스의 말에.
“근데 그건, 이 사람을 알기 전이고요.”
아난타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를 설명했다.
“당신은 모르나 봅니다.”
아난타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이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 * *
마왕과 천계. 그리고 데바까지.
여러 거대 길드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행히 빠르게 진압되었다.
여러 분신들을 만들어 탑 곳곳에 퍼뜨린 손오공 덕분이었다.
“귀찮은 건 나한테 다 시키고 말이야.”
손오공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신전을 찾았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우연히 그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헤라클레스와 마주칠 수 있었다.
“네가 싸우는 걸 귀찮아할 줄은 몰랐군.”
“그게 어디 내가 싸운 거냐? 분신들이 싸운 거지.”
“그게 그거 아니었나?”
“아니. 분신이 싸운 건 내가 싸 우는 거보다 느낌이 훨씬 약하거든.”
“어쨌든 있긴 있다는 거잖아.”
“있긴 있지. 한 요정도?”
손오공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털 하나를 뽑아 내밀었다.
분신에게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딱 머리털 하나 정도뿐이라는 뜻이었다.
하긴.
실제로 그가 만들어 낸 분신들은 머리털을 매개체로 만든 것이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헤라클레스는 손오공의 분신보다는 그의 본체에 대한 걱정이 먼저였다.
“너, 그거 너무 남발하지 않는 게 좋겠다.”
“왜?”
“이제 보니까 머리가 비었네.”
“머리가?”
손오공은 흠칫 놀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신체의 일부분인 털을 매개체 삼아 분신을 만들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만들어 낸 분신은 숫자에 상관없이 일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고, 보다 매끄러운 전투가 가능했다.
단순한 능력치만 놓고 봤을 때 일반적인 분신의 배 이상의 효율인 셈.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낸 분신에는 어쩔 수 없이 ‘털’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붙었다.
긁적-.
신경이 쓰이는지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이며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하늘의 신전의 꼭대기에 도착할 즈음.
“지, 진짜 그냥 가도 되는 건 가?”
“나중에 올림포스에서 보복이라도 하면…….”
“쉿. 지금은 그냥 보내 준다고 할 때 그냥 가자.”
“그러게. 그냥 안 가면, 뭐 어쩌려고? 다시 제우스랑 한 판 붙게? 아니면 또 관리자들에게…….”
요란법석을 떨며 계단을 내려오던 랭커들.
그들은 하늘의 신전을 오르던 손오공과 헤라클레스를 발견하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 가자.”
“죄송합니다. 죄송…….”
“히이익!”
스킬까지 사용하며 도망치는 랭커들을 보며, 손오공은 눈을 부라렸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몰라도, 하는 꼴이나 표정들을 보면 무언가 켕기는 게 있어 보였다.
“됐다. 그냥 가자.”
당장에라도 여의봉을 휘두를 것 같은 손오공을 만류하는 헤라클레스.
그런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마중 나온 건, 제우스가 아닌 유원과 판도라였다.
“뭐야. 너도 여기 있었냐?”
손오공은 일 년 만에 돌아온 유원을 반겼다.
수천 년을 살아온 손오공에게 일 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 다.
하지만 관리자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최근, 그의 부재는 하루하루가 뼈아팠다.
어느 때보다도 그가 반가운 상황.
하지만 그런 손오공과는 달리, 유원의 반응은 조금 미적지근했다.
“왜 똥 씹은 얼굴이야?”
“네 머리 때문에.”
“내 머리?”
“조심 좀 해야겠다.”
와락 구겨지는 손오공의 얼굴.
유원은 그런 손오공을 무시하고는 헤라클레스를 향해 말했다.
“소식은 들었지?”
“그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곧, 모두 이곳으로 집결할 거다.”
* * *
궁니르를 손에 쥔 토르는 눈을 감았다.
먼 옛날.
탑을 오르던 자신이 막 황금성에 도달했을 때, 오딘이 자신에게 창을 건네던 때를 떠올렸다.
“한 번 쥐어 보겠느냐?”
아스가르드의 정당한 왕.
한 순간이나마 위대한 오딘 왕의 무기를 손에 쥘 수 있다니.
토르는 망설이지 않고 그가 건네는 궁니르를 손에 쥐었다.
그것이 오딘의 시험이자 충고였다는 사실을, 토르는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정신이 드느냐?”
토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궁니르는 어지간한 랭커들도 드는 게 쉽지 않은 무기였다.
단순한 무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기에 담겨져 있는 힘에, 그리고 그 무기와 함께 오딘이 쌓은 역사에.
숨이 막혀 금방이라도 질식될 것만 같았다.
‘전 아직도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궁니르를 손에 쥐고 있으면 오딘의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은 이 궁니르의 주인이자, 아스가르드의 왕이었다.
뛰어난 랭커가 되어 궁니르를 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오딘의 그림자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 무게를 잊지 말거라.”
자신의 손에서 다시 궁니르를 빼앗아 가며.
오딘은 새하얀 창을 태양에 가까이 들어 올려 보였다.
“이건, 왕관의 무게이니라.”
그때부터였다.
토르의 꿈이 오딘의 뒤를 이어, 아스가르드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이 된 게.
저 위대한 무기를 손에 쥐어, 자격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것이.
‘아스가르드여-.’
토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눈앞을 가득 메운, 수만 명에 달하는 아스가르드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음이 보인다.
“……영원하라.”
토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황금성의 발키리들이.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이.
그리고 자신의 출정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아스가르드의 백성들이.
자신을 따르고 있음이 보였다.
꽈악-.
손에 쥔 궁니르를 꽉 움켜쥐었다.
아버지라면.
아스가르드의 위대한 왕, 오딘이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아버지는…….’
그 생각이 이어지던 때.
“아들아.”
오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린 게 아니었다.
이건, 오래전 무스펠하임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자신에게 오딘이 했던 말이었다.
“날 좇을 필요는 없다.”
자신은 늘 오딘의 뒤를 따랐다.
그것이 훌륭한 왕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무래도 그걸, 오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세상에 같은 모양을 가진 왕은 없다. 나라는 틀에 너를 맞추지 말거라. 왕은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틀을 말입니까?”
“그래. 넌 나의 아들이지만, 나보다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게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이 정말.
오딘보다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생각부터가 무의미했다.
누구처럼 좋은 왕. 누구보다 좋은 왕…….
이런 생각들을 떨쳐 버려야 한다.
지금은 그저.
“네가 어떤 왕인지를 보이거라.”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모두-.”
그분이 가르친 모든 걸 잊어버려야 할 때였다.
“-살아서 돌아오자.”
“아스가르드여-!”
척, 척-.
브룬힐데의 외침이 왕국 전체로 뻗어 나가자.
영원하라-!
출정식에 모인 병사들뿐만이 아닌, 아스가르드의 모든 백성들이 함께 연호했다.
함성소리가 왕국을 가득 메웠다.
심장이 거세게 뛰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출정을 앞둔 지금. 비로소 확실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드디어, 아스가르드의 왕이 되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