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48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극심한 고통과 함께 뼈로 이루어진 한 자루 검이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손바닥을 뚫고 자라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에 선 네 개의 진신 역시 똑같은 행동을 취하며 9척짜리 음도를 소환했고 이이서 한제를 따라 전갈의 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사장은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바치다
“한스럽다!”
제사장은 짧은 한 마디를 내질렀다. 눈썰미가 좋은 그는 단숨에 녹마로 안에서 일어난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한제에게 준 강한 것들이 녹색 마갈을 공격하는 데 이용되는 것마저 보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피를 토했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가문 대대로 해온 모든 것이, 평생을 바치고 지난 1백여 년간의 치열했던 ‘세월의 사투’를 벌인 것이, 이후 자신이 오로지 녹마를 부활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했던 모든 일들이 오히려 저 백발의 수련자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준 행위에 불과했음을 알고는 더없이 큰 분노와 깊은 원한에 휩싸였다. 이에 그의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그 한으로 인해 귀혼이 되어버렸다.
허나 지금 한제는 제사장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손바닥을 뚫고 자라난 칼을 휘둘렀다. 그의 뒤에 선 네 진신 역시 마찬가지로 음도를 휘둘렀다. 다섯 개의 날카로운 검기는 그대로 녹색 마갈의 혼에 떨어졌다.
전갈의 혼 역시 매우 짙은 원한을 느꼈다. 다만 그 한의 대상은 한제가 아닌 제사장이었다. 저 쓸모없는 작자만 아니었어도 이런 위기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제사장은 어이없게도 그의 눈앞에서 죽어버렸고 전갈의 혼은 그 한을 풀 길조차 잃어버렸다. 이에 그저 미친 듯이 달아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녹마로는 계속해서 붕괴했고 그렇게 무너져 내린 파편들이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제는 네 진신과 함께 다시 한번 음도를 휘둘렀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사방에 파문이 이는가 싶더니 세 갈래의 긴 빛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빛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 사람은 우뚝 멈춰 서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바로 운일봉과 당지아, 변운이었다.
이들은 어째서인지 1백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마갈 사당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은 고초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막상 사당에 진입한 뒤로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이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한데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엄청난 위력의 검기였다.
“이한제! 저자가 어떻게 여기에!”
“죽지 않았던 건가!”
세 사람은 놀라는 한편 두 눈이 바짝 졸아든 채 멍하니 한제와 그에게 쫓기는 전갈의 혼을 지켜보았다.
“크아아아!”
강력한 검기에 휩쓸리고 베인 전갈의 혼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격렬하게 몸을 떨었다. 그 와중에도 저항하려 했지만 무려 다섯 갈래의 검기에 감히 맞설 수도 없었다.
콰르릉!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전갈의 혼은 다섯 갈래의 검기에 동시에 베이면서 여섯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곧이어 한제는 곧장 아래쪽의 네 조각을 그대로 삼켰고 나머지 두 부분은 절규하며 달아나다가 전갈 형태의 건물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한제는 오른손을 뚫고 나온 음도를 거두지도 않고 네 개의 진신을 거느린 채 운일봉과 당지아, 변운 세 사람을 잠시 훑어보았다.
“떠나게!”
잠시 후, 한제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짧은 한 마디였다. 허나 그와 동시에 그의 체내에서 발산된 강력한 기세와 눈빛이 사방을 휩쓸었다. 이에 세 사람은 심신이 진동했다. 마치 한제의 눈빛에 모든 것을 간파당하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묵직한 위압감에 짓눌렸다.
다행히 그런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덜덜 떨고만 있었을 것이다.
특히 변운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한제는 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변운을 떠나기 전에 힐긋 훑어보았는데 그 눈빛만으로도 이 노인은 온몸을 바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세 걸음을 물러난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상대의 눈빛에서 느껴진 강력한 위압감에 그는 말 그대로 미칠 뻔했다.
떠나라는 한제의 한 마디는 마치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처럼 세 사람을 후퇴하게 했다. 당지아와 운일봉은 변운처럼 만신창이가 된 상태는 아니었으나 이들 역시 심신이 진동했다.
운일봉은 씁쓸한 마음을 삼켜야 했다. 1백여 년 만에 다시 만난 한제는 이제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조용히 물러났지만 사당을 떠나지는 않았다. 사당을 파괴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기 때문이다. 허나 한제 때문에 감히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한편, 한제는 숨을 거둔 제사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행운을 줬지. 허나 이 모든 것은 당신의 탐욕을 위해 나를 악용하려던 결과일 뿐.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싸늘하게 내뱉은 한제는 곧장 떠나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그는 돌연 작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다시금 그 노인을 자세히 살폈다.
제사장의 시체에서는 줄기줄기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머리에 응집되면서 천천히 손바닥만 한 검은 안개를 형성했다. 짙은 원한이 담긴 안개의 음산한 기운으로 인해 주위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저건⋯⋯?”
한제는 조심스레 검은 안개를 향해 신식을 뻗었다. 그리고 신식이 막 검은 안개와 접촉하려던 순간, 한제의 심신에는 거친 목소리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한스럽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고 두 눈이 번득였다.
“귀혼이로군!”
더구나 제사장의 귀혼은 한제가 극천 초원에서 공겁기 수련자를 죽이고 얻은 귀혼보다 품질도 훨씬 높았다. 상품 절정, 거의 절품에 가까웠다.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휘둘러 제사장의 귀혼을 거두었다. 이제 그는 절품에 가까운 귀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에 대혼문의 부 귀범까지 더한다면 절품에 가까운 환술을 발휘할 수 있겠어. 저 노인은 죽어서는 영혼까지 바쳐가며 나를 돕는군.’
귀혼을 거둔 한제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했다. 제사장에 대한 감정도 그 표정만큼이나 복잡했다.
그는 잠시 제사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노인의 시체는 곧장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녹색 도포만이 남아 있었다.
한제는 도포도 거두더니 신식으로 훑었다. 역시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결국 제사장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한제에게 바친 꼴이 됐다.
한데 지금, 한제의 수준이 솟구쳐 오를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얻은 행운으로 내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봐야겠군! 선강 대륙에서도 강자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을까? 어찌됐건, 맹세컨대 도마종으로 인해 겪은 고난을 절대 잊지 않겠다!”
한제는 살기를 감추지 않은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눈에 익은 이들의 머리가 하나둘 떠올랐다. 극천 초원에서 함께 싸웠던 이들의 머리였다.
가부좌를 튼 한제의 사방을 네 개의 진신이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한제는 마음 놓고 조용한 사당 안에서 수준을 증폭시켰다.
공령기 절정에 이르러 있던 그는 지금 무려 네 개의 본원 진신을 가지고 있었고 아홉 번째 본원도 완성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 아홉 번째 본원은 그의 수준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공현기가 머지 않았다.”
한제는 두 눈을 번득이며 가부좌를 튼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네 개의 진신에서는 본원의 기운이 튀어나와 한제의 체내로 녹아들었고 이에 한제 체내의 아홉 갈래 본원은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전이 점점 빨라짐에 따라 그의 수준은 공현기 경계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공현기 수련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허상의 본원을 깨달아야만 했다.
공령기와 공현기는 한 글자만 다를 뿐이었지만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공현기에 이르면 진정한 강자 반열에 오른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선강 대륙에서도 공현기 수준 수련자는 상당한 실력자로 인정받았고 현묘한 신통술들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한제에게는 그런 술법이 크게 유용하지는 않지만 공현기 수준 수련자가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었다.
체내의 아홉 개의 본원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공령기 절정에 달한 한제의 기운이 증폭했다. 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상공에는 허상이 하나 떠올랐다. 한 덩어리의 안개였다.
이내 회오리가 된 안개는 한제 체내의 아홉 갈래 본원과 같은 속도로 회전했고 이에 그의 원신은 눈부신 빛을 발했다. 이 빛은 체내에서 번득이고 있었지만 피부 너머로까지 뿜어졌다. 마치 한제가 투명해진 것만 같았다. 동시에 그는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콰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한제의 수준이 공령기 절정에서 공현기 초기로 돌파했다. 그 순간, 세상에 대한 한제의 느낌 역시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 흐릿하고 모호했던 부분들이 순간 또렷해진 것 같았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떠 사방을 둘러보았고 두 눈은 밝은 빛으로 번득였다.
“공현기는 발판에 불과할 뿐, 내 목표는 공겁기에 진입하는 것이다!”
한제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공현기는 그에게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그가 이번에 얻은 여러 행운, 특히나 녹마로 안에서 몇 년 동안 흡수해 축적한 힘은 원신에 흡수되자마자 그의 수준을 다시금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아홉 개의 본원을 하나로 합칠 수만 있다면 그는 아홉 번의 현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모든 것을 통과하면 공겁기에 이를 것이다.
한제는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전방을 가리켰다.
“아홉 개의 본원이여, 하나로 합쳐져라!”
그의 손짓에 사방에서 경계를 서던 화염과 대지, 물의 본원 진신이 진동했고 각각의 정수리로부터 본원의 기운을 대량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세 본원의 기운은 한제의 눈앞에서 뒤얽히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 본원은 오행에 속해 있어. 이것들을 하나로 합치면 공현기 중기에 이를 수 있지. 특히 셋 다 진신을 응집한 상태이니 하나로 합치면 진신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질 거야!”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인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세 갈래 본원의 기운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오행에 속한 세 개의 본원은 끊임없이 회전하면서 서로 충돌했고 그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한데 셋 모두 융합할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꾸 흩어지려고만 했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낸 피를 내뱉었다. 피는 진득한 아교처럼 세 개의 본원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했다.
“물과 화염은 상극이지. 이에 난 흙의 본원을 매개체로 삼았다. 흙은 물과 불을 모두 묻어버릴 수 있을 터. 게다가 내 의지가 담긴 순수한 원신의 피까지 더했으니 세 개의 본원은 반드시 융합하게 될 것이다!”
한제는 낮게 외치며 결인을 그린 두 손으로 전방을 연거푸 두드렸다.
콰쾅!
세 개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회오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허상의 화면을 하나하나 띄웠다. 그 안에서 때로는 어마어마한 홍수가 때로는 온 세상을 불사를 듯한 불바다가 나타났지만 물이든 불이든 서로 교차되는 사이 모래에 뒤덮여 버렸다.
천둥번개
시간이 흐르면서 세 개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회오리 안에 나타난 화면은 점점 더 빠르게 번득였다.
몇 개월 뒤, 한제가 피를 일곱 번이나 내뱉어낸 뒤에야 이 회오리는 점차 응집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제는 더욱 집중해 세 개의 본원을 통제해서는 서로 수천 번 이상 충돌하게 만들었다.
또다시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렁찬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본원은 융합되기 시작했다. 그 위에 나타난 화면은 번득이면서 모래와 홍수, 불바다를 중첩시켜 완전한 하나의 화면을 형성했다.
그 안에서는 대지를 중심으로 위로는 하늘을 불사르는 불바다가 아래로는 성난 듯 몰아치는 홍수가 있었다. 이렇게 완전한 화면이 완성된 순간, 한제의 앞에 있던 세 개의 본원 진신은 바르르 진동하다가 합쳐졌다.
세 개의 본원 진신이 응집되어 나타난 새로운 몸에는 물, 화염, 흙의 본원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진신보다는 오행의 분신에 가까워 보이는 이 새로운 진신이 나타난 순간, 한제 체내의 원신이 가동되면서 그 육신에 축적되어 있던 힘을 빨아들였다. 이에 한제의 수준도 빠르게 증폭했다.
한 달 후, 한제는 긴 한숨을 내뱉어냈다. 이제 그의 수준은 공현기 초기가 아니라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지금껏 그처럼 단 몇 개월 만에 공현기 초기에서 중기로 돌파한 사람은 없었다. 만약 이 사실이 소문이라도 난다면 한제는 수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살육의 본원과 금제의 본원은 모두 특수 본원이지. 특수 본원은 서로 융합하기 매우 힘들지만 나는 진신을 갖춘 천둥번개의 본원을 얇은 실로 만들어 이 두 본원을 임시로 융합시키겠다. 그럼 나는 공현기 후기에 이를 수 있지!”
한제는 두 눈을 번득였다. 그러자 눈에 나타난 수많은 핏줄이 번득이면서 금제의 본원을 형성해 응집했고 동시에 체내에서는 강력한 살기가 발산돼 사방을 압박하면서 본원을 드러냈다.
한제는 회전하는 두 특수 본원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옆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천둥번개의 본원 진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천둥번개의 본원 진신은 두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날리면서 한 줄기 가늘고 긴 번개가 되어 두 특수 본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천둥번개의 본원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 두 본원은 이내 급속도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허나 이는 오행 본원의 응집보다 훨씬 어려웠다. 한제는 한 달 동안 수차례나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본원을 융합하지 못했다. 게다가 금제의 본원은 천둥번개의 본원과 상극에 가까워 더욱 힘들었다.
실핏줄이 잔뜩 돋아난 두 눈으로 전방의 세 본원을 응시하던 한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원의 융합은 요점만 찾아낸다면 빠르게 완성할 수 있으나 그 요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시도해봐야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
“특수 본원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훨씬 수월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내게 두 개뿐이야. 허나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이 둘을 융합할 수 없다면 방법을 바꿔야겠지. 좋아, 모두 천둥번개 본원의 진신에 응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