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6
225화 중원으로 가는 길(2)
천원진인과 천경진인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자기소개를 제대로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명성에 얽매이는 사람이라면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을 일이었지만, 내 성격이 그쪽과 거리가 있다 보니 바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저 원래 정파 쪽 후기지수입니다. 소림과 무당의 맥을 이었지요. 소천룡이란 별호는 무림에서 저를 지칭하는 별호입니다.”
“……?”
“……??”
천마가 아닌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로서 입장을 내세운 만큼 본래 쓰던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천원진인과 천경진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특히 천경진인은 목 관절이 염려될 정도로 심각하게 기울어졌다.
“……귀가 고장 났나?”
“장문인 귀야 오래 썼으니 고장 날 법도 하지만, 나도 같은 걸 들은 것 같으니 문제가 있는 쪽은 우리가 아닌 것 같수다.”
쑥덕쑥덕 서로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 보던 천원진인과 천경진인이 내게로 시선을 모았다.
문제가 있다면 내게 있다는 눈빛이다.
“자네, 혹시 저번에 곤륜산에서 캐 갔던 영약들 다 먹었나?”
“어쩌다 보니 그리되긴 했습니다만…….”
“저런! 역시나 그거구먼!”
“쯧쯧쯧! 영약이란 게 기운의 덩어리이긴 하지만, 그 못지않게 불순물도 많다네. 정제하지 않고 그냥 먹었다간 탈 나기 십상이지. 그래서 정련이 필수적인 것이고! 어휴, 우리에게 맡겼으면 좋은 환단으로 만들어줬을 것을…….”
어르신들은 답을 찾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셨다.
한마디로 내가 영약을 잘못 먹고 살짝 돌았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그건 나도 잘 알거든요?’
그러니까 그놈의 반도를 정제하기 위해 영약을 캐러 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설아 누나가 먹을 때가 문제인 거지, 나야 사부님들이 구축해 놓은 기반이 워낙 탄탄한 덕분에 그런 상황에서 자유롭다.
“걱정 말고 한동안 여기 머물게. 찾아보면 기운을 중화시킬 수 있는 약재들도 있을 걸세. 자네가 곤륜에 베푼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천원진인이 무척 안타까워하며 제안을 했다.
곤륜파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닿아 왔기에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이런 시답잖은 문제로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다.
‘눈으로 보여 줘야겠네.’
아무래도 여기선 직접 확인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 같다.
나는 곧바로 내기를 움직였다.
우웅!
기혈을 통해 움직인 내력이 내 손에 맺혀 푸른빛을 발했다.
도문의 태청강기가 선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도문의 공부를 깊이 있게 해오셨던 분들이니만큼 지금 내 손에 맺힌 기운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알아차리실 것이다.
“헐?!”
“이…… 뭔…….”
다행히도 두 분이 보인 반응은 목 관절을 염려하게 만드는 쪽은 아니었다.
두 눈을 껌뻑이며 황망해 하셨다.
나는 다른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조금 전까지 푸른빛을 띠던 기운이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불문 특유의 장중한 기운이 내 손에 맺히는 것에 두 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야? 그게 왜 돼?”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 천경진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에 맺혀 있던 기운을 거뒀다.
보여 주고 증명했다.
이젠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요샌 꿈이 꽤나 실감 나는구먼…….”
“하아…….”
최후의 현실도피는 저건가 보다.
“꼬집어드릴까요?”
“응?”
“꿈이 맞는지 확인해야지 않을까요?”
“그만두도록 하지. 자네 눈빛을 보니 위험해 보이…… 아악!”
더 이상 이야기 진행이 엉뚱한 곳에서 맴도는 것을 막기 위해 무례를 감행했다.
“크흠! 꿈이 아닌 모양이군.”
천경진인이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왜 아프지? ……아악!”
아직 완전히 납득이 안 되신 분도 계셨지만, 천경진인이 수고를 해주셨다.
***
이야기를 진행할 사전 준비가 완료됨에 따라 천원진인과 천경진인 두 어르신께 천마신교에서 행했던 것 중 딱 필요한 것만 선별해서 이야기했다.
천마신교 내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혈교에 관한 이야기.
“오오?”
“허어!”
다행히 앞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었던 만큼 두 분은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셨다.
“허허허! 다른 곳도 아니고 천마신교가 혈교에 그 정도로 당하다니…….”
“혈교는 강합니다. 게다가 움직이는 정황으로 미뤄볼 때 그들의 마수는 정사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뻗어 있는 것 같고요.”
“이것 참…….”
일반적인 정파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파에도 혈교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는 이야기에는 반신반의하시는 느낌이었지만, 나에 대한 신뢰 덕분인지 믿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러니까…… 우리더러 보증을 서달라는 거구먼.”
보증이라니, 위험한 단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맞긴 하다.
내가 곤륜파에 요구한 것은 혈교를 치러 가는 천마신교의 행보에 곤륜파가 대동하여 다른 정파와의 충돌을 막아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
“보증이라……. 아무에게나 섰다간, 패가망신의 지름길인데.”
“제가 곤륜파에 아무나 소리 들을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끄응…… 그건 그렇지.”
일단 수긍하는 천원진인이다.
하지만 곧장 결정하기엔 사태가 중한 탓인지 슬그머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경, 자네 생각은 어떤가?”
“뭘 또 저한테까지 묻습니까?”
“그야…….”
“까놓고 말해 저 어린 친구가 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도와야지요! 믿고 안 믿고의 문제라면 믿어야 한다는 쪽이고! 저 친구가 한 이야기가 쉬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금 본 것만 하겠수?”
도문과 불문의 공력을 보인 것을 말함이다.
이것만으로도 기함할 일인데, 마공인 천마신공까지 다룬다.
혈교의 행보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이 지금 내가 보인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지금이라면 저 친구가 서왕모님의 화신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수다.”
이 말에는 좀 움찔했다.
내가 서왕모님의 화신은 아니지만, 서왕모님께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조의 힘을 빌릴 수 있었던 것 역시 서왕모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아마도 천경진인이 서왕모님에 대해 언급한 것 역시 청조가 나를 돕는 것을 보았기에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천상 쪽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겠지.’
믿지도 않겠지만, 괜히 잘 끌어온 이야기가 엉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조심스럽게 구분했다.
그렇게 잠시 침묵 속에서 고민의 시간이 흐른 뒤, 천원진인의 입이 열렸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곤 하나, 곤륜파가 천마신교를 돕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네.”
“그렇겠지요.”
“구파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라.”
천원진인이 걱정하는 바를 알겠다.
하지만 나는 도리어 씨익 웃었다.
이 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곤륜파와의 대담에서 오갈 이야기를 곱씹어볼 때 분명히 언급될 이야기였다.
‘씁! 소림과 무당의 제자로서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원진인에게 내가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구파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다는 것이 곤륜파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됩니까?”
“……음?”
내 말에 천원진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본인이 꺼낸 말이지만,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모습이다.
나는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곤륜파에 있어 구파의 일좌라는 것이 중요합니까?”
“으음…….”
곤륜파는 구파의 하나다.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부분이다.
하지만, 무림을 이야기로 처음 접했었던 내 입장에서 보면 좀 이상한 부분이다.
제삼자의 위치에서 본 곤륜파의 존재는 무척이나 기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을 키운 것은 곤륜파의 제자였다.
“무열이가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름 따위 뭐가 어떠냐고.”
“허허…….”
고정관념이 옅은 아이이기에 가능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열의 그 말은 짙은 감정이 배어 있었던 만큼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곤륜은 외로운 곳이다. 장문인께서 하셨던 말이지요.”
“……그랬지.”
다른 구파와 교류하기에 곤륜은 너무도 먼 곳에 있다.
구파의 필두인 소림, 무당과 교류 한번 하려면 왕복하는 데만도 계절이 바뀔 정도다.
곤륜은 그만큼 먼 곳에 있다.
그렇기에 천마신교와 단신으로 대립하면서도 다른 구파의 도움을 일절 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원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구파는 곤륜에 도움을 청한다.
구파로서 곤륜에 지워진 것은 의무뿐이다.
곤륜에 권리는 없다.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기 때문일까?
내 시점에서 이건 문제가 있었다.
곤륜파가 구파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정말 곤륜에 손해일까?
“그간 쌓아온 이름에 때가 묻을 수는 있습니다. 곤륜, 뭇산의 첫 번째라는 위명에 대해 호사가(好事家)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천원진인의 말 없는 시선이 닿아왔다.
“곤륜이 구파의 일좌에서 내려온다 한들 그것이 곤륜의 손해로 이어지진 않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이건 곤륜을 쓰고 버릴 생각으로 막 던진 말이 아니다.
어차피 이제부터 천마신교의 행보에 있어 내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천마신교와 곤륜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정사마(正邪魔)로 나눠진 무림의 구도를 올바르게 정립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허어…….”
나의 다짐에 천원진인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하하하하!”
천경진인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속이 다 시원하군!”
“……자네가 진짜 천마위에 오른다면 저 아이들의 시대는 평화로울지도 모르겠어. 다툼이 적어진다면 그만큼 득도의 길이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고.”
천경진인이 과거 했던 말.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인지 내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곤륜의 처지에 대해 번민하던 천원진인 역시 내심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내 천원진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자네, 그거 아나? 자네 지금 악당 같다네.”
“하하하! 구파를 이간질하러 온 악당 말이지.”
“……말하고 보니 저도 내심 그런 느낌이긴 하네요.”
부정은 못 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옳은 일을 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
“장문인.”
그렇게 의견이 정리되어 가는 도중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곤륜파의 문도가 서신 하나를 내밀어왔다.
“구파에서 보낸 전서구군.”
방금까지 나누던 대화가 대화인지라 구파에서 전해왔다는 저 서신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서신을 펼쳐본 천원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 역시 자네의 말이 옳다는 방증이 되겠구먼.”
서신에 적힌 내용에는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연합이 남궁세가를 무너트리고 장강을 장악했다는 소식과 함께 구파의 회동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정사대전(正邪大戰)이 임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