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07
한제는 몸을 홱 돌렸다. 불필요한 갈등은 일으키고 싶지 않았으나 남들의 표적이 된 마당에 당하고만 있을 그가 아니었다.
한제는 두 눈을 싸늘하게 번득이며 비쩍 마른 손을 들어 허공을 홱 찢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한제를 움켜쥐려 달려든 검은 손은 균열과 충돌하면서 그대로 찢겨 나갔다.
“크윽!”
“끄아악!”
“컥!”
먹먹한 세 사람의 신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무너져 내린 검은 손에서는 세 개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천술에 적잖이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공령기 수준이 아니었군!”
“육신이 저토록 강하다니! 저, 저자 고족 수련자와도 견줄 수 있겠어!”
강력한 충격의 여파에 뒤로 밀려나던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빠르게 도망쳤다.
그러나 한제의 성격상 일단 싸우기로 한 이상 끝을 봐야 했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낮은 포효와 함께 나타난 이사가 흥분한 듯한 눈빛을 번득이며 벌써 저 멀리 도망치던 한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아!”
눈 깜짝할 사이 따라잡은 이사가 검은 안개로 상대를 뒤덮은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허나 그 비명은 곧 흩어져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흡혈마수 역시 하늘을 우러러보며 포효하다가 공령기 수준의 수련자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단숨에 상대의 곁에 이른 흡혈마수는 곧장 그 거대한 주둥이를 꽂아 넣고 쭉 빨아들였다.
“크윽!”
공령기 수련자가 몸을 튼 순간, 한제가 오른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러자 수련자는 그대로 멎어버렸고 다음 순간 죽음을 맞았다.
한제는 흡혈마수의 등에서 벗어나더니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세 번째 수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화염의 본원 진신이 불바다가 되어 그대로 쏘아져 나가더니 거대한 아가리처럼 이 세 번째 수련자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이 세 번째 수련자는 온몸으로 비취색의 빛을 발산하며 화염에 저항하려 했다.
“스승님, 도와주십시오!”
동시에 그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치자 대초원이 바르르 진동하더니 먹먹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라!”
목소리와 함께 초원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진흙으로 이루어진 주먹이 한제를 향해 솟구쳤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지만 두 눈은 서늘하게 번득였다. 이내 그는 말라붙은 오른손을 꽉 움켜쥐더니 주먹을 마주 뻗었다.
꽝!
두 주먹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한제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면 진흙으로 이루어진 주먹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땅속에서는 허상으로 나타난 황토색 인영 하나가 곧장 초원 깊은 곳으로 줄행랑을 쳤다.
동시에 화염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아가리에서 비취색 빛을 발산하며 저항하던 세 번째 수련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비명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화염 아가리는 상대를 완전히 삼키자마자 하늘을 뒤덮을 듯한 화염 폭풍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는 한제의 본원 진신이 걸어 나왔다.
“네놈들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나를 원망하지 마라!”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던 한제는 저 멀리서 토둔술을 발휘해 달아나는 인영을 바라보다가 대지에 한 걸음 내딛었다. 이어서 서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비쩍 마른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다시 대지를 꾹 눌렀다.
그 손짓에 한 줄기 기운이 저 아래에서 폭발했고 한제의 머리카락이 마구 흩날렸다. 동시에 대지의 풀은 급속도로 말라붙기 시작했다. 풀의 수분이 순식간에 한제의 말라붙은 두 손을 통해 빨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풀이 빠르게 말라가는 동안 수증기가 한제의 두 팔로 몰려들었다.
한편, 진흙 속 수련자는 뒤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을 느꼈고 그 기운으로 인한 공포에 잠긴 채 달아났다. 저 기운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생은 거기서 끝이리라.
풀은 점점 빠르게 말라붙었고 도망치던 수련자는 이를 악문 채 멀지 않은 동굴을 향해 돌진했다.
“빌어먹을 저렇게 강한 자일 줄이야! 허나 이 극천 초원에서 난리법석을 피웠으니 죽음을 면치는 못할 터!”
잠시 후, 사내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자 가장 가까운 동굴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발산되더니 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동시에 공겁기 초기 수준의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노인은 망설임 없이 손을 매섭게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하늘을 덮으며 울려 퍼졌고 한 줄기 기운이 일어났다. 도망치던 수련자는 화들짝 놀라 온몸을 떨더니 우뚝 멈췄고 이어서 순식간에 뒤로 튕겨나갔다.
“썩 꺼져라!”
말라붙은 초원은 입을 쩍 벌린 맹수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고 이내 튕겨나가던 사내의 몸에 닿았다.
“끄아아악!”
사내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고 눈 깜짝할 사이 모든 수분과 피를 잃으면서 육신은 빠르게 말라갔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원신은 그대로 달아나려 했지만 순식간에 검은 기운에 휩싸이고 말았다.
“크아아!”
사내의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꼭두각시 이사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도우, 나는 좌추라 하네. 자네를 건드린 자는 죽었으니 이제 도술을 거두게. 이곳은 천우주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곳으로 문제가 생겨서는 안 돼! 극천 초원 수련자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 땅을 훼손하지 말게!”
허공에 허상으로 나타난 백발노인은 저 멀리 한제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의 말이 울려 퍼지자 지면의 풀들은 더 이상 말라붙지 않았다. 대신 수증기가 피어올라 한제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한제의 아홉 번째 순환을 마무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녹마주 수련자
한제는 저 멀리 선 노인과 극천 초원을 한 번 훑어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이곳 수련자 대부분은 땅속 깊은 곳에 기거하는군. 기이한 곳이야. 지대가 가장 낮은 곳이라⋯⋯. 그렇다면 천우주 내에서 지심(地心)에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할 터.’
잠시 후, 한제는 말없이 몸을 돌려 한 걸음 내딛었다.
이사는 한제의 소환을 받은 듯 흡혈마수의 왕과 함께 빛줄기가 되어 돌아가더니 사라졌다. 뒤이어 한제는 발밑에서 나타난 파문과 함께 세상에 녹아들어 극천 초원을 떠나갔다.
한제가 떠난 뒤에야 백발노인 좌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대지 위에 열 개가 넘는 허상이 속속 나타나 한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좌 선배의 결단 덕에 위기를 넘겼군요. 저자는 절대 우리가 당해낼 수 있는 자가 아니에요. 꼭두각시와 흉수만 해도 매우 막강했습니다! 아마도 강력한 문파의 높은 자겠지요.”
“공격도 매섭고 손속도 잔인했습니다. 흑산도(黑山道)의 네 사제를 죽이는 데 거침이 없었지요. 분명 마도의 수련자일 겁니다!”
“흑산도 사제들도 누굴 탓할 수는 없을 터. 저런 자를 먼저 건드렸으니 죽음을 자초한 셈이지. 이제 이 일은 마무리되었으니 다들 해산하세!”
좌추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마친 뒤 몸을 훌쩍 날려 대지 안으로 녹아들었다.
★ ★ ★
한제는 두 번째로 축지성촌을 발휘해 산이 겹겹이 줄지은 곳에 도착했다. 염란이 준 지도에 따르면 이제 동쪽으로 3개월 정도 더 가면 녹마주와의 경계인 내륙해에 닿을 터였다.
“천우주는 정말 넓군.”
한제는 흡혈마수를 소환해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흡혈마수는 빠른 속도로 날았다. 녹마주와의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수련자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고 일반인들의 도시만 가끔 보일 뿐이었다.
강인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녹마주를 무척 두려워했다. 이로 미루어 녹마주는 강자가 득실대는 곳인 듯했다.
한제는 수련자들을 몇 명쯤 마주쳤지만 서로 신경 쓰지 않았다. 간혹 신식을 뻗어 온 자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세 번째 축지성촌을 발휘했다.
천우주와 녹마주 경계에는 단해(丹海)라는 내륙해가 있었다. 이 바다는 천외에서 떨어진 단약이 폭발하여 만들어진 곳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단약 하나가 이렇게 넓은 바다를 이루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때문에 이 소문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이제 우스갯소리처럼 여기곤 했다.
단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물살도 거셌다. 내륙해라고는 해도 그 안에서는 광풍이 불고 파도가 몰아쳤다.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서는 천둥이 내리치고 빗방울이 떨어져 바닷물에 섞여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늘에 줄기줄기 파문이 생겨나더니 그 깊은 곳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바다와 하늘 사이에 섰다. 저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는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이제 물의 본원 아주 약간만… 반 바퀴만 순환시킬 정도면 된다. 허나 과연 응집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군.’
한제는 천천히 해수면을 향해 내려가 이내 해저로 진입했다. 가라앉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내 바닥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은 각양각색의 산호와 해초로 뒤덮여 있었고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쳤다.
한제는 천천히 내려앉아 가부좌를 튼 채 결인을 그렸다.
그 순간, 주위의 바닷물이 돌연 바르르 진동하면서 보이지 않는 파문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물의 본원, 응집!”
한제가 중얼거린 순간, 이 무궁무진한 단해에는 하늘에 닿을 것처럼 파도가 몰아쳤고 주변으로는 요란한 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한제의 몸에서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바다와 하나로 융합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해는 보이지 않는 한 층의 금제로 뒤덮여 있었다. 이 금제는 매우 현묘해 한제라 해도 지금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대해로부터 물의 본원을 응집하려던 순간 가까스로 알아챘을 정도였다. 바다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가지는 못하게 하는, 단해를 완전히 봉인하는 금제였다.
한편, 단해 안의 누구도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 무렵 천우주 수련자들은 녹색 도포를 입고 녹색 도깨비불로 뒤덮인 자들의 손에 학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녹색 도포의 수련자들은 바다 깊은 곳 동굴들을 하나하나 벌컥 열고는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했다. 도망치려는 자들은 끝까지 추격해 반드시 죽이고야 말았다.
단해는 봉인되어 있었고 녹색 도포의 수련자는 그 수가 매우 많아 그들로부터 도망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신통술과 비명이 뒤섞인 소리는 단해의 포효에 묻혔고 짙은 피비린내 어린 기운이 이 넓은 바다 안의 수많은 흉수를 자극했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었다. 애초에 힘과 수의 불균형으로 인해 저항조차 불가한 살육. 하나같이 수준이 높은 녹색 도포의 수련자들은 명령을 엄격하게 수행해 단해 안의 모든 천우주 수련자들을 섬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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