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08
52. 오색단
소종천이 사천지부에 몸담은 지 약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서신으로 부른 이미회의 상인들이 찾아와 녹옥불장을 인수받아 갔고, 이제 단주로서의 일에만 신경 쓰면 되는 소종천은 권한이 허용하는 내에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쉼 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마교의 무리를 색출하기 위한 본부의 지침, 각 성에 위치한 지부들의 동향, 연맹에 소속된 세력들의 정세 등.
정보를 수집한 소종천이 정사연맹에 대해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썩었구만.’
악몽과도 같았던 마교의 교주가 모습을 감춘 뒤로 수십 년.
무림은 그 당시의 위기감을 잊어버렸다.
일반적으로 마인은 동급 무인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다.
하지만 마교와 정사연맹의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승산은 연맹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마인도 인간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고, 정말로 총공세를 벌인다면 절대적인 숫자의 차이가 그만큼 차이 나기 때문.
물론 그렇게 얻은 승리는 피에 절은 시체 냄새가 풀풀 풍길 것이고, 아마도 연맹 세력의 절반가량이나 혹은 그 이상의 문파들이 존속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마교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자신들이 멸문의 피해를 감수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문파는 극소수겠지.’
무인의 숫자가 많은 것은 연맹의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아무리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맹주를 선출하고 지부들이 본부의 지침을 따른다 해도, 연맹의 세력들이 완벽히 하나 되어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생결단 또는 결사항전이라는 것이 말이야 쉽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희생을 감수하고 싸우겠다며 나설 리가 없는 것이다.
도의를 부르짖으며 앞장서는 무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의 행보가 다수를 따르게 만들기란 쉽지 않다.
연맹 설립 초창기에는 피해를 복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몸을 사리는 문파들이 많았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질서에 적응한 지금은 제 잇속을 채우기 급급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가 되어버렸다.
사천지부의 무사단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알아본 소종천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짧은 시간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인간들이 참…….’
마교의 끄나풀을 색출하기 위한 수색작업은 대부분 형식적인 수준이고, 그마저도 본부의 지시가 내려올 때나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무사단이 성도와 그 주변 일대의 잘 발달된 현들에만 머무르며, 지부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소위 돈벌이가 되는 일에 투입된다.
무력 단체의 운영에는 자금이 많이 소모되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은 아니긴 하다.
대다수 전력이 그렇게 빠져나가고,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이 당가로 흘러간다는 점이 문제일 뿐.
당가의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천지부는, 소종천이 느끼기에 사실상 당가를 위해 활동하는 세력으로 변질된 부분이 적지 않아 보였다.
‘꼭 사천지부만의 일이 아니겠지.’
어느 지부에나 그 지역에 대해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대형문파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그곳에 소속된 무사단은 그런 대형문파들을 위한 사병화가 되어갔다.
연맹에는 적지 않은 수의 군소방파들 역시 소속되어 있지만, 힘이 부족한 그들은 대부분이 그저 상황에 순응하고 따르는 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부조리에 반발하는 이들은 박해받고 밀려날 수밖에 없지. 내 부하들처럼.’
소종천의 단에 당씨는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부 당가와는 간접적인 연관도 없다시피 한, 중소규모 문파 출신의 무인들.
‘신입들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가라는 대로 가는 거지만, 짬이 좀 찬 무인들은 다들 기존 소속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었지.’
알아본 결과 그들은 전부 당가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협조하는 무사단의 운영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상관과 마찰을 일으킨 이들이었다.
‘그래도…… 나한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긴 해.’
은호단을 비롯한 지부 주력의 무사단은 성도 주변에 위치해, 질 좋은 식사와 편한 잠자리를 유지하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지부의 이권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는 만큼, 적당히 부수입도 올리면서 배부른 삶을 영위하며 지낸다.
타성에 젖을 수밖에 없는 생활.
‘기득권 세력의 출신이 아닌 나한테는 그런 쪽의 임무를 맡기려고 하지도 않지.’
그런 일거리는 어차피 관심도 없다.
돈을 벌자고 지부의 무사단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연맹의 권력층에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 따위도 없으니까.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마인들 소식을 기다리며 훈련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역시 사천 외곽 쪽을 돌면서 흑도 무리나 족치고 다녀야겠지?’
다른 무사단은 맡고 싶지 않아 하는 외곽 지역의 치안유지와 수색 작업에 전념할 생각이다.
청해성의 일처럼 사천에서도 중심지를 벗어난 지역을 샅샅이 뒤지면, 마교의 꼬리를 밟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
“단주님. 준비는 갖추고 있습니다만…… 정말로 가는 겁니까?”
“가야지 그럼.”
“쩝. 한동안 집에는 못 돌아가겠군요.”
수족이 되어줄 부하가 생겼다지만 겨우 40여 명.
이 인원으로 사천 외곽을 전부 수색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한 계획이다.
제대로 하려면 한두 달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부대의 운영자금을 타오기 위해 지부장에게 직접 활동 계획을 알렸을 때도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동안 최소한의 형식만 갖춰서 행하던 일을, 굳이 더 파헤쳐서 쓸데없는 지출을 늘리자고 하니 반길 리가 없긴 하다.
-젊어서 열정이 넘치는 건 이해하지만, 우리 지부의 활동반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들이 아닌가?
-그러니까 더욱 면밀하게 조사에 착수할 필요가 있는 거죠.
-흐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네만, 뭐 정 하고 싶다면 해보게나. 그래도 본부 쪽 인사들에게 생색 한번 내 볼 수는 있겠군.
연맹의 지부라면 응당했어야 하는 일이고 소종천의 단이 규모가 큰 것도 아닌지라, 결국 적당히 하다가 복귀하라는 말과 함께 승인을 받긴 했다.
“세세한 일정은 부단주가 좀 조절해줘.”
“워낙 밉보인 구석이 많아서 외부임무에 자주 차출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저 역시 이렇게 본격적으로 원정을 나선 것은 처음입니다. 지부에서 하는 일이란 게 어차피 다 고만고만한 것들이었으니 말입죠.”
“그래도 사천에서 오래 지냈으니 나보다야 사정에 밝을 거 아닌가?”
“예. 뭐, 까라면 까야지요.”
“거, 아저씨 말본새 하고는…….”
소종천은 단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양한순을 부단주로 삼았다.
물론 실력순으로 서열을 매기자면 한사혜나 장자군이 그보다 위였지만, 양한순의 연륜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기에 내린 결정.
기존 동료들도 어차피 소종천을 따를 뿐 딱히 직책에는 욕심이 없기에, 그럴듯한 자리를 맡지 못한다 해서 불평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존 동료들이 아주 평단원인 것은 아니고, 단의 조직체계와 별개로 소종천의 지시만을 수행하는 일종의 별동대원 같은 위치에 머물러 있다.
특별대우이긴 하지만 첫날의 대련에서 다들 실력을 제대로 선보였기에, 딱히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단원은 없었다.
“그런데 좀 늦은 질문입니다만, 저희 단의 명칭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겁니까?”
“왜? 뭐 이상한가?”
“이상하다기보다는 무사단의 명칭치고는 미묘하지 않습니까? 뭔가 조금 사내다운 맛이 떨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소종천에게 직책을 주기 위해 급하게 새로 창설된 조직.
원하는 이름이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말에, 소종천은 딱히 멋진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냥 오색단이란 명칭으로 단의 이름을 정했었다.
“오색은 좋은 거야.”
“예에…… 뭐,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다른 무사단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독특하다 싶어서 질문드린 겁니다.”
“아, 오색 뽑고 싶다.”
“으음……?”
계속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는 상관의 모습에, 얼굴 가득하게 의문을 떠올리던 양한순은 답을 듣기를 포기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례적인 임무 활동이기에 완벽하게 채비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냈다.
오색단은 소종천의 지휘 아래 원정을 떠나게 되었다.
* * *
“여기가 어디라고?”
“감락이라는 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가끔 발생하는 특별한 임무가 아니고서야, 연맹의 무사단이 일부러 찾아올 일이 없는 지역이지요.”
“그래도 아직 외곽 지역이라고 할 정도로 벗어난 것은 아니지 않나? 뭔 성도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이런 잡것들이 판을 쳐?”
소종천은 기절한 채 쓰러져 있는 사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는 비슷한 행색의 남자들이 단원들에게 제압당해 붙잡혀 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여인을 억지로 끌고 가는 이들을 발견하고, 정상적인 사태가 아닌 듯싶어 끼어든 상황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겉으로는 대부업 간판을 내걸어놓고, 인신매매의 범죄를 저지르는 흑도방파의 무리였다.
“내가 알기로는 그래도 지부에서 분기별로 한 번씩 행해지는 원정순찰 범위를 아직 벗어나진 않은 거로 아는데? 이렇게 멀지 않은 곳에까지 이런 개쓰레기들이 설치는 게 말이 되나?”
“그렇긴 합니다만…….”
“아이고 무사님들! 다녀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러십니까?”
부단주와 대화를 하고 있자니 붙잡힌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못 보던 분들이신데…… 이쪽은 주 대협 관할이 아니었습니까요? 혹시 담당이 바뀌신 거라면 저희가 따로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뭐?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주 대협이 누군데?”
“에…… 호조대 분들이 아니십니까?”
소종천이 무슨 개소린가 싶어 인상을 찡그리고 있자, 양한순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조대면 은호단에 속한 대의 한 곳입니다.”
“아, 들어본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그 이름이 왜 이런 새끼 입에서 나오냐?”
뭔가 싶어서 자세히 캐물어 보니,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였다.
문제를 일으키는 흑도의 무리가 발들이지 못하도록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아야 할 무사단의 무인이, 뒷돈을 받고 건성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이런 놈들을 묵인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대협이라 부르기에 얼마나 높은 직책과 연결된 건가 싶었더니, 호조대의 일개 조장에 위치한 놈이란다.
“어처구니가 없구만. 이거 뭐 흑도랑 붙어먹는 악질적인 사파 세력이랑 똑같은 짓을 하네?”
“후우, 제가 다 부끄럽군요.”
“그래도 아주 윗대가리랑 해먹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조직에나 사람이 모이면 물을 흐리는 놈이 한둘쯤 생길 수 있는 법이니, 이번 일만 보고 지부의 무사단 전체가 다 썩었다고 판단할 것까진 아니긴 하다.
“관계된 놈들 찾아서 다 족쳐. 다시는 이쪽에 발붙이지 못하게 싹 박멸시키자고.”
“옛!”
“이런 빌어먹을!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요!”
“이놈 봐라? 돈에 미쳐서 이따위 짓을 하는 게 그럼 잘하는 거냐?”
“우리가 댁들한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소! 관부의 관리 놈들 목구멍에 매번 기름칠을 해야 하고! 연맹이니 뭐니 힘주고 다니는 작자들 주머니를 채워주다 보면, 이 장사도 뭐 남는 게 있는 줄 아쇼!?”
장사꾼이 이문이 없다는 소리는 우스운 말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납치해 팔아먹는 놈도 저리 말하니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놈들을 혼내줄 적임자가 마침 있지. 사혜야!”
“응.”
“다 뜯어버려.”
“응!”
영혼을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진다.
고개를 돌린 소종천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이런 것들이 보이는 걸 보니, 앞으로 꽤나 바쁘겠네.”
청해성과 달리 연맹의 지부가 버젓이 들어서 있는 사천성에도, 이런 흑도방파들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범죄를 저지르며 생활하는 흑도무리가 지역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마교의 추종세력이 스며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어쩌면 정말로 뭔가 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소종천은 오색단을 이끌고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이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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