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19
말을 마친 한제는 신식을 펼쳐 이 도시 안에 다른 봉란성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여덟 노인을 향해 말했다.
“이곳의 일은 너희들이 해결하도록 해라. 며칠 뒤 다시 돌아오겠다!”
말을 마친 한제는 곧장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봉란성 여인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봉란성, 시음종(尸陰宗)… 감히 나의 가문에 장난질을 치다니,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한제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큰 분노였다.
좀 전의 그 여인은 칠봉 중 한 명이자 시음종의 사람이기도 했다. 시음종에서 주작성에 파견한 대장로로 당시 손태와 지위는 비슷했지만 수준은 훨씬 높았다.
한제는 손태로부터 시음종의 비밀에 대해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예컨대 원기를 수집하고 원령을 배양하는 것 역시 시음종 각 분파의 임무 중 하나였다.
여인의 기억을 통해 한제는 이 나라의 거의 모든 도시에 시음종 사람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이들은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대이 왕조 전체를 긴밀하게 뒤덮은 채 끊임없이 원기를 촉진시키고 수집하여 원령을 길러내고 있었다.
‘네놈들을 모두 말살하고 주작성에서 뿌리째 뽑아주마.’
사실 한제는 그들이 자신의 가문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도 시음종에 가볼 생각이었다.
시음종 지하에 있던 거마족(巨魔族)의 시체와 미약한 한 줄기의 신식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거마족의 시체가 그 자리에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머리 큰 소년이 발가벗은 사내를 데리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죽여 버리고 원신은 내게 넘겨라.”
말을 마친 한제는 위로 솟구쳐 올랐고 타산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머리 큰 소년이 입술을 핥으며 오른손을 꽉 움켜쥐자 벌거벗은 사내의 육신이 무너져 내렸다. 사내의 원신을 쥔 소년은 얼른 한제를 뒤따랐다.
대이(大李) 왕조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5대 부성(副城)이 있었다.
수도로부터 10만 리 떨어진 곳을 둥그렇게 두른 각 부성에는 수많은 군사가 있었는데 한제는 그중 금성(金城)에 이르러 있었다.
이 성은 수도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호화롭고 시끌벅적했다. 바로 이런 점이 도시 전체에 드리운 원기(怨氣)를 더욱 짙게 만들었고 이 원기는 성의 상공에서 응집되어 마염(魔焰)처럼 솟아올랐다.
한제는 신식을 고정시켜 샅샅이 도시를 훑었고 어느 순간 차게 코웃음을 쳤다.
“흥!”
펑! 펑! 펑!
한제가 코웃음을 친 순간, 성안의 세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중 한 곳인 성주의 저택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손 막료가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피와 살덩이로 변해버렸다.
나머지 두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추풍낙엽(秋風落葉)
일을 마친 한제는 곧장 자리를 떠나 수, 목, 화, 토 네 개의 도시에서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순식간에 다섯 도시의 시음종 사람들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도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왕국의 모든 도시에 신식을 펼쳐 숨어 있는 시음종 사람들을 순식간에 소멸시켜버렸다.
펑! 펑!
폭발음이 연달아 왕국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면서 시음종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고 그들의 원신은 영력으로 무너져 내려 대지로 녹아들어 주작성의 자양분이 되었다.
허나 한제의 안색은 밝지 않았다. 그는 봉란성 여인의 기억을 통해 이 나라 안에서 수많은 시음종 제자들이 원기를 모으고 있으며 거의 모든 도시에 원령을 배양하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주작성뿐만 아니라 연맹성역의 각 수련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 봉란성 여인은 주작성에 파견되기에는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으나, 시음종 본부에서 대장로로 임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견된 것이었다.
한제가 정말로 신경 쓰이는 것은 그 여인이 주작성에 왔을 때 연맹성역의 시음종 본부에서 받은 비밀 지령이었다.
그러나 비밀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까지는 파악했어도 그 지령이 무엇인지는 아무리 여인의 기억을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지령을 전달한 신통력이 한제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인 모양이었다.
허나 이런저런 단서와 흔적들을 통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었다. 우선 봉란성 여인의 신분과 수준으로 볼 때 절대 일반인의 첩 노릇을 할 존재가 아니었는데도 어째서 그런 역할을 맡으면서까지 황성 안에 남아 있었을까?
그녀 정도의 수준이라면 굳이 그런 방법이 아니어도 이가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그녀가 주작성에 온 것은 1백 년도 채 안 됐고 황성에 들어간 것은 겨우 10년 전이었다.
허나 황성에 들어왔을 당시에 대한 기억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워버린 것처럼.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제는 다른 기억들을 통해 그녀가 황성에 간 것은 무언가를 피하기 위함이었음을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황성 안에서도 내내 신중하게 굴었고 자신의 수준마저 숨긴 채 살아온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일반인의 황성으로 도망쳐 숨었단 말인가? 게다가 황성 안에 숨으면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 염려가 더 커질 텐데…”
어차피 이 문제는 더 생각해봐야 답을 알 수 없었기에 한제는 생각을 접고 다시 신식을 펼쳤다.
지금 그의 신식은 어느 한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작성 전체를 뒤덮은 채 각 수련국 안의 시음종 문파를 찾았다.
시음종은 어머어마하게 큰 조직이었다. 이 주작성에만 해도 거의 모든 수련국에 하나씩 있었다.
한데 봉란성 여인의 기억을 살핀 결과 그녀가 이곳에 온 뒤 시음종은 엄청난 힘에 의해 재구성되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은 말하자면 주작성 시음종의 본부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새로운 본부가 바로 조나라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각 도시 안의 시음종 제자들을 모두 정리한 한제는 곧장 조나라의 시음종 본부로 향했고 순식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한제는 수백 년 만에 돌아온 고국을 바라보다가 차게 웃었다.
“재미있군. 그때보다 훨씬 많은 금제가 걸려 있어.”
이어서 한제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산, 이곳을 열어!”
그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타산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더니 주먹을 몇 번 휘둘렀다.
쾅! 쾅!
타산이 주먹질을 할 때마다 거대한 소리가 울리면서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했다. 연못은 진흙탕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산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지면 전체를 들어 올린 것 같았다.
순간, 수많은 금제의 빛이 번득였지만 이는 타산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주먹을 휘두르자 금제의 빛이 곧장 무너져 내렸고 땅이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거대한 균열과 그 안쪽의 숨겨진 길이 나타났다.
한제는 그 숨겨진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으며 감개무량한 심정이 됐다. 수백 년 전, 두 번 와본 곳이었다.
당시는 올 때마다 극도로 경계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는 걸으면서 신식을 펼쳐 시음종에 자신의 시식을 고정시켰다. 그들의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든 지금이든 그는 시음종에 호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후손들을 이용해 원령을 배양하려 한 이상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다.
비록 수 세대나 지난 후손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후손은 후손이었다.
그런 그들이 다른 존재에 의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제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의 신식에 걸린 시음종 수련자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때 시음종 안에는 적지 않은 수련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제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때, 길 반대편에서 한 줄기 검광이 빠른 속도로 돌진해왔다. 그 검광에 어린 기운으로 보아 상대의 수준은 문정기인 듯했다.
“귀찮군.”
한제는 심드렁하게 손을 뻗어 대충 휘두르며 체내의 원력을 가동했다. 순간 허공에서 파문이 일더니 질주하던 검광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크윽!”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상대는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더욱 빠르게 달려들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의식이 없는 것처럼 혼탁한 두 눈에 악취를 풍기는 빼빼 마른 온몸에는 수많은 문양이 그려진 사내였다.
“어딘가 익숙한 생김새로군.”
한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볍게 발을 내딛었다.
쾅!
그 순간, 시체와 같은 상대는 두 다리부터 시작해 점점 위쪽까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그 시체 같던 자는 생기를 되찾은 눈으로 슬픈 듯이 한제를 바라보았다.
“양유재가 다른 이의 시체 인형이 되었을 줄이야⋯⋯.”
한제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시체 인형의 습격을 받았으나, 매번 순식간에 상대를 소멸시켰다.
드디어 한제는 시음종 본부에 들어섰다.
거대한 지하 동굴 안에 이른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고 이윽고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여덟 개의 거대한 전송진에 이르렀다.
각 전송진에는 수많은 시음종 수련자들이 빽빽하게 선 채 진을 가동한 상태였는데 그들의 모습은 흐릿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딜 도망치려 하느냐!”
한제는 차게 외치며 신식으로 그 여덟 개의 전송진을 훑었다. 그 순간, 전송진이 크게 뒤흔들리더니 그중 세 개는 쾅 하고 와해되었다. 덩달아 그 진 안에 있던 시음종 제자들은 모두 공간의 균열로 떠밀려 사라져 버렸다.
콰쾅!
이어서 나머지 다섯 개의 전송진도 속속 무너져 내렸고 결국 시음종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도망치지 못했다.
시음종 본부 안은 숨 막힐 정도의 적막이 내려앉았다. 유일하게 한 사람의 발소리만이 그 적막 안에서 울려 퍼졌다.
한제는 동굴을 하나하나 통과하며 기억을 따라 점차 시음종 깊은 곳으로 향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앞에 벽이 하나 나타났다. 분명 당시 한제가 황천승규결(黃泉升窺訣)을 수련한 동굴이 있던 곳이었다.
한제는 그 벽으로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벽에 빠르게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금세 무너졌다.
한제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듯했다.
벽이 무너진 곳에는 길이 하나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