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18
117화.
엘프가 인간에게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우월감이나 이런 것을 떠나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유가 생긴 열 손가락 산 마을 엘프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인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인간은 케일이었다.
“대답하기 힘드신가요?”
케일은 가장 앞에 서서 저를 쳐다보는 엘프의 시선을 피했다. 하필 맨 앞에 있는 두 엘프가 할머니에 어린 엘프다. 케일은 족장 카나리아를 쳐다봤다.
‘분명 조용히 가고 싶다고 했는데.’
카나리아는 케일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참으로 얄미워 보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가족에게만 말했는데.”
케일은 사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펜드릭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떠나는 시간과 장소가 노출된 것은 펜드릭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말한 이를 심하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이렇게 되면.’
그는 일단 라온이 모습을 드러내어 찬양받는 상황은 피했기에 최악은 피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차선을 택했다. 엘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두면 뭘 시켜도 알아서 잘 움직이지 않겠는가?
“아니. 이게 뭐가 미안한 일인가.”
케일의 입가에 친절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에 펜드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케일의 일행은 그 미소를 슬그머니 외면했다.
케일은 눈앞의 할머니 손을 잡은 어린 엘프와 시선을 맞췄다.
“대답하기 힘들지 않아요.”
엘프 아이를 향한 상냥함이 가득했다. 그는 아이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저, 정말 드래곤 님의 가호를 받으셨나요?’
그 질문의 답을 원하는 엘프와 정령들이 보였다. 엘프들이야 대부분 대놓고 보거나 한 걸음 물러서서 훔쳐보듯 힐끗거렸다. 물론 정령들도 반짝이며 뭐라 중얼거렸지만 정령의 말은 케일에게는 전혀 닿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엘프들에게는 닿았다.
‘이 인간은 강대한 기운의 보호를 받아요!’
‘드래곤 님의 기운인가 봐. 나 드래곤 님의 기운은 처음 느껴봐! 내 정령 생에 기록해 둘 거야!’
‘세상에, 인간에게 자연의 기운이 엄청 많아! 불, 물, 바람, 나무가 각기 다른 형태로 다 있어.’
‘거기다가 속성 밖 자연의 힘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요!’
정령들은 난리였다. 저마다 외쳤다.
‘이런 인간은 처음 봐. 정령사도 엘프도 아닌데.’
‘드래곤 님이 좋아할 만해! 고대의 힘이, 자연이 사랑하는 인간인가 봐!’
‘희한한 인간이야.’
그 말을 듣는 엘프들의 눈빛은 더욱더 깊어지며 케일을 향했다. 그 안에는 족장도, 수호 전사도 있었다. 다만 정령의 말을 듣지 못하는 펜드릭만이 이를 알 수 없었다.
케일도 펜드릭처럼 이 오두방정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드래곤께서 약한 나를 지켜주고 계시지.”
아.
감탄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오늘도 케일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투명화해 있던 존재. 라온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잘 안다, 약한 인간.
케일은 가벼이 그 맞장구를 흘려보내고는 엘프 아이에게 눈가를 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이어진 아이의 말에 살짝 흔들렸다.
“우아! 부러워요! 최고예요! 멋져요!”
아이의 칭찬 3단 콤보가 이어졌다. 그리고 곧 이어져 쏟아진 말들이 케일의 귓가를 두드렸다.
“3일 동안 세계수 정원에, 그 꽃밭이요! 그곳에 계실 때 찾아뵙고 싶었는데, 워낙 부하분들이 엄격하셔서 못 가봤어요. 그렇게 무서, 아니, 음, 강하게 하는 분들은 처음 보았어요! 인간 왕실 기사단도 그러지 않을 것 같던데요!”
아이는 말을 하면서도 힐끗힐끗 케일 뒤의 일행을 쳐다봤다. 그리고 무섭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엘프가 인간에게 그렇게 행동했다.
도대체 3일 동안 이놈들은 어떻게 나를 지킨 것일까.
케일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엘프를 피해 다녀서 그간 만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쓰러졌던 3일 동안 일행이 한 행동 때문에 엘프들이 알아서 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펜드릭 배웅을 이유로 당당하게 모였고.
케일은 아이의 질문을 시작으로 다른 엘프들의 질문을 몇 개 받았다.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드래곤 님은 어떠신가요?”
상냥한 미소를 매단 케일의 등을 라온의 앞발이 툭툭 쳐댔다.
-위대하다.
“위대하지.”
라온이 시키는 대로 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위대한 용의 가호를 받는 억수로 운 좋은 인간이 좋지 않겠는가?
왠지 모르게 게임처럼 엘프들 호감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아! 멋있으시죠?”
아이의 질문에 당연히 라온이 먼저 답했다.
-멋있고 아름답다.
“멋있고 아름다우시지.”
우아!
아이들의 감탄과, 어른들의 당연히 그렇다는 듯 담담하지만 들뜬 반응이 이어졌다. 케일은 기가 찼다. 진짜 용이 눈앞에 있으면 아주 뒤로 넘어가면서 박수를 칠 태세였다.
“드래곤 님의 힘은 엄청나죠?”
-내 몸통만큼 강한 존재는 없다.
“당연히. 위대한 힘을 지니셨지.”
케일은 태엽 인형처럼 시종일관 친절하게 답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라온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역시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나이도 한 살 더 먹었다!
그는 사방이 시끄러워 머리가 아팠다. 그 와중에도 케일은 시종 론에게 눈짓했고 론은 슬그머니 최한과 함께 앞으로 나와 길을 텄다.
케일은 그 길을 따라 엘프 마을의 입구로 향했다. 그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어린 엘프들 사이로 한 노인 엘프가 입을 열었다.
“드래곤 님을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지금도 가능하다!
가능하기는.
케일은 엘프와 드래곤을 만나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만나더라도 그건 나중에 자신에게 득이 되는 상황에서 쓰고 싶었다. 지금은 그저 드래곤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인간 정도가 알맞았다.
케일은 걸음을 멈추고 살짝 두 팔을 벌렸다.
덩달아 걸음을 멈추거나 혹은 멀찍이 케일을 지켜보고 있던 엘프들에게 차분한 목소리가 닿았다.
“이 드래곤 님의 위대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이 위대한 힘은, 엘프분들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연과 가까운 엘프분들이라면 느끼실 겁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엘프와 정령들은 케일 주위의 은은하지만 강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전투 상태를 해제한 드래곤이 힘을 드러내지 않고 여유로이 케일 주위를 날아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드래곤이 미쳤다고 인간을 따라다니겠는가. 그것도 숨어서.
분명 저 인간을 감싼 드래곤의 가호, 방어막 정도이리라.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엘프들에게 이어 말했다.
“제가 드래곤 님께 잘 말씀드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드래곤 님과 여러분들이 대화를 나눌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엘프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런 그들에게 케일의 어두운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마을도 힘든 상황이고 곳곳에서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엘프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서 케일을 지켜보던 이들이었다.
마을이 엉망이 되었다. 세계수 가지를 노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겨우 벗어났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드래곤 님도 아니고, 인간을 찬양하는 듯한 다른 엘프들의 태도가 싫었다.
물론 용의 가호를 받는 자이니 존중하고 그를 인정하는 것은 맞았지만, 이런 들뜬 분위기가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케일이 한 말이 그들에게 와닿았다. 새삼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자가 눈앞의 인간임이 명확히 인지되었다.
케일은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던지지 않았다.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그린 그에게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 책임감이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할 일이 많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들이지요.”
그 말에 어른 엘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케일이 하려는 일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분명 자신들의 마을에서 했던 일처럼, 그리고 족장을 통해 들었듯 그가 그간 했던 수많은 일과 같은 일일 것이다. 물질적으로 얻는 것 없이, 희생만 하는 일.
케일은 열기가 가라앉은 대신 자신을 향한 또 다른 호감으로 채워진 분위기를 감지하며 생각했다.
‘할 일이 많지.’
암, 그렇고말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툰카를 속여서 한몫 벌어야 했고, 만나야 될 이들이 많았다. 물론 이 일의 순서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해야 할 일이었다.
“자연의 친우인 엘프분들을 뵈어서 반가웠지만, 이만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궁금증이 많은 아이들이 케일의 말에 반응했지만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슬그머니 말리며 케일에게 길을 터주었다.
케일은 자신을 따라 잠깐 걸음을 멈춘 일행을 바라봤다. 엘프이자 힐러인 펜드릭은 상당히 감동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비크로스와 론, 고양이들은 기가 찬 표정을 어떻게든 숨기려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최한과 라크는 케일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내가 이래서 너를 혼자 못 둔다! 이 쓸모없이 약하면서 쓸모 아주 많은 인간아!
점점 말도 아닌 소리를 하는 라온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케일의 일상이었다. 그는 다시 걸음을 내디디려다 멈칫했다.
‘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는 듯 허공을 뛰놀던 반투명 정령들이 등불처럼 마을 입구까지 나란히 선 채 길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뭐라 말해댔지만, 알 길이 없는 케일은 그러려니 하며 입구로 향했다.
‘괜찮은 사람이야. 정령사가 아닌 게 아쉬워. 친구 소개시켜 주고 싶은데.’
‘예전에 어머니께 들었던 오래전 영웅들이 떠올라. 그들도 저랬었대.’
‘착한 사람인 것 같아요.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선한 분위기 같아요.’
케일이 들으면 기가 찼을 말을 하는 정령들의 말에 코웃음을 치는 엘프는 한 명도 없었다. 족장 카나리아만이 묘한 얼굴로 입구로 다가온 케일을 맞이했다.
“족장님, 가보겠습니다.”
카나리아는 그 말에 응하는 배웅의 말 대신 다른 말을 건넸다.
“공자의 가문이 동북부에 위치했다고 했죠?”
“…그렇습니다만.”
카나리아는 케일의 눈동자에 맺힌 경계심을 읽었다. 그 모습에 그제야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까 모습보다 이런 모습이 편한 그녀였다.
“공자, 본인에게 현재 땅의 힘이 없음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로운 왕국은 바위의 나라. 땅의 힘이 가장 강하지요. 땅의 가장 강한 형태가 바위니까요.”
케일의 눈동자는 그녀를 보며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케일은 굳이 더 힘을 얻고 싶지 않았다. 만약 땅의 힘까지 얻어버리면 자연 대표 속성 다섯 개가 다 모인다. 그건 상당히 찜찜한 미래를 예견할 것 같지 않은가?
케일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눈치챈 카나리아는 조심스레 품에서 포장된 서책을 하나 내밀었다.
그걸 받지 않고 뭐냐는 듯 쳐다보는 케일에게 그녀는 설명했다.
“땅과 관련된 고대의 전설이 담긴 서책입니다. 오래된 책이죠. 우리 쪽에서는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를 전설인데, 어쩌며 당신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케일은 카나리아가 자신의 쪽으로 내미는 서책을 쳐다봤다.
고대의 전설? 더욱더 받기 싫었다.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케일은 눈이 번쩍 뜨였다.
“참 웃긴 전설인데. 강한 파괴력을 지닌 어떤 영웅이 엄청나게 돈을 탐냈다고 하더군요. 그 영웅이 죽자 그의 재산을 되찾아 보관하게 된 또 다른 영웅의 일대기인데.”
카나리아는 코웃음을 쳤다.
“영웅이 돈 따위를 탐내겠어요? 그것도 얼어붙은 세상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며 어떠한 권력도 작위도 명예도 탐내지 않은 사람이 고작 동전 줍기가 취미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케일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케일도 역시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영웅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리고 고대의 전설에는 워낙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있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아무튼, 돈에 환장한 영웅의 적이자 친우였던 또 다른 영웅의 전설이 담긴 서책인데, 이 영웅이 땅의 기운을 썼던 자 같아요.”
카나리아는 고민 어린 표정으로 손을 뻗는 케일의 손바닥 위에 서책을 올렸다.
“사실 이 서책에서 고대의 힘을 찾으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 없는 서책이 마을을 구한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 해서 드려요.”
“귀한 책 아닙니까?”
“아니에요, 사실.”
카나리아는 조금 과장되어 말할까 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엘프들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어요. 거기 있던 책인데, 생각이 들어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 책이 케일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왜냐면 이 책에 적힌 장소에 갔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운이 좋으니.’
고대의 힘은 그 주인을 하늘에서 정해준다고 할 정도의 운이 필요한 힘이었다. 그 운이 눈앞의 인간은 다섯 개나 주어졌다. 그러니, 카나리아는 혹시 몰라 서책을 건넸다.
케일은 부담스럽다는 듯 난색을 표하며 서책을 받아 들었다.
“음, 엘프 마을에 필요 없다고 하니 일단 받기는 하겠습니다. 이런 성의까지 거절하기는 힘들군요. 그리고 고대의 힘이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닌지라.”
“그렇긴 하죠. 천운이 닿아야 하니까요. 그래도 꽤 웃긴, 말도 안 되는 전설이 담긴 책이라 읽어보면 재밌을 거예요.”
“네. 그러죠.”
케일은 느긋하게 품에 서책을 넣고는 카나리아와 악수를 나눴다.
“다음에 연이 닿는다면 또 뵙겠습니다, 족장님.”
“그래요. 드래곤 님과 함께 만났으면 하네요.”
-나 여기 있다! 족장!
라온의 외침을 무시하며 케일은 부드러이 족장과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품 안의 서책을 느끼며 생각했다.
‘파괴의 불이 이 엘프 마을 근처에 생긴 이유가 있었네.’
이 서책이 엘프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파괴의 불이 이 마을 근처에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세상엔 그냥 뜬금없는 일도 많지만 어느 정도 인과가 존재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족장의 말을 떠올렸다.
‘영웅이 돈 따위를 탐내겠어요? 그것도 얼어붙은 세상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며 어떠한 권력도 작위도 명예도 탐내지 않은 사람이 고작 동전 줍기가 취미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말이 된다. 왜 안 되나.
얼마 전 그런 영웅에게 돈을 뿌리고 온 이가 케일이었다.
케일은 내심 확신했다. 이 서책 속 돈에 환장한 영웅이 ‘파괴의 불’ 주인이라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적이자 친우였던 자가 ‘무서운 짱돌’일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땅의 하위 속성이 바위지만, 그래도 땅 속성에 포함은 되었다.
‘파괴의 불 주인의 돈을 짱돌 주인이 가져갔단 말이지?’
고대의 힘이 아니라, 그 돈을 생각하며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힘이야 얻고 싶으면 얻고, 아니면 말면 될 일이었다. 돈만 챙겨도 될 일 아닌가?
케일은 씰룩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 끝을 제어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가보겠습니다.”
“그래요. 잘 가요.”
케일은 엘프 마을의 입구이자 출구, 그리고 경계선이 되는 환상 마법이 드리워진 반투명한 장막 속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그의 일행이 따랐다.
드디어 케일은 며칠 만에 엘프 마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경계선 바로 밖, 방벽이 있던 자리에 멈춰 섰다.
“하.”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탄식에 일행이 슬그머니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한과 라크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고. 론과 비크로스는 담담했다.
온과 홍은 최한의 품에서 냐옹 울며 같이 먼 산을 쳐다봤다.
-인간! 우리의 위대한 전투 흔적이 보이나? 다 부쉈다!
라온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래. 다 부쉈다. 케일은 왜 엘프 족장까지 나서서 복구 작업에 매달리나 했다. 그러나 나타난 광경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나무가 다 파헤쳐져 부러져 있었고 땅 여기저기가 뒤집혀져 있었다. 그리고 검 날이나 오러에 베인 듯 바위들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하지만 케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간, 네가 내린 불벼락 자국이 제일 크다! 보이나? 나름 쓸 만한 힘이지만, 다시는 쓰지 마라!
자신이 한 짓이 가장 심했기 때문이었다. 골짜기에는 땜빵이라도 난 듯 거대한 원을 그리는 검은 땅이 존재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검은 땅.
케일은 먼 산을 보며 일행에게 말했다.
“가자.”
그는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로 골짜기를 벗어나기 전, 비크로스에게 물었다.
“무겁진 않지?”
“네.”
귀와 눈, 입, 모든 것을 가린 벨버드를 들쳐 멘 비크로스는 하나도 무겁지 않다는 듯 거뜬해 보였다. 아무 소리도, 보이는 것도 없는 벨버드는 현재도 기절 중이었다.
케일은 일행이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후 골짜기를 벗어났다. 그는 벨로크 마을로 향했다. 빠른 이동 끝에 마을에 금방 도착하였지만 벨버드가 있어 마을에 들어서지 않고 산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공자님!”
부집사 한스가 케일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 그의 품으로 냉큼 아기 고양이 온과 홍이 안겨 들었다. 케일은 한스를 지나쳐 반가운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세 달 만입니까?”
“그러게요, 공자.”
브렉 왕국에서 돌아온 로잘린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냐는 듯 묻는 케일의 시선에 답하듯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어 보였다.
전쟁 발발시, 로잘린이 정식으로 브렉 왕국과 로운 왕국 마법사 연합의 수장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케일은 웃으며 로잘린을 맞이했다.
“잘 갔다 왔어요. 로잘린 씨.”
“그 인사가 듣고 싶었어요.”
케일은 따라 웃어 보이는 로잘린의 손을 놓으며 한스에게 명했다. 다크 엘프 타샤를 만나야 했다.
“한스, 수도로 먼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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