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01
601
# 예멘Ⅱ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
노크 소리와 함께 중동 담당 책임자인 오페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스텔마치 국장이 몸을 일으키면서 한쪽에 있는 소파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로 앉아.”
“예.”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올리면서 상석에 앉은 스텔마치 국장은 왼편에 자리한 오페르를 보면서 물었다.
“어떻게 됐나?”
그러자 오페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F-15I 전폭기를 출격시켜 막 아덴에 입항해 군수품을 하역하고 있던 화물선을 폭격했습니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됐군.”
“UAE한테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만큼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존슨이 가져온 군수품이 남부평의회의 손에 들어간다면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을 테니 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요.”
“맞는 말이야.”
자말이 타고 있던 화물선이 사우디아라비아 공군기에게 폭격을 받은 건 모사드가 뒷공작을 벌인 거였다.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급격하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UAE의 기세를 꺾는 것과 동시에 수니파 연합의 두 중심축인 사우디아라비아하고 UAE가 서로 불화를 일으키는 건 아랍 국가들의 단합을 경계하는 이스라엘한테 득이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모사드에 큰 치욕을 안겨 줬던 혁권에게 작게나마 복수를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스텔마치 국장은 몸을 소파 등받이에 기대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되면 양쪽이 서로 공평하게 한 대씩 때린 것이 되는 건가.”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서 지원한 하디 대통령의 정부군 4여단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임시 수도인 아덴까지 상실했으니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아직 크게 손해를 본 상태이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이란에 이어서 같은 수니파 국가인 UAE까지 맹주 자리를 넘보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권위와 존재감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봐야 될 겁니다.”
스텔마치 국장은 동의하듯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지금까지 아랍 세계의 맹주라 자처해 왔는데 자존심을 있는 대로 구겼으니 그런 치욕도 없을 거야.”
오페르에게 시선을 주면서 스텔마치 국장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모두 중동의 강국이었기에 국토가 아랍 국가들에게 둘러싸여 항상 준전시 상태인 이스라엘로서는 두 국가의 움직임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멘의 지리적 특성상 여길 장악하는 세력이 주요 원유 수송로이자 수에즈 운하로 가는 출입구인 바브 알만데브 해협 교통을 모두 통제할 수 있었기에 이스라엘의 경제와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양국의 주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지겠지만 직접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을 걸로 예상됩니다.”
“어째서 그렇지?”
“자칫 전면전으로 번지는 건 서로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공동의 적인 이란한테 어부지리를 주는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긴 국토는 좁지만 UAE의 전력이 만만하지 않은 데다 이란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겠지.”
“거기다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경우에는 예멘뿐만 아니라 인접한 이라크와 시리아 문제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서 더욱 움직이기가 곤란할 겁니다.”
“그럼 북쪽의 후티 반군에 이어서 하디 대통령의 정부군과 알주바이디가 이끄는 남부평의회가 격돌하는 두 번째 전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강대국들의 대리전 양상이 더욱 심화되겠군.”
“아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끔찍한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피를 흘려야 되는 예멘 국민들한테는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중동의 강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패권 다툼을 하며 끝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건 이스라엘 입장에서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아랍 국가들의 분열이 곧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지. 예멘뿐만 아니라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이 가능한 한 오래갈 수 있도록 계속 은밀하게 손을 쓰도록 해.”
“맡겨만 주십시오.”
원하는 결과를 얻은 스텔마치 국장은 얼굴 가득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불 위로 비죽 튀어나온 혁권의 손가락 끝이 약한 전기 충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찔거렸다.
불편해서 자세를 바꾸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양 한참을 그렇게 끙끙대고 있던 혁권이 마침내 눈을 번쩍 뜨고는 황망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온통 어두워 잠시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얼굴로 굳어 있던 그는 뒤늦게 제 방인 것을 알아차린 듯 손을 옆으로 뻗었다.
밝기를 낮춘 스탠드 조명의 어렴풋한 빛이 실내를 비추자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혁권이 긴 숨을 내뱉었다.
“꿈이었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던 중이던가.
어쨌든 상당히 격렬한 꿈이었는지 적절한 온도로 설정된 실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나 불쾌한 기분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일어나서 샤워라도 할까 하는 마음에 다리를 내려 실내화를 발에 꿰자 협탁에 올려 두었던 위성 전화기가 크게 몸을 떨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타이밍인지라 혁권은 아주 짧은 순간 망설였다.
그래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위성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니 본인이 듣기에도 어색할 만큼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보세요.”
-보스, 큰일났습니다.
다급한 함단의 음성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아덴에 입항한 화물선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혁권이 눈을 크게 부릅뜨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폭격이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화물을 하역하고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공군기가 날아와 미사일을 쐈다고 합니다. 침몰은 되지 않았지만 선체가 심각하게 손상된 채 좌초됐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군기가 직접 공격을 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으음.”
화물선이 공격을 받았다는 충격적이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멘 내전이 새로운 양상으로 번지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위성 전화기를 고쳐 쥐면서 다급히 물었다.
“화물선에 타고 있던 인원들은 어떻게 됐어?”
-너무 급작스러운 공격이라 미처 대피를 하지 못해 피해가 컸습니다. 그리고 자말이…….
“설마 부상을 당하기라도 한 거야!”
다그치듯 묻자 함단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상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덴 시내에 위치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만,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그럴 수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혁권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쪽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사이였기에 더욱 각별하게 생각하는 자말이 위독하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당장 가 봐야겠어!”
-아덴 현지 공항이 폐쇄되어 있는 데다 아직 시가지에서 교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너무 위험합니다.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두라는 거야!”
-제가 대신 가도록 하겠습니다.
함단이라면 충분히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었으나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 돼. 자넨 아테네에서 아직 남아 있는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되잖아.”
-그렇지만…….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른 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신경을 쓰도록 해.”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에 함단은 더 이상 만류를 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중간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연락하고.”
-옛.
통화를 끝낸 혁권은 한쪽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밖에 누구 없어!”
그러자 하킴이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예멘으로 출발할 수 있는 의료진을 수배해 봐.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필요한 약품들도 가득 챙기라 하고.”
“갑자기 예멘은 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자 혁권이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뗐다.
“아덴항에 들어간 화물선이 폭격을 당했다는 연락이 왔어.”
“……!”
뜻밖의 소식에 눈을 크게 치켜뜬 하킴은 이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한 듯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
“항공편은 어떻게 할까요?”
“아덴 공항이 폐쇄돼 일반 여객기로는 갈 수 없다고 하니까 예멘하고 가까운 자부티Djibouti에서 합류할 수 있도록 이안한테 그리로 오라고 해. 그리고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비즈니스 제트기를 빌려 놓고.”
“알겠습니다.”
하킴이 황급히 자리를 비운 사이 혁권은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랬다.
“빌어먹을.”
짜증 섞인 목소리를 토해내는 그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상대가 안전하다고 장담을 했더라도 좀 더 신중하게 살피지 않고 화물선을 입항시킨 걸 자책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린 뒤였다.
전용기는 항공사를 통해 바로 비즈니스 제트기를 임대할 수 있었었지만 의료진을 수배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멀리 외국에 그것도 한창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가는 걸 다들 꺼려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혁권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료진만을 원했기에 인원을 구하는 것이 더욱 까다로웠다.
하지만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아하던 이들도 1년 연봉에 필적하는 금액을 대가로 제시하자, 금방 짐을 꾸리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다소 속물적이기는 해도 단 한 번의 출장으로 거액을 손에 쥘 수 있으니 그 유혹을 거부하기란 힘들었으리라.
의료진과 치료에 필요한 물품하고 장비까지 전부 가져가려고 하자 한 대로는 부족해서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 두 대를 임대해야 됐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친 혁권은 다음 날 새벽 일행과 함께 비즈니스 제트기에 탑승해 김포 공항을 출발했다.
최고급 가죽을 써서 침대보다 더 편하게 만들어진 좌석에 앉은 혁권은 위성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수술 결과가 나왔나?”
-다행스럽게도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가.”
어쨌든 최악의 상황만은 면하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부상자들은?”
-안타깝게도 치료 중에 두 명이 더 죽어서 사망자가 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으음.”
위성 전화기를 손에 든 채 그는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화물선 선원들까지 포함한 숫자였지만 희생이 너무 컸다.
거기다가 자말을 포함해서 아직 생사의 고비에 서 있는 중상자들이 많았기에 앞으로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가족들에게 보내 줘야 되니까. 시신을 잘 수습해 놓고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부상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해.”
-예.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보고를 들으니 착잡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