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67
계내에도 계외에도 속하지 않은, 칠채화가 자리한 곳. 서로 다른 일곱 가지 색깔의 식물 중 붉은 꽃의 과실은 점점 더 선연해졌다.
그 과실 안, 천역주가 천천히 돌아다니며 남색 화염 한 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한참 후, 과실 안에는 남색 화염과 더불어 전광도 어렴풋이 맴돌았다. 전광은 과실 내부를 맴돌며 남색 화염과 느릿하게 융합했다. 이어서 전의의 경지도 튀어나와 과실 안의 즙을 양분 삼아 남색 화염과 전광에 천천히 합쳐졌다.
번개, 화염, 전의, 이 세 가지 기운의 융합은 계외에서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이곳은 수많은 도념과 힘이 결합된 과실 안이었다. 그 무궁무진한 양분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천역주의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과실 안에서는 새로운 경지가 한 줄기 나타났다. 진실과 거짓의 경지였는데 여기에는 진실과 거짓, 원인과 결과 삶과 죽음 등의 여러 가지의 음양 문양이 번득였다.
음양의 경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화염과 번개, 전의를 흡수했다. 마치 하나의 회오리가 되어 회전하면서 과실 안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음양 도안의 중심에서는 천역주가 회전하고 있었다.
한제는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매우 흐릿하여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기도 굳건히 존재할 것 같기도 했는데 음양의 경지를 통해 번개와 화염, 전의를 완벽하게 흡수하고 있었다.
“불⋯⋯ 규칙 속에서… 세상의 도를… 녹여내지⋯⋯.”
한제는 새롭게 태어난 의식 속에서 신념을 통해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신념이 나타난 순간, 엄청난 양의 과즙이 음양의 경지에 빨려 들어갔다. 이에 따라 과실은 탐스러운 모습을 잃고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과즙을 흡수하는 동안 한제는 윤회에 침잠된 존재처럼 보였다.
그는 문득 우주에 서서 두 손을 휘두르며 세상의 모든 화염을 통제하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손을 들어 한 수련성을 불바다로 휩쓰는 중년 사내가 되었다. 잠시 후에는 불바다에서 걸어 나오며 불바다를 흡수하는 청년이 되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이 한제의 심신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 모든 장면에는 불에 대한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끝없는 윤회 속에서 화염에 대한 깨달음을 품은 도념은 한제의 의식과 융합되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그의 일부가 되었다.
이 순간, 원고 시대 이래 상고 시대와 선계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모든 사람은 한제의 양분이 되었다. 그들이 일평생 얻은 깨달음은 죽음과 동시에 흡수되어 도의 양분이 되었지만 지금은 한제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번개는 규칙 속에서 모든 도를 벌한다.”
그가 두 번째 도념을 전달한 순간, 거대한 과실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안의 즙은 모두 한제에게 흡수되었고 도념들 역시 한제의 의식으로 녹아들었다.
그는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천둥번개의 힘을 깨달은 모든 수련자와 연기사, 나아가 원고 시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깨달은 천둥번개의 규칙은 그의 의식으로 몰려들었고 한제는 수만 명으로 불어나 모든 깨달음을 흡수했다.
봉계 주인의 신분
“전은 규칙 속에서 천도에 굴하지 않는다.”
이곳으로 흡수된 도념에는 각 수련자가 평생 겪은 전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전투들은 한제의 의식에 불을 붙이고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의지가 되어 그의 심신에 깊이 새겨졌다.
과실은 더욱 쪼그라들었고 1천 척에 달하는 붉은 꽃도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칠채화가 자리한 성역에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과(道果)가 열렸는데 어찌 시들어가는 것인가!”
목소리에 뒤이어 매우 강력한 신념이 과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과실 안의 천역주가 부드러운 빛을 발해 사방을 밝혔다. 그러자 다가오던 신념은 그대로 튕겨나갔다.
그 순간, 과실이 말라 시들어가면서 눈 깜짝할 사이 쪼그라들더니 껍질이 무너져 내렸다. 붉은 빛은 천역주 밖에 드리운 음양의 경지에 한 톨 남김없이 빨려 들어갔다. 또한 과실이 전부 흡수된 순간, 붉은 식물은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빠른 속도로 시들어버렸다.
한제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원력이 심신으로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경지 역시 계속해서 양분을 흡수하면서 빠르게 수준을 높여갔다.
한순간에 수없이 많은 도념과 원력을 얻으면서 한제는 금방이라도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심신이 산 채로 갈래갈래 찢어지는 것 같은 격렬한 고통이었다. 그의 경지가 심신에서 퍼져 나갔다.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그리고 번개, 화염, 전의까지!
이 모든 경지는 찰나의 순간 전부 녹아들어 깨달음이 되고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그리고 이 규칙이 나타난 순간, 한제의 수준은 단숨에 정열기 중기를 돌파하여 정열기 후기에 이르렀다.
또한,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한제의 심신은 천역주에 흡입되면서 끊임없는 깨달음 아래 정열기 후기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 정열기 절정에 이른다 해도 무궁무진한 양분을 흡수한 결과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직접 깨달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경험과 깨달음을 흡수한 결과인 만큼 스스로 이해하고 완전히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천재일우의 기회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천역주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역주여, 난 네 오행을 채워주고 극음과 극양도 찾아주었다. 위기에서 날 구해준 것은 고맙지만 이것은 거래야. 그러니 앞으로 네가 흡수하는 원력과 도념을 나도 갈라서 가져갈 것이다. 난 네 주인이니까!”
한제가 중얼거리던 그때, 충격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천역주!”
뒤이어 우주 한편에 왜곡이 일어나더니 검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음양의 중심에 있는 천역주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장존이 막대한 심혈을 기울여 심고 길러낸 칠채화 중 하나가 천역주에 완전히 흡수되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붉은 식물은 급속도로 줄어들다가 사라졌고 이로써 칠채화는 이제 육채화가 되어버렸다.
붉은 식물을 전부 흡수한 천역주 위로 드러난 음양의 문양도 사라졌다. 순간, 세상에는 여섯 송이의 꽃과 허공에 뜬 천역주만 남아 있는 듯했다.
바로 그때, 천역주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10만 척 길이로 뻗어 나가 성역을 뒤덮은 빛에서 거대한 허상의 문이 나타났다. 세상을 떠받칠 수 있을 듯 거대한 문에서는 오래된 기운이 느껴졌다.
검은 도포의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그의 눈에는 광기 어린 탐욕도 넘실댔다.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다시 앞으로 몸을 날렸다.
한데 그가 접근한 순간, 거대한 문이 느릿하게 열리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강력한 빛 한 줄기가 발산되어 노인의 몸을 뒤덮었다.
“크아악! 이… 이것은… 설마… 봉계의 주인이 부활한 것인가?”
비명을 내지르던 노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몸을 물렸다. 그가 걸치고 있던 옷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타 사라졌고 그의 비쩍 마른 몸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강력한 빛은 그 노인까지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문이 열리면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봉계의 진을 따라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탁삼의 공격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봉계의 진은 또 한 번 진의 영을 내보냈다. 심지어 마지막 영혼까지 모두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옥패 형태의 마지막 영혼이 나타나자마자 봉계의 진에서는 무궁무진한 파문이 일어났고 콰쾅 하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순간 계외의 태고 사람들 중 강자들은 심신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외쳤다.
“봉계의 주인!”
★ ★ ★
한편, 계외에 비하면 계내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4대 성역의 강자들은 미약하게나마 그 기운을 느꼈다.
신종의 밀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동자가 돌연 두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주인님의 기운이다!”
우의 선계에서는 수준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던 청림이 벌떡 일어나더니 어딘가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되뇌었다.
“스… 스승님!”
같은 시각, 수많은 흡혈마수로 뒤덮이고 무너진 풍의 선계에서는 가부좌를 튼 채 석상이 되어 있던 노인이 오랜 시간 감겨 있던 두 눈을 뜨며 뇌까렸다.
“그 늙은이의 기운이군.”
머릿속을 헤집는 수많은 기억들을 떨쳐내며 노인은 한참 후에야 눈을 감고 다시 석상이 되었다.
섬계의 어느 수련성 산꼭대기에서는 한 여인이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것은… 익숙한 기운이지만 대체 누구의 기운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그 시각, 섬계의 다른 수련성 어느 산맥에서는 낮잠을 자고 있던 청년이 몸을 바르르 떨더니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제가 천벌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균열 안으로 도망쳤던 청년이었다.
“선역의 그 늙은이들이 나를 잡으러 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허나 이 기운, 어쩐지 익숙한데⋯⋯.”
★ ★ ★
천역주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멀리서 문틈으로 쏟아진 빛에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던 노인은 두려움에 바르르 떨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봉계의 주인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봉계의 두 번째 주인인가? 몸에서 흐르는 기운은 강하지 않으나 저자의 뒤에 있는 문은 너무도 두렵다!’
사실 문에서 걸어 나온 것은 한제였다. 그는 육신이 없는 터라 한 줄기 원신에 불과했다.
멀리 서 있던 노인이 두 눈을 번득이며 이를 악문 채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그의 몸을 감싼 채 앞으로 돌진했다.
‘저자를 죽이고 천역주를 빼앗기만 한다면 더는 장존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노인은 전신을 감싼 검은 안개로 문에서 쏟아지는 강한 빛에 대항했다. 안개는 끊임없이 흩어졌으나 결국 문 앞에 이르렀고 노인은 손을 쭉 뻗어 한제를 매섭게 움켜쥐려 했다.
한제는 세 번째 단계 본원의 기운이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손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나 천역주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천역주의 문은 강력한 빛으로 주위를 둘렀고 동시에 문 위에 거대한 팔의 허상이 나타나 노인을 꽉 움켜쥐었다.
쾅!
“크아악!”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흩어지면서 노인은 한 줄기 본원의 힘이 되어 거대한 팔에 대항하는 한편 틈을 노려 한제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거대한 팔에 잡히고야 말았다.
“제길!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노인은 도망치려 애썼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기랄!”
노인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혀끝을 깨물었고 순식간에 몸이 세 개로 불어났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한제를 다른 두 개는 거대한 팔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거대한 팔은 주먹을 쥐더니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속도로 노인을 공격했다. 두 개의 분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팔은 거침없이 달려들어 하나 남은 노인을 꽉 움켜쥐었다.
“본체가 아닌지라 이 정도가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