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72
마탄의 사수 (1072)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죠?”
나가려는 이하에게 GM이 말했다. 이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요?”
“푸른 수염이 어째서 유저들을 공격하지 않았는지, 지금 다들 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아아! 네. 근데 뭐, 그건 라퓨타에 가서들 생각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그렇겠죠. 음, 그게 당연하죠.”
GM은 이하의 말에 동의했다. 그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이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지금 GM이 어떠한 힌트를 주고자 한다는 것을.
* * *
“크흠,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 그냥 푹 자고 오면 되나요?”
“아, 그럼요. 지속적인 게임 플레이는 건강을 망칠 수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유의 사항들을 항상 신경 쓰며 플레이 해 주세요.”
이하의 은근한 물음에 GM은 거침없이 답했다. 이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방금 모든 말을 했다는 의미였다. 이하가 GM의 말에서 건질 수 있는 단어는 두 개 뿐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유의 사항.’
이하는 블라우그룬에게 말하고, 기정을 비롯한 다른 유저들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전달한 후 곧장 로그아웃을 준비했다.
어차피 〈신성 연합〉의 다른 유저들이 사우어 랜드 인근까지 오려면 최소 삼일 이상의 시간은 필요할 테니 시간상 엇갈릴 일은 없었다.
이하는 곧장 로그아웃했다.
미들 어스 접속기에서 나오는 와중에도 어지럼증이 느껴질 정도로 피로는 극심했으나 당장 잘 수는 없었다.
급히 컴퓨터를 켜고 미들 어스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간 후, 이하는 유의 사항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모두 찾았다.
그러나 동화율을 비롯, 미들 어스 접속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에 대한 주의 등이 있을 뿐 특별히 이하의 눈에 꽂히는 정보는 없었다.
‘있을 텐데, 분명히― 그게 힌트였어. 하고자 했던 말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거야. 그것도 마왕의 조각과 관련된 것, 레와 관련된 것이라면 몬스터 정보란에 뭐가 있나? 근데 그쪽은 진짜 기본적인 토끼 같은 건데…….’
미들 어스는 기본적으로 공식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공략이 되어 있는 유저들의 팬 사이트라면 이런저런 정리된 데이터가 있지만 여기는 아니다.
이하는 잠시 고민했다.
GM은 오직 공식 홈페이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그렇다면 타 사이트는 아니다.
‘마왕의 조각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GM이 말하고자 했던 것……. 당장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여는― 아?’
그 순간, 이하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문의 형태다. 그것은 지금 잠겨 있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쟌나테의 열쇠〉를 사우어 랜드까지 운반한 게 아니었던가.
‘열어야 해……. 열어. 연다. 열다.’
그리고 지금, 공식 홈페이지에서 ‘열다’라는 동사와 관련된 문장이 하나 있었다.
최근 미들 어스 모든 유저들의 눈과 정신을 집중시켰던 바로 그 문장.
유저들이 가장 ‘유의’해서 봐야 할 바로 그 문장!
페이즈 4.
[판도라의 상자는 열어야만 합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판도라의 상자……?”
분명히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말이다.
페이즈 4의 문구를 띄워 놓은 채 이하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시점의 미들 어스에서 ‘열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바로……. 판도라의 상자라는 뜻인가.”
판도라의 상자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
그러나 희망 이전에, 상자를 열자마자 풀려나는 것들은 무엇인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열었을 때 벌어질 일이 무엇인가.
이하는 갑자기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은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결코 〈신성 연합〉에 좋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푸른 수염이 그것을 노리고 있으니까.
레는 유저들을 죽이러 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저들로 하여금 판도라의 상자를, 〈천국으로 가는 계단〉 열게끔 부추기고 있다.
그 안에 무엇이 있기에?
혹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열면 안 되는 건 아닐까? 푸른 수염을 비롯한 마왕의 조각들이 설치해 놓은 거대한 함정은 아닐까?
‘아니지. 그건 어쨌든― 신神과 관련이 있는 거야. 이제 와서 ‘사실은 신과 마가 동일한 존재였다!’ 같은 개소리하면 바로 미들 어스 접는다.’
미들 어스는 그런 게임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식 홈페이지 상에서도 신과 마의 오랜 역사에 대한 세계관 설명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하던 이하의 눈에 핏대가 섰다. 그러나 집중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면을 취하지 못한지 몇 시간이나 됐을까. 편두통 기운까지 있는 상태에서 굳이 더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고, 두야.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게 다시 봐야지. 망할 놈의 게임은 플레이만으로도 벅차 죽겠는데 꼭 이런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내서 로그아웃 한 이후에도 괴롭힌단 말이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하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당장 잠을 청한다지만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미들 어스는 반드시 자물쇠 옆에 열쇠를 같이 놓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문장 자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열어야 해. 그 안에 무엇이 있더라도.’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열어야 한다. 주의해야 할 사항이 늘어났을 뿐,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마왕의 조각에 대해 생각하려던 이하는 4초 만에 잠이 들었다.
* * *
―기정쓰, 어디쯤이냐?
―오, 형! 왔네. 우리 이제 거의 다 와 가. 아마 반나절 후면 도착할 것 같은데?
―오케이. 사우어 랜드에서 기다리마. 온다고 미리 얘기는 해 놨으니 크게 문제없을 거야.
―흐흐, 기대된다. 아참, 근데 나 토온의 뼈 방패 있는 것도 알고 있지? 괜히 동족살해자! 하면서 막 나 죽이는 거 아니지?
―토온은 여기서 뛰쳐나간 배신자였다니까. 오히려 죽여 줘서 고맙다고 내가 처음에 들어오게 된 건데.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라.
―오카이, 오카이!
―그래, 그리고 오는 길에 다들 생각도 할 겸 미리 말해 놓자면…….
이하는 기정과 귓속말을 하며 사우어 랜드 방향으로 걸었다. 블라우그룬이 이하를 보자마자 곧장 날아와 그에게 목례했다.
“블라우그룬 씨! 아직도 여기 있었어요?”
“하이하 님께서 오시면 같이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저 들어가 있지, 피곤하게……. 흐흐, 그럼 같이 가요.”
접속 지점에서 울렉이나 GM은 보이지 않았다.
레드 체펠린 근처에는 다수의 공룡들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로그아웃 때와 비교해 보자면 주변의 경호도 철저해진 상태였다.
이하는 기정에게 GM이 간접적으로 힌트를 준 ‘판도라의 상자=천국으로 가는 계단’ 가설을 전달했다.
“네. 하이하 님이 안 계실 때 울렉이라는 왕자와 조금 친해졌는데―”
블라우그룬은 이하가 로그아웃했을 때 일어난 일을 신이 난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하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듣던 기정조차 깜짝 놀라 이하에게 계속 물어본 데다가, 기정의 귓속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르크와 혜인, 비예미, 키드, 루거 등 온갖 인물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 상태였다.
―나도 알아낸 지 얼마 안 됐고! 우선 다들 생각이나 정리하고 와서 얘기합시다, 와서!
다들 머리 쓰는 일이라면 질 사람들이 아니니, 이하에게 한 마디씩만 물어봐도 한 번에 10개가 넘는 귓속말이 우르르 몰려왔던 것이다.
결국 이하가 버럭 화를 낸 후에야 그들의 입을 닫게 만들 수 있었다.
“―해서, 하이하 님께서 오시면 지난 번 호텔? 호텔이라는 곳에 방을 잡아 두었으니 그곳으로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그토록 많은 연구를 했지만― 울렉과 지엠이라는 공룡이 보여 준 각종 유물들은 정말이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철로 된 마차가 있고, 마나를 쓰지 않아도 메시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기계도 있다면서요? 도대체 저들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게다가 마나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왜 그런 기계장치를 쓰는지!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핫. 뭐, 재미있는 곳이죠.”
그걸 사용하는 건 공룡들이 아니라 미들 어스를 만든 구플의 직원들이고, 스킬 같은 걸 쓰느니 현대 문명을 고스란히 도입해서 사용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이하였다.
블라우그룬 또한 울렉에게 입장 권한을 부여받은 상태였으므로, 둘은 사우어 랜드의 결계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마나 태풍도 없군요. 이 안에서라면 날 수 있습니다.”
블라우그룬은 오랜만에 드래곤 폼으로 돌아가 이하를 태워 날았다.
지난번처럼 강제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공중에서 보게 된 사우어 랜드의 외벽은 더욱 아름다웠다.
[귀금속으로 치장한 외벽이라니― 하핫! 하이하 님! 여기는 처음부터 전쟁의 위협에 대해선 생각조차 않는 거군요!]“실력들이 어마어마하니까요. 블라우그룬 씨도 눈치는 챘죠? 그 울렉만 해도…….”
[그렇습니다. 에인션트급 드래곤이라도 전투에 익숙하지 않다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아직 대화는 더 해 봐야겠지만, 레드 체펠린을 건드린 이상 사우어 랜드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예요.”
사우어 랜드의 공룡들은 블라우그룬을 긴장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그들은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을 원했다. 이하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사우어 랜드에 들어갈 수 있는 유저는 없을 정도다.
그런 이하조차 사우어 랜드의 적극적인 도움은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치요가 엘리자베스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납치할 때도 그랬어. 사우어 랜드의 기본 정책은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건드리지 않는다, 였지.’
그때의 치요와 카즈토르는 공룡들과 레드 체펠린을 공격하지 않았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치요가 그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레드 체펠린을 뱀파이어로 만든 치요가 사우어 랜드의 반격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가 심정적으로 상당히 쫓기고 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사우어 랜드를 적으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라퓨타에 가고 싶었던 걸까?’
마탄의 사수에 대한 통제가 힘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카일마저 잃게 된다면 뱀파이어 유저를 아무리 모아도 미들 어스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아무리 세력을 키워도 모기나 파리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뿐, 치요가 그리고 있는 ‘제3세력’이라는 권한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치요가 모를 리 없다.
따라서 궁지에 몰린 치요는 결국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이지.’
치요는 카즈토르의 입을 통해 〈피로트-코크리〉에 대한 분노를 각인시켰다. 그것은 곧 마왕의 조각 전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것이다.
신성 연합측은?
브로우리스의 탄환이 엘리자베스를 죽였다.
카즈토르가 위치를 바꿨다고 말해 봐야 지금의 카일에겐 먹힐 리 없다. 당시 현장에 있던 유저들이 확신할 정도였다.
‘그래. 뭐, 하지만…… 잘됐어. 브로우리스 소장님도 없고, 스승격 NPC도 모두 죽었다. 카일, 이제 너는 나의, 아니, 우리의…….’
적이다.
이하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외성문을 통과했다.
“쩝, 그럼 우선 블라우그룬―”
“오오오오! 하이하 님! 저기 보십시오! 이건 대체― 인간들의 성도 많이 봐 왔지만, 이건 뭡니까?! 13층짜리 건물이― 심지어 외벽이 유리로 되어있습니다! 확실히 공격당할 염려가 없으니 이런 과시형 건축물을 만들고 사는군요! 우리 드래곤들의 레어도 이 정도의 자신감을 뿜어내지는 못하는데!”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새로운 별천지에 블라우그룬이 곧장 흥분했다.
내부는 예전과 조금 달라진 상태였는데, 오히려 구플사社의 직원들이 더욱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