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227
226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고 들으려 하지
톡! 토톡! 톡! 토톡!
사천당가의 가주 만독신군 당천기는 탁자 위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요즘 들어 당천기가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다.
화난 사람, 특히 당천기 같은 성격의 사람이 불쾌감을 뿌리고 있을 때는 가능한 주변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덕분에 당천기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안 좋은 일만 줄줄이 이어지는군…….”
고요함 속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중이라 그런지 당천기의 혼잣말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현재 당천기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사안은 두 가지였다.
“도적 연맹이라…….”
남궁세가가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연합에 패배했다는 소식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천당가에까지 전해졌다.
도적놈들에 비해 남궁세가의 머릿수가 부족하긴 하지만, 전투라는 것이 꼭 머릿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기세다. 기세에서 밀리면 만이든 십만이든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구심점을 잃고 머릿수라는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지리멸렬(支離滅裂)해 버린 사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물며 고수의 힘이 크게 작용을 하는 무림의 전쟁에서는 머릿수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다.
풍문으로 전해 들은 도적 연맹의 상황을 보면 이합집산(離合集散)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호사가들이 남궁세가의 승리를 예견했고, 당천기 역시 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같은 오대세가라는 것에 약간의 편견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적어도 이런 일방적인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
“부분적이라곤 하나 도적이 장강의 요지를 먹었다? 헛! 이 뭔 미친 소리야?”
무엇보다 이 결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지금 도적 연맹은 누가 봐도 무림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관무불가침.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아니한다.
물론 깐깐하게 따지고 든다면 개소리가 맞지만, 이를 통해 지켜지는 이점도 적지 않기에 암묵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도적 연맹의 행사는 관무불가침이란 말로 덮을 수 있는 범주를 크게 벗어났다.
장강은 예로부터 물류의 큰 축이 되는 요지다.
무림의 영역이라기보단, 상인들의 영역이다.
남궁세가가 장강을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방토호(地方土豪)라는 입장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곳을 도적들로 이뤄진 세력이 먹었다.
녹림칠십이채가 산에서 내려오면서 더 이상 산적이 아닌 무림의 패권 세력임을 주장하긴 했으나, 그 본질이 도적 집단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관에서 이걸 가만두고 볼 리 없다.
“한데, 관의 움직임이 이상하단 말이지…….”
멀리 떨어져 있다곤 하나 촉각을 세우고 있는 만큼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 안휘의 소식은 당천기가 예상한 모습과 크게 동떨어져 있었다.
관이 도적 연맹의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전에 상인들과 이야기가 되어 있기라도 한 듯 일부 상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끊어졌던 물류의 흐름을 회복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이래서야 관이 사전에 도적 연맹과 입을 맞춘 꼴이 아닌가.”
기다렸다는 듯이 끊어졌던 물류의 흐름을 이어버리는 상인들이나, 도적 연맹이 상황을 수습할 때까지 관망한 관의 움직임이나 수상쩍기 그지없다.
관에서야 물류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잘만 관리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일련의 흐름이 너무도 공교롭다.
“남궁세가가 도적 연맹을 몰아내려 하면 관이 막으려 들지도 모르겠군. 도적 연맹이 어렵게 안정시킨 물류의 흐름을 남궁세가가 흩트린다는 명분으로 말이야……. 하하하! 이것 참…….”
어이가 없으려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관은 사파보다는 정파와 가까이 지냈다.
아무래도 막 나가는 구석이 있는 사파보단 정파 측이 대하기 편한 탓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관이 정파의 편이라고 낙관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오대세가는 위명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오대세가라는 이름값을 지키고자 한다면 사천당가 역시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도적 연맹에 대해 고민을 하던 당천기는 이내 다른 문제를 떠올렸다.
톡! 토톡! 톡! 토톡!
“……손을 써야 하려나?”
도적 연맹이 외부의 문제라면, 이 건은 내부의 문제다.
“당영진이라…….”
지난번 당천기가 쓰러졌을 때, 사천당가에서는 내란이 일어났었다.
당시 소천룡 연청운의 도움으로 깨어나 모든 반란분자를 일거에 소탕한 줄 알았는데, 뒤늦게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를 알게 된 것은 취죽 선생과 연자염이란 인물을 통해서였다.
그때 나온 이름이 사천당가 후기지수 중 한 명인 당영진이었다.
그리고 당영진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한 결과, 아직 사천당가 내부에는 뽑아내지 못한 불순분자들이 제법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은 역간계를 펼칠 생각으로 적당히 정보를 던져주며 은밀히 내부 불순분자들을 수색했다.
“내부에 독을 품은 채 움직일 순 없지.”
불순분자들을 완전히 파악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손을 써야 한다.
“쯧! 고문으로 얻어낸 정보를 신뢰하긴 어렵지만…… 어쩔 수 없지. 짊어지는 수밖에.”
고문으로 얻어내는 정보는 양날의 검이다.
사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차피 죽을 것 엿 먹어보란 식으로 가짜 정보를 흘리는 것도 가능하다.
가뜩이나 불순분자들을 쓸어버리면서 혈족의 피를 봤는데, 불확실한 정보로 내부의 분란이 만들어지면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도적 연맹과 싸우는 남궁세가를 조력하기 위해 전력을 파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에 독을 품은 채 전쟁을 벌일 수도 없다.
당천기는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사연이 이 녀석이 그놈만 잘 꼬셔 놨어도 편했을 것을…….”
소천룡 연청운.
여러모로 재능이 있었던 그 녀석이 있었다면 일 처리가 한결 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확실히 묘한 분위기가 있는 녀석이었다.
뭔가 불가사의한 행운이 따른달까?
옆에 두기만 해도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은 운수대통한 녀석이었다.
사천당가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에 저 먼 곳까지 혈족을 보내놨지만, 이따금 오는 당조양의 서신을 보면 아무래도 기대했던 일은 없는 것 같다.
“가주님!”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 가던 당천기는 불쑥 거처로 들어오는 총관 당만옥을 보며 신색을 바로 했다.
“무슨 일이지?”
“서신이 왔습니다.”
“서신?”
서신을 받아든 당천기는 발신인을 보고 묘한 얼굴을 했다.
“곤륜파라……. 구파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빠르군. 일단 오대세가의 대응을 보고 난 뒤에야 움직일 줄 알았더니, 벌서 힘을 모으고 있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정파를 대표하는 거대한 축이다.
하여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구파의 영향력은 크고 넓지만, 그 힘의 대부분은 속세 밖인 산 위에 묶여 있다.
속세의 홍진(紅塵) 속에서 몸을 굴리는 오대세가와는 결이 다르다.
오대세가의 일이라 하여 구파일방이 발 벗고 나서는 일은 좀처럼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사대전으로 뻗어나갈 공산이 높기에 미리 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곤륜파가 우리에게 접촉할 일이 있나? 뭔가 이상한데…….”
그나마 곤륜이 있는 청해성과 근접한 곳이 사천이긴 했다.
필요한 사전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사천당가가 아니라 같은 구파인 청성파나 아미파와 접촉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곤륜파에서 보내왔다는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당천기는 서신 끝자락에 적인 문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놈 봐라?”
-머리는 좀 좋아지셨습니까?
어떻게 들으면 모자란 머리를 비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문구다.
사람에 따라서는 심대한 도발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천기는 이 서신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머리에 독이 뭉쳐 생사를 헤매던 자신을 치료해 주었던 신의(神醫)의 전인.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던 녀석.
왜 그 녀석이 곤륜파와 함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신의 내용을 따를 이유로는 차고 넘쳤다.
“나갔다 오겠네.”
들뜬 마음으로 거처를 벗어난 당천기는 곧장 사천당가의 담을 넘어 멀리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이야기 속 신선마냥 허공을 밟고 움직이는 당천기의 신형이 순식간에 먼 거리를 주파했다.
그렇게 서신 속의 장소를 눈앞에 둔 당천기는 묘한 것을 봤다.
“……응?”
약속 장소에 있는 것은 분명 곤륜파다. 하지만 곤륜파 이외의 힘들 역시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곤륜파와 함께하는 이들은 절대 정파 쪽 사람들이 아니다.
함정이라는 글자가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렇게 치부하자니 곤륜파는 진짜다.
무엇보다 그들 중심에는 연청운이 있었다.
“……만나보는 수밖에 없겠군.”
주변으로 느껴지는 저 배경이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당천기는 오랜만에 답답하기만 하던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떨리네, 이거.”
사천은 안과 밖을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어떤 이들은 화북을 중심으로 한 구주(九州)를 기준으로 보지만, 적어도 무림의 기준에서는 사천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 영역으로 천마신교의 인물들을 이끌고 들어온 것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승산은 있어…….’
적의 적은 동지가 될 수 있다.
이번에 남궁세가를 거꾸러트린 녹림과 수로채의 실질적인 배후.
구파와 오대세가는 물론 관에까지 스며든 암중 세력 혈교.
그들의 위험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정파에 커다란 경각심을 줄 수 있다.
그렇게 위기의식이 생기면 극약처방에 가까운 극단적인 선택도 충분히 염두에 둘 수 있다.
‘저 강대했던 천마신교조차 놈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뻔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거야. 같은 피해자의 입장으로 동지 의식을 만들고, 천마신교가 원하는 건 혈교에 대한 징치임을 강조한다면 한시적으로나마 힘을 합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어.’
중원 내에서 그 첫 시작을 알리는 계기를 만드는 건 사천당가가 될 것이다.
구파의 하나인 곤륜파와 오대세가의 하나인 사천당가가 한목소리를 낸다면, 우리가 내는 목소리를 더욱 키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내세울 의견을 정리했다.
그사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온다.’
당가주다운 등장이다.
매사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향을 지닌 인물답다.
“귀여운 녀석이군.”
“하하…….”
입천신마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성향이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행의 앞에 내려선 당천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와 내 주변을 훑었다.
“못 본 사이 많이 불량해졌구만. 특히 주변이. 때 이른 사춘기라도 온 거냐?”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런 말로 때울 수준이 아닌데?”
당천기의 말에는 시작부터 아니꼬움이 가득했다.
“그래, 어디 이야기나 들어보자.”
그래도 다짜고짜 칼을 빼 들진 않았다.
나는 당천기에게 그간의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혈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남궁세가를 무너트린 은밀한 힘들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당천기는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나 표정이 바뀌었다. 나름 이야기의 진위를 판별하는 모습이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당천기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보고 들으려 하지.”
“예?”
“네가 딱 그 짝이구나.”
혀를 차는 당천기의 말이 날카롭게 폐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