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8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한제는 머리가 저릿했다. 신통술이 제대로 펼쳐진 모습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심장이 쿵쾅댔다.
폭풍이 완전히 소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2대 주작은 옥패를 하나 소환해 한제에게 건넸다.
“이 옥패에는 모든 결인과 우산을 펼치는 방법까지 들어 있다. 조금의 실수도 없도록 정확하게 외운 뒤 옥패는 없애버려라!”
말을 마친 그는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은 채 호흡을 시작했다.
한제는 자신이 금제에 통달한 상태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통은 아홉을 셀 동안 2백만 개에 달하는 낙인을 그려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는 결단기 수준이었을 때부터 빠르게 낙인을 그려내는 데는 도가 터 있었다. 금제 중에는 배치할 때나 분해할 때 속도가 생명인 것들도 있고 수많은 낙인을 그려내야만 위력을 발휘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원고 선존, 그러니까 원고 선황이 발휘한 것도 완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몰래 배운’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술법은 대체 누가 창조한 걸까? 원고 선황은 어디에서 몰래 배운 거지? 더구나 그렇게 몰래 배워 완전하지도 않은 신통술로 그런 위력을 냈다면 이 술법의 완전한 위력은 대체⋯⋯?’
한제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수준이 다 무언가? 하늘은 이토록 넓고도 높은데… 이 하늘 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
잠시 후 숨을 깊게 내쉰 한제의 두 눈이 결의로 빛났다.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지만 한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항심만 더 거세질 뿐이었다.
‘할 수 있다! 못 할 게 어디 있느냐!’
세상에는 일반인도 있고 선인도 있다. 아랫사람이 있는가 하면 윗사람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근본적으로 매우 불공평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공평한 곳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런 신통술을 만들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오늘은 남이 만들어둔 것을 배우지만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 이한제가 만든 술법을 배우고 싶어 하도록 만들겠다!’
한제는 굳건한 의지가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을 감은 한제는 손에 쥔 옥패에 심신을 주입했다. 그리고 그 안에 기록된 수많은 낙인들을 빠짐없이 외웠다.
한제의 손에 들려 있던 옥패는 곧 펑 하고 가루로 부서지더니 마침 불어온 바람에 흩어져 저 먼 곳으로 날아갔다.
세 번째 단계의 화작족 선조는 비록 공열기 초기였지만 손짓 하나로 온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지금 각종 은둔술과 축지성촌을 발휘해 유금표를 끌고 화작족 본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내 그는 화염으로 둘러싸인 화작족 주성 깊이 들어서더니 곧장 폐관수련을 하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의 화염은 불똥 하나로도 어지간한 수련자의 육신을 불태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화작족 선조는 어떠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유금표는 화작족 선조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이미 과거를 완전히 잊은 채 자신마저 속이고 있었기에 지금 그는 스스로를 6대 주작이라 믿었다. 그리고 6대 주작이라면 비록 기습을 당해 끌려온 처지라 해도 존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곳에는 흐릿한 허상의 문이 하나 있었다. 더구나 불바다에 감춰져 있어 보통 수련자는 발도 들일 수 없는 곳으로 화작족 선조는 그곳을 삼엄하게 지켰다.
화염 속의 흐릿한 문에는 강력한 금제가 깃들어 있었다. 이 금제는 화작족 선조가 아니라 그의 주인이 남겨놓은 것으로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인 그로서도 단기간에는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화작족 선조는 들끓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털썩 소리가 나도록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유금표의 두 눈이 가늘게 변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이자 화작족 선조인 상대가 고작 문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주인님, 6대 주작을 잡아 왔습니다. 주인님의 회복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주인님?’
유금표는 당혹감과 함께 마음속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의 주인이라면⋯⋯?’
문 너머에서는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화작족 선조는 전혀 힘들거나 불쾌해하는 기색 없이 한참을 꿇어앉은 채 공손히 기다렸다. 이에 유금표의 당혹감은 커졌고 급기야 스스로를 속인 기만책이 풀릴 기색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6대 주작?”
잠시 후, 흐릿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화작족 선조는 몸을 바르르 떨며 전보다 한층 공손한 표정으로 얼른 입을 열었다.
“이미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이자의 피도 삼켜보았고 수혼술도 펼쳤습니다. 틀림없는 6대 주작입니다! 타락의 땅에서 잡아 들였습니다!”
문 너머에서는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침묵은 형태 없는 압박감이 되어 유금표의 몸을 달달 떨리게 했다. 그의 눈에 어려 있던 고고함은 이미 흩어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이제 짙은 두려움만 남은 상태였다.
‘일 났다, 일 났어!’
유금표는 겁에 질려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노예로 삼은 자라면⋯⋯ 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한제는 반드시 날 구하러 오겠다고 했지만 그자가 도착했을 때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겠구나.’
그때, 흐릿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들여보내라!”
유금표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충격에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허나 화작족 족장이 곧장 그를 잡아채 흐릿한 문으로 달려들었다.
문에 배치되어 있던 금제가 잠깐 압박을 가했으나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문 안쪽으로는 유금표의 짧지 않은 삶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는 하늘도 땅도 없이 그저 거대한 한 덩어리 화염만 있을 뿐이었다. 공간의 7할 이상을 차지한 화염에서는 요란하게 불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주위로는 팔뚝 굵기의 가지들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화염은 거미줄처럼 뻗은 가지의 정중앙에 있었는데 통로로 보이는 이 가지들 안쪽으로는 수많은 돌기가 꿈틀거리면서 중앙의 화염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정중로월(井中撈月)
일곱 가지 색깔로 활활 타오르는 화염 깊은 곳에는 가부좌를 튼 인영 하나가 흐릿하게 들여다보였다. 온몸에 갑옷을 두른 인영의 뒤에서는 일곱 빛깔의 주작 한 마리가 번득였다.
“넌 이만 물러가라.”
흐릿한 목소리가 공간 가득 울려 퍼지는 동안 일곱 빛깔의 주먹만 한 화염 덩어리 하나가 날아들어 화작족 족장의 미간에 녹아들었다.
화작족 선조는 거의 광기가 흐르는 눈빛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주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얼른 물러나 사라졌다.
이제 이 기이한 공간에는 유금표와 화염속 인물만 남게 됐다.
유금묘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는 화염 속 인물이 발산하는, 자신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죽여 버릴 수 있을 법한 위압감을 느꼈다.
“넌 6대 주작이 아니다.”
흐릿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유금표의 심신에 떨어졌다. 이에 유금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머리가 저릿해졌다.
유금표는 두려움과 후회가 가득한 눈빛으로 털썩 소리가 나도록 꿇어앉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소인 유금표, 보잘것없는 수련자일 뿐인데 그자에게 협박을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부디 살려주십시오. 주인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법 흥미로운 것을 가지고 있구나.”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사방에서 가지들은 단숨에 유금표의 육신을 옭매고 체내로 파고들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에 유금표는 비명을 질러댔다.
“끄아아악! 사, 살려 주십시오!”
가지가 불룩불룩 부풀며 피를 빨아들여 중앙의 화염으로 흡수되면서 유금표의 육신은 눈 깜짝할 사이 쪼그라들기 시작했고 생기도 단숨에 흩어져 사라졌다.
“크악!”
그 순간, 유금표는 몸부림치며 정기를 한 움큼 분출했다. 정기가 짙은 검기를 발산하자 허이국을 검령으로 하는 거대한 검이 나타나 빠르게 회전하면서 검기의 폭풍을 형성했다.
“주인님, 통로를 열었습니다!”
이 상황에 유금표만큼이나 놀란 허이국은 마음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이한제 이 망할 녀석! 화작족 성지에 세 번째 단계인 화작족 족장을 노예로 삼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군!’
그때, 다시 그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있군.”
★ ★ ★
타락의 땅 대제성.
전송진에 가부좌를 튼 채 풍우계(風雨界)에 심신을 녹여 넣고 천운자의 혼을 찾아 스며들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이 포악하게 번득였다.
1대 주작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화작족 성지 안에 있는 자가 3대 주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래는 계획을 포기하고 유금표를 불러들일까 했지만 한제는 그 순간 과감한 계획을 떠올렸다.
아직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1대 주작이라면 이 계획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도와주려 할 것이라 믿었다. 심지어 그는 주작의 깃털까지 선물로 주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배신자 3대 주작이 태고 성신에 또 다른 분신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는데 한제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아니,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이번 일을 실행한 뒤 태고 성신을 떠나 계내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는 중상을 입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수만 년간 회복에 힘쓰는 와중에도 태고 성신을 통제해 음모를 꾸며댔다. 딸을 계내로 보내 청림을 유혹했고 향불의 힘을 모으기 위해 4대 선계를 파괴하게 했다. 사람들을 모아 봉계 지존의 육신을 무너뜨려 거의 죽음에 이르게 했고 눈여겨본 계내 사람은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했지. 사마묵, 청림… 청수 사형의 광기에도 그자가 관계됐을 터. 오직 도를 심기 위해 이런 짓들을 벌인 그가 부상을 당했다. 이건 기회야!’
그가 하려는 일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가 올라앉은 진이 밝게 번득이기 시작하더니 빠르게 회전하며 회오리를 형성했다. 이내 한제는 쾅 소리와 함께 대제성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때, 호숫가에 앉아 있던 2대 주작은 한제가 사라진 곳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선배님, 선배님은 아직도 저 아이가 우리 주작족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지요. 이미 시험에 통과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 아이를 믿습니다. 그렇기에 선배님의 명을 어기고 저 아이에게 주작족의 가장 강한 술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시험을 마친 자가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니까요.”
화작족 성지의 유금표는 수없이 많은 가지에 얽매여 비명을 내질렀고 허이국은 다급하게 한제를 소환했다.
일곱 빛깔 화염 안쪽에 자리한 이는 허이국을 저지하지 않았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그 순간 허이국이 형성한 검기의 폭풍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가리 찢겨 나갔다. 동시에 형태 없는 거대한 한 쌍의 손이 폭풍을 양쪽으로 갈라 완전히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