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6
탐랑은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면서 광풍이 불어닥치더니 검은 안개가 나타나 급속도로 응집되며 한 자루 창이 됐다. 이 창에서는 온 세상을 파멸시킬 듯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나하나의 법보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수련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고 탐랑을 향한 눈빛에는 경외심이 드러났다.
탐랑은 이런 상황을 즐겼다. 사람들의 저런 눈빛을 받고 있노라면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도 당시 한제에게서 받았던 굴욕과 두려움도 잊을 수 있었다.
“이것들은 내 법보의 일부에 불과하다. 정말로 강력한 법보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어. 내가 그것들을 꺼낸다면 세 번째 단계 수련자라 해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해!”
탐랑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종대홍은 창백한 얼굴로 후회했다.
‘끝났다. 저자에게 저렇게 많은 법보가 있을 줄이야. 게다가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군. 끝났어. 끝났다고!’
한데 그때, 탐랑의 발아래를 받치고 있던 거대한 수인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두 눈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푸른 빛이 번득였다.
탐랑은 한층 오만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주위에 있던 법보들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발동될 준비를 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하늘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파문의 중앙에서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인영은 약간 흐릿했지만 냉랭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한데 그때까지 오만하기만 하던 탐랑이 갑자기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었고 심장은 쿵쾅댔으며, 쩍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두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역력했다. 심지어 눈을 비비고 흐릿한 인영을 다시 자세히 살피기까지 했다.
“마, 말도 안 돼! 잘못 본 거겠지!”
그에게는 두려움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법보를 빼앗아 간 악몽 같은 존재를 여기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것이다.
탐랑의 전신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하늘에서 나타난 인영이 가까워짐에 따라 백만 개의 벼락에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저, 저자가 어떻게! 어떻게 이곳에! 말도 안 돼! 계내에 있어야 할 자가 어떻게 계외로…? 저자는 또다시 내 모든 법보를 빼앗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눈 깜짝할 사이 또렷해진 인영이 한 발 앞으로 나선 그때, 사방에 자리한 수련자들은 탐랑이 각종 법보를 가지고 상대를 처리하는 순간을 기대하며 그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탐랑은 바들바들 떨다가 어느 순간 곧장 뒤로 돌아 도망쳤다. 모든 힘과 수준을 동원해 90배로 속도를 증폭시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에 놀란 새처럼, 소환해놓은 법보를 챙길 여유도 없이 다급하게 도주한 것이다.
이 급작스러운 광경에 수련자들과 종대홍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탐랑이 지금… 무슨 신통술을 사용하려 하는 거지?”
“너무 빨라서 눈으로는 쫓을 수가 없더군. 강력한 법보를 사용하기 전에 준비를 하는 건가?”
“그런데… 아무래도 탐랑이 달아나는 것 같은데⋯⋯.”
한편,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영, 한제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탐랑!”
법보 수확
한제 역시 태고 성신에서 탐랑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 속 탐랑은 이미 망월에 의해 죽은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에 탐랑을 본 순간 자제력이 뛰어난 그조차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탐랑은 이미 저 멀리 도망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영문을 모르고 멍한 얼굴로 그와 탐랑을 번갈아 쳐다보는 수천 명의 수련자들뿐이었다.
한제의 두 눈이 싸늘하게 번득였다.
‘탐랑의 수준으로는 절대 봉계의 진을 뚫을 수가 없다. 한데 어떻게…?’
게다가 지금 탐랑의 속도는 매우 빨라서 한제가 눈을 잠시 돌린 사이 이미 이 수련성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땅에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인이 멍하니 서 있었다. 탐랑의 통제를 잃은 그에게서는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옆에는 거대한 도가니가 놓여 있었다. 거친 기운이 느껴지는 그것에서는 멀리서도 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옆에 놓인 검은 안개의 창은 아직 완전히 응집되기 전이었는데 안개였다가 창으로 창이었다가 다시 안개로 눈 깜빡할 사이에도 수백 번씩 뒤바뀌었다.
이 모든 것들 주위로 아홉 개의 거대한 비석이 진을 이룬 채 어스름한 빛을 발산하며 보호막을 형성했고 그 바깥으로는 아흔아홉 자루의 검이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들로부터 피어오른 검기는 서로 연결된 채 강력한 기운을 풍겼다.
갖가지 법보들로부터 시선을 거둔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탐랑은 여전히 꽤 많은 법보를 가지고 있군!’
피식 웃은 한제는 저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수련자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몸을 날리면서 손으로 허공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허상의 손이 나타나 하강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장 바깥쪽에 있던 아흔아홉 자루의 비검이 바들바들 떨다가 마치 자석에 끌리듯 그 거대한 손으로 빨려들었다.
한제는 입을 벌려 원신의 정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광풍이 일더니 아흔아홉 자루의 비검을 감쌌고 그 찍혀 있던 탐랑의 낙인이 사라졌다.
한편, 탐랑은 어느새 암갈족 수련성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를 본 순간 이미 그의 머릿속은 새하얘진 상태로 감히 붙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한제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당한 나머지 사고 능력을 잃고 그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한데 어느 순간, 탐랑이 뭔가를 깨달은 듯 우뚝 멈춰 섰다. 얼굴에는 혼란의 빛이 가득했다.
‘잠깐! 지금 나의 수준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높아졌다. 당시와는 하늘과 땅 차이지. 게다가 그때보다 더 강한 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잖아. 천쇠에 이른 수련자라고 해도 두렵지 않지! 한데 고작 이한제 때문에 도망을 친다고?’
그는 순간 울컥 치욕과 분노가 치솟았다. 한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난 도망치지 않아. 돌아가서 이한제를 처리하고 당시의 원한을 갚겠다!’
두 눈이 살기로 번득이더니 탐랑은 몸을 홱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탐랑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아흔아홉 자루의 비검에 찍어 놓은 내 신식이 지워졌어! 망할 이한제 녀석!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기에 내 신식의 낙인을 멋대로 지워버린 거지? 이번에도 내 법보를…!’
당시의 악몽을 떠올린 탐랑의 얼굴이 깊게 가라앉았다.
짧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수백 번이나 생각이 뒤바뀌던 탐랑은 결심한 듯 다시 돌아가려 했다. 허나 미처 세 번째 걸음을 떼기도 전에 그는 다시 멈춰 섰다. 창백한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호골구비(護骨九碑)에 찍어 놓은 낙인도 지워졌어! 호골구비는 내가 어느 신비로운 묘에서 얻은 것으로 한참 동안 어떠한 신식도 남겨져 있지 않았던 탓에 내 낙인이 곧장 그것과 하나로 융합됐지. 그래서 보통 수련자라면 절대 그것을 지울 수 없어. 그런데 이렇게 쉽게…?’
탐랑은 크게 망설였다. 한제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강력해졌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이다.
‘방금 너무 빨리 도망친 탓에 녀석의 수준을 살피지도 못했군. 허나 비록 비석과 비검을 빼앗겼다 해도 내게는 아직 천황로와 무마창(霧魔槍), 그리고 장천목령(葬天木靈)이 남아 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가려던 탐랑의 체내에서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 움큼 피를 토해낸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무마창도⋯⋯ 빼앗겼다!”
다시금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심신을 덮쳐들었다. 이제 다시 돌아가 한제와 맞서겠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최대한의 속도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씹어 먹어도 모자랄 놈 같으니!’
씁쓸함과 동시에 분노, 굴욕감이 치솟았다. 당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후 새로운 법보들을 모아온 끝에 지금과 같은 강력한 존재가 됐다. 이제 온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영향력과 위압감도 생겼다. 허나 한제를 마주치자마자 도망이나 치고 있다니, 더없이 굴욕적이었다.
잠시 후, 탐랑은 몸을 바르르 떨며 또 한 번 피를 토해냈다.
“찢어 죽일 녀석! 천황로까지 앗아가다니!”
탐랑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후려파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렇게 많은 법보를 꺼내두는 게 아니었어! 빌어먹을!”
탐랑은 후회와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계속해서 도망쳤고 벌써 암갈족 수련성으로부터 까마득히 멀어진 후에도 멈추지 않고 질주했다.
한편, 암갈족 수련성에서는 한제가 거대한 손으로 탐랑의 법보들을 거둔 후 지면에 선 거대한 수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 탐랑은 그때보다 훨씬 강력한 법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아흔아홉 자루의 비검만 해도 살역계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강하지. 뼈로 만들어진 아홉 개의 비석도 극강이다! 허나 그보다 놀란라운 건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창이다. 심지어 고마의 기운이 풍기다니… 적어도 수만 년은 됐겠어.’
도가니 역시 범상치 않았다. 탐랑이 그 위에 신식을 남겨둔 방법도 특이했는데 당시 고신의 솥과 마찬가지로 법보의 위력 중 극히 일부만을 발휘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 도가니는 고요와 관련이 있음이 분명했다. 요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고요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한제는 통제를 잃고 멍하니 서 있는 수인을 향해 거대한 손을 뻗었다.
콰쾅!
한제가 소환한 거대한 손이 수인에 닿은 순간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수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거대한 손은 수인에게서 피어난 한 줄기 푸른 기운과 충돌하더니 바들바들 떨리다가 펑 하고 산산 조각이 났다.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수인에게 저런 방어력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쇄열기 수준 수련자를 죽이고도 남을 만큼 위력적인 자신의 거대한 손바닥이 아무런 상해도 입히지 못하고 파괴되다니… 게다가 수인을 통제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제대로 통제한다면 위력은 몇 배로 증폭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가진 법보의 대부분은 탐랑 것이었지. 탐랑은 엄청난 행운을 타고 난 자야. 그가 가진 법보는 수련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해!’
한제는 입을 벌려 원신의 정기를 토해냈고 이는 거대한 그물이 되어 수인의 몸을 뒤덮었다. 뒤이어 한제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수인은 그대로 한제의 저물공간으로 끌려 들어갔다.
모든 법보를 회수한 한제는 몸을 돌려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인 수련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을 알아보겠느냐!”
한제는 싸늘한 얼굴로 옥패를 하나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러자 한 노인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옥패를 자세히 살피더니 잿빛이 된 얼굴로 외쳤다.
“황제의 영패!”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누구도 떠나지 말고 이곳에 남아 기다리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한제는 멀지 않은 곳에서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종대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의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다!”
명을 내린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긴 빛이 되어 파문 속으로 사라졌다.
★ ★ ★
타락의 땅. 탐랑은 여전히 속으로는 욕을 지껄이며 도망치고 있었다. 또다시 이한제에게 법보를 빼앗기다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한데 그때, 그의 앞에 돌연 파문이 일어났다. 순간 표정이 크게 변한 탐랑은 곧장 방향을 틀었고 오른손으로 전방의 허공을 움켜쥐어 손바닥 만한 노란색 나뭇잎 하나를 소환했다.
나뭇잎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파문을 향해 돌진했다.
“일엽봉천(一葉封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