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93
다행히 천운종에는 제자가 매우 많아 밖에 나와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여자 수련자들은 사도환의 꼬임에 빠져 홍분궁으로 ‘놀러’왔는데 사도환은 그녀들에게 물어 당시 요령의 땅에 갔던 한제에 관한 갖가지 소문을 들었다.
이런 소문들은 어떤 비밀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환 역시 이미 익히 들어왔고 매우 기뻐했다.
‘그래, 그래야 이한제지. 녀석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항상 온 세상을 뒤흔들 법한 엄청난 일이었어.’
그 과정에서 사도환은 몇 달 전 한제가 천운성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전후의 일들을 따져보던 사도환은 한제가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다.
안전상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신했으니 돌아왔을 터였다. 다만 사도환은 한제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당당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마 그 녀석,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오른 건가?’
결국 명확한 이유는 알아낼 수 없었지만 그는 한제가 이번에 천운성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 요령의 땅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멀리 갔을 리는 없을 것이고 분명 빠른 시일 내에 나타날 터이니 사도환 역시 급할 것이 없었다. 이에 그는 더욱 환락을 즐겼다. 봉란성에서 겪었던 우울한 일들에 대해서도 잊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날, 그는 중년 사내의 안내에 따라 수많은 여자 수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저 멀리 자리한 수령성을 마주하게 됐다.
‘후후, 난 참 좋은 사람이야. 한제 그 녀석의 첩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야. 만약 이 사실을 녀석이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수령성을 바라보던 사도환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주변 사람들은 그저 그가 또 무슨 음탕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도환은 남색으로 빛나는 눈앞의 수령성(水靈星)을 바라보다가 신식을 뻗었다.
폭풍과도 같은 그의 신식이 순식간에 수령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열기 초기 수준인 사도환의 신식은 마치 날이 잘 선 칼과 같았고 마도(魔道)에 가까운, 고고하고 광기 어린 기운까지 풍겼다. 덕분에 그의 신식에는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한 무소불위의 서늘함이 깃들었다.
사도환의 신식에 뒤덮인 수령성은 한 쌍의 거대한 손에 놀아나듯 바르르 진동했다. 대지가 울렸고 하늘에서 바람과 구름이 일었다.
좌선을 하고 있던 진도삼자(塵道三子)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이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수령성을 뒤덮은 신식이 너무도 강한 탓에 세 사람은 곧장 수천 척이나 밀려났고 전력을 다해 저항한 후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한편 대두와 뇌길 역시 그 강대한 신식을 느꼈고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뇌길은 그 순간 피를 토해냈다. 허나 겁을 먹은 모습은 아니었다.
대두는 크게 몸을 휘청이고는 가까스로 견뎌낸 후, 곧장 한제가 있는 곳으로 돌진해 타산과 함께 경계를 섰다.
수령성의 수준 낮은 수련자들은 창백하게 질린 상태로 더러는 피를 토하거나 혼절을 하기도 했다. 조설이나 영이는 진도삼자의 보호 아래 그런대로 버텨내고 있었다.
이 포악한 신식이 한제의 궁전을 훑고 지나갔을 때는 하필이면 한제가 여인의 시체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른 때였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은 여인의 시체와 거의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지 않은 바에야 단순히 신식으로 훑는 것만으로는 그 시체의 존재밖에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시체 역시 정열기 초기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도환의 신식이 잠시 멈칫했다가 그대로 훑고 지나간 그때, 멀리 떨어진 다른 궁전에 있던 부풍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결인을 그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달려들던 신식은 회오리가 되어 긴 웃음소리를 남기며 물러났다.
“하하하! 오늘 내 기분이 상당히 좋으니 너희에게 기회를 주겠다. 수령체인 아이와 조설이라는 계집을 내놓아라. 반쯤 죽은 정열기 수련자 둘로는 내게 대적도 할 수 없다!”
거친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 수령성 곳곳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신통력이 깃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열기 초기 수준인 사도환의 수준도 포함되어 있어 이 목소리만으로도 진도삼자는 피를 토하며 한참을 밀려났다.
일진자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크게 외쳤다.
“호성진(護星陣)을 펼쳐라!”
이어서 진도삼자는 각자의 저물대에서 검은 영패를 하나씩 꺼내 번쩍 들어 올렸다. 이 영패들은 하나씩 차례로 무너져 내려 검은 파문이 되더니 사방으로 확산됐다. 수령성은 순식간에 세 겹의 검은 파문으로 뒤덮였다.
일진자는 이 세 개의 파문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지만 침착한 모습이었다.
‘이 도우가 있는 이상 누구도 함부로 이곳에 발을 들이지는 못하리라!’
“하하하! 재미있는 장난이로구나!”
수령성 밖.
사도환은 그 세 겹의 파문을 보고 크게 웃었다.
수령성에는 두 명의 정열기 초기 수준 수련자가 있지만 이들은 이미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도환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몸을 훌쩍 날린 사도환은 수많은 여자 수련자들로 둘러싸인 커다란 침상에서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수령성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항인가? 좋지. 그럴수록 나는 더욱 흥분되니까. 허나 이 일은 내 동생과도 같은 녀석에게 첩과 단로를 선물하기 위한 것일 뿐,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러니 난 당당하다! 크하하!”
크게 웃으며 수령성으로 접근해오던 사도환은 오른손 검지를 슬쩍 들어 올렸다.
“적멸(寂滅)!”
순간 그의 오른손에서 한 덩어리 회오리가 나타났다.
회오리에서는 음파가 폭발하는 듯한 콰릉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고 우주에 존재하는 엄청난 힘이 몰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 이에 회오리는 점점 빨리 회전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지난 폐관수련으로 적멸, 화마, 황천 세 가지 술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한층 향상시켰다. 이런 방어진 따위는 우습지!’
두 눈을 번득인 사도환이 다시 앞으로 오른손 검지를 뻗었다.
순간 그 회오리는 엄청난 속도로 수령성의 진을 향해 달려들었고 거의 눈 깜짝할 사이 검은 파문의 첫 번째 층과 충돌했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충돌 지점에서 폭풍이 일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도환은 미동도 않았지만 그의 뒤쪽에 있던 여자 수련자들은 하나둘씩 뒤로 밀려났다.
검은 파문의 첫 번째 층은 격렬하게 깜빡거리다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무궁무진한 폭풍은 그대로 두 번째 층으로 향했다.
그 순간, 사도환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휘두르며 외쳤다.
“일지천지(一指天地), 적멸건곤(寂滅乾坤)!”
그 손짓에 더욱 거대한 회오리가 다시 나타났고 주위의 기운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우주의 모든 힘을 전부 빨아들이는 듯한 형세였다.
재회
삽시간에 1백 척 크기로 불어난 회오리가 급속도로 회전하는 동안 그 안에서 줄기줄기 전광이 번득이면서 끊임없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도환은 비릿하게 웃으며 외쳤다.
“적멸, 변(變)!”
그 순간, 거대한 회오리 안에서 울려 퍼지던 폭발음은 절정에 이르렀고 전광도 격렬해졌다. 게다가 회오리 안에 깃든 자연의 힘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열기 수련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힘을 흡수하고 응집시켜 공격에 활용할 수 있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허나 쉽게 말해 흡수와 응결이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한 이 방법은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 중 가장 저급한 편이었다. 만약 규칙을 명확하게 깨달은 이라면 여기에 ‘변화’를 더 할 수 있다.
소위 변화, 즉 변(變)이라 함은 질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으로 흡수하여 응집시킨 자연의 힘을 끊임없이 압축하고 또 압축한 뒤 쇄열기 수련자들이 말하는 ‘규칙의 힘’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이른다.
한제가 만들어낸 잔야력(殘夜力)이 바로 이 규칙의 힘에 속하는 것이었다. 정열기 수련자가 이런 규칙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드물었으니 규열기 수련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한제가 잔야력을 만들어냈을 때 부풍자가 믿기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도환이 쏘아 보낸 거대한 회오리는 그 안에 포함된 자연의 힘을 따라 압축되면서 급속도로 축소되더니 결국 손바닥만 하게 줄어들어 호성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괴하라!”
짧게 외친 사도환 자신도 회오리를 따라 돌진했다.
회오리는 순식간에 검은 파문의 두 번째 층과 충돌했고 회오리의 회전에 따라 왜곡되고 뒤틀리던 파문은 이내 그대로 회오리에 흡수되어 버렸다.
회오리는 멈추지 않고 곧장 마지막 층의 파문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지막 남은 검은 파문은 바르르 진동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이제 호성진은 완전히 와해된 것이다.
회오리는 곧장 수령성 안으로 돌진했다.
“난 오늘 내 동생의 첩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니 나를 방해하는 자는 그대로 멸살될 것이다! 크하하하!”
회오리를 따라 돌진한 사도환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호성진과 심신으로 연결되어 있던 진도삼자는 일제히 피를 토해내며 물러났다.
그때, 홍분궁의 여자 수련자들이 수령성의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녀들에게서 풍기는 짙은 향기를 맡은 자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한편, 사도환을 수령성까지 안내한 중년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악에 받친 눈으로 진도삼자를 노려보았다.
‘너희 세 늙은이에게도 오늘 같은 날이 오는구나!’
일진자는 잔뜩 가라앉은 얼굴로 사도환을 올려다보며 낮게 외쳤다.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높은 것을 보니 이름 없는 수련자는 아닐 듯한데…”
사도환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난 사도환이다!”
“사도 선배, 이토록 수준 높은 선배님이 어찌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십니까? 영이와 조설은 그저 어린 후배일 뿐이니 자비를 베푸신다면 우리 진도삼자가 다른 방법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도환은 진도삼자를 힐긋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게는 여인이 적은 것도 아니고 단로도 넘쳐난다. 다만 내 아우가 아직 한참 어린… 어디 보자⋯⋯. 이제 1천 하고도 몇 백 살쯤 됐겠군. 아직 한참 어리지. 걱정 마라. 내 동생 녀석은 아주 잘생겼고 두 여자 수련자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니 쓸데없는 말은 말고 그 두 여인을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를 모두 죽이고 두 계집을 데려가겠다!”
“선배님! 이 조설은 선배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사매만은 놓아주십시오!”
저 멀리 허공에서 두 갈래 빛이 질주하듯 달려왔고 그 안에서 두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설과 영이였다.
사도환은 번득이는 눈으로 조설을 힐끗 살피고는 감탄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조설이라는 계집, 아주 냉염해. 첩으로 삼기 아주 좋은 재목이야.’
이어서 곁에 있던 영이를 본 순간, 그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과연 수령체로다!’
사도환이 소매를 휘두르자 순간 기이한 바람이 일더니 조설과 영이를 휘감았다.
“이 둘은 내가 데려가지!”
오만한 목소리로 외친 사도환은 몸을 뒤로 훌쩍 날려 떠나려 했다.
진도삼자의 두 눈이 시뻘게졌다. 특히 일진자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마치 악한이 딸을 납치하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문 그는 몸을 돌려 한제가 있는 궁전을 향해 포권을 하더니 비통함과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