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
장호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책상 옆으로 뛰어가 물 주전자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주전자에는 물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장호는 눈을 비비고 주변을 살폈다. 이불이 바짝 말라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너 언제 온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한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가며 답했다.
“나도 몰라. 오니깐 이렇게 돼 있던데?”
아직도 약한 빗줄기가 내리고 있었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석주가 빗물을 흡수하는 모습을 누군가 볼까봐 일부러 길을 돌고 돌아 동쪽 문으로 나왔다.
걷는 내내 한제 몸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모두 석주가 흡수했다. 본래 석주를 방에 숨겨 두려고 했지만 바깥에 숨기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제는 이슬이 담긴 조롱박을 숨겨뒀던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날이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그곳에 구슬을 숨겼다.
그러고 나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일단 비가 그치면 다시 구슬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 조용히 그곳을 떴다.
한제가 잡무실에 도착해 물통을 드는데 유 사형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험악한 얼굴의 유 사형은 한제를 보고 놀라더니 갑자기 활짝 웃으며 한제가 들고 있던 물통을 뺏어 들었다.
“이 사제 아닌가. 어때? 부모님은 강녕하시고? 자네 없는 며칠간 사형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는가.”
한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친척들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허나 한제는 갑자기 유 사형이 이렇게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유 사형, 안녕하십니까? 부모님은 강녕하십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제는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어 일단 신중히 답했다.
“이 사제, 이제 매일 이렇게 일찍 올 필요 없다네. 내가 일전에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장난 좀 친 걸세. 매일 10독씩 채우라는 말을 진짜 믿으면 어쩌는가. 이제부터 하루에 1독만 채우면 되네. 그리고 물독을 다 채우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밥을 먹어도 되고. 혹시 누가 괴롭히거든 이 사형 이름을 대게. 제대로 손봐줄 테니.”
유 사형은 가슴팍을 치며 말했다. 그 친절함이 오히려 무슨 함정 같아서, 한제는 잠시 망실이다 질문을 했다.
“사형,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유 사형은 곧바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버럭 화를 냈다.
“사제, 대체 이 사형을 뭘로 보는 건가. 우리가 남인가? 자넨 내 사제이니 내가 챙겨야지. 앞으로 자네 일은 곧 내 일이네. 자 오늘은 비도 왔으니 쉬도록 하게.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손 장로님께서 자네를 찾아왔었네. 이제 돌아왔으니 장로님께 가서 보고하게나.”
말을 다 끝낸 유 사형이 잠시 한제의 반응을 살폈다.
한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옅은 웃음을 지었다. 손 장로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유 사형이 저리 친절해진 것은 분명 그 일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오해일 테지만 한제는 내색하지 않고 유 사형이 일전에 하던 대로 대충 대답해봤다.
“응.”
그 모습에 유 사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건방지게 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쩌면 자신이 못되게 군 것을 기억하고 한제가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유 사형은 기명제자가 된 지 13년이 지났다. 잡무처에서도 6년을 일했지만 장로님이 직접 수련생을 찾아온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정식 제자를 보내는 것도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수련생 신분인 자신은 이곳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았기에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노란색 종이를 한제에게 내밀었다.
“사제, 이 사형이 자넬 처음 보자마자 마치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더라고. 이건 내 작은 성의일세. 받아두게. 혹시 필요하지 않으면…”
한제는 유 사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색 종이를 집어갔다. 자신이 집에 갈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부적이었다.
“좋아요, 사형의 성의를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죠. 일단 장로님이 저를 기다리실 테니, 내일 다시 못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한제가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유 사형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로님 일이 중요하지. 얼른 가보시게.”
한제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내심 손 장로가 대체 무슨 일로 자신을 찾은 것인지 걱정이 됐다.
‘혹시 석주에 대해 눈치채신 건가?’
그런 두려움이 일었으나, 다행이라면 석주를 잘 숨겼다는 것이었다.
★ ★ ★
잠시 후 정원에 도착하자 지난번에 본 흰색 옷의 청년이 나타나 약간 놀란 듯 물었다.
“왜? 또 집에 가려고?”
한제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 정원 안에서 손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를 들여보내 거라. 어서!”
흰색 옷을 입은 청년은 입을 삐쭉 내밀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제를 한 번 쳐다보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정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손 장로가 있는 방 앞까지 안내한 후, 다시 한 번 한제를 힐끗 훑어보고는 사라졌다.
한제가 한층 긴장한 채로 여러 가지를 추측하고 있는데 정원 중앙의 방에서 한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한제는 아무 것도 감출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런 한제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손 장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 돌아온 게냐?”
한제의 심장이 요동쳤다.
“어젯밤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잡무처에 갔더니 유 사형이 장로님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해 바로 온 것입니다.”
손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그는 한제를 붙잡고 발을 한 번 굴렸다. 그러자 무지갯빛 구름이 나타나더니 그 둘을 한제가 묵는 방으로 옮겨줬다. 날아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한제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방에 도착하자 손 장로는 한제를 내팽겨 치고는 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던 중 한제의 침상 아래에서 샘물이 든 조롱박을 발견하고는 한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제는 심장이 마구 요동쳤지만 애써 진정했다.
“이게 무엇이냐?”
한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재빨리 대답했다.
“장로님, 그 안에는 산에서 채취한 샘물이 있습니다. 신비로운 샘물이라, 지칠 때마다 한 모금 마시면 바로 기운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책에서 본 바로는 선인들의 것은 다 좋다고 했는데 샘물마저 이토록 신비로울 줄은 몰랐습니다.”
손 장로는 조롱박을 열어 냄새를 맡더니 근엄하게 꾸짖었다.
“누가 샘물을 물었더냐. 어디서 이 조롱박을 찾은 것이냐? 빨리 말하거라!”
한제는 순간 멍해졌으나 재빨리 대답했다.
“그저 샘물 위에 떠다니기에 주운 것입니다.”
손 장로는 가느스름한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조롱박을 한번 매만지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이 조롱박에서 엄청난 영기가 흐르는군. 확실히 이 안에 담아둔 샘물을 마시면 기운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한데 저놈한테 주기에는 아까운 물건인데. 연단을 만드는 데 사용하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야. 난초랑 다른 약초들이 다 말라 버린 게 이 조롱박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 어떤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원리가 존재하는지는 좀 더 시험해 봐야겠어.’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손 장로는 조롱박을 다시 자세히 보다가 갑자기 한제를 노려보았다.
“네가 아주 간이 부었구나. 어디 감히 장로에게 거짓을 고하느냐. 대산파가 이제 우스운 모양이구나!”
한제는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장로님, 저는 거짓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그냥 샘물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 장로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면 내 모를 줄 아느냐? 이 조롱박 꼭지를 보니 분명 딴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물에 떠다니는 것을 주웠다고 한 네 말은 거짓말일 게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이 조롱박을 어디서 났느냐? 사실대로 고하지 않으면 바로 대산파에서 쫓겨날 줄 알거라!”
한제의 얼굴에서도 분노가 일었다.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한 듯 한제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가라고 하시면 나가지요. 저는 대산파에 와서 매일 물 긷는 것 외에 한 게 없습니다. 매일 항아리 10독을 채우느라 일주일에 겨우 한 끼만 먹고 버텼습니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고구마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굶어 죽었을 겁니다. 이것이 대산파의 수련입니까? 그깟 조롱박이 뭐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딴 지 얼마 안 됐다고요? 누가 따놓고 잃어버린 건지, 제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그걸 딴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십시오!”
선인이 되기 위한 수련
손 장로는 짐 보따리의 고구마와 손에 들린 조롱박을 번갈아 보았다.
‘이 조롱박을 가져가긴 해야겠는데 수련생의 물건을 빼앗고 쫓아내기까지 하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그리고 다른 사제와 사형들이 알게 되면 서로 이걸 가지려고 하겠지. 절대 비밀로 해야 돼. 게다가 이놈 반응을 보니 분명 이 조롱박이 하나는 아닐 게야. 그걸 전부 차지해 연단을 만들면…?’
손 장로는 잠시 망설이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일주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니 말이다. 그런 줄은 몰랐구나. 오늘 이렇게 알았으니 이 문제는 내가 꼭 해결해주마. 수련생도 우리 대산파의 제자가 아니더냐!”
이렇게 말을 끝낸 손 장로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한제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속으로 비웃고는 다시 상냥하게 말했다.
“한제야, 이 조롱박은 내가 가져가겠다. 대신 내 너를 내 동자로 삼으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제는 순간 어리둥절해 했다.
“싫습니다. 동자는 하인이 아닙니까. 저의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분명 저를 때려죽이실 겁니다.”
손 장로는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다. 아무리 2대 제자 중에서 실력이 형편없는 장로라지만 그래도 동자를 들이겠다면 수련생들이 줄을 설 터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손 장로는 억지로 화를 누르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내 너를 제자로 삼으마. 장문께 가서 이야기하고 올 테니 너는 짐을 챙겨 내 정원에서 기다리거라.”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제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구름을 타고 장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손 장로가 사라지자 한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손 장로가 자신을 제자로 들이려는 이유가 더 많은 조롱박을 얻기 위해서임을 눈치챘다.
‘산에는 조롱박이 널려 있으니 석주로 저런 것쯤이야 얼마든 만들 수 있지. 이왕 이렇게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이 기회에 꼭 선인술을 배우고야 말겠어.’
생각을 고쳐먹자 내심 기분이 좋아져, 꽤 많은 고구마를 장호에게 남겨주고 짐을 챙겨 정원으로 갔다.
한제는 이번에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지 않고 그대로 정원으로 들어갔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구석의 큰 나무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는 한제를 내려다보았지만 막아서지는 않았다. 방금 전 장문에게서 손 사숙이 한제를 제자로 들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속으로 비웃었다.
‘쓰레기 같은 사부에 쓰레기 같은 제자라. 아주 환상의 조합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