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21
“어딜 가려고!”
흑발의 한제와 오행진신은 양옆으로부터 도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멀리서 쌍자 대천존과 맞붙고 있던 구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빛으로 상대가 뿜어내는 보라색 빛에 대항하며 곧장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한제에게 돌진할 생각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쌍자는 이를 악물더니 구제를 다시 가로막으려 했다.
“쌍자 이 정도면 됐네! 선황은 이미 죽었어. 도일이 선조의 저술에 스러지는 것을 지켜볼 생각인가?”
그 말에 쌍자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선족에 속한 그녀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말이었던 것이다.
이때 도일은 몸까지 썩어가기 시작해 몰골이 끔찍했다. 극심한 고통에 두 눈으로 광기 어린 빛을 번득이는 그의 주위로 보이지 않는 화염이 일어나 타올랐다.
“크아아!”
도일은 포효하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굉음과 함께 금제, 태초의 본원에 이어 3대 허상의 본원으로 형성된 장벽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도일은 곧장 그 틈을 뚫고 튀어나왔다.
도망치는 도일을 본 흑발의 한제와 오행진신은 동시에 눈을 번득였다.
“너는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도 도일종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한제의 목소리에는 살기와 묵멸의 기운이 가득 어려 있었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이는 오행진신의 말이었다.
지금 도일에게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 폐관수련을 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종파고 선족이고 하는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곧장 몸을 날린 그의 모습이 순간 흐릿해졌다.
이와 동시에 쌍자 대천존에 막혀 있던 구제가 곧장 몸을 날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제가 도일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 같았지만 그러기에는 살기는 너무나 짙었다.
도일이 도망치려 하고 구제가 달려든 그 순간,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셀 수 없이 많은 검은색 기운으로 갈라졌다. 그 후 곧장 오행진신에게로 돌진해 빠른 속도로 융합했다. 이에 흐릿한 인영이 생겨났다.
“모두 돌아와라!”
흐릿한 인영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모든 본원들이 인영을 향해 몰려들었고 잠시 후 한제의 모습이 되었다. 한데 그의 머리카락은 완전히 검은색도 하얀색도 아니었다. 검은 머리와 하얀 머리가 반반이었다.
한제가 고개를 들자 구제 대천존의 눈동자마저 바짝 졸아들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한제는 선조의 수준 일부를 흡수하여 전승하고 오행을 완성한 뒤 살육과 융합한 상태였다. 허무의 분신을 제외한 상태에서 그가 보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모습이었다.
또한 그의 뒤로는 검은색과 하얀색이 반씩 있는 기이한 태양의 허상도 하나 떠올라 있었다. 흐릿하게 윤곽만 겨우 보일 뿐이었지만 이 태양이 떠오르자 해자와 구제, 쌍자 그리고 도망치고 있던 도일까지 모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 이건⋯⋯?”
“신통술로 만들어낸 허상이 아냐! 대천존의 태양이야!”
“말도 안 돼! 저자는 태고 신경에 간 적도 없는데…”
이는 지금의 한제가 보일 수 있는 최강의 모습이었다.
연도비를 두고 가라
대천존의 태양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도일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구제는 곧장 몸을 날려 그런 한제를 막아서려 했다. 선족과 고족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 그의 입장에서는 도일이 죽는 꼴을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선황이 이미 숨을 거둔 지금 도일마저 잃는다면 선족은 더 이상 고족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터였다.
구제는 온몸으로 눈부신 하얀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하얀 태양이 허상으로 나타나 밝은 빛을 뿜어냈고 그 빛으로 이루어진 하얀색 늑대 한 마리가 포효하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이한제! 도일을 죽여서는 안 된다!”
구제가 우렁차게 외쳤다. 그가 소환한 거대한 하얀 늑대가 입을 쩍 벌린 채 한제를 집어 삼키려 들었다.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늑대가 자신 집어삼키려 한 그 순간, 그의 뒤편 흑백의 태양이 뿜어내던 빛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덕분에 윤곽을 드러낸 대천존 태양의 힘을 모조리 응집한 한제는 재빨리 돌아서더니 하얀색 늑대를 냅다 걷어찼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른 상태에서의 주먹질이나 발길질에는 세상의 흔적이 담겨 있어 신통술까지 일으킬 수 있는 법. 실제로 한제가 발길질을 한 순간, 허무가 된 하늘이 떨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색 태양과 흑백의 태양이 충돌한 것처럼 보일 터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구제의 하얀색 태양이 바르르 진동했고 동시에 하얀색 늑대가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는 엄청난 충격에 거의 절반 정도가 무너져 내렸고 겨우 남은 머리만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 이럴 수가!’
창백하게 변한 구제의 두 눈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선조의 저술에 시달리고 있고 쌍자와의 전투로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었다고는 해도 그는 대천존이며, 그 대천존들 중에서도 최강자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상대는 비록 대천존의 태양을 응집하긴 했어도 윤곽만 겨우 응집한 데 불과한데 그런 태양의 일격에 자신이 뒤로 물러나 버린 것이다.
‘저건 절대 평범한 대천존의 태양이 아니야!’
뒤로 물러났던 구제는 이를 악물더니 다시 돌진했다.
한편, 대천존 태양끼리의 충돌에 뒤로 밀려났던 한제는 피를 토하면서도 곧장 도일에게로 돌진하는 중이었다.
구제는 다급히 저지하려 했지만 늦은 상태였다. 눈 깜짝할 사이 이미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한제는 대량의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채 썩어 들어가고 있는 도일 앞에 이르렀다.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한 도일은 두 눈을 광기로 번득이면서 오른손을 쳐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은색의 굽은 칼이 한 자루 나타나 짙은 살기를 발산하면서 도일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한제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이한제, 나를 죽이려 든다면 너 역시 저승길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도일의 광기 아래 굽은 칼이 달려든 순간, 한제는 몸을 휙 날리며 아흔아홉 개의 허상을 소환했다.
굽은 칼과 충돌한 아흔 개가 넘는 허상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지만 ,남은 허상들은 칼을 피해 도일 앞에 응집되더니 한제의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얼굴의 한제는 곧장 오른손을 뻗어 뼈만 남은 도일의 미간을 꾹 눌렀다.
꽝!
“끄아아악!”
우렁찬 굉음과 함께 도일은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저술의 위력에 살점이 마구 떨어져 나가면서 몸뚱이의 절반이 해골로 변한 도일은 땅에 처박혔다.
“우욱! 이, 이럴 수는 없어!”
도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저술의 영향에 시달리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꼼짝 못 하고 한제에게 당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이한제, 이제 그만해라! 선조의 머리는 가져가도록 해! 해자 이한제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도일은 구해야 한다!”
구제가 이를 악문 채 크게 외치자 해자는 말없이 도일을 향해 손을 뻗어 휘둘렀다.
“도망족의 힘으로 생자의 그리움과 사자의 생각을 모으니⋯⋯ 존재하는 것들을 계속 존재하게 하고 흩어진 것들을⋯⋯ 그대로 멈추게 하라!”
해자의 손짓에 도일의 몸에서는 한 층의 푸른색 파문이 나타나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도일을 뒤쫓아 내려오던 한제는 마치 진흙 늪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됐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대량의 검은 기운을 퍼뜨렸다. 겹겹의 푸른색 파문을 뚫고 도일이 몸에 검은 기운들이 응집돼 이내 한제의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네놈… 네놈을 용서하지 않겠다!”
이성을 잃은 도일은 강렬하게 저항하려 했다. 하지만 체내에서 마구 날뛰는 저술의 위력은 그가 신통술을 발휘하려 하자마자 그의 육신을 한층 강하게 무너뜨렸다. 이에 도일이 절규하는 동안 어느새 코앞에 이른 한제가 가슴팍을 콱 밟자 도일은 더 이상 발버둥을 치지도 못했다.
“너희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기 싫으면 싸우지 말아야 하는 것이냐? 세상 모든 일을 너희가 원하는 대로만 해야 하는 것이냐? 먼저 공격해온 것은 내가 아니라 도일이었다. 나를 멈추게 하고 싶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터!”
그 상태로 고개를 든 한제는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구제를 향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제는 1천 척가량 떨어진 곳에 멈춰 선 채 무거운 표정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그의 체내에서도 저술의 위력이 점점 더 격해지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보아라.”
구제는 숨게 한숨을 내쉬더니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한제는 도일을 밟은 발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그러자 도일을 에워싸고 있는 검은 기운은 더욱 많아졌고 그 자극에 도일은 전에 없던 고통의 빛이 어렸다. 동시에 그는 지금의 상황에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갓난아이의 두개골이다!”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구제의 미간이 팩 구겨졌다.
“도일, 그 두개골을 내놓는다면 놓아주마.”
한제는 애초에 도일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비록 선조의 저술로 한층 약해진 상태라고는 해도 이들은 대천존, 본래 수준과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도일은 죽일 듯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았다. 마치 한제의 머리카락 한 올, 주름 하나까지 머릿속에 똑똑히 새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일, 그것을 저자에게 넘기게!”
구제가 조용히 말했다.
도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지체했다가는 체내에 깃든 저술의 위력을 몰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그랬다가는 수준이 대폭 떨어질 것이다.
도일이 끙끙거리자 한제는 오른발에 주었던 힘을 조금을 풀었다. 그러자 도일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주먹만 한 두개골을 소환해 한제에게 던지더니 곧장 몸을 날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갓난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은 짙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이 나타난 순간 확산된 죽음의 기운은 허공에 녹아들 듯 사방을 휩쓸었다.
한제는 강렬한 익숙함을 느끼며 그 두개골을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선조의 머리 옆에 이르렀다. 광인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채 선조의 머리 위에 누워 있었다.
“이한제, 이유야 어쨌건 도망족과 나의 계획은 네게 엄청난 이득을 주었다. 난 이를 기억해둘 것이다. 이곳을 떠난 후 최대한 빨리 대천존이 되어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저술의 위력에서 벗어나는 대로 너 역시 이번 일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구제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자네, 쌍자. 만약 도일이 끝내 회복하지 못해 선족과 고족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면 자네는 우리 선족이 고족에게 학살당해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게야. 자네의 자양종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겠지!”
구제의 목소리는 점차 싸늘하게 변해갔다.
“난 본래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선조의 유물을 동등하게 나눠 가져 우리 선족 대천존들이 더욱 강해짐으로써 앞으로는 더 이상 선황이 존재하지 않아도 되게 할 생각이었지. 허나 쌍자 자네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었어.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자네가 져야 할 것이야!”
구제의 냉소에 쌍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혼란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제는 쌍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쌍자 대천존에게 큰 빚을 졌구나. 전력을 다해 고족과 선족 사이의 전쟁을 막아 쌍자 대천존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게 하겠다.’
그때, 쌍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일단 결정한 일은 반드시 해내지. 자네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그녀의 말에 구제는 씩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차가운 눈으로 한제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