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87
제90장 악마를 보았다 (9)
“흐흐흐.”
치이이이이익-!
그의 어깨 위로 꽂힌 암기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이 몸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구나.”
조금 전보다 한층 강력한 독기다.
암기에 바른 독을 흡수한 놈은 사천당가의 장인들이 공들여 만든 암기를 촛농처럼 녹여내는 신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꿈쩍하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기세를 뿜어내는 모습에 전사들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검을 녹이고 있어?”
“저자, 싸울수록 힘이 나는 것 같다.”
“저게 뭐 하는 거지?”
경악을 채 내뱉지도 못했을 때였다. 온몸으로 받아들인 독기가 양 손바닥 사이에 검은 구체를 만들더니, 쾅! 굉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쿨럭!”
“커헉!”
그가 뿜어낸 독기의 파동에 휘말린 당군악과 야심이 열두 걸음이나 밀려나 한쪽 무릎을 꿇었고, 너머의 당가원들은 검은 피를 뱉어내며 휘청거렸다.
명백한 중독의 흔적이다.
“본가의 독기를 저렇게 간단히 튕겨낼 수 있다니.”
“혈관에 피 대신 독이 흐르는 놈이다. 어지간한 공격은 오히려 놈에게 힘을 더해줄 뿐이야.”
초운휘는 놈의 몸이 이미 인간의 규격을 벗어났음을 직감했다.
‘단순한 독인이 아니야.’
전생에서도 몇 번 독인지체를 이룬 강자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의 사도와 같은 위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십중팔구 그가 독인이 되는 과정에서 만경구에 흐르는 독수를 이용해 연성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독공으로 상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모두 저자에게서 떨어지라고 해요.”
뇌까린 초운휘가 검을 뽑자, 모용선야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쩌려고 그래요?”
“놈의 약점은 무공. 얼치기로 야수공을 배운 것 같은데 교묘함이 부족해요.”
남만의 야수공은 엄밀히 말하면 야수의 움직임을 따라 만든 투법이다. 반려수와의 교감을 높여 힘을 끌어내는 방법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것.
‘반면에 놈은 투법이 아니라, 야수의 힘에 휘둘리는 느낌이야. 강력한 야수와 계약한 자들의 특징이지.’
초운휘는 야수공의 정확한 장단점을 이해했고, 오직 이것만이 승패를 가로지를 방법임을 확신했다.
초운휘가 당군악에게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놈은 이미 독인지체를 이뤘습니다. 독으로 상대하는 것은 오히려 최악의 방법이에요.]조금 전의 격돌에서 마찬가지로 확신한 당군악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나?] [우선 강기로 병장기를 보호할 수 있는 이들을 추려주세요. 저자의 혈액에 닿고도 멀쩡할 방법은 그것이 유일합니다.] [알겠네. 하지만, 놈에게 칼을 박아넣는다고 죽을지 모르겠네. 전설의 독인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야. 피를 흘리고, 목이 떨어진다고 죽는다고 확신할 수 없어!] [그건 해보면 될 일이죠.]말을 하며 초운휘가 소매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을 꺼내 들었다.
최상급의 피독주.
입에 물고 호흡하면 독기를 해독시키는, 강호인이라면 군침을 흘리는 보옥이다.
징징대던 사사명을 쥐어박아 빼앗아온 물건이니 가치가 어마어마할 터.
‘이런 것 정도는 물어줘야 좀 있어 보이지.’
이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놈에게 독은 의미가 없습니다. 최대한 저지력이 통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놈의 움직임을 저지할 물리력 말인가? 알겠네.]전음을 끊고, 초운휘는 또 하나 필살의 패를 떠올렸다.
과거의 기억.
대수림이 멸망하기 전, 풍문처럼 떠돌던 소문을 말이다.
‘만약 대수림에 사도가 나타난다면 그 모지리 놈이 아닐까 싶었는데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군.’
생각하며 초운휘가 몸을 날렸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 쉐끼야!”
섬광처럼 뽑혀 나온 암혼이 부챗살 같은 검기를 뿌려댔다.
***
쉬익!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검격에 웃음을 멈춘 남천사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떤 무지렁이가 겁도 없이.’
혼자 독왕과 대족장이 아끼는 대전사를 몰아붙이며, 약자로 살 때의 설움을 털어버리는 좋은 때였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희열을 방해한 인간에, 그는 몹시나 강렬한 살의가 들끓었다.
“하늘 아래 어떤 인간이 나에게 대적하느냐!”
쩌렁쩌렁 외치며, 독기를 끌어 올려 허공을 찌를 때였다.
빙글!
직선으로 베어오던 검신이 뒤집히더니, 자신이 쏘아낸 권격을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피하고는, 재차 베어온다.
“음?”
공세를 피한 것도 놀랍지만, 자신이 뿜어내는 독기 속으로 두려움 없이 뛰어든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지.’
생각하며 연거푸 손톱을 구부려 공간을 후비고, 각법을 마주쳤다.
그가 익힌 야수공은, 숲의 영수 도나에게서 나온 것.
아름답게 솟아난 뿔처럼 예리하고, 대지를 박차는 말발굽처럼 단단한 각법이 주력이었다.
차아악!
단순한 각법이 아니다. 그가 뿌리는 각법을 따라 산성 용액이 은하수처럼 뒤따랐다.
‘이럴 줄은 몰랐겠지.’
닿기만 해도 살이 짓무르고, 뼈가 녹아내리는 산성 용액이다.
독기와 함께 쐬인다면 어떤 절정고수도 단발에 즉사할 터.
하지만, 상대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빙글!
어지러운 권격을 피해내고.
파팟!
허공에서 신형을 뒤집어 각법을 피해내더니.
촤악!
예의 일도양단의 일검을 이어간다. 실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몸을 던지는 전투 방식.
“큭!”
‘이놈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
자신의 독무와 독수를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의미 없다.’
그러나, 손을 들어 막은 그는 대경하고 말았다.
촤악!
독인지체에 이르러 철보다 단단하고, 쇠 그물보다 질긴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솟구친 것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상처를 타고 흘러드는 뜨거운 기운이었다.
독혈이 흐르는 기경팔맥이 일검을 타고 들어온 기운에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뭐지? 이 느낌은?”
더는 경시하지 못하고, 그는 검을 막는 대신 피하며, 재차 독기를 일으키려 하였다.
초식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독인지체를 완성한 그는 독을 이용한 어떤 무공이라도 손쉽게 펼쳐 낼 수 있었다.
“적련신장(赤蓮神掌).”
당군악이 펼치던 당문의 비전을 훔쳤다.
“합마공(蛤魔功).”
또한, 그가 얻은 망천회의 비학도 펼쳤다.
독의 고향의 정기를 먹고 태어난 반려수의 힘은, 한 번 본 독공을 바로 재현해 내는 이적을 가능케 만들었다.
막강한 공력과 공기 중에 떠도는 독기의 위세만큼 경천동지할 무공이 펼쳐진다.
꾸우우우우.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지면이 푹 파이며, 가뭄이 난 듯 땅이 쩍쩍 갈라졌다.
가공한 독기를 응축해 기력을 모은 후, 단숨에 도약해 양손으로 독기를 떨치는 신속의 강공이다.
하지만, 그 또한 예측했는지 상대가 몸을 뒤집어 허공을 툭툭 치더니, 마치 교룡이 몸을 틀 듯 어지럽게 움직였다.
“큭!”
강력한 진기를 끌어올린 와중, 잔영을 그리며 움직이는 변칙적인 움직임에 잠시나마 표적을 잃었다.
빠르게 기척을 찾아 뛰어오르려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퍼엉!
공기를 뚫고 나타난 창이 어깨에 꽂히며 집중력이 흔들렸다.
“암기는…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이지.”
야심의 창을 던진 건가?
몸에 꽂힌 창이 빠르게 부식되어갔지만, 확실히 작은 암기를 떨쳐낼 때와 달리 사도는 쉽게 창을 녹여내지 못했다.
“으하아앗!”
한층 무거운 독무를 뿜어내며 당군악을 밀어냈지만.
“지독한 독기로다. 좋은 연구재료로군.”
뒤이어 귀신처럼 나타난 검붉은 차림의 사내가 바람처럼 주변을 휩쓸더니 등판에 강력한 일장을 퍼붓는다.
“크윽!”
비록 독기는 한순간에 녹여냈지만, 잠깐 시선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촤악!
“크억!”
어깨에 피가 튀어 올랐다. 쩍 갈라진 왼팔이 덜렁거리며 뼈가 보이자 남천사도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내가 베어질 수가 있지?’
독인지체에 오르면 만독이 불침하고, 도검불침에 가까운 신체를 얻는다고 하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제대로 독의 이능을 각성한 이후로 그는 상처를 입은 적이 없으니까.
어깨에서 시작되어 전신으로 내달리는 고통에, 순간 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이상한 진기 때문이다.’
몸에 침투한 기이한 진기가 독인지체를 완성한 그의 몸에 이변을 만들고 있었다.
놀랍게도 검신을 타고 들어와 독혈이 흐르는 기경팔맥을 뒤흔드는 것은 단순한 공력 따위가 아니었다.
‘진기에 살의(殺意) 그 자체가 숨어 있다.’
공력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자신을 죽이기 위해 몸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검에 의지를 담는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이 광활한 세상에 진짜 검을 너머 뿜어낸 진기에 의념을 녹여낼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오직 무학의 끝을 본 이들만이 가능한 일이요, 세인들은 이들을 가리켜 심검지주(心劍之主).
현경. 혹은 현신경.
신의 반열에 당당히 들어선 절대자라 하였다.
‘입신경을 넘어, 현신경에 들어야 가능한 수법을 누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그의 시선이 잔영을 지우고 훌쩍 떨어져 내리는 이를 담았다.
답답한 앞머리에 정확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입가에 맺힌 조소에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도나. 내 도나를 죽인 것이 네놈이구나.”
***
“죽여 버리겠다!”
매섭게 포효하는 사도의 공세는 분노를 더해감에 따라 한층 더 격렬하게 주변을 파괴하고 있었다.
땅을 뒤엎고, 독수를 드글드글 끓게 만드는 가운데, 초운휘는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러나 패색이 짙은 듯싶던 초운휘는 완벽히 싸움의 흐름을 바꿀 기억을 떠올렸다.
[아아. 이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대수림에 영수와 사랑에 빠진 얼간이가 있다고 했지.]“!”
[네 애인 꽤 예쁘더라. 일각수였던가? 순결을 상징하는 대수림의 영수. 저주를 뿌리던 역수귀를 퇴치한 것도 일각수의 힘이었다지?]“네, 네놈이 어떻게 대수림의 전설을….”
[아아. 그 대단한 영수께서 생긴 것이 워낙 바뀌어서 못 알아봤단 말이지. 원래는 몹시 아름다운 천상의 백마라던데, 내가 본 것은 큰 살덩이뿐이었거든.]“역시 네놈이었구나. 도나를 죽인 자가.”
“뿌드득.”
살점이 찢겨나가고, 속에 있던 내장들을 과시하듯 나무에 걸쳐두었던 참상이 떠오른다.
“어째서.”
[내가 찰싹 붙어 다니는, 사이좋은 짝을 보면 심사가 뒤틀려서 그래. 나 빼고 다 애인 있더라고. 다 죽어 버려라.]“고작 그따위 이유로. 도나를! 대수림을 정화하는 영수를 죽였단 말이냐!”
분노를 터트린 주먹이 놈의 면상을 찍었지만, 이미 놈은 사라져 버린 후다.
“너무 느리잖아.”
어느새 완벽히 예의 우세를 되찾은 얄미운 놈이 이죽거렸다.
[도나 라고 했나? 살았을 때는 꽤 귀여웠을 거야.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해. 왜 그 지경이 되도록 살아 있었을까? 왜 죽음과 저주를 흩뿌리는 존재가 되었을까? 아마 네가 한 짓이겠지?]“그렇다.”
자신은 도나를 곁에 두고 싶었다.
언제나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영수와 함께하고 싶었다.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는 부족민들에게 복수를 한 것도, 하늘이 되어 누구보다 존귀한 존재가 되려고 한 것도 모두 도나를 위해서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을 위해 희생한 도나를 기리기 위해서.
세상을 멸절시킬 마음을 먹은 것도 모두 도나를 앗아간 이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조차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순수의 영수가 반려를 배신하는 경우는 하나지. 바로 네가 순수를 잃었기 때문이야.]그랬기에 다음 한 마디가 돌아왔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데, 넌. 왜 도나의 다리를 잘랐어?]“……?”
잊고 있던 사실이 들려온 순간, 그는 침착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내가…. 도나의 다리를 잘라?”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어. 자신의 영수를 배신한 얼간이의 이야기지.]“하지마… 하지마….”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모질이 새끼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쫓아낸 부족민들을 독살했다던 모양이야. 아이고, 심지어 독살이 들통나자 가족을 교살까지 했다던가?]“…….”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복수를 위해 족장과 전사들을 죽이고, 이를 막던 가족마저 목을 졸라 살해했던 기억이.
[그런 짓을 했으니 영수가 곁에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난 이해해. 마을에서 쫓아낸 X 같은 놈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어때서 그래? 나라도 복수할 거야.]“…너.”
[그런데, 복수는 하더라도 굳이 반려수에게 화풀이할 것은 없잖아? 생명의 은인이니까. 안 그래? 그런데 넌 어떻게 했을까.]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자신이 타락했기에 도나가 떠나려 한 것은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다.
더는 예전처럼 온기를 나눠주며, 은빛으로 반짝이는 갈기를 허락하지 않게 되었던 것도 그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교감이 끊어지며 야수공을 잃을 위기에 처했고.’
[그래서 넌 어떻게 했지?]기억난다.
아니, 애써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살아남은 것은 자신뿐 이기에, 일그러진 기억을 가지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덜어졌으니까.
하지만.
여기 그 일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
“넌 네 반려수의 다리를 모두 잘라 버렸지.”
“그만!”
“버려진 너를 살려주고, 돌봐준 영수의 네 다리를 잘라 버렸어! 떠나지 못하도록 말이야!”
검을 든 사내의 얼굴이 걸작을 마주한, 미친 화가처럼 일그러졌다.
“으하하! 모질이 자식! 질척거리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반려수에 교감을 넘어, 집착까지 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내뱉는 자가 나타났다.
‘죽인다!’
남천사도의 안광에 한층 더 짙은 살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