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11
“나는 오늘 4파 연맹을 대표하여 도우를 초빙하기 위해 왔네. 도우의 실력이라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걸세”
무태가 정중하고 간절하게 말했다.
한제는 그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보다 경지가 높은 사람이야 4파 연맹 안에도 많지 않은가? 난 일개 원영기 수련자에 불과하니 말일세.”
무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게. 자네는 몇 년 안에 화신기에 이를 거고 그럼 우리 4파 연맹의 입장에서는 또 한 명의 화신기 수련자를 얻게 되는 셈 아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이번 초청의 목적이라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불쑥 물었다.
“설역에서는 왜 4파 연맹에 쳐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손에 든 눈덩이를 바라보던 무태는 잠시 침묵하다가 쓰게 웃었다.
“당연히 이익 때문이지. 설역국(雪域國)은 자원이 부족한데도 드물게 4성까지 올라갔네. 자원만 있다면 5성 수련국이 되기에 더 수월하겠지.”
한제는 술을 한 잔 더 들이켠 뒤 덤덤하게 말했다.
“도우, 안녕히 가시게!”
무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도우가 우리를 돕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우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네. 도우, 다시 생각해줄 수 없겠나?”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한참이나 무태를 빤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같이 한제를 마주보던 무태도 무안해졌는지 당황한 듯 물었다.
“도우, 왜 그러는 건가?”
한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도우, 내가 그리 어수룩해 보이는가? 설역국이 넓고도 넓은 주작성에서 다른 곳이 아닌 이곳을 택했다면 다 이유가 있겠지. 매우 중요한 이유가. 도움을 청한다면서 그토록 숨기는 게 많다면 내가 더 생각해볼 이유가 있나?”
무태는 멍하니 한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유쾌한 듯 껄껄 웃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 상황과 배경을 다 말하자면 너무 길거든. 게다가 얽힌 게 너무 많아서 나도 쉽게 말을 할 수가 없네.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자네가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어.”
한제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 일은 두 4성 수련국 사이의 전쟁이었다. 끼어들었다가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게다가 그는 전황이 불리해지면 버려지기에 딱 좋은 위치가 아닌가.
잠시 후, 한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며칠 고민을 해봐야겠군. 설역국 수련자들이 침입해오기 전까지는 답을 주겠네.”
무태 역시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허나 한제가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완곡한 거절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됐다.
무태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옥패 하나를 꺼내 옆에 내려놓더니 포권을 하며 말다.
“그렇다면 답을 기다리고 있겠네. 결심이 서면 이 옥패로 뜻을 전해주게!”
도롱이를 집어 들고 가게 밖으로 나서던 무태는 우뚝 멈춰 서더니 고개를 돌려 한제를 다시 바라보았다.
“도우, 풍우뇌전(風雨雷電)의 4대 선문(仙門)에 대해 들어보았나? 주작성이 있는 곳은 바로 우(雨) 선문의 근처라네.”
처음으로 한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풍우뇌전의 4대 선문은 고대 신 서사의 기억 속에도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4대 선문은 원고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그 내력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고 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이 4대 선문이 고선계(古仙界)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다.
무태는 말을 마친 뒤 도롱이를 걸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휘휘 불어닥치는 바람도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무태가 거리를 벗어날 무렵, 그의 곁에 어느새 네 개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무태의 뒤를 따르던 이들은 신식으로 한제의 가게를 훑었다.
그중 한 사람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우, 4대 연맹국의 명령은 국경 안에 존재하는 수상한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어. 한데 왜 저자를 그냥 두는 것인가?”
무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냉소했다.
“자네들 넷에 나까지 더한다 해도 정말 그를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가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꼭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원영기 후기인 우리 넷이 진을 사용한다면 저자가 화신기 수준에 이르지 않은 이상 분명 죽게 되어 있네!”
옆에 있던 또 다른 검은 옷의 사내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냉소하던 무태는 휙 소리가 나도록 등을 돌렸다.
“그리 자신 있다면 자네들끼리 해보게. 난 빠지겠네. 저자가 조각한 백운종 화신기 수련자 셋의 조각상, 그중에서도 청송 사숙의 조각상에 깃든 경지는… 난 공연히 죽을 길을 찾아들어가고 싶지는 않네!”
검은 옷차림의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더니 한제가 있는 가게를 향해 움직였다.
무태는 어이 없다는 듯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멍청한 녀석들이 곧 화신기에 이를 한제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보고 싶었다. 저들은 얌전히 있던 한제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네 사람은 빠르게 한제의 가게로 달려들었다. 살기가 짙어졌다.
한제는 조용히 앉아 술주전자를 쥔 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일반인으로 살아온 그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여기까지 공들여 쌓아올렸던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제는 한제였다. 4백 년간 지속되었던 살육의 삶을 잠시 접어둔 것일 뿐, 그 모습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네 사람은 지금 그들이 건드리려는 자가 얼마나 흉악한 자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줄기의 검은 연기가 된 네 명의 수련자는 온 세상을 덮은 하얀 눈과 대비되어 더욱 눈에 띄었다.
한제의 두 눈에 빛이 일렁였다. 이는 4백 년 전 일반인들에 묻혀 살기 전에 살육의 삶을 살아가던 때의 그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이런 빛이 나타날 때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 내딛은 순간, 한제의 몸은 사라졌다가 가게 밖, 네 수련자의 바로 근처에서 나타났다.
한제는 어느덧 삶에 지친 노인에서 잔혹한 살인귀로 변해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방의 눈보라가 더욱 강해졌다.
검은 옷의 네 사람은 한제를 포위하며 기이한 결인을 그림과 동시에 낮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각각 푸른색, 붉은색, 남색, 보라색의 검광이 그들의 손에서 나타나 서로 교차하더니 단숨에 한제를 가두었다.
한제는 여전히 손에 들고 있던 술주전자를 기울여 과일주를 한 모금 들이켜면서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순간, 푸른 옷의 노인 조각상에 배어 있던 세월의 경지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짙게 발산되었다. 이어 한제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기이한 형태로 검광 속에서 흩어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나타낸 곳은 검은 옷의 수련자 중 한 사람 바로 뒤였다. 그리고 나타나자마자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 손은 매우 느려 보였지만 실은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머리를 눌렀다. 컥 소리와 함께 상대는 입에서 피를 한 움큼 토해내더니 숨을 거두었다. 동시에 원영이 빠져나와 도망치려 했다.
한제는 고개를 돌려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한제의 머리 위로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도망치던 원영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한제를 중심으로 사방 1천 척 안으로는 온 세상을 뒤덮은 눈과 바람이 다가서지 못하고 그저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마치 오랜만에 깨어난 살인귀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남은 세 사람은 깜짝 놀라 곧장 저물대에서 각자 가장 강한 법보를 꺼냈다. 그중 우산을 든 자는 한제가 살짝 몸을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수련자가 된 이래 처음으로 추위를 느꼈다. 사방의 눈과 바람 따위는 상대의 눈에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수련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혀끝을 깨물어 자신의 우산에 피를 한 움큼 뱉었다. 그리고 곧장 우산을 휘둘러 펼쳤다. 그러자 그 안에서 마치 살아 있는 뱀 같은 금빛이 줄기줄기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으로 저물대에서 검은색 깃발 하나를 꺼냈다. 그가 깃발을 쥐자 검은 안개가 피어올라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갈래의 검은 금제가 튀어나와 단숨에 금색 뱀들을 파괴했다. 눈과 바람은 더 먼 곳으로 흩어져서는 감히 이쪽으로 다가올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한제는 가볍게 앞으로 한 발 내딛어 눈 깜짝할 사이에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 곁으로 다가와 목을 틀어쥐었다. 이어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가 싶더니 컥 소리와 함께 상대는 숨을 거두었다. 한제는 한손을 상대의 복부에 쑤셔 넣어서는 겁에 잔뜩 질려 있는 원영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원영을 삼켜버렸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쳤다.
하지만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상태였다. 수십 년간 살인을 멀리했지만 어차피 저지른 일이라면 한 명이나 네 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망친 사내 중 한 명은 무태 쪽으로 다른 하나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한제는 덤덤하게 무태를 힐긋 본 뒤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열 걸음! 그는 단 열 걸음 만에 허겁지겁 도망치던 사내를 따라잡았다. 그리고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오른손을 가볍게 앞으로 튕겼다. 순간, 법보가 된 극의 경계는 한 줄기 붉은 번개가 되어 수련자의 몸을 파고들었다.
신음조차 없었다.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허공에서 푹 떨어졌다. 그가 떨어진 곳은 대우의 대장간 문 앞, 눈이 가득 쌓여 있는 곳이었다. 그의 원영은 이미 극의 신식에 파괴되었다. 극의 경계는 여전히 화신기 이하의 수련자에게는 절대적인 위력을 보였다.
한제는 곧장 무태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무태의 표정은 평온했으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한제가 이쪽을 향하는 것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더니 가로로 죽 그었다. 그러자 도망치던 검은 옷의 수련자를 가로막았다.
검은 옷의 수련자는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주무태에게 따졌다.
“주무태, 무슨 짓이냐?”
무태는 상대의 분노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살짝 웃었다.
“저 도우를 건드린 자네를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나?”
이어 그는 왼손으로 기이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보라색 빛 한 줄기가 나타났다. 그 순간, 보통의 원영기 후기 수련자와 화신기의 경계에 이른 수련자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무태의 수준은 한제보다 약간 떨어질 뿐, 이미 화신기의 경계에 이르러 화신의 경지도 미미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그가 결인을 그린 순간, 그 원영기 수련자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치 막 신선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느낌은 너무도 사실 같았다. 저항할 수 없는 의식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그 순간, 무태의 오른손은 이미 그의 정수리에 얹혀 있었다. 영력을 토해낸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우정(雨鼎)
이어 무태는 그 수련자의 원영을 한제의 눈앞에서 파괴했다. 이는 오늘 일을 결코 발설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공범이 됨으로써 그는 혹시라도 한제가 입막음을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를 상황까지 방지한 것이다.
앞서 세 사람을 죽이는 모습에 무태는 깜짝 놀란 상태였다. 자신이었다면 상대가 두 명만 돼도 아마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가까스로 이겼을 것이다. 하물며 셋이라면? 아무리 잘 쳐줘도 대등하게 버티는 정도였을 뿐, 결국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한제는…?
무태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제는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와 눈밭에 섰다. 어느새 늙고 지친 일반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옷섶을 정리하며 술주전자를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무태에게 던지듯 건네고는 몸을 돌려 가게로 돌아갔다.
술주전자를 받아 든 무태는 두려움 어린 눈으로 한제의 가게를 바라보며 내심 한제를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순간 길 위에 널린 네 구의 시체가 재로 변해 흩어졌다. 그리고 재빨리 그 길 위에서 사라졌다.
가게로 돌아와 화롯가에 놓인 의자에 앉은 한제는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두 손을 뻗어 화롯가의 온기를 느꼈다.
얌전히 가게에 앉은 그는 머릿속으로 고대 신 서사의 기억을 더듬었다. 점차 풍운뇌전(風雲雷電)의 선문(仙門)에 관한 정보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밖에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가 갑자기 멈추더니 삐거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구운 닭 냄새가 났다. 그러더니 오랫동안 본 적이 없던 더러운 노인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
집 안으로 들어온 노인은 뒷발로 차서 문을 닫더니 화롯가로 성큼 다가와 거친 말을 내뱉었다.
“한밤중에 쌍놈의 새끼들이 싸움을 벌여대 잠을 잘 수가 없구나! 게다가 어느 호로 자식이 내 몸 위에 떨어지기까지 했단 말이다! 재수가 없으려니.”
한제는 소리 없이 씩 웃으며 술주전자를 노인에게 건네었다.
노인은 그 술주전자를 받아들고 히히 웃더니 품에서 통으로 구운 닭 반 마리를 꺼냈다.
“뭘 아는 놈이구나. 좋다, 이 구운 닭을 반으로 나눠주마.”
말을 마친 그는 한제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녀석, 훌륭하구나. 이제 며칠 안에 화신기에 이를 수도 있겠어. 약속한 그 조각상, 잊은 건 아니겠지? 모른 척했다가는 죽을 때까지 쫓아다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