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97
장존회의 운락과 사묵자에게 거칠고 오만한 말을 내뱉었을 때에도 그는 신중한 상태였다. 그는 대제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대제의 권세를 빌려 자신의 힘을 배가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수많은 빛줄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을 받치고 있는 나뭇잎을 만지작거렸다.
한데 그때, 그는 흠칫 놀라 표정이 급변해서는 오른손을 살폈다. 나뭇잎을 쓰다듬은 순간 원력 한 가닥이 손을 타고 나뭇잎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과 나뭇잎을 자세히 살펴도 특별한 건 없었다. 마치 방금 그 느낌이 그저 착각이었던 것처럼…
비록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허공에 떠오른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식물이 대지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이지 특이하군.”
한제는 더는 이파리 위에 내려앉고 싶지 않다는 듯 대제성의 허공을 가르며 이동했고 그 와중에 조심스레 신식을 펼쳐 사방을 면밀히 관찰했다.
황혼이 질 무렵, 한제는 수없이 많은 식물로 둘러싸인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백의의 노인을 보게 됐다.
노인의 옆에는 술동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던 여러 갈래의 빛을 제외하고는 한제가 이곳에서 본 첫 번째 사람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천천히 노인의 뒤에 내려섰다.
허나 노인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낚시에 집중했다.
한제 역시 말없이 노인 곁에 가부좌를 틀었다.
고요한 와중에 서북쪽 구역에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 역시 이곳의 고요함에 묻혔다.
호수는 매우 맑았다. 바닥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물에 물고기가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노인과 한제는 술동이를 사이에 둔 채 앉아 있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더니 이내 밝은 달을 드러냈다.
가벼운 바람이 불어 호수를 에워싼 식물들을 흔들면서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호수에는 작은 파문이 번져 나갔다.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듯 밝은 달이 맑은 호수에 비쳤다. 계속해서 호수를 보고 있노라니 진짜 달이 어디에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건가? 아니면 호수에 빠졌나?
사방은 고요했고 눈앞의 광경은 아름다웠다. 한제는 태고 성신에 들어온 뒤 내내 긴장하고 피로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쉴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곁에 앉아있던 노인이 거친 목소리로 물어왔다.
“술 좀 마실 줄 아나?”
한제는 술동이를 보지도 않고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간 술 덕분에 목구멍이 얼큰하고 뱃속이 화끈거렸다. 마치 한 마리의 화룡을 삼킨 것만 같았다.
미세함 땀이 방울방울 이마에 맺혔다가 곧장 하얗게 피어올라 사라졌다.
뜨거운 느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짙어졌고 곧 한제는 온몸이 타오르는 듯했다. 화염의 힘이 체내에서 폭발하려는 것만 같았다.
온몸을 타고 흐르던 열기는 순간적으로 체내 원력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원력이 급속도로 가동되었고 한제는 체내의 원력이 전보다 더 늘어났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원력이 늘어난 그 순간, 타오르는 듯한 느낌 또한 배가 됐다. 이제 머리카락까지도 불타고 있는 것만 같았고 심지어 열기가 땀구멍을 통해 발산되기까지 했다.
화염은 점점 강해졌고 한제의 왼쪽 눈에는 주작의 문양이 드러났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남색 화염이 온몸을 뒤덮고 체내의 화염과 융합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울음소리와 함께 왼쪽 눈에서 튀어나온 남색 주작은 편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2각쯤 지났을까?
주작은 한제의 왼쪽 눈으로 들어가 사라졌고 온몸을 불사를듯하던 화염 역시 점차 사라졌다. 그제야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가 입을 열었다.
“좋은 술이군요!”
노인은 선의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건 아무나 마실 수 있는 게 아니야.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라 해도 망설이기 마련이지. 그런데도 너는 크게 한 모금 들이마시더구나.”
“이게 무슨 술입니까?”
한제가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방금 술을 한 모금 마신 순간 그는 체내에서 화염의 본원이 한층 더 두꺼워진 것을 느꼈다.
덕분에 그의 주작은 다음 각성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워진 상태였다. 특히 술에 든 화염의 힘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술이 아니라 피다.”
노인은 매우 온화한 얼굴로 웃었다.
한제가 흠칫 놀라는 순간, 평온하던 호수의 수면에 돌연 격렬한 파문이 일었고 그 안에서 묵직한 포효까지 들려왔다.
동시에 맑았던 호수가 순식간에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식을 뻗어도 그 안은 전혀 들여다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노인은 호쾌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낚싯대를 팽팽하게 당겼다. 그러자 호수 아래에서 터져 나온 포효가 한층 더 격렬해지면서 점점 다가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낚싯줄이 완전히 당겨지면서 길이가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머리가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의 머리였다. 정중앙에는 크지 않은 종기가 나 있었는데 거의 갈색에 가까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노인이 낚으려 했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인 듯했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한제는 흠칫 놀랐다.
용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으로 쩍 벌린 입에는 낚싯바늘이 걸려 있었다. 호수 밖으로 쑥 빠져나온 용은 몸통만 해도 족히 1만 척에 달했다.
붉은 용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며 낚싯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거칠게 뒤틀었다.
“캬오오오!”
하지만 낚싯줄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용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노인은 껄껄 웃으며 일어나더니 낚싯대를 슬쩍 뒤로 잡아당겼다.
그 순간, 거대한 용은 몸부림쳐도 소용없음을 알아차렸는지 입을 쩍 벌리고는 노인을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녀석의 거대한 몸이 다가오자 엄청난 위압감에 비릿한 바람이 훅 끼쳐왔다.
좀처럼 당황하는 법 없던 한제의 얼굴조차 경악으로 물들었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심지어 용이 접근해오자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나기까지 했다.
“세 번째 단계!”
용이 풍기는 강력한 위압감은 당시 수도자에게서 느꼈던 것과 매우 비슷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보다 강한 흉수라니!”
반면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훌쩍 날렸다. 오른손에 낚싯대를 쥔 노인이 왼손을 가볍게 휘두른 순간, 한제는 노인의 왼손에서 한 줄기 화염이 피어오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불 안개에 가까운 화염이었다.
노인의 손짓에 사방에서는 콰르릉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거대한 용은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의 머리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부딪힌 듯 뒤로 밀려났다.
불 안개는 호수 위로 드러난 용의 몸을 따라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곧 타닥, 타닥 하고 타오르는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캬아아아!”
거대한 용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더니 호수로 돌아가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때 노인이 손에 쥔 낚싯대를 다시 잡아당기자 용은 순식간에 끌려왔다.
“조그만 염룡 주제에 감히 도망치려 드느냐!”
낮게 호통을 친 노인은 용의 머리 위에 올라서더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이 진동했고 바짝 졸아든 눈동자에서는 충격의 빛이 드러났다. 노인의 뒤로 나타난 거대한 주작을 보았기 때문이다.
용을 낚다
한제의 주작보다 훨씬 더 거대해 하늘을 뒤덮을 듯한 노인의 주작은 노회한 기운을 뿜어냈고 체내에서 발산된 허상의 화염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다.
‘허상의 화염!’
주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캬오오오!”
이 광경에 한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작의 크기와 허상의 화염, 게다가 그 강력함은 선대 주작성황보다도 거대했다.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이 주작의 허상은 노인이 들어 올린 왼손에 응집됐다. 그 순간, 노인은 멀리서 볼 때 마치 주작의 부리처럼 보이는 주먹으로 용의 머리를 두들겼다.
꽝!
주작의 부리는 용의 머리에 있던 종기를 그대로 꿰뚫었다. 그러자 고름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뭘 멍하니 서 있느냐? 얼른 술동이를 들어! 이 늙은이가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노인의 호통이 천둥처럼 귀에 박힌 순간, 한제는 곧장 술동이를 집어 들고 몸을 훌쩍 날려 용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받았다.
철철 흐르는 피에 술동이가 금세 차버리자 한제는 가지고 있던 약병까지 꺼내 들었다. 허나 약병은 용의 피가 닿자마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술동이를 다 채운 용의 피는 호수로 떨어져 내렸다. 이 피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는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그 피를 그대로 받아 마셨다.
아까 노인이 건넨 술동이에서 들이켠 양의 세 배에 달하는 피를 한순간에 삼킬 수 있었다.
노인은 그런 한제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용의 머리에서 뛰어내렸다.
손에 들고 있던 낚싯대는 던져버리고 낚싯줄만 거둔 그는 다시 오른발로 용의 머리를 밟고 뛰어올랐다.
용은 무척 분노한 듯했지만 노인의 발길질에 포효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호수 아래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좋아, 과연 우리 주작성종, 주작족의 사람이구나. 낭비할 수는 없지! 껄껄껄.”
노인은 크게 웃으며 한제의 곁으로 내려갔다.
용의 피를 잔뜩 삼킨 한제의 체내에서는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화염이 일었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노인에게 대꾸할 틈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는 체내의 원력을 빠르게 다스렸다.
노인은 그를 힐끗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 부족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됐구나. 게다가 이자의 주작은 곧 허상의 화염을 각성할 게야. 훌륭해! 우리 부족의 6대 주작이 되겠군.’
흐뭇한 얼굴로 웃던 노인은 이내 몸을 숙여 오른손으로 한제의 얼굴을 몇 번 꼬집었다. 이어서 손을 한제의 품으로 넣어 몸 곳곳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그래, 누군가 보낸 첩자가 아니라 분명 주작족 사람이야. 한데 육신은 고신의 것이로군. 허! 정말 흥미로워!’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