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친위대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경단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동안 정보감찰부에서 보낸 보고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안타깝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에 취해 가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할 때가 있었다.
더욱이 나라에서 정한 법이 있는데, 대의원이라는 자가 그 법을 어기고 자경단에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지. 본보기로 삼을 수밖에.’
잠시 후, 내성을 지나 관청 옆에 있는 자경단청으로 들어갔다.
여러 부서를 지날 때마다 다양한 민원을 해결하고 있던 자경단원들이 큰 소리로 경례를 해왔다.
“황제 폐하께 경의를 담아! 충!”
“충!”
어느새 폭력 사건을 다루는 업무실에 다다르자 자경단 수장인 ‘날쌘 여우’가 다급한 걸음으로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황제 폐하!”
“네, 대충 어떤 상황인지 보고를 받았으니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네.”
집무실 바깥에 있는데도 대의원들의 고성이 오고 가며 싸우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왔다.
“일방적으로 맞은 것은 우리 아이들인데, 야만 부족 애들보다 왜 우리가 더 많은 처벌을 받는 거지?”
“먼저 그쪽이 야만인 놈들이라며 무시하며 시비를 걸었잖아. 난 우리 아이들이 죄가 없다고 보는데.”
“뭐? 죄가 없다고? 우리 레나페 부족이 거둬들여 먹고살게 해줬더니 같은 대의원이라 눈에 뵈는 게 없나?”
“열린 입이라 아주 함부로 말하는군. 창조주 신 앞에서 모든 부족이 평등하다는 말은 잊었어?”
애들 싸움에 어른 싸움이 된다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날쌘 여우’는 그동안 대의원들의 외압 때문에 꽤 진땀을 흘렀는지 내가 오고 나서야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들어가죠.”
“네, 황제 폐하!”
문이 열리며 내가 업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대의원들이 흠칫하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자경단청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
내심 찔리는 게 있는지 내 등장에 대의원들이 몹시 당황한 듯했다.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거 보면.
“왜?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겁니까?”
내가 태연한 모습으로 반박하자 그들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건 아니지만.”
“아‥닙니다.”
한 명은 야만 부족 대의원, 또 한 명은 예상대로 레나페 부족 대의원이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나를 쳐다봤다.
“대의원의 누군가가 자경단이 법을 집행하는데, 하도 방해한다고 해서 한번 찾아와봤습니다.”
“…….”
난 대놓고 그들을 비꼬며 자경단 수장인 ‘날쌘 여우’에게 이번 폭력 사건에 관한 보고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네, 황제 폐하!”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이라 ‘날쌘 여우’가 가지고 온 보고서를 대충 읽어 내려갔다.
그때, 레나페 부족 대의원이 무슨 자신감인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몹시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했다.
“보십시오. 황제 폐하! 이 결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레나페 부족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맞았는데, 야만인 놈들보다 봉사 노동형이 한 달 더 늘어났습니다. 저는 자경단의 이 결정이 부당하다고 봅니다.”
역시나 싹수없는 그 아들의 그 아버지였다.
그의 입에서 야만 부족(포우하탄 부족)을 비하하는 말이 나왔다.
더구나 내가 같은 레나페 부족 출신이라서 그런가?
당연히 내가 자신의 편인 될 거라 착각하고 있는 레나페 부족 대의원을 보지 순간 입에서 욕이 나올 뻔했다.
나는 가슴 깊이 올라오는 화를 가라앉으며 그를 무시한 채 ‘날쌘 여우’에게 말했다.
“읽어봐도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네요. 법대로 집행하세요.”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날쌘 여우’가 힘차게 대답하고 물러나자 레나페 부족 대의원이 당황하며 다급히 따지듯 말했다.
“황제 폐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법대로 집행하라니요?”
난 이자의 말도 안 되는 하소연을 더는 듣기 싫었다.
내 눈짓에 ‘세찬 눈보라’가 미리 준비했던 종이를 레나페 부족 대의원에게 건넸다.
“지금까지 대의원께서 자경단에 협박이나 압력을 가한 내용입니다.”
“네?”
“하늘의 태양을 이끄는 황제로서 더는 자경단에 월권행위를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내년 봄, 대의회 때 대의원 자격을 박탈할 것을 건의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만 조용히 돌아가시고 대의원에 물러날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
종이에 빼곡히 적힌 증거가 명백했기에 레나페 부족 대의원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대의원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 말에 꽤 큰 충격을 받았는지 레나페 부족 대의원은 배신감이 가득한 모습으로 자경단청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출신 때문에 내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던 야만 부족 대의원이 다가왔다.
“자경단 청에서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야만 부족 대의원에게 감사를 받고자 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큰 은혜를 받았다는 듯 무척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어느 정도 징계는 필요하겠지.’
그가 레나페 부족 대의원처럼 자경단청에 외압을 하거나 협박하지 않았다.
다만, 레나페 부족 대의원의 입김에 야만 부족 젊은이들에게 부당한 처벌이 내릴까 봐 자경단청에 직접 찾아와 그저 소란을 피운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월권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자경단도 엄연히 공권력을 집행하는 행정기구인데.
난 무심한 표정으로 야만 부족 대의원에게 말했다.
“조만간 대의회에서 징계가 내려질 겁니다.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만큼 그 누구도 자경단의 결정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황제인 나도.”
“네. 황제 폐하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내 말에 크게 깨달은 게 있는지 야만 부족 대의원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자경단청을 조용히 떠났다.
‘됐어.’
자경단이 출범한 이상 이런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래서 첫 단추를 끼우는 게 무척 중요했다.
아마 대의원들이나 각 부족의 대추장들에게 이번 결정에 관한 소문이 빠르게 퍼질 것이다.
‘내 경고를 무시하지 않겠지.’
앞으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자경단청에 외압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때마침, ‘세찬 눈보라’가 다가와 말했다.
“황제 폐하!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됐군.”
드디어 오늘 하루 업무가 끝이 났다.
오랜만에 ‘달이 뜨다’가 해주는 음식을 떠오르자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가지.”
“네, 황제 폐하!”
잠시 후, ‘날쌘 여우’와 자경단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경단 청을 나섰다.
‘세찬 눈보라’가 친위대 전사들에게 휴가 명령과 함께 간단히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최소한의 인원으로 야간 교대를 한다.”
“네, 천인장님!”
* * *
모호크 강, 모호크 부족 마을.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긴집에선 겨울 추위에 맞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타닥타닥!
마른 장작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두꺼운 털옷을 입은 ‘치솟는 불길’이 눈앞에 있는 모닥불에 장작 하나를 또다시 집어넣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몇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네.”
“싸운 흔적은 있는데?”
모호크 부족 대전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치솟는 불길’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죄송합니다. 대추장님!”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나머진 다 죽였는데, 이리 부족 사냥꾼만 생사를 확인 못 했다고 했나?”
“네. 주변 정황을 보면 이리 부족 사냥꾼과 우리의 전사들이 치열하게 싸운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사라진 전사들처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미치겠군.”
긴집 안에 잠시 침묵으로 휩싸였다.
한동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던 ‘치솟는 불길’이 다시금 확인했다.
“다른 부족이 개입하거나 싸운 적은 확실히 없었지?”
“없었습니다.”
확신에 찬 모호크 부족 대전사의 대답에 그제야 ‘치솟는 불길’이 굳은 표정을 폈다.
“그렇다면 됐어. 어쨌거나 ‘하늘의 태양’ 측이 아직도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리 부족 사냥꾼인데…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결과는 그자가 사라진 우리 전사들과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는 건데….”
‘치솟는 불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이리 부족 사냥꾼이 살아있다면 꽤 골치 아파지겠군.”
모호크 부족 대전사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사들을 더 투입해 이리 부족 사냥꾼의 흔적을 찾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하늘의 태양’ 측이 우리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더욱 조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
모호크 부족 대전사의 대답에 ‘치솟는 불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몇 가지 더 지시사항을 내리고 모호크 부족 대전사가 물러나자 긴집에 혼자 남은 ‘치솟는 불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안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무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지.”
* * *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오랜만에 난 무헤쿤네툭 강(허드슨 강) 하류에 자리 잡은 작은 조선소를 방문했다.
내년 여름, 이로쿼이 부족과 전쟁 준비로 배를 건조하는 기술자들이 중형 바이킹 배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기술자들이 나무를 나르고, 깎고, 다듬으며 배의 뼈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선 기술자들이 거의 완성된 바이킹 배에 못을 박으며 물이 새지 않게 검은 타르를 두껍게 바르고 있었다.
“한겨울이라서 상당히 추울 텐데, 다들 고생하는군.”
“그렇지 않아도 기술자들이 휴식할 때마다 몸을 녹일 수 있게 곳곳에 화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잘했어.”
내 옆에 있던 ‘게으른 비버’가 배의 건조 상황에 대해 계속 보고했다.
“지금 속도라면 계획대로 내년 봄까지 이십 척의 중형 바이킹 배를 건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추가로 중형 바이킹 배를 건조하는 계획은 딱히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소를 나오며 ‘게으른 비버’에게 전쟁 준비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봄에 초급 전사들을 데리고 대대적으로 수상 훈련을 할 예정이니까 특별히 신경 좀 써 줘.”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 * *
조선소를 둘러보며 예정보다 일과를 빨리 마친 나는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인 ‘달이 뜨다’의 손길을 받아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잘랐다.
쓱! 쓱쓱!
내가 앉은 의자 밑으로 잘린 머리카락들이 떨어졌다.
“가위가 영 익숙하지 않네. 아주 큰 이천일! 칼로 하면 안 될까?”
“그래.”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칼을 든 그녀가 빠른 속도로 내 머리카락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방에서 놀고 있던 ‘하늘의 별’을 나에게 뛰어와 자랑하듯 말했다.
“아빠! 아빠가 준 동화책 다 읽었어.”
“진짜?”
내가 놀란 눈으로 묻자 ‘하늘의 별’이 앙증맞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딸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듯 뒤에 있던 ‘달이 뜨다’도 핀잔을 주며 한마디 거들었다.
“신의 문자를 깨우친 지가 언제인데, 아빠가 돼서 그것도 몰라? 그리고 내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하늘의 별’에 다른 비슷한 또래 애들보다 제법 똑똑한 것 같아.”
‘설마?’
난 재빨리 심안을 켠 채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하늘의 딸’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미치겠군. 이게 말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