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41
“천벌의 윤회 속에 운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가 이 동부계 안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뜻. 그렇다면 네 사람은 어떻게 칠채의 혼백이 될 수 있었던 거지? 분명 뭔가 문제가 있어!”
한제는 고개를 들어 선계의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두드려 겨자씨만큼 작아진 채 체내에 담겨 있는 지하마수를 가리켰다.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군. 심지어 세 주혼의 융합을 해결할 방법인지도 몰라. 만약 내가 환각에서 본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그렇다면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반면 그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청림을 비롯한 네 사람은 분명 칠채선존의 칠백이야. 그러나 그렇다면 천벌의 윤회 속에 존재하는 운명이 또 설명되지 않지.”
한제의 두 눈에 천천히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한편, 현라 대천존은 줄곧 한제를 관찰해오고 있었다. 한제가 주작성에서의 꿈을 꾸었을 때도 방금 전 세 번째 주혼을 찾기 위해 환각으로 뛰어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제와 함께 그 모든 것을 목격했다.
“생각의 순환에 빠졌군. 짧은 시간 안에 그 안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겠어. 사실 굉장히 간단한 일인데⋯⋯.”
혼잣말을 중얼거린 현라는 손으로 한제를 가리켰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는 현라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이 순간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이한 생각 하나가 번개처럼 내리치는 것을 느꼈다.
“변수! 이건 변수야!”
세 개의 봉인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눈으로 기이한 빛을 번득였다. 그의 머릿속은 전에 없이 또렷해졌다. 마치 세상 어떤 것도 그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청림, 탐랑, 모은미, 산령상인은 어쩌면 맨 처음에는 사도환이나 청수와 마찬가지로 천벌의 윤회 속에 운명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환생을 거듭하다가 기이한 변화로 인해 네 사람은 진정한 개체가 되어 버린 거야. 칠채선존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거지. 그들의 본원은 칠채선존인지 모르나 지금은 진정한 동부계 내의 사람이 된 거야!”
한제는 드물게도 흥분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환생과 변화 그리고 융합으로 지금 그들과 칠채선존은 완전히 구분되어 버렸어. 이전에는 칠채선존의 혼백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조화의 힘! 천도의 핵심에 가까운 힘! 네 사람에게 적용된 변수로 인해 방금까지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일이 벌어진 거야!”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덕분에 그는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청수와 사도환은 이 변수에 노출되지 않았기에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로 변하지 못한 것이겠지. 어쩌면 수만 년 후, 몇 차례의 죽음과 환생을 거듭하다 보면 천도의 조화 아래 완벽하게 분리될지도 모르지.”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또렷해진 머릿속에 그간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이 샘처럼 솟구쳤다.
“천도 내에 존재하는 힘이 칠백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삼혼 역시 변하게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이 힘을 장악해 세 번째 주혼을 독립시킬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세 번째 주혼이 독립되면 더는 삼혼의 융합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을 터! 그렇게 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다만 그 힘이 대체 무엇인지가⋯⋯.”
한제의 머릿속은 더없이 맑아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천도의 핵심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의 천도는 아직 불완전했다. 어쩌면 아직 자신이 장악한 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난 건지, 어떻게 수많은 생명과 여러 법칙을 탄생시켰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밤하늘 끄트머리가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을 때, 현라 대천존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도⋯⋯ 그것의 현묘함은 나 역시 깨닫지 못했지. 당시 연이 닿아 대천존이 됐을 때 아주 약간만 알게 됐을 뿐, 그것을 완벽하게 간파하려면 내 수준 역시 더 높아져야 할 거야.”
현라의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아홉 태양은 모두 수준을 더 높일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 성공한 자는 없지. 그저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환생의 시간 동안 고민할 뿐. 천도 그것은 태고신경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지만 태고 신경이 언제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사실을 누가 언제 알게 될지는 알 수가 없어.”
현라는 오른손 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의 검지에는 검은 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검은 구멍이었는데 회전하는 검은 구멍에서는 천도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른 아침, 밝은 빛이 밤하늘을 뚫고 대지에 드리우자 한제는 생각을 접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잡한 눈빛으로 걸음을 내딛은 그는 긴 빛을 그리며 구름을 향해 돌진하더니 순식간에 하늘 너머 은하수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는 나천성역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천성역에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 사청은 그의 제자였고 둘은 인과관계로 얽혀 있었다. 그 연계를 통해 한제는 신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내 감았던 눈을 뜬 그는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한층 더 복잡해져 있었다. 그는 사청이 나천성역 동쪽 깊은 수련성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작게 한숨을 내쉰 한제는 동쪽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습은 천천히 허공에 녹아들며 사라졌다.
★ ★ ★
4대 장군은 나천성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전방에서는 거대한 안개 흉수가 머리를 휘두르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두 눈이 번득이는 것으로 미루어 흔적을 발견한 듯했다.
4대 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던 전가 노인의 눈빛도 밝게 번득였다. 안개 흉수의 표정을 통해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천성역과 소하성역이 맞닿은 곳에서는 칠채도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소하성역을 한바탕 뒤졌음에도 아무런 단서를 파악하지 못한 그가 다음으로 노리고 있는 곳이 바로 나천성역이었다.
나천성역 동부, 망망한 우주 속 어느 수련성. 크지도 않고 영기가 짙지도 않은 평범한 수련성이었다.
이곳의 수련자들은 거듭된 전쟁으로 극소수만 남아 있었고 대부분은 축기기나 결단기 수준에 불과했으며, 종파 역시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바닥에 쌓인 낙엽을 날리는 가을 어느 산골짜기. 난이 가득한 산골짜기였다. 가을에 만개하는 이 난의 향은 짙지 않았다.
가을마다 꽃이 만개하면 이곳은 절경이 됐다. 허나 꽃이 만개하는 것은 가을뿐이었고 겨울에 접어들면 말라붙은 난들은 눈에 뒤덮였다. 겨울이 물러가고 다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가 되어서야 가을 난은 되살아났다.
아직 늦가을에 이르지 않은 때라 산골짜기 안은 난향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개한 난초 무리 깊숙한 곳에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된 듯 세월의 흔적이 남은 오두막이었다.
그 오두막 앞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그는 주름이 쪼글쪼글한 얼굴로 눈앞의 난초를 바라보았다. 슬픔에 잠긴 눈빛이었다.
산골짜기 안쪽으로부터 불어온 가을바람에 난초가 흔들리자 그 향이 퍼졌고 동시에 바람은 노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 몇 올을 날리기도 했다.
노인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가 돌연 격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노인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붉어진 상태였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가을이군. 이 난초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곧 말라붙어 죽고 말겠지. 내년 이맘때에는 또 만개할 테지만 그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없을 터⋯⋯.”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에는 난초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어스름한 빛이 번득였다.
“지난 몇 해 동안 세 갈래의 봉인은 이미 완성됐어. 이건 내가 스승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노인이 중얼거렸다.
“내년 이맘때 나는 어디 있을까? 더는 환생하기 싫구나. 눈을 감고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아. 스승님, 오고 계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잠시 후, 노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을바람이 몇 개의 낙엽을 싣고 맴돌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산골짜기 너머 먼 곳으로 향했다.
바람은 떠났지만 그 바람에 실려 온 인영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노인 뒤에 서 있는 이 인영이 노인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죽음 직전에 만개한 난초를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난 노인은 한제를 향해 돌아섰다. 그 눈에 드러난 복잡함과 씁쓸함은 이내 사라지고 존경심이 드러났다.
한참 뒤 천천히 바닥에 꿇어앉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자 사청,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런 사청을 보며 한제는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파왔다. 사청의 몸 상태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칠채선존 세 번째 주혼의 환생이 바로 접니다. 하지만 저는 사청이지 결코 그가 아닙니다.”
사청은 꿇어앉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어째서 너냐⋯⋯?”
한제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사청과 접촉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상대를 십삼과 같은 제자로 여기고 있었다.
“스승님⋯⋯.”
사청은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저는 기억의 일부를 되찾은 뒤 도망을 택했습니다. 몸부림을 치기도 했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이곳에서 이 난초들을 보며 제 삶을 되돌아본 뒤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청입니다. 칠채선존 소도영이 아닙니다!”
사청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칠채선존의 세 번째 주혼은 그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억은 스승님께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첫 번째 주혼과 두 번째 주혼 그리고 4대 장군이 모두 저를 찾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4대 장군은 당시 칠채선존의 부하였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꾼 상태입니다. 그들이 세 번째 주혼을 찾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지요. 그중 누가 찾아내더라도 세 번째 주혼은 삼켜질 겁니다.”
사청이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허나 그것이 칠채선존의 운명이자 저 사청의 운명입니다. 저는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요. 환생을 한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도망쳐온 세 번째 주혼은 이미 말로에 이른 셈이지요. 세 번째 주혼은 기억에 불과해 어떠한 신통술이나 깨달음도 갖지 못했습니다. 혼은 강력할지 모르나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삼켜지느니, 차라리 스승님께 바치겠습니다.”
제자의 담담한 목소리에 한제는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팠다.
그는 청수에게 세 번째 주혼을 죽여 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나 어찌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자신의 자식과 같은 제자를 죽일 수 있겠는가!
사청과의 기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 장면들은 기억 깊은 곳에 묻으려 하면 할수록 또렷해졌다.
한제는 무엇보다 관계를 인연을 중히 여겼다.
“스승님,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만약 제가 나머지 두 혼 중 하나에 융합된다면 칠백은 자연히 그쪽으로 이끌려올 겁니다. 그중 다섯은 이미 완전히 분리됐으나 나머지 두 혼백은 그 주혼에 응집될 겁니다. 그 둘이 스승님께서 누구보다 아끼는 존재라는 것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지 않는다면 그들이 죽게 될 것이고 칠채선존의 삼혼은 하나로 합쳐질 겁니다. 그럼 스승님 또한 죽게 되겠지요.”
사청은 한제를 바라보며 밝은 눈빛을 드러냈다.
“지난 몇 해 동안, 세 번째 주혼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달은 저는 제 혼의 힘으로 세 갈래 봉인을 응집했습니다. 첫 번째 봉인은 외부의 도움 없이 제가 가동할 수 있지요. 이 봉인 아래 제가 죽는다면 세 번째 혼은 더 이상 환생을 거듭하지 못할 테고 스승님께서 거두실 수 있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세 번째 주혼은 제가 죽은 뒤 완전히 깨어나 스스로 동부계 중앙의 대문을 열 겁니다. 그럼 스승님께서는 그 문을 통해 동부계를 떠나실 수 있게 되겠지요.”
자신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사청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머지 두 개의 봉인은 스승님을 위해 준비해둔 겁니다. 이 두 개의 봉인은 선강 대륙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순간 갑자기 밀려들어올 선강 대륙의 힘과 합쳐 두 번째 주혼과 세 번째 주혼을 봉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 되면 모든 것은 평안해지겠지요.”
말을 마친 사청은 돌연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한 움큼 피까지 토해냈다. 피로 물든 난초는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웠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세 개의 봉인이었다. 이 봉인들을 위해 지난 시간 동안 사청은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동굴이 열리다
한제는 말없이 사청을 바라보았다. 각혈까지 하는 제자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더욱 아파왔다.
그때, 한제가 고개를 홱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험상궂게 구긴 얼굴로 소리쳤다.
“나 이한제는 천벌 안에서 내 운명을 되찾았고 천도의 주인이 됐다. 허나 왜 아직도 스스로 내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아직도 난 이런 선택 앞에서 갈등해야 하는가! 동부계의 하늘이든 선강 대륙의 하늘이든, 하늘이여, 보고 있는가? 이렇게도 모진 것이 하늘이라면 나 이한제 이 자리에서 맹세컨대, 반드시 하늘을 멸하고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