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542
한제의 몸을 두른 황천도 점점 옅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던 한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경지의 깨달음만 더하면 문정기 중기에 이를 수 있다! 허나 이는 급하게 군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10년이 걸릴 수도 1백 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우선 잡다한 일들을 처리해야겠군. 좀 전의 일을 그 세 사람이라면 눈치챘을 테니, 나를 적으로 삼지 않으려면 충분한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칠성검진이 저물대로 돌아왔고 선위 꼭두각시도 허공에서 나타나 다시 한제의 그림자가 됐다.
앞으로 한 발 내딛어 나이법을 이용한 한제는 동시에 신식을 넓게 펼쳤다. 순간 온 염운성으로 퍼져나간 그의 신식은 문정기 중기 수준의 상대에게 고정됐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염가 저택 안의 백발노인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몸을 훌쩍 날렸다. 곧장 나이법을 사용한 그는 저택에서 1만 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결인을 그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허공을 때렸다.
콰르릉!
벼락소리와 함께 노인의 오른손에 한 줄기 벼락이 응결됐다. 그의 신통력 중 하나인 장심뢰(掌心雷)였다.
벼락은 곧장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헌데 그 순간,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어딘가에서 흘러들었다.
“흥! 잔재주를 부리는군!”
한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발아래에서 그림자가 훌쩍 튀어 오르더니 선위가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장심뢰는 곧장 붕괴됐다.
그와 동시에 선위는 순식간에 염가의 선조에게 달려들더니 다시 한 번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크억!”
노인은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유성처럼 뒤로 밀려났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냈고 창백해진 얼굴로 얼른 저물대에서 단약을 꺼내 삼켰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에 염 씨 노인은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게 대체⋯⋯? 저자가 마음만 먹었다면 방금 일격에 나는 죽었을 것이야! 설마 저자가 문정기 후기 절정에 이르렀단 말인가?’
노인은 찬 숨을 들이켰다.
한편, 선위는 다시 돌아와 한제의 그림자에 숨어들었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염가의 선조를 노려보았다.
“네놈이냐? 나를 4년 전의 사건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노인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도우, 그 일은 내가 잘못했네. 나는 그저⋯⋯.”
“변명을 듣고자 부른 것이 아니다. 내 힘을 빌리고 싶다면 성의를 보여야지!”
한제는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인은 몇 번이나 생각을 거듭하다가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네 가문이 가진 선옥의 9할을 내게 넘겨라!”
한제의 요구에 노인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한제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쪽 둘은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 있을 생각이지?”
그러자 허공에서 두 개의 허상이 나타났다. 손석과 빙하 속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중년 남자의 허상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염가의 선조가 일격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좀 전의 상황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너,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는 선옥의 7할을 내게 넘기면 내 힘으로 너희를 보호해주지.”
한제가 손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석은 신중한 눈빛을 번득이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네! 4년 전 있었던 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야…”
“그리고 너도 가지고 있는 선옥의 9할을 넘겨라.”
한제의 눈빛이 마지막 중년 남자의 허상으로 옮겨갔다.
“또한 남아 있는 단약과 4년 전에 손에 넣었다던 그 문제의 저물대, 그리고 너희 손으로 죽인 환가 사람의 모든 유물도 남김없이 넘기도록! 그러고도 내 선옥이 부족하다면 너희들에게 더 요구하겠다. 내 수련에 필요한 양을 채우지 못한다면 난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주는 조건이다!”
한제는 다른 사람에게 선택할 권리조차 주지 않은 채 세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세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굳이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염가 선조는 잠시 고민했다. 환가의 위협은 실로 두려웠다. 자칫하면 염가는 멸족의 화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를 악문 노인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말을 마친 그의 눈이 중년 남자의 허상을 향했다. 손석 또한 기이한 눈빛으로 그 중년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 형, 그날의 일은 우리가 함께 저지른 일이네. 혼자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염가의 선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떠돌이 거사(居士)인 중년 남자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동의하겠네.”
말을 마친 그는 품에서 선옥이 담긴 저물대를 꺼내 얼마 정도 덜어내더니 저물대를 통째로 한제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씁쓸하게 말했다.
“우리 가문은 크지 않아 가지고 있는 선옥도 얼마 되지 않네. 이 저물대 안의 선옥도 내가 힘들게 모아온 것이지.”
염가의 선조와 손석 역시 선옥을 꺼냈다. 선옥은 굉장히 귀한 소모품이기 때문에 수련자들은 그것을 항시 곁에 지니고 다녔다.
그들은 4년 전 죽인 환가 사람의 유물 또한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지난 4년 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 물건들은 그들에게 보물이 아니라 재앙의 씨앗으로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었다.
물건들을 모두 챙긴 한제는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더니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의 목소리만이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환가 사람이 오면 내가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말게.”
한제가 떠난 뒤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던 손석은 가장 먼저 빙긋 웃으며 포권을 했다.
“도우들, 나는 이만 해야 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네.”
떠돌이 거사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가문에 다녀와야겠군. 앞으로 허 도우가 다시 선옥을 요구해올 수도 있으니 준비를 해두어야지.”
두 사람은 각각 북쪽과 남쪽으로 긴 빛을 그리며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염가의 선조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됐어. 돈을 써서 재앙을 면했으니⋯⋯ 4년 전의 일에 대해서는 저 허목이라는 자가 책임을 지기로 했으니까 저자가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하지만 저자가 몰래 염운성을 떠날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방지를 해야겠지.”
★ ★ ★
천환성 남부의 환가 저택 안에서는 가주(家主) 환봉신이 공손한 모습으로 비쩍 마른 한 노인 앞에 서 있었다. 바로 류미를 데리고 연맹성역에서 돌아온 노인이었다.
“4년 전의 실종 사건을 어찌 이제야 처리하는 겐가?”
노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선조 어르신, 실종된 자는 본디 우리 가문의 한 지부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고 수준도 문정기 중기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에 외직을 맡게 됐지요.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가문 사람이 워낙 많아 직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실종된다 해도 하나하나 자세히 살필 수 없지 않습니까.”
가주 환봉신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보다 수준이 더 높은 사람은 없는가?”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르신,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3개월만 더 주시면 더욱 뛰어난 자격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환봉신이 조용히 말했다.
“좋아, 그럼 3개월의 시간을 더 주도록 하지!”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환봉신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4년 전 실종된 그자는…?”
“환미의 족위(族衛)를 보내 처리하게. 이 일에 관련된 자들은 뿌리를 뽑아버려! 환가의 위엄을 올곧게 세워야 할 것이야!”
환봉신은 공손히 그리하겠노라 답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에서 나온 환봉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선조께서도 많이 늙으셨군. 외부인을 위해 환혈법까지 쓰려고 하시질 않나, 그 환미라는 외부인의 위엄을 세우려고 하시질 않나… 설마 앞으로 이 환가를 그 외부인에게 넘기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 ★ ★
사흘 뒤, 류미는 누각 안에서 밖의 하늘을 내다보며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염운성⋯⋯ 양아버지께서 이 일을 내게 맡기시며 족위를 보내 처리하게 하셨다. 환동, 네가 가라.”
“예!”
류미의 뒤쪽 허공에서 서른 전후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늠름한 외모의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에는 열광적인 빛이 가득했다.
“네 수준은 문정기 중기 절정에 이르렀으니 이번 일을 처리하는 데 위험은 없을 거야. 작은 일이라고는 하나 내가 환가에 들어와 처음으로 맡은 일인 만큼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환동, 알았느냐?”
류미가 몸을 돌려 사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