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주태는 흑문의 첩인(諜人)이었다.
양 관주에 따르면 그보다 보양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그는 흑도의 사정에 관해 정통했다. 내 목적 달성의 조력자로서 최고의 적임자라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잡고자 하는 사냥감의 대부분이 흑도에 몰려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들 자체가 악당들의 집합체인데다 민초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태가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악당들을 한 번에 그물에 담고서 일시에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그러려면 먼저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가벼운 미끼부터 던졌다. 별것 아니라고 치부했던 임무가 감당 불가의 사태로 확산될 때쯤에야 주태는 자기가 옴짝달싹 못할 덫에 걸렸음을 알게 될 것이었다.
나는 사당을 떠나 주태의 집으로 가서 그를 기다렸다.
이 또한 그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조치의 일환이었다. 내 고객들을 제 처소로 데리고 오는 것으로 그는 자기가 내 방수임을 알리는 셈이었다. 일이 커지면 나중에 발뺌하려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향후 주태가 처할 곤경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가 궁지에 빠지든 말든 배를 채운 후 보양을 뜨면 그만이었다.
***
주태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내가 지정했던 정오까지 그가 그의 근사한 와옥 뒤편의 창고로 데리고 온 이는 세 명에 불과했다.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였다.
주태는 보양이 워낙 넓은 데다 나머지 세 사람은 당장 소재를 파악하기 힘들어 일단 가능한 자들부터 모아왔다고 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며 다시 나가서 남은 셋을 끌어오겠다는 주태를 잡았다.
그도 같이 들어야 했다. 그래야 길잡이로 삼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삼인은 각양각색이었다.
예순은 무조건 넘었을 노파, 마흔 전후의 중년인, 그리고 열다섯 어림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소녀는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셋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밑바닥 인생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의 행색은 어제 아침 보양에 들어올 때의 나와 대동소이했다. 한마디로 거지꼴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복수를 대신해 줄 터이니 원사(寃事)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정의단주라는 근사한 신분을 밝혔음에도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일남이녀는 내가 굵직한 철봉을 맨손으로 구부러뜨리며 괴력을 과시하자 앞다투어 원한을 쏟아내었다.
먼저 노파.
기실 그녀는 노파가 아니었다. 실제 나이는 서른넷에 불과했다. 아직 한창때이건만 제 나이의 두 배로 보일 만큼 폭삭 늙은 것은 마음고생 탓이었다.
그녀의 원수는 하나가 아니고 넷이었다. 기쁘게도!
사연은 간단했다.
신혼 초에 남편과 사별한 그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아들이 있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으나 비싼 학자금을 바쳐가며 아들이 원하는 학관에 들여보내 준 게 화근이었다.
명랑하고 총명하던 아들은 어느 날부터 말수가 줄어든 반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는 일은 잦아졌다. 학관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봐도 상관하지 말라며 역정을 낼 뿐이었다.
아들이 학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악동들은 변두리에서 노점을 하는 빈민의 자식이 학관의 격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아들을 학대한 것이었다.
황당하게도 노파는 그 사실을 아들이 아니라 악동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관에 든 지 두 달도 안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주검 앞에서.
소문을 듣고 달려 온 네 악동은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그녀를 둘러싸고 자신들의 악행을 자랑스레 떠벌렸다. 면상에 오줌을 갈겼다느니, 똥을 먹였다느니, 발가벗기고 여자들이 우글거리는 빨래터에 내보냈다느니. 그러면서 일상의 재미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노파는 악동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집단폭행에 만신창이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날로부터 일 년, 노파는 악동들에게 천벌이 떨어질 것만 기원하며 지옥을 살아왔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중년인의 사연은 시시했다.
저자에서 포목점을 하며 나름 성공한 상인이었던 중년인은 절친한 벗이자 동업자였던 자의 배신에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그가 잃은 것은 객잔의 점소이로부터 시작해 삼십 년에 걸쳐 일군 재산만이 아니었다. 원수는 그의 아내까지도 빼앗아 갔다.
일을 되돌릴 요량으로 몇 번이나 찾아갔으나 예전에 자신이 부리던 하인들로부터 몰매를 맞고 쫓겨난 중년인은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부인도 처단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중년인은 고개를 저었다. 실망스럽게도.
소녀가 내 상단전에 일으킨 불꽃은 노파 못지않게 강렬했다.
그녀는 언니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다.
빈농의 자식들이던 자매는 동기들이 뿔뿔이 흩어진 다른 농가의 친구들과는 달리 운 좋게 같은 집에 팔렸다. 보양의 부호인 장가장(張家莊)의 하녀로 들어간 두 살 터울의 자매는 서로를 보듬으며 힘겨운 종살이를 견뎌냈다.
둘의 자매애가 못마땅했는지 그들의 주인이었던 장주의 둘째 첩은 노골적으로 심술을 부리며 그들을 학대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옥비녀가 없어졌는데 언니가 훔쳐 간 게 분명하다는 생트집을 잡고는 그녀를 문초했다.
인두로 허벅지를 지지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아니라며 버티던 언니는 동생의 다리를 부러뜨리며 그 이상의 벌을 암시하는 첩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절도를 자백했다. 옥비녀를 감춰둔 곳조차 묻지 않고 첩은 본보기를 보인다며 직접 비수로 언니의 목을 그었다. 그러면서 불구가 된 소녀를 장원에서 내쫓았다. 다른 하녀들로부터 후덕하다는 칭송을 받으며.
소녀는 첩의 목덜미에 비수를 박을 수 있다면 제 목숨도 내놓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진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럴 리가 있는가. 적화(赤火)가 이토록 선연하게 타오르는데.
***
고객들을 주태의 창고에 대기시키고 밖으로 나갔다.
서산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원수들을 잡아 올 거라는 내 장담에 그들은 그렇게만 해 주면 저승에 가서도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나는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 인사면 충분하다고 화답했다.
목표물은 여섯이었다. 주태에게 물어보니 악동들의 학관이 가장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그곳의 사냥감들부터 잡아 오기로 했다.
주태가 아이들이라고는 하나 네 명이나 되니 그들을 옮기려면 마차가 필요할 거라는 기특한 의견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나는 그의 제안에 따라 홀로 학관으로 향했다.
주태는 마차를 구한 후 학관 앞으로 오기로 했다.
주태가 알려준 길을 따라 노파에게 들었던 네 악동의 인상착의를 곱씹으며 저자를 걸어가고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예닐곱 살가량의 꼬마들이 앙증맞은 목소리들을 토해내며 다투고 있었다. 서로를 빼닮은 생김새로 보아 남매인 듯싶었다.
뭐가 그리 분한지 오빠로 보이는 사내아이에게 악을 쓰던 여아가 말싸움에 밀린 그의 주먹질을 피해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더니 내 면전에 이르러 엎어졌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라는 본성을 거슬러 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습성은 노인네가 남긴 유산이었다.
여아를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은 여아의 입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내 인중에 박혔다. 아니, 박힐 뻔했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히자 여아가 쏘아낸 세침이 아슬아슬하게 내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젖혔던 고개를 번개의 속도로 비틀었다. 여아를 쫓아 달려오던 사내아이가 날린 침이 귓불 바로 아래로 날아갔다.
나는 피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여아가 기습했을 때 그녀를 낚아채 사내아이에게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간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심결에 저지른 일이었으나 자칫 잘못하면 경을 치를 수도 있었다. 어린 남매는 고도로 훈련된 살수들임에 분명했으나 무인은 아니었다. 충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즉사한다면 공든 탑이 무너지게 될 판이었다.
천만다행히도 남매는 무사했다. 새된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숨들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엔 일렀다. 별안간 둘 모두 입에 거품을 물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십중팔구 어금니 속에 들었던 독단을 깨물었으리라.
그들의 호흡이 끊긴 것을 확인한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들의 죽음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네가 내 속에 주입한 선령(仙靈)이 착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몇 시진 같은 촌각이 지났다. 그동안 내 내부에서 노인네가 말했던 증상들이 발생하지 않아 나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와 살수들이 벌인 사소한 소동을 구경하고 있던 행인들 가운데 누군가 소리 질렀다.
“저 죽립괴인이 아이들을 죽였다! 도망치지 못하게 해라.”
나는 군중을 선동하는 자가 꼬마 살수들과 한편인지 궁금했다. 그렇든 아니든 중요치 않았다.
지금은 내 살해를 청부한 자와 그자에게 내 동선을 알려준 자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전자는 오절도일 터이고 후자는 주태일 게 뻔했다.
그들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
반성했다.
오절도가 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까지는 손을 쓰지 않으리라 확신했는데 일방적인 수읽기였다. 그가 이렇게 신속하게 보복에 나설 줄은 정말 몰랐다. 그것도 남의 칼을 빌려서.
주태의 배신도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터였다.
살수들을 동원해 나를 해치우기로 작심한 오절도가 제일 먼저 해야 했을 일은 무엇일까. 내 행방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보양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을 흑문의 첩인부터 떠올리지 않았겠는가.
주태의 입장에서는 오절도의 편에 서는 게 당연지사였다. 오절도가 지닌 위명은 내가 그에게 가한 위협을 상쇄하고도 남을 터였다.
주태는 저울질조차 하지 않고 나에 관해 털어놓았을 것이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오절도가 앓던 이를 빼주려는 것 같은데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았겠는가.
나는 둘 모두를 잡을 심산이었지만 꼭 하나만 고르라면 주태를 택할 것이었다. 태연한 낯짝으로 내 뒤통수를 친 게 괘씸해서가 아니라 내게 필요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사내대장부라면 감정보다는 대의에 충실해야 했다.
***
남매가 자결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절도는 필히 살수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을 터였다. 마차를 구하러 가겠다며 나에게서 떨어졌던 주태도 그의 옆에 붙어있을 공산이 컸다.
난감했다. 그럴듯한 곳이 일곱 군데나 있었다. 모두 소동이 벌어진 장소를 직관할 수 있는 명당자리였다.
나는 집중했다. 노인네의 천이통(天耳通)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내 청력도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초절정의 고수들은 수십 장 밖에서 떨어지는 낙엽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 이상이었다. 좀 과장을 보태자면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나비가 꽃잎에 내려앉거나 거미가 줄을 치는 미음(微音)까지도 잡아낼 수가 있었다.
청력을 최대한 돋워 차례로 훑은 결과 세 번째 전각의 삼 층에서 오절도와 주태로 의심되는 호흡들이 걸렸다. 일부러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켠 후 쏜살같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거리가 칠팔 장 정도에 불과했기에 순식간에 전각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주태의 것임에 분명한 헛바람 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그때까지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오절도는 내 동체가 삼 층에 떠오를 즈음 퇴각을 택했다. 그를 쫓기 전에 주태부터 낚아챘다. 도주할 겨를도 없이 내가 붙들린 주태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그의 혈도를 점하고서 어깨에 둘러멘 후 달아난 오절도를 추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