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
속이 빈 통나무처럼 보이는 기다란 철통이 기술자들의 손에 끌려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대포.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두 대였다.
두 개의 바퀴, 고정대.
기술자들이 조금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게으른 비버’의 지시하에 대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장약과 탄환을 넣으세요.”
“네, 수장님!”
극비로 진행된 연구.
대포와 화약에 대해 잘 모르는 수장들과 각 행정기구 주요 인물들은 그저 그 대포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작게 수군거렸다.
“수레처럼 바퀴가 달려 있네. 이동 수단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쯧쯧! 여기가 어디야? 국방부 건물 아니야?”
“그럼, 투석기 같은 무기일 가능성이 크겠네.”
“어쩌면 휴대용 폭탄보다 더 엄청난 무기일지 몰라.”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대포 시연회를 지켜보고 있던 ‘찬란한 노을’이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성공만 한다면 전쟁에 큰 변화가 일어나겠네요.”
행정기관 총 수장인 그녀는 대포의 개발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대포를 쏠 준비가 끝났다는 듯 ‘게으른 비버’가 단상에 있는 나와 각 행정기구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시켰다.
“···엄청난 폭발음 때문에 귀가 손상될 수도 있으니 탁자 위에 놓은 솜으로 귀를 막으십시오.”
각 행정기구 수장들과 주요 인물들이 나를 따라 재빨리 솜뭉치로 양쪽 귀를 막았다.
“귀가 손상된다잖아.”
“작년에 휴대용 폭탄이 터진 것처럼 놀라 자빠지지 말자고.”
“휴우! 괜히 살 떨리는데.”
시연회 할 준비가 끝나자, ‘게으른 비버’가 뒤돌아서서 기술자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장전!”
“발사!”
기술자들이 그 지시에 따라 대포 머리 쪽에 연결된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가 대포 속까지 타들어 가던 그때, 세상을 뒤집힐 듯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퍼어어어어어엉! 퍼어어어어엉!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달아 두 번.
대포 입구에서 붉은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피어올라 왔다.
“저 불은 뭐야?”
“휴대용 폭탄처럼 터지는 건가?”
웅성웅성.
단상 위가 소란스러운 것도 잠깐, 두 대의 대포에서 커다란 탄환이 연달아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대포가 뒤로 밀려났다.
고작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그 시연회를 지켜보고 있던 나와 모든 사람의 눈에 그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와아아아아!
어느 순간 단상에서 놀란 듯 탄성과 감탄이 흘러나왔다.
두 개의 탄환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표적으로 설치된 목표물을 각각 덮쳤다.
하나는 커다란 방패, 또 다른 하나는 바위.
탄환을 얻어맞은 방패는 산산 조각나듯 처참하게 부서졌고, 꽤 단단히 보이는 바위는 맞은 부위가 움푹 파이며 여러 갈래로 금이 가 있었다.
잠시 후, 감탄도 잠깐 각 행정기구 사람들이 대포에 관해 이런저런 평가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맙소사! 바위가 금이 가 있어.”
“저 무기가 있다면 성벽과 성문을 단숨에 뚫을 수 있을 거야.”
“근데, 기존에 투석기보다 위력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평소 말을 아끼는 ‘용감한 늑대’는 국방부 수장으로서 대포에 관해 냉정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굳게 닫힌 성문을 뚫는데, 최적의 무기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투석기보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더구나 화약을 이용한 무기라고 들었는데, 휴대용 폭탄처럼 비가 내리면 저 대포를 운용할 수 없다는 게 큰 단점이겠네요.”
뼈를 때릴 정도로 ‘용감한 늑대’는 대포의 단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하지만, 그가 잘 모르는 게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
대포는 그저 먼 미래의 무기들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었다.
총부터 미사일까지.
그때, 말 못한 내 속사정을 알았을까?
‘찬란한 노을’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국방부 수장님! 설마, 황제 폐하께서 그걸 모르고 이 대포를 개발했을까요? 투석기도 매년 성능을 개선한 것처럼 지금 시연회에서 보여준 대포보다 앞으로 좀 더 좋은 대포들이 계속해서 나오겠죠. 안 그래요? 황제 폐하!”
“······.”
그 질문에 대한 확실한 내 대답을 듣고 싶다는 듯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피식!
“아니라고 못하겠군. 그래. 지금 대포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
“거봐요. 수장님! 내 말이 맞죠?”
‘찬란한 노을’이 내 대답에 기쁜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용감한 늑대’를 쳐다봤다.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부담스러운 ‘용감한 늑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연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게으른 비버’와 기술자들을 치하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
“기대했던 것보다 대포의 위력이 안 나와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절반의 성공.
기존의 실험에서 보여줬던 바위가 부서지지 않자 ‘게으른 비버’를 비롯해 기술자들이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죠. 앞으로도 계속 연구하며 성능을 개선하면 됩니다.”
난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조용히 ‘게으른 비버’에게 두 장의 설계도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첫 장은 살상력을 높여줄 수 있는 새로운 포탄 설계도. 그리고 다음 장은 표적의 정확성을 높여줄 대포 내부 구조도.”
내부 구조도는 별거 없었다.
기존의 대포 설계도에서 강선을 추가했을 뿐이다.
설계도를 대충 훑어본 ‘게으른 비버’가 지신의 인생을 한탄하듯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분위기가 싸한 게 느낌이 좋지 않다.
“진짜!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황제 폐하!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런 거는 미리미리 줘달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지. 잠깐만!”
난 바쁜 일정이 있다는 듯 ‘찬란한 노을’을 다급하게 찾았다.
“찬란한 노을! 다음 일정이 있어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알았어.”
“네? 아, 네.”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지금의 내 상황을 눈치 채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 수장이 나 대신 시연회를 잘 마무리 해줘.”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게으른 비버! 시연회가 마무리될 때까지 같이 있어 줘야 하는데, 보다시피 황제 업무가 워낙 많아서. 찬란한 노을과 얘기 잘 나눠. 그리고 필요한 지원이 있으면 나중에 말하고.”
‘게으른 비버’가 좋아하는 ‘찬란한 노을’을 이용해 재빨리 자리를 떴다.
친위대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국방부를 나선 나는 궁금한 표정으로 뒤를 힐끔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게으른 비버’의 얼굴이 입가에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해졌다.
‘아주 좋아죽네!’
‘그나저나 게으른 비버의 마음을 언제 받아주려나?’
잠시 후, 저녁이 되자 관청에서 마지막 업무를 보며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황제로서 제철소의 완공식에는 가봐야지. 그리고 겸사겸사 오랜만에 영토를 시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찬란한 노을’이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럼, 일정에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조만간 또다시 긴 여행이 시작된다.
‘한동안 이래저래 바빠지겠군.’
* * *
사슬(플로리다 조지 호수) 호수 남쪽 습지.
크고 작은 웅덩이가 모여 있는 습지가 붉은 피로 물들이며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다.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천 명이 넘는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은 어느새 육백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처참했던 전투를 보여주듯 팔다리가 잘린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의 시체가 습지 곳곳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
‘하늘의 태양’ 전사들의 매복 공격에 호되게 당한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은 이미 사기가 꺾일 대로 꺾여있었다.
“신과 정령들이 우리를 선조들이 있는 평화로운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가족들을 위해, 불타버린 마을을 위해라도 전사답게 끝까지 싸우자!”
그들을 이끄는 대전사들의 호통과 고무에도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대로 ‘하늘의 태양‘ 전사들 진영에선 협박과 설득으로 항복 권유를 해왔다.
“전투는 이미 끝났다.”
“헛되게 죽지 마라!”
“순순히 항복한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한동안 두 진영은 항복과 항전을 두 갈림 속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답답하군. 내 성격과 맞지도 않고,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군.”
이천 명의 ‘하늘의 태양’ 전사들을 데리고 매복 전략으로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의 허를 찌른 ‘끓어오르는 불과 물’의 짜증스런 속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사단장님!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그렇습니다. 사단장님! 승기는 이미 기울었으니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이 곧 반응을 보일 겁니다.”
주변에 있는 참모진의 조언에 아차 싶었는지 ‘끓어오르는 불과 물’이 헛기침을 하며 타고 있던 들소를 고쳐 잡았다.
“어쩔 수 없지. 노역에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려면···.”
그때, 후방 임무를 맡고 있던 중대장 하나가 뛰어왔다.
“사단장님! 시신들의 피 냄새를 맡고, 배고픈 악어들이 전장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별 게, 다 귀찮게 하는군.”
‘끓어오르는 불과 물’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서 바로 지시를 내렸다.
“오랜만에 악어 고기로 포식한다. 악어들이 몰려오는 족족 다 죽여 버려. 그리고 중간중간 큰놈들도 섞여 있으니까 사냥할 때 각별히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사단장님!”
악어 사냥을 명령을 받은 중대장이 물러나고 난 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 * *
“으악! 으아아아악!”
항복 권유를 무시하고, 겁 없이 달려오는 티무쿠아 부족 전사 몇 명이 무자비하게 날아가는 화살 공격에 온몸이 벌집이 되어 또다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
긴 정적이 흐르며, ‘하늘의 태양’ 전사들 진영에서 마지막 항복 권유가 들려왔다.
“더 이상은 없다!”
“마지막 경고다!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잠시 후, 전의를 상실한 티무쿠아 부족 전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버리며 항복을 해왔다.
“무기를 버리겠소.”
“항복하겠다!”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시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끓어오르는 불과 물’이 길게 하품을 하더니 참모진과 부하 전사들에게 지시를 냈다.
“이제야 끝났군. 고생했어. 다들 알아서 잘하겠지만, 최대한 빨리 전장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사단장님!”
“그리고 너무 승리에 취해 있지는 마. ‘검은 물의 악어’가 이끄는 티무쿠아 부족을 정복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사단장님!”
지시가 끝나자, ‘끓어오르는 불과 물’은 열 기의 들소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뒤돌아섰다.
그때, 악어 사냥을 임무를 맡고 있던 중대에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주 큰 놈이다!”
“어마어마하군. 지금까지 본 악어 중에 제일 큰 것 같은데.”
호기심이 일어났는지, ‘끓어오르는 불과 물’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한테 보내야겠군.’
* * *
얼어붙은 동토, 쿠주악.
늦은 밤.
이누이트 부족 사람들의 마련한 얼음집에서 ‘들소 가죽’과 ‘상처 입은 화살’은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 바깥에 묶여있던 개들이 엄청나게 짖기 시작했다.
“수장님! 바깥에 뭔가가 있나 본데요?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상처 입은 화살’이 얼음집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자, ‘들소 가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도 안 오는데, 같이 가죠.”
그 순간, 얼음집에 함께 있던 이누이트 부족 사람이 그들을 강하게 말렸다.
< 신대륙 인디언으로 살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