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7
46화 천상과 소통하는 이가 얻을 수 있는 특권이란(2)
아차!
참신한 방법이라 생각한 탓에 생각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놈을 취조한다. 확실히 이용하기에 따라 어마어마한 파급 효과가 만들어질 것이다.
문제는 천마 사부의 심경을 헤아리지 않은 물음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내 편의를 위해 사부를 부려먹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천마 사부는 무려 지옥에서 악인들을 똥물에 튀긴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기피한다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중 두 가지나 해당되는 일이다. 적어도 더러운 일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흠!]역시나 천마 사부에게서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 지옥에서 병신 같은 놈들을 똥물로 튀기고 있긴 하지.]다행히 생각보다 유쾌한 목소리로 답을 주셨다.
건방지다 생각한 게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지만, 나름 내가 하는 꼴이 귀엽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다.
조심하자. 생각보다 격식 없는 분들이라 편하게 대화가 가능하다 해도 사부님들은 친구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새기는 가운데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원하는 건 지옥에 떨어졌을 놈들을 족쳐서 정보를 뽑는 거겠지?]“예.”
[기발한 생각이긴 하구나. 하지만 인과율 문제 때문에 일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점은 알아 두는 게 좋겠다.]인과율?
인과(因果)라 함은 원인과 결과를 말한다. 달마 사부식으로 해석을 한다면 선악의 업, 업보(業報)라는 말과 통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장삼풍 사부가 지나가는 말로 인과율이란 말을 이야기했던 것도 같았다.
[천상에서는 더 이상 신들이 인세에 힘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이 자오경이라는 물건이 요상한 것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네 녀석과 우리가 사제지연을 맺는 과업 모두를 감당하고 있단 말이지. 허나 그런 자오경도 직접적으로 천상의 힘을 이용하려는 인과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글쎄?]“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선을 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다.
확실히 지금 내가 천마 사부에게 부탁하려는 일은 확실하게 선을 넘었다. 살아 있는 인간이 지옥을 관리하는 존재를 이용하여 천상의 힘을 사용하려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과를 상쇄할 대가가 있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쪽 이야기까지 하자면 너무 길어지니 적당히 끊도록 하고. 뭐, 손을 써 보도록 하마. 오랜만에 생긴 제자의 부탁이기도 하니.]“사부…….”
천마 사부, 생각보다 좋은 분?
아무래도 정파 영향력이 높은 곳 출신이다 보니 천마라고 하면 무슨 악의 근원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친근감이 생긴다.
[게다가 화산 돌아가고 있는 꼴을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단 말이지. 하하하하!]응, 아니야.
그냥 본인이 즐기시는 거구나.
갑자기 확 납득이 되네.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려나?’
손에 닿지 않는 멀고 먼 존재. 장삼풍 사부나 달마 사부와 달리 천마 사부에게는 묘한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니 그런 거리감이 좁혀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휙휙휙.
내 앞에서 머리에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망할 죽마고우 하나.
돌았냐고 묻는 그 행동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좀 정리하느라 혼잣말 좀 하는 게 뭐 이상하다고.”
휙휙휙. 휙휙휙.
종종 혼잣말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었으니까 이번에도 혼잣말이라고 둘러댔더니 백무호가 이제는 양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린다.
‘천마 사부와 거리감이 좁혀진 느낌이라면 이 녀석은 너무 거리감이 없지.’
“하아…….”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만약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질서라면 이놈과의 인연도 인과의 하나이려나?
그리 생각하니 갑자기 내 전생이 좀 궁금해지기는 한다.
언젠가 알아볼 수 있다면 꼭 좀 알고 싶다.
꼭!
***
[조금만 더 가면 보일 게다.]내 부탁으로 천마 사부가 지옥(직장)으로 가시느라 빠진 사이, 달마 사부가 화산에 있을 기연이 있는 장소를 내게 알려 주셨다.
그사이 틈틈이 조금 전 들은 인과율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숭산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긴 했었지.’
사부님들은 직접적인 훈수를 하지 않으셨다. 달마 사부의 경우 숭산에서 있었던 마교의 기습을 경고하지 않으시고 관망하셨다.
그것을 통해 사부님들에게도 뭔가 제약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천마 사부에게 들은 인과율을 적용시키니 많은 부분이 설명되었다.
‘너무 부담 드리지 말아야겠다.’
달마 사부의 지시에 따라 걸음이 닿은 곳은 어느 동굴이었다.
거칠고 험한 산세 가운데 있어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는 동굴은 어둡기까지 했다.
허나 그 어둠으로도 다 가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었다.
“숭산에서 느꼈던…….”
동굴 안에는 숭산에서 느꼈던 무의 흔적이 있었다.
천마 사부가 남겼었던 그 흔적 말이다.
‘약한데?’
하지만 숭산에서 느꼈던 그것보다는 어딘가 약한 느낌이다.
소싯적에 새기신 흔적인가?
뭐, 지금까지 기운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기는 하다.
실제로 백무호 이놈은 어둠 속에 있는 저것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몰입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 것 같지는 않은데.
[없구나.]역시나 달마 사부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어렸다.
[숭산에서는 금모후의 도움이 있어 쉽게 땅의 힘을 전할 수 있었다만, 화산에서는 그런 기연을 기대하기 어렵겠다.]“안배하셨던 게 따로 있었나 보네요.”
[그랬지. 단순히 무공이나 전수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너를 여기로 데려왔을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추측해 보건대 달마 사부가 천마 사부와 이야기 하는 도중에 나왔던 서방금신(西方金神), 백제(白帝)의 진력(眞力)이란 것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서쪽의 방위는 오행 중 금(金)을 상징하니까.’
서악 화산.
서쪽의 큰 산이라는 말이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닿아왔다.
‘가만. 그럼 그 금모 성성이에게 얻었던 힘도 보통 힘이 아니었다는 거네.’
숭산은 중악이라 불린다. 가운데의 큰 산. 오행에서 토(土)를 상징한다.
그러다 문득 달마 사부가 언급하셨던 성성이, 금모후의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물어보았다.
“금모후는 잘 지내요?”
[곤란해하고 있지.]천상에 올랐다고 하면 앞으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그쪽도 일이 많이 힘든가?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투전승불(鬪戰勝佛)이 관심을 가진 모양이다. 굉장한 미후(美猴)라고.]투전승불?
불(佛) 자가 붙은 걸 보면 부처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데, 뭔가 과격함이 느껴진다.
부처라면서 원숭이의 미모를 따지는 것도 좀 이상하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응?”
가물가물한 기억을 긁어보고 있는 중 나는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주목했다.
“촛농?”
어둠을 밝히기 위해 누군가 초를 가져온 흔적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누군가 이곳에 왔었다.
촛농의 상태로 보아 아주 최근.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그 화산파 제자?’
나는 이 촛농의 흔적을 보며 선인봉 주변에서 만났던 화산파 제자를 떠올렸다.
“야, 대박이야!”
백무호가 묵언을 깨고 환호했다.
한 번 깰 때마다 하루씩 묵언의 시간을 늘릴 거라 했는데, 그마저도 잊고 소리칠 정도면 대박이긴 하겠지.
놀릴 거리 하나 확보했다 생각하며 백무호에게로 다가간 나는 살짝 얼굴을 굳혔다.
“글귀가 있네?”
“대박이지?”
백무호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휴대하고 있던 화섭자로 희미하게나마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빛이 약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쓰여 있다는 것은 알겠다.
[천마가 흥이 나서 쓴 것이구나. 구결이 있지만 일부일 뿐이고, 깨달음을 얻으며 느낀 심상적인 내용이라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구나.]문장가들이 좋은 경치를 보았을 때 흥에 겨워 시 한 수 짓는 그런 느낌의 글귀라는 이야기 같다.
뭐, 백무호 이 녀석이야 검흔 하나만으로도 그 깊이를 헤아리고 파고든 녀석이니 충분히 얻는 것이 있겠지만.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무리겠지.
[흠흠! 이 사부가 쓴 것도 아마 근처에 있을 것인데…….]천마 사부와 같이 오셨었나?
뭐라 쓰여 있을지 궁금해서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내 몫의 화섭자를 꺼내 희미한 불씨를 밝혀 보는데, 다소 실망스러운 것이 보였다.
“부서져 있네요?”
[아쉽다고 할지, 다행이라고 할지. 허허.]신승 공료에게 중토신공의 내용을 고스란히 읽어 주던 때를 생각하시는지 달마 사부가 부끄러워하셨다.
[한데, 흔적을 보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그러게요.”
좀 이상하다.
달마 사부의 글귀는 부수고, 천마 사부의 글귀만 남아 있다?
중토신공을 쓰신 필체를 보면 뭔 내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수기까지 하나?
“뭔가 이상한데?”
불길한 기운을 팍팍 풍기는 천마 사부의 흔적은 남기고, 해석은 못 했다고 하더라도 정파의 고인이 남겼을 흔적으로 보일 달마 사부의 흔적은 부순다?
“무슨 마교도라도 되…….”
뭔가 말이 안 되는데, 만약의 가정이란 것에 몇 가지 억지를 끼워 넣으니 말이 된다?
“……마교?”
***
비번임에도 지옥에 내려온 천마는 돌아가는 상황을 즐겼다.
“감히 이 몸을 부려 먹는단 말이지.”
새로 들인 제자는 당돌했다.
그러면서 영리했다.
본래 천마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두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만큼 나도 놈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겠지.”
재능이 있고, 영리하다. 발상도 신선하다.
천마가 좋아할 만한 부분들을 다 갖췄다.
제자로 삼은 시간은 짧지만, 마음이 갔다.
“기대감이라…….”
지금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만 봐도 제자는 반드시 천상에 오를 녀석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낼 여흥 거리는 무궁무진하기까지 하다.
“그래, 이 천마의 제자라면 그 정도 그릇은 되어야지.”
한때 땅 위에 군림하고, 하늘을 오시했던 몸이다.
하늘의 섭리, 인과의 경계에 거리낌 없이 몸을 들이미는 제자의 행동을 보면 즐겁기까지 했다.
“어디 한번 날뛰어 봐라.”
시작은 심심풀이 여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이제는 진심이 되었다.
천마는 제자가 찾았던 자들, 화성촌을 공격했던 무인들과 마적들의 영혼을 쫓아 단번에 지옥을 가로질렀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사이에서 필요한 영혼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천마에게는 아니었다.
“찾았다.”
천마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 일부를 쓸어 담았다.
압도적인 힘이 죄 깊은 영혼들을 찍어 눌렀다.
[가아아아아!]“짜릿하지? 지옥은 이승과 고통을 구분하는 셈법이 다르거든. 육신이 있던 시절에는 통각이니 신경이니 하는 제한이 있지만, 지옥은 그딴 게 없단 말이지.”
[끼아아아아아!]끔찍한 귀곡성이 공간을 흔들었다.
하지만 익숙한 천마는 찢어지는 비명째로 영혼들을 짓밟았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라.”
시작부터 과격 그 자체로 나가는 천마가 비명을 지르는 영혼들을 몰아붙였다. 정신없이 털려 버린 영혼들이 천마의 말에 모든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토해낸 정보는 이승에선 쉬이 얻기 힘들 만큼 농도가 짙었다. 인간 시절에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수위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쏟아냈다.
어차피 죽은 그들에게 이승에 있었던 시절의 정보들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정보들을 받아내는 천마의 입가에는 짙은 웃음이 걸렸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하나라도 더 말하고자 개인적인 생각들이 첨가된 정보들도 많았지만 모든 조각들을 모아 보니 만들어지는 게 있었다.
“화산파 제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