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17
불새는 곧 주작의 허상을 한입에 집어 삼켰다.
콰쾅!
불새의 온몸에서 피어오르던 화염이 순식간에 짙어지더니 모습도 조금씩 변화해 주작과 비슷하게 바뀌어갔다.
‘역시 주작이었군! 크하하하!’
화작족 선조는 눈에 광기가 번득이더니 오른손을 유금표의 정수리에 얹었다. 그는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매우 똑똑하고 의심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미 몇 차례의 확인을 거쳤음에도 유금표에게 수혼술까지 펼치는 것이었다.
기억이 하나하나 심신 위로 펼쳐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화작족 선조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아직 완벽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눈앞의 상대가 6대 주작이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화작족 선조는 소매를 휘둘러 유금표를 데리고 사라지더니 엄청난 속도로 화작족 본부로 향했다.
★ ★ ★
같은 시각, 2대 주작이 용을 낚아 올렸던 대제성 호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유금표의 기만술은 정말 대단하군. 화작족 선조조차 속여 버리다니. 이제 유금표가 화작족 성지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낙인과 금제를 소환해냈다.
금제는 점점 겹치더니 주위에 진을 형성했다. 전송 효과를 지닌, 특수한 방식을 통해 한제를 어딘가로 이동시켜줄 수 있는 진이었다.
“선배님, 제게 종대홍이라는 이름의 종이 있습니다. 녀석을 좀 돌봐주시겠습니까?”
땅거미가 질 무렵, 한제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쪽에 술동이를 두고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앉아 있던 2대 주작이 자애로운 눈으로 한제를 돌아보았다.
“준비를 마쳤느냐?”
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련해야 할 법보가 몇 개 있지만 저쪽에서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2대 주작은 손에 쥐고 있던 낚싯대를 내려놓고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염룡을 통제하는 방법은 이미 알려줬고… 그 외에 바라는 것이 있거든 말해 보거라.”
한제는 말없이 2대 주작을 바라보았다. 고작 며칠을 함께했을 뿐이지만 아낌없이 도와주고 보호해준 상대로부터 한제는 애정을 느꼈다. 그런 상대와 이별을 눈앞에 두자 그조차도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2대 주작은 한제를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었다.
“연이 닿으면 또다시 만나게 되겠지. 어린아이처럼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다음에 만날 때도 이번처럼 나를 더 놀라게 해다오.”
한제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말씀하신 대로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합장에 드리운 고혼금의 수련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고혼금?”
2대 주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고혼금은 당시 1대 주작님이 빼앗아 온 것으로 나도 그 수련 방법은 알지 못한다. 대신 그 금제를 보호막으로 쓸 수 있도록 줄 테니 직접 연구를 해 보거라. 너라면 수확이 있을지도 모르지.”
말을 마친 노인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콰쾅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하늘의 색이 변하고 바람과 구름이 몰아쳤으며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뒤이어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허공에 나타나 냉랭한 눈으로 2대 주작을 내려다보았다.
노인이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가리키자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던 거북이는 점차 줄어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 손바닥만 해졌다.
2대 주작은 거북이를 움켜쥐더니 한제에게 건넸다.
거북이를 받아 든 한제가 포권을 하고는 막 감사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2대 주작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감사할 것 없다. 선배와 후배 사이에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다. 그래도 정 그렇게 고맙다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 주는 게 어떻겠느냐?”
2대 주작은 진지한 얼굴로 하며 물었다.
“뭐든 말씀하시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한제는 크지 않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2대 주작은 낚싯대를 내려놓고는 겸연쩍은 얼굴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네 주작이 네 번째로 각성했으니 넌 이제 주작의 낙인을 주작족 사람 중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그러니 난 네가 7대 주작을 선택할 때⋯⋯.”
한제는 말없이 상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훌륭한 자를 골랐으면 한다. 충동적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알겠느냐?”
한제는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기에 약간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3대 주작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2대 주작은 손을 휘휘 내젓더니 잠시 후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7대 주작은 풍류를 즐기는 그런 자여서는 안 된다는 거다. 어휴,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느냐? 똑똑한 놈이!”
더욱 의아해진 한제는 다소 멍청해진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풍류를 즐기는 자를 7대 주작으로 선택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긴, 지나치게 여색을 밝힌다면 수련에 도움이 안 될 테니까요.”
그 말에 2대 주작이 눈을 부릅뜨더니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젠장, 내 말은 사랑에 목맨 녀석을 택하지 말라는 거다! 그렇게 똑똑한 놈이 당최 알아듣지를 못해! 좋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7대 주작은 아이들 중에서 골라라. 다 커서 원신의 양이 파괴되어버리면 내 공법을 배울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꼭 아이들 중에서 7대 주작을 골라라! 그리고 다음번에 나와 만날 때 데려오도록 해라!”
2대 주작의 말대로 항상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던 한제였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똑똑히 기억해둬라! 원신의 양이 망가진 녀석이어서는 안 돼! 너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봐라, 넌 어리고 나보다 수준도 낮아. 허나 난 수만 년 동안 수련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원신의 양을 완벽하게 보존해오고 있단 말이다. 난 정말 너 같은 녀석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들 그렇게 사랑에 목을 매는지! 난 한 번도 여인과 연을 맺은 적이 없어! 덕분에 여태까지 매일매일 정력이 넘치는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단 말이다!”
한제는 멍하니 노인을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대 주작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허험! 내 신통술로 말할 것 같으면 오직 원신의 양을 완벽하게 보존해온 사람만이 그 본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공짜로 부탁만 하려는 건 아니다. 네게도 신통술을 하나 전수해 주마.”
2대 주작의 제안에 한제의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 주작족의 3대 술법 중 하나로 원고 선존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신통술이다. 경각에 달린 목숨도 구할 수 있는 신통술로 원신의 양이 파괴된 자라도 수련할 수 있지. 단, 그 위력이 매우 강력한 대신 수명까지 태워버릴 수 있으니 반드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명심해라!”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2대 주작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손을 휘둘러 매우 기이한 형태의 낙인들을 그려냈다.
낙인이 하나하나 그려짐에 따라 노인의 미간에서는 허상의 화염이 피어오르며 낙인으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낙인은 불빛을 번득이며 서로 조합되어 화염으로 이루어진 뼈, 화골(火骨)을 형성했다. 뼈라고는 하지만 곧게 뻗은 지팡이에 가까운 형태로 길이는 10척 정도였다.
야망
화골이 나타나자 2대 주작은 눈빛이 한층 진지해지더니 두 손으로 다시 결인을 그려 여러 개의 낙인을 또 소환해냈다. 이 낙인들은 하나하나의 얇은 선이 되더니 화골의 끄트머리에 붙었다. 만약 곧게 뻗은 선 사이에 기름종이만 붙인다면 펼치지 않은 우산처럼 보일 터였다.
2대 주작이 두 차례 소환해낸 낙인들은 서로 달랐다. 처음에 나타난 것들은 총 999개, 두 번째로 소환한 것들은 9999개에 달했다.
허나 주위의 원력에는 파동조차 없었다. 구름과 바람이 몰아치지도 않았고 호수에 물결이 일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두 차례 낙인을 소환해낸 2대 주작의 표정은 한층 진지해져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그는 기이한 눈빛으로 두 손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그 두 손이 동시에 결인을 그려낸 순간, 한 줄기 빛이 호수마저 뚫고 사방으로 끝없이 뻗어 나갔다.
2대 주작의 두 손은 점점 더 빠르게 결인을 그려나갔다. 너무 빨라 그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신식으로 살피려고 해도 기이한 힘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 동시에 하나하나의 낙인이 그의 손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1백 개, 1천 개, 1만 개, 10만 개⋯⋯.
“하앗!”
2대 주작은 하늘을 향해 낮게 기합을 내질렀다. 그때는 그의 두 손에서 그려진 낙인이 이미 1백만 개를 넘어선 상태로 이 낙인들은 사방을 휩쓸며 하나의 폭풍이 되어 곧장 화골에게 달려들었다.
찰나의 순간, 폭풍은 화골과 융합하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한제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두 눈은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하늘로 떠오른 폭풍 아래 펼쳐지지 않은 우산이 있었고 허상의 화염들로 형성된 수많은 화룡이 그 주위를 맴돌며 포효했다. 온 하늘이 화룡에게 점거당한 듯한 광경으로 대제성 어디에서라도 똑똑히 볼 수 있을 터였다.
“분계고산(焚界古傘)!”
2대 주작이 낮게 외치자 온 세상이 바르르 진동했다. 폭풍은 순간 회전을 멈추었다.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대지의 식물들은 하나둘 허리를 굽히며 대량의 수증기를 뿜어냈고 호수 속의 물고기들은 빠르게 움직이면서 부글부글 물거품을 일으켰다. 호수가 들끓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면에는 얇은 균열이 빽빽하게 나타났다.
우주 역시 끝없는 왜곡을 일으켰다. 계속해서 퍼져 나간 왜곡은 눈 깜작할 사이 타락의 땅 절반을 뒤덮었다. 이 왜곡의 범위에 접한 수련성들은 극심한 가뭄을 맞은 듯했고 금방이라도 소멸될 것만 같았다.
2대 주작의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다. 이 신통술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 조합은 999개의 낙인, 두 번째 조합은 9999개의 낙인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 조합은 모두 990000개의 낙인으로 이루어지지! 이 모든 낙인을 아홉을 셀 때까지 다 그려내야만 한다. 각각의 낙인에는 원신의 양과 수준의 힘이 배어 있지. 거기에 특수한 구결을 더하면 우리 주작족의 3대 술법 중 하나인 분계고산을 발휘할 수 있다!”
분계고산! 그게 바로 이 신통술의 이름이었다.
“하나의 낙인에라도 실수가 생긴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반작용이 일어난다. 공현기 중기에 이른 나조차도 그 반작용에는 중상을 입을 수밖에 없지. 이는 원고 선존으로부터 전수된 술법이야. 1대 주작님이 고향에 계셨을 당시 선존은 이 술법으로 하나의 계에 있던 1백억 명을 단숨에 죽였다는구나. 이 술법에 ‘분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지.”
1백억 명이라는 수가 한 번에 와 닿지 않아 한제는 오싹함마저 느꼈다.
“물론 원고 선존이었기에 더욱 강력하고 무시무시했겠지. 이것이 도술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1대 주작님 말씀에 의하면 분계고산은 총 아홉 번까지 펼칠 수 있고 그때마다 세상을 멸할 수 있다. 원고 선존이 하나의 계를 파멸시켰을 당시에는 이 우산을 여덟 번까지 펼쳤다더군. 선존조차도 아홉 번까지 펼칠 엄두는 나지 않았던 거지! 그 역시 이 술법을 몰래 배우다시피 한 것이라 완전하지는 못했다고 하더구나.”
1백억 명을 단숨에 죽인 위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에 한제는 다시 한번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공겁 초기에 이른 1대 주작님 역시 다섯 번까지만 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공현기 중기 수준으로 이 우산을 두 번 펼친 바 있다. 사실 이 술법은 너무나 위험해 원래는 알려줘서는 안 되는 것이지. 자칫했다가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넌 똑똑하니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한제는 펼쳐지지 않은 우산처럼 하늘에 뜬 채 멈춰 있는 폭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신통술을 배우게 되다니, 두려울 정도였다.
“하나의 계에 있는 1백억 명을 죽였다니… 이것을 정말 신통술이라 할 수 있겠느냐?”
2대 주작은 가빠진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하늘에 멈춰 있던 폭풍이 바르르 진동하며 사라져갔다.
“이 이상은 보여줄 수 없다. 저걸 펼쳤다가는 엄청난 피해가 일어날 테니까.”
2대 주작은 혀끝을 깨물어 공현기 중기의 피를 한 움큼 뿜었다. 피는 화르륵 타오르며 피 안개가 되어 폭풍에 녹아들었고 그제야 폭풍은 점점 흩어져갔다.
1각 후, 폭풍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대제성의 모든 것은 천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우주에 나타났던 왜곡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