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100
마탄의 사수 (1100)
“그래서? 테러리스트들은?”
“아직 잡힌 놈은 없다는 것 같아.”
“대체 뭐하는 미친놈들이지? 우리쪽 사람도 아니라면서.”
시티 페클로의 중앙부는 마왕군 소속 유저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다.
그들도 마왕의 조각들이 주는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신대륙 동부의 인근 지역으로 파티 사냥을 나가며 레벨 업을 해야 했으므로, 자연스레 한 곳으로 자주 모여야 했던 탓이다.
“어쨌든 우리 쪽도 아니고 저쪽은 당연히 아닐 테니, 그럼 치요 쪽이라는 건가?”
“뱀파이어가 아니라잖아. 그냥 인간들이라는데?”
요즘 이곳에서 가장 큰 이슈도 로페 대륙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테러였다.
당장이라도 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이미 마기魔氣를 주입받은 유저들은 함부로 그쪽으로 건너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허어, 세상에 정말 더럽게 게임 하네. 하긴…… 근데 지금 우리가 할 말은 아닌가?”
“그 새끼들하곤 다르지! 그래도 좀 쪽팔리긴 해. 여기 와서 나름대로 인맥도 쌓고 파티 사냥 나가는 재미도 있긴 하지만. 사냥 구역도 제한되고.”
“나는 오히려 좋은데? 가식 안 부려도 되고. 킥킥. 주변에 말도 안 되게 강한 몬스터들이 많아서 힘든 건 좀 그렇지만, PK에 패널티도 없잖아.”
쿠우우우웅…….!
“음?”
“뭐지?”
마왕군 소속 유저들이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울린 커다란 진동. 그와 동시에 시티 페클로라는 거대 도시 안에서도 우뚝 솟은 성곽에서 검은 기운이 샘솟기 시작했다.
“뭐, 뭐야―”
쉬이이이이────────ㄱ!
매서운 바람이 자신들의 곁을 스친 순간, 만남의 광장 중앙부에는 어느덧 세 개의 이질적인 존재들이 서 있었다.
마왕의 조각들의 위엄 앞에 유저들은 모두 자세를 낮췄다.
“끼히히히힛, 이히히히힛! 얼른 말하라고, 레 할아버지!”
“파우스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군. 괜찮은가.”
피로트-코크리는 여느 때보다 더욱 발작적으로 웃었고, 기브리드조차 뭔가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레는 기브리드의 말을 들으며 모자를 슬쩍 벗어 들어 올렸다.
“상관없어. 어차피 녀석도 기쁜 마음으로 참가할 테니까. 이봐, 너희들.”
“옛! 백작님!”
“로페 대륙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은 모두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푸른 수염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저는 엉겁결에 답했다.
그의 답을 들으며 레는 들어 올렸던 모자를 썼다.
좌우로 찢어진 그의 입술은 귀에 닿을 것만 같았다.
“우리도 참전한다. 단, 우리는 이곳의 서부를 노릴 거야.”
레의 한 마디에 가뜩이나 썰렁했던 광장은 더욱 조용해졌다.
신대륙의 서부를 향해 진격하자는 의미인가!
티아마트를 소환해서 침공했을 때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제와 다시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과거 티아마트 전에 참전했던 유저들은 모두 그 전쟁을 복기했다.
분명 티아마트가 있었을 때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티아마트가 소멸한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공격을 진행한 경우는 없었다.
다시금 그곳을 향해 공격한다면 메탈 드래곤들도 나올 테고, 온갖 랭커들을 포함한 유저들이 전부 집결할 것이다.
이미 한 번 패배한 상황을 다시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저놈들이 그럭저럭 강하긴 하지만 이기기는 힘들 텐데.’
‘혹시 저놈들 지난번에는 본 실력을 다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각성이라도 하나?’
‘로페 대륙의 테러로 전력이 분산되는 시점을 노리겠다는 건가?’
마왕군 소속 유저들은 제각기의 추측을 내보았으나, 어떤 방향으로 생각해도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긴 힘들었다.
레에게 답한 유저는 물론, 주변의 유저들도 이 생각까지 마쳤기 때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끌끌끌, 이 정도 간단한 말도 이해 못하는 머리를 목 위에 달아 둘 필요가 있나? 간단하게 떼 줄 수 있는데.”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어째서……. 부, 부디 이유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레의 반응에 유저는 거의 울먹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왜 하필 여기 서 있어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
레를 밀치며 피로트-코크리가 튀어나왔다.
“이유 따위를 들어서 뭐 하려고오~? 하지만, 하지만! 도와는 줄 거야! 응, 응! 우리가 직접 가지는 않을 거지만! 도와는 주겠다고!”
“네? 도와는 주신다뇨? 그, 그럼 저희의 힘만으로― ”
“말도 안 돼.”
“마, 마왕의 조각들도 없이 우리끼리 어떻게― 죽으러 가는 거랑 다름없잖아.”
콰아아아앙────────……!
조용해졌던 광장이 술렁거리려는 찰나, 기브리드가 발을 굴렀다.
그가 찍은 바닥 주변은 물론, 광장 끄트머리에 있던 유저가 딛고 있던 땅까지 균열이 생겼다.
“조용. 너희가 이길 필요는 없다.”
“끌끌, 기브리드. 그렇게 말하면 죽으러 가라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나. 뭐, 너무 겁먹지들 마. 피로트-코크리의 말처럼 우리들은 네 녀석들을 지원해 줄 거야. 네 녀석들은 시간만 끌어 주면 돼.”
레는 기브리드의 두꺼운 팔뚝을 벽면 삼아 기대며 유저들을 향해 가볍게 말했다. 유저들은 눈알만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시간을 끈다?
“끼히히힛, 오래도 아니지, 응! 고작 222일이면 되는 걸!”
“……그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너희들이 했던 모든 고생을 행복으로 돌려줄 수 있지. 이자까지 듬뿍 쳐서 말이야. 끌끌끌.”
[마魔의 조각 모음]설명: 마왕의 조각들은 222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신대륙의 어딘가에서, 그 어떤 방해조차 받지 않고 그들이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하여, 에리카 대륙의 서부 또는 로페 대륙을 가리지 않고 이목을 집중시키자. 222일에 달하는 그들의 담금질이 끝나는 순간 궁극적인 세 번째 전쟁이 끝나게 되리니.
내용: 222일간 마왕의 조각 보호 (0/222)
보상: ?
실패 조건: 기한 도달 전 마왕군 소속 외의 유저 및 NPC에게 마왕의 조각이 1회 이상 피격 시
실패 시: ?
수락하시겠습니까?
‘마왕의 조각을 보호하라고? 뭐가 바뀐 거 아냐?’
‘궁극적인 세 번째 전쟁? 언제는 전쟁을 하긴 했나? 티아마트 때가 두 번째였나 그럼?’
‘실패 조건이 1회 이상 피격? 마왕의 조각 중 하나가 죽는 것도 아니고, 한 대만 맞아도 퀘스트 끝이라고?’
유저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갑자기 뜬 홀로그램 창을 읽어 내려갔다.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미들 어스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다지만 222일은 결코 짧은 게 아니다.
‘222를 5로 나누면 44.4로군.’
‘……약 45일가량을 버텨야 한다는 건데.’
마왕군 소속이 아닌 유저. 즉 지금의 〈신성 연합〉에 소속된 유저나 NPC 중 누구라도 마왕의 조각을 발견해서 한 대만 톡 때려도 퀘스트는 실패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들은 퀘스트의 설명에 있는 문구에 집중했다.
‘신대륙의 어딘가……라면, 결국 동부 인근이겠지?’
‘지금까지 시티 페클로를 발견한 놈도 없다. 무엇보다 저 정도로 본인들이 약해지는 상태라면 이곳보다 더 한 장소를 찾아내겠지.’
게다가 뒤를 쫓게끔 두지도 않을 것이다.
즉, 222일 동안 마왕군 소속 유저들조차 마왕의 조각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신성 연합〉 유저들이 그들을 찾을 확률은 제로에 수렴하게 될 터!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마왕군 유저들을 단박에 휘어잡은 것은 바로 이어진 푸른 수염의 제안이었다.
“내가 거느린 놈들이야 파우스트가 적당히 잘 구슬려 줄 것이고……. 기브리드와 피로트-코크리가 데리고 있는 놈들을 조종할 놈이 필요한데.”
퀘스트 홀로그램 창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마魔의 조각 모음]선보상: 마왕의 조각의 권한 일부 위임
―레의 군단 통솔 권한: 파우스트
―기브리드의 군단 통솔 권한: 투표 후 선정
―피로트-코크리의 군단 통솔 권한: 투표 후 선정
(48시간 이내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적임자를 선정하십시오.)
(동의를 얻는 방법에 제한은 없습니다.)
더 이상 퀘스트를 의심하는 유저들은 없었다.
마왕군 내에서 파우스트와 동등 또는 그 이상의 지위를 얻을 수 있으며, 미들 어스 전체로 따져도 자신의 명성을 한껏 드날릴 수 있는 기회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으니까.
“끼히히힛! 너희들이 모두 뽑혀야만 우리가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너무 싸우지들 말라고! 시간은 48시간 주겠어!”
이기심이 극한까지 발휘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피로트-코크리가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48시간,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그것으로는 결정이 될 리가 없다. 몇몇의 마음 맞는 그룹이 있다지만 그것으로 ‘과반수’를 넘기는 힘들 테니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투표 따위가 무의미해 질 수도 있지.’
[동의를 얻는 방법에 제한은 없다.]너무나 마왕군적인 말투가 사실상 또 다른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지 않은가. 이곳에 모인 유저가 에즈웬의 추기경들처럼 화기애애하게 투표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자는 없으리라.
‘큭큭, 어차피 세력도 없는 나같은 놈은 대행으로 뽑히기 힘들겠지. 차라리 다른 쪽에 표를 팔아먹는 게 낫겠어.’
회유, 설득, 강요, 협박, 폭력…….
마왕군 소속 유저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런 퀘스트를 거절하는 바보는 그곳에 없었다.
‘자, 어떤 방법으로들 하려나…… 가장 간단한 방법도 있긴 한데 말이지.’
제각각의 꿍꿍이를 지닌 채, 모든 유저들이 동시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 * *
“후우, 다들 무사히 나왔죠? 못 나오신 분 있으면 손 들어 주세요.”
기정의 얼토당토않은 농담에 반응한 사람은 람화정 뿐이었다. 람화정은 기정의 입 주변을 얼리고 있었다.
“다시는 들어갈 수 없겠죠.”
개미굴처럼 보였던 주신의 거처 입구는 유저들이 빠져나오기 무섭게 폭삭 주저앉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금서에 적힌 내용과 주신께서 하고자 하셨던 말씀이 같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지만……. 역시 아쉽군요. 기왕이면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는데.”
베르나르는 아쉬움에 사무친 목소리로 이제는 완전 평탄화가 되어 버린 입구를 살폈다.
이하도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베르나르가 말했던 것과 아흘로의 의지는 같았다.
직접 나설 수 있었음에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 마를 없애기 위한 것은 오직 마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사실상 앞으로 벌어질 전투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힌트나 다름없었다.
‘근데 마지막 그 얘긴 뭐였지? 자미엘과 마를 같이 없애야 한다는 얘긴가?’
아직 이해할 수 없었던 말에 대해 생각하던 이하는 조금쯤 넋이 나간 얼굴의 신나라를 발견했다.
“나라 씨? 괜찮아요?”
“아, 네…… 마지막에 그래도 한 마디를 더 듣긴 한 것 같은데.”
“얼라리, 그러고 보니 신 여사님 2차 전직에 관한 얘기는 사실상 없던 거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나온 얘기도 그렇고. 어째 통 알쏭달쏭한 소리만 하던데.”
주변을 살피던 기정이 이하와 나라에게 돌아와 물었다.
“기정아, 넌 어디까지 들었냐?”
“무슨 순결하고 깨끗하고~ 하던 부분? 형은?”
“나도 거의 그거까지 들었는데. 뒤에 무슨 말이 들려온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이하와 기정, 두 사람에게 있어 아흘로의 마지막 말은 신나라의 2차 전직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이 어째서 나오게 되었는가.
애당초 신나라가 ‘신속이 무엇이냐’라고 물었기 때문에 나온 답변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말도 완전히 생뚱맞진 않겠지.’
문제는 신나라가 그 말을 듣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 얘기만으로 2차 전직이 완료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나라만이 볼 수 있는 2차 전직 퀘스트 키워드와 연관이 있는 부분을 접목시켜 해당 방면으로 해석한 후, 다시 모종의 행동을 해야만 될 테니까.
‘분명 석문 앞을 빠져나올 때 한 마디 더 들렸어……. 그게 신속이라는 의미인가.’
신나라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