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319
거마족 선조가 껄껄 웃으며 손에 든 횃불을 휘두르자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반경 1만 척 범위가 검은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흑염수(黑炎獸)!”
거마족 선조는 짧게 외치며 횃불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한 그가 선력을 내뿜자 빛이 줄기줄기 그 검은 화염에 떨어졌다.
검은 화염은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였다. 뒤이어 사방의 화염이 마치 바람에 휘날리듯 일제히 그 횃불 쪽으로 모여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모든 화염이 그 횃불 상공에 응집되어 높이가 1백 척에 달하는 거대한 마수의 형상이 됐다. 머리가 매우 큰 그 마수는 몸에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는데 가시마다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곰 같았지만 절대로 곰은 아니었다.
흑염수는 포효를 내지르더니 붉은 화염으로 이루어진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한제는 침착하게 선검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쏘아져 포효하고 있는 그 마수에게로 향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마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가슴팍에 깊은 구멍이 났지만 그 구멍은 빠르게 아물었다.
주무태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휘둘렀다. 수많은 금제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자 한제가 작게 외쳤다.
“봉인!”
금제들은 하나하나 검은색 창이 되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연이은 펑 소리와 함께 하나하나의 검은 창이 곧장 화염수의 온몸에 꽂혔다. 그 마수는 좌우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폭발!”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금제의 창들은 폭발했고 강력한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바람이 지면을 훑고 지나가던 순간, 한제는 저물대에서 혼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십억존혼번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천혼번이었다. 비록 천혼번에 불과하지만 이원봉의 혼백이 주요 혼백 역할을 하고 있어 그 위력은 결코 약하다 할 수 없었다.
천혼번을 흔들자 순간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수천 개의 혼백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 선 것은 이원봉의 혼백이었다. 그의 지능은 사라진 상태로 오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혼번의 주요 혼백이 되어 있었다.
“소멸!”
한제가 서늘한 목소리로 외치자 순간 수천 개의 혼백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원봉의 혼백을 선두로 금제 사이에 갇힌 흑염수를 향해 돌진했다.
한제는 거마족의 선조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대가 영변기 수준이니만큼 분명 다른 수단을 더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믿는 바가 있으니 도주를 멈춘 것이 분명하다.
거마족 선조는 싸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곧 그의 앞에 거대한 법인이 만들어졌고 그는 낮은 기합을 넣으며 두 손으로 그것을 강하게 밀었다. 순간 그 법인은 솟아올라 셀 수 없이 많은 미세한 법인이 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선조는 허공으로 떠올라 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절을 했다.
“거마족의 67대손이 조상께서 남긴 물건을 바치노니 부디 후손을 도와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자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거마족 땅이 진동했다.
거마족의 땅 동쪽 끝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콰르릉 소리와 함께 중간에서 둘로 갈라졌고 그 안에서 한 자루의 거대한 붉은 도끼가 천천히 솟아올랐다.
거마족 선조는 숭고함과 존경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도끼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 붉은색 도끼에서는 순간 붉은 빛이 줄기줄기 흘러나와 거마족 선조의 온몸을 감쌌다. 그의 머리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휘날렸고 그의 몸에서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기운이 발산되었다.
“이한제, 당시 우리 거마족이 이 주작성에 이주해왔을 때 조상께서는 이 도끼로 세상을 가르고 선유지로 가 두 명의 구엽(九葉) 주술사를 죽였다. 그리고 이 거마족의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으셨지. 그 도끼에 죽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한데 그 도끼를 본 한제는 어째서인지 예전에 조나라 시음종 지하에서 보았던 그 시체가 떠올랐다.
도끼를 쥔 거마족 선조는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붉은색 기운이 도끼 안에서부터 팔을 따라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그의 눈과 코, 입, 귓구멍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그 붉은 기운은 그의 몸 앞쪽에서 응집되지 않고 도끼에 흡수되면서 순환했다. 순환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거마족 선조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그는 허공에 뜬 채 고개를 숙여 한제를 바라보더니 비릿하게 웃었다. 좀 전에 잘려나간 왼쪽 팔 부분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나더니 붉은색의 팔 형태를 이루었다.
낮은 기합과 함께 거마족의 노인은 새로 생겨난 붉은 손까지 사용해 두 손으로 도끼를 쥐고 휘둘렀다. 순간 붉은 기운이 요란하게 번득였다.
“죽어라!”
그의 속도는 너무도 빨라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 앞에 도달해 있었다.
한제는 가까스로 선검을 들어 올려 막아냈다.
쾅!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고 구름마저 놀라 흩어질 정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제는 엄청난 힘에 부르르 떨었고 입가에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의 몸은 뒤로 1천 척이나 밀려난 후에야 겨우 멈추었다.
거마족 선조 역시 한 움큼 선혈을 토해내긴 했지만 그는 제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듯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육신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쪼그라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3분의 1이 줄어들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강대해 보이지는 않았다.
포효를 내지르는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원고 시대의 한 마리 흉악한 짐승 같았다. 두 눈에서 붉은 빛을 번득이며 그는 한 줄기 붉은 번개가 되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도끼를 다시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으로 결인을 하더니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존혼번!”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모든 빛이 한제 앞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그리고 30척이 넘는 거대한 깃대의 허상이 나타났다.
깃대만 해도 30척이 넘었고 깃발의 폭은 더욱 넓었다. 전체적으로 보라색이었지만 그 위에서 열두 갈래의 금빛이 번쩍거렸다.
혼번이 나타난 순간, 대지에서는 무수히 많은 소리가 났다.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혼백들이 슬피 우는 것 같았다. 지면으로부터 검은 기운이 줄기줄기 솟아올라 앞을 다투며 달아났다.
검은 막으로 뒤덮인 듯 하늘에는 해도 달도 없어 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거마족 선조의 번개 같던 기세도 누그러졌다. 그의 손에 들린 붉은 도끼는 격렬하게 웅웅 소리를 냈다.
거마족 노인의 두 눈에서는 충격과 깊은 두려움이 나타났다.
“그, 그건 연혼종의⋯⋯.”
거마족 선조가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깃발의 내력을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그 혼번이 지금 한제의 손에 들어가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접 본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편, 거마족 땅 변방에서 줄곧 이 전투를 보고 있던 보라색 옷의 여인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둔천이 나를 연혼종에서 쫓아낸 것은 이한제에게 십억존혼번을 물려주기 위해서였군. 허상인 분번(分幡)일 뿐이지만 그 위력은 거마족 선조가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여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의 도심이 무엇인지 아주 오랫동안 관찰했지만 실마리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상대의 의식이 없을 때 비술(秘術)을 사용해야만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
생각을 마친 그녀는 자리를 뜨려 했다. 한데 그녀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보라색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먼 곳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류미 낭자 그대의 적수는 나일세!”
그 사내는 미처 다 도착하기도 전에 말했다.
류미는 아름다운 눈으로 그 사내를 훑어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운작 사숙의 밀짚모자를 쓴 것을 보니 사숙이 고른 네 사람 중 한 명인가 보군. 허나 겨우 화신기 중기의 수준으로 나를 막지는 못할 텐데?”
사내는 하하 웃더니 말했다.
“통천기 수준인 류미 낭자를 내가 어찌 막을 수 있겠나. 허나 운작 선배께서 내리신 명령을 내 듣지 않을 수도 없지. 어디 가서 술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라면 내가 돌아간다고 해도 선배님께 댈 구실이 생길 것 같은데…”
류미는 활짝 핀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가리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한데 우선 거마족 선조를 돕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는 게 어떻겠나?”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한제는 나의 오랜 벗이거든.”
류미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사내를 힐긋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가게. 당신까지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군.”
말을 마친 그녀가 몸을 훌쩍 날리려 했다. 그러자 사내는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원신이 움찔하더니 순간적으로 경지의 힘을 일으켰다. 그의 뒤로 20살 무렵의 젊은 남자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류미의 발이 다시 우뚝 멈추었다. 몸을 돌려 사내를 바라본 그녀는 깊은 곳에 무정함이 숨겨진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며 말했다.
“참정(斬情)의 도⋯⋯. 과연 사숙이 점찍어둔 사람답군. 그런 경지를 깨닫기까지 엄청난 의지와 엄청난 잔인함이 필요했을 터⋯⋯.”
사제지간의 정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생각으로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으로 제자를 받아들이고 정으로써 교육하고 은혜를 베풂으로써 상대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슬픔을 느껴야 했다.
그는 아끼던 제자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날, 자신의 경지를 깨달아 화신기에 이르렀다.
마음을 다해 기른 제자를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제자를 직접 죽여야 했으며, 단칼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고통을 겪게 함으로써 그 슬픔을 하나하나 뼈에 새겨야 했다.
그를 통해 깊은 슬픔을 느낌으로써 화신기에 이르는 마지막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는 사실 매우 무정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무정함 속에는 분명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의 깨달음은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제가 처음 이 사내, 주무태를 보았을 때 깜짝 놀란 것이다. 자신조차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한제는 손에 십억존혼번을 들고 원신과 그것을 융합시켰다. 십억존혼번은 바람도 없는데 나부끼면서 하늘과 땅을 뒤흔들 듯한 소리를 냈다. 뒤이어 그 안에서 10억 개의 혼백들이 쏟아져 나왔다.
셀 수 없이 많은 혼백이 그 혼번으로부터 튀어나와 열두 영변기 주요 혼백의 안내에 따라 포효했다.
거마족 선조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한제에게 그런 법보가 있을 줄 알았다면 그와 맞붙을 생각조차 하지않고 곧장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쏘아진 상태였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거마족 선조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그는 낮게 포효하며 몸을 날렸다. 그는 이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로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조상님들, 제가 저자를 죽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늘에서 한 줄기 붉은 번개가 떨어졌고 그 순간 대지는 피로 물든 것처럼 붉어졌다. 온 하늘에 이 번개 하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