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251
그렇게… 꿈은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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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내와 계외 사이의 칠흑처럼 어두운 허공. 붉은 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깜빡거린 빛이었다. 하지만 그 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또한 그 허공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죽음처럼 적막하고 고요할 뿐이었다.
전가 노인이 부벽이라 칭한 이곳에서, 붉은 빛 안에 누워 있던 두 구의 시체 중 백발 청년의 시체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어두운 허공에 돌연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처음에는 그다지 격렬하지 않았지만 금세 포악해진 천둥번개는 온 세상을 다 뒤흔들 듯한 요란한 소리와 기세를 퍼뜨렸다.
콰르릉! 꽝!
천둥이 칠흑처럼 어두운 허공을 꿰뚫고 밖으로 튀어나가려 했고 셀 수 없이 많은 번개가 구불거리며 곳곳을 비췄다. 수많은 은빛 뱀과 같은 번개가 이리저리 흐르면서 거대한 그물을 형성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허공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요란한 천둥과 번개는 마치 드디어 깨어난 왕을 반기는 듯했다.
천둥번개 속에서는 한 줄기 화염 폭풍도 일어났다. 아홉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화염 폭풍은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활활 타올랐고 아홉 가지 색은 곧 하나로 합쳐졌다.
이글거리는 화염은 백발 청년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나가며 저 위에서 위엄을 떨치고 있는 천둥번개에 대항하듯 아래쪽에서 활개를 펼쳤다.
화염 역시 왕을 환영하고 있는 듯했다.
천둥번개와 불바다가 반기고 있는 그들의 왕인 백발 청년은 바로 한제였다.
그의 왼쪽 눈에는 화염이, 오른쪽 눈에는 번개가 번득였다. 한 줄기 깨달음을 얻은 듯한 그의 얼굴에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이 묻어났다.
무려 70여 년을 이어진 꿈이었다. 사실 지난 70여 년의 세월은 그저 꿈이라고 할 수 없는, 그의 또 다른 인생이었다. 그 스스로 만들어내고 기만술로 꾸며낸 속임수이기는 했지만.
그의 두 눈에는 아직 혼란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금빛 손자국이 남아 있는 광인의 오른손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한제의 눈에 드러났던 혼란한 빛은 차차 흩어져 사라지고 그 대신 냉정하고 굳건한 빛이 나타났다. 뒤이어 모든 것을 떠올린 그의 몸에서는 무궁무진한 살기도 발산되었다.
“장존, 허신천존, 그리고 여러 선비들아⋯⋯ 이 이한제가 깨어났다!”
한제의 두 눈에서는 짙은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일어나 고개를 들고 붉은 빛 너머의 허공을 바라보았다.
“2천여 년간 수련해온 이 이한제는 오늘 마침내 공의 문을 열어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될 것이다!”
한제는 짧게 내뱉더니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천둥번개의 본원!”
꽈르릉!
우렁찬 천둥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이 허공을 채우고 있던 모든 번개가 하나로 뭉쳐 한 줄기 불멸의 번개가 되었다. 뒤이어 한제는 오른쪽 눈동자의 번개 문양을 번득여 소환해 불멸의 번개와 하나로 합쳤다.
이제 이것은 불멸의 천둥번개 낙인, 뇌인(雷印)이 되었다. 그 주위의 번개는 아홉 번을 맴돈 뒤 그것과 융합되어 한 줄기 본원의 천둥번개가 되었다.
본원의 천둥번개가 나타난 순간, 허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낙인에서 발산되는 강력한 힘에 진동하던 허공에서 일어난 줄기줄기의 파문이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이 허공의 모든 것이 왜곡되어 버렸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기운 한 줄기가 천둥번개 안에서 확산되었다. 그 강력한 기운에서는 그 어떤 견고한 것이라도 부술 수 있을 듯한 위엄이 느껴졌다. 이 정도 위엄을 가진 천둥번개를 통제할 수 있다면 뇌선이라 불러도 될 터였다.
본원의 천둥번개 낙인 안에서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의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이 한 줄기의 천둥번개만으로도 공열기 초기에 이른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주위의 천둥번개까지 흡수한 이 천둥번개는 이제 한 덩어리의 기운에 가까운 모호한 형태가 되었다. 세상이 처음 열렸을 때 혼돈 속에서 흘러나온 천둥번개 본원의 기운이었다.
아무런 색도 띠지 않은 이 연기는 붉은 빛 주위를 맴돌며 한제를 감싼 채 회전했다. 그리고 회전하는 연기 속에서 한제는 다시 한 번 오른손을 휘둘렀다.
“화염의 본원!”
한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주변에 무궁무진한 불바다가 몰아쳤다. 하나로 합쳐진 아홉 가지의 색깔은 허상의 화염이 되었는데 이 화염에는 한 줄기 도념이 어려 있었다.
이 화염은 허상의 화염을 초월해 도의 화염, 도화(道火)가 되어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도화에서는 완성된 화염의 본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허상의 화염에 모여들었던 모든 화염은 순간 한데 응집돼 수없이 많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화염의 낙인이 되어 한제 앞에 나타났다.
이 화염 낙인은 실체를 갖춘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 화염이 발산하는 열기는 공열기 초기 수련자라도 단번에 불살라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공의 문을 목격하다
천둥번개의 본원과 화염의 본원이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이 두 개의 본원만으로도 한제는 공의 문을 충분히 열 수 있었고 공열기 후기나 절정 아래 수준의 수련자는 모조리 처단해버릴 수 있었다.
“나와라, 원인과 결과!”
두 눈에서 번득이던 서늘한 빛이 흩어져 사라지고 깊은 깨달음의 빛이 차오르는 듯하더니 그의 몸에서는 전에 없던, 꿈속 대학자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는 수련자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기운이었다. 또한 당대의 유명한 대학자라 해도 수련자가 된 후로는 그 기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수련자의 길,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고고하고 우아한 대학자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한제만이 몽도를 이용해 그 꿈속에서 얻었던 대학자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가 원인과 결과를 소환할 때 함께 폭발시킬 수 있었다.
원인과 결과의 본원은 형태가 없었지만 한제의 오른손에 응집되었다. 손을 펼친 것은 원인, 움켜쥔 것은 결과였다. 그의 오른손은 이 순간부터 그가 직접 깨달은 네 번째 신통술이 되었다.
바로 인과인(因果印)이었다!
인과인. 한제의 펼친 손은 이 세상의 원인이었고 그가 움켜쥔 손은 이 세상의 결과였으며, 손을 움켜쥐는 과정은 연이었다. 그 연의 힘을 통해 인과는 하나의 낙인이 되었다.
한제는 이 낙인을 이제 막 깨달았을 뿐이지만 그 위력은 충격적이었다.
이 세상에 원인과 결과에 대해 그보다 더 잘 파악한 사람은 없었다. 이 현묘한 사상은 70여 년의 몽도와 2천여 년의 사색, 여기에 갖가지 행운을 얻은 한제가 꿈에서 깨어나며 인과를 깨달은 순간 네 번째 신통술로 갖춰졌다.
이 낙인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을 인과의 윤회에 빠뜨릴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빗방울에 옷자락이 젖듯 조금씩 변화시키는 몽도와는 달리 천둥번개처럼 강력하고 빠른 효과를 일으키는 술법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을 펼치고 있으면 그의 몸에서는 공열기 수준의 수련자마저 놀라 도망치게 할 정도로 강력한 대학자의 기질이 풍겼다. 그 기운을 가지고 온 세상의 이치와 도리를 깨달은 한제는 그 자체로 이 세상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과인은 한제가 스스로 창조해낸 네 번째 신통술일 뿐만 아니라 그가 원인과 결과의 본원을 완성했다는 표식이기도 했다.
인과인과 천둥번개의 본원, 그리고 화염의 본원은 서로 교차되면서 사방을 맴도는 한편 하나하나의 고리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힘과도 같은 강력한 기운이 몇 배로 증폭되었다.
세 개의 본원을 완성한 이때, 공열기 절정의 수련자라도 전력을 다한 한제의 공격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본원을 완성하기란 매우 힘든 만큼 완성된 본원으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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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제가 세 개의 본원을 만들어냈을 무렵, 곤허성역 주작성 주위는 수만 명의 수련자가 이룬 삼엄한 봉쇄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고리형 대열을 이루어 주작성을 층층이 에워싸고 있었다.
이들은 계외의 수련자들로 미간에 낙인이 새겨진 이들의 얼굴은 잔인함과 악독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이 둘러싼 것은 계내 곤허성역의 마지막 병력이었다. 남운자를 위수로 한 이들은 주작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를 벌일 예정이었다.
사실 남운자는 이곳에 남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전투를 치러온 탓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또한 이들은 나천성역으로 가봐야 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고향에서 죽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필사의 항전을 벌일 생각이라면 봉계 지존의 고향인 주작성만큼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장소도 없었다.
사도환 역시 이곳에 있었다. 본래 청림과 함께 나천으로 가려 했으나 그는 고집스레 돌아왔다. 이곳 주작성은 그의 형제와도 같은 한제의 고향이자 한제가 실종된 곳이기도 했다. 그런 형제를 두고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죽는 게 뭐가 대수라고!’
사도환은 씩 웃더니 보라색 도포 차림으로 계외 수련자들 틈에 뛰어들었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출중한 데다가 오랜 시간 청림의 지도를 받은 그는 이미 30년 전 청림의 도움 아래 공의 문을 열고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된 상태였다.
십삼과 대두 등도 사도환과 함께 이곳에 남았다. 수준은 한참 모자랐지만 수차례 전쟁을 경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 그들은 하늘을 뒤덮을 듯 짙은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용반자와 노부자도 이곳에 있었다.
용반자는 잠에서 깨어난 뒤 마주친 수련자들 중 한제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제자인 중현자를 두고 홀로 이곳에 왔고 이곳이 계외 수련자들의 공격 아래 쉽사리 무너지지 않도록 공현기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산수도를 소환해 주작성을 완전히 뒤덮었다.
한편 나천성역의 선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한제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노부자 역시 이곳에 남아 분전해왔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노부자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그리고 이곳에 남은 또 다른 강자가 있었다. 한제에게도 익숙한 그는 바로 청룡성황이었다. 죽은 줄 알았지만 수십 년 전 돌연 나타난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계외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고 지금은 사성종 여러 장로들과 함께 주작성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는 비록 세 번째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다섯 번째 천쇠의 절정에 이르러 있는 만큼 굉장히 강력했다.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 대군에 포위되어 있는 곤허성역 수련자의 수는 8천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병력으로도 벌써 수개월을 버텨오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수만 명의 계외 대군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해왔지만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는 셋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푸른 옷의 사내였다. 매우 냉혹한 얼굴의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수많은 얼음이 소환되곤 했다. 바로 한제에게 죽음의 위기를 안겼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또한 사람은 봉천랑족의 주진이었다. 한제의 실종 이후 슬쩍 배반을 한 그는 봉천랑족을 이끌고 계내에 피바람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마치 당시 한제의 노예가 되면서 느꼈던 치욕을 몇 배로 갚아주려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중 수준이 더 낮은 주진은 노부자와 주작성 왼편에서 맞섰다.
얼음의 본원을 깨우친 푸른 옷의 사내는 수준이 매우 높아, 공현기 초기에 이른 본체로 전투에 임하면서 혼자서도 용반자와 사도환을 번번이 막아냈다.
이 전투는 곤허성역에서 치러질 마지막 전투였다. 곤허성역은 이미 거의 함락되고 주작성만 겨우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전투는 거의 끝을 보이고 있었다. 계내 수련자들은 절망감 어린 표정으로 계속해서 물러나고 있었다.
“봉계 지존에 영광을! 곤허성역에 영광을!”
어느 중년 수련자가 수십 개의 비검에 온몸을 관통당한 채 씁쓸하게 웃으며 외쳤다. 동시에 그는 자폭을 택했고 근처에 있던 두 명의 계외 수련자와 함께 죽음을 맞았다.
“봉계 지존에 영광을! 곤허성역에 영광을!”
다른 이들도 입을 모아 외쳤다.
“봉계의 지존은 이미 죽었건만 그런 자에게 영광이 다 무슨 소용이냐!”
푸른 옷의 사내는 차게 웃으며 손을 휘둘러 반경 1만 척을 얼음으로 봉인했다. 이에 용반자와 사도환은 다급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는 수만 명의 계외 수련자가 거친 기운을 발산하며 압박해왔다.
한데 바로 그때, 아주 먼 곳에서 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수많은 이들은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또한 그 소리에 함께 실려 온 서늘한 기운에 표정이 급변한 이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