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201
마탄의 사수 (1201)
람화연과 라르크는 잠시 멍한 얼굴로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대답은―.”
“없습니다.”
“말도 안 돼…….”
람화연은 테이블을 강하게 짚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라르크는 계속해서 귓속말을 시도하며 현재 유저들의 상태를 듣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
“제기랄. 어떻게 빼낸 거지? 그 많은 숫자를 빼낼 수 있다고? 아니, 시티 페클로를 포기할 수 있다고?”
“하우스하우스를 죽인 게 아니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카일이 하우스하우스를 죽인 이유에는 ‘진짜 의도’가 있었던 셈이죠.”
“네? 카일이 하우스하우스를…….”
라르크는 딱히 질문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람화연은 그 말에 답할 수 있었다.
결과까지 알고 나자 마침내 모든 일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람화연은 다리에 힘을 주고 바로 섰다.
그녀는 라르크를 보며 자신이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카일이 하우스하우스를 죽였던 건…… 사우어 랜드에 대한 경고의 의미와 함께, 실시간 감시 기능이 있는 우리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저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용도라고 생각했죠.”
카일이 A위치의 하우스하우스를 죽이면서 B위치의 하우스하우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었던 이유. 그런 행위들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이유!
라르크가 람화연의 말을 이해한 것은 몇 초 정도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사이에 시티 페클로에서 인원들을 빼내고 있었다? 눈속임용으로 카일을 이용…….”
“아마도.”
람화연은 라르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런 의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었다.
단순히 사우어 랜드에 대한 경고나 〈신성 연합〉의 전력 약화 외에도, 자신에게 하우스하우스들의 감시를 집중시킴으로써 시티 페클로에서 마왕군 소속 유저들이 이동할 ‘틈’을 벌어 준 것이다.
“정확히는 카일 스스로가 한 게 아니겠죠.”
람화연은 말했다. 라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군 소속 유저들 중에서도 악명 높고 똑똑한 유저들이 있다지만, 이렇게 대담한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쨌든 마왕의 조각에게 마기를 부여받고 또 마왕의 조각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 모든 입장에서 자유로운 사람, 라르크와 람화연은 카일과 함께 있을 그 사람을 떠올렸다.
“시티 페클로를 포기하고― 아니, 스스로 폭파시켜 버리는 건 단순히 마왕의 조각들에 대한 단서를 〈신성 연합〉이 찾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왕군 자체의 전력도 약화시키는 거죠.”
수읽기나 비즈니스, 어느 한 종목이라도 두 사람이 치요에게 밀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치요의 지능은 이들과는 질이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치요 그 인간, 본인이 다시금 〈제3세력〉으로 올라서기 위해 두 개 진영의 힘을 전부 빼놓는 작전을 실천한 거예요.”
어둠의 밑바닥에서 굴러 봤던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치밀하고도 정밀한 계략이었다.
〈신성 연합〉 요새의 외부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은 잠시 후였다.
“사, 사령관님! 요새 외부에― 하얀 눈의 정령사 일행이 나타났습니다!”
“돌아왔다고요? 그들이―.”
“그렇습니다! 네 사람 모두 상태가 위급하여 응급처치를 하는―.”
“가 보죠!”
람화연과 라르크는 곧장 달려 나갔다.
* * *
그 즈음 치요와 마왕군 유저들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감지됩니다. 마지막 트랩이었던 〈공간 잠금〉까지 모두 실시되었습니다. 아마 1차 통신 방해, 2차 폭발에 이어 3차 공간 잠금까지 되었으므로……. 시티 페클로는 사실상 매몰되었을 겁니다.”
함정의 발동 알람이 연거푸 울렸고, 그럴 때마다 마왕군 유저들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로 들어올 거라 믿었던 유저가 몇 없었기 때문이다.
“봤죠? 삐뜨르가 시티 페클로로 침입에 성공했는데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니까. 어떻게든 오는 게 당연한 거예요.”
치요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시티 페클로에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건 당연히 그녀였다.
그리고 ‘기왕 나가는 거’ 시티 페클로를 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또한 그녀였다.
〈신성 연합〉 유저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을 들였을 때, 그곳에 설치한 함정이 발동되게끔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까지 추가하는 건 덤이었다.
당연히 시티 페클로를 지난 몇 달 간 근간으로 삼았던 마왕군 유저들은 반대하고 싶었으나 함부로 의견을 내지 못했다.
‘미친 여자로군…… 괜히 〈뱀파이어 퀸〉이니 뭐니 하면서 세력을 이끌었던 게 아니야.’
‘단순한 악당 단체가 아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시티 페클로 〈내부〉의 자료는 모두 우리들에게 챙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스 세타스와 길드 시날로아의 길드 마스터, 두 사람에게 시티 페클로 내성 안에 있는 정보나 자료를 확보하게끔 말했을 뿐이다.
만약 그녀가 마왕의 조각들이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장소와 관련된 단서를 알고 싶었다면 본인이 직접 나섰을 터.
그러나 시티 페클로를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치요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치요의 생각대로 흘러가는 건 그들에게도 썩 좋은 게 아니었다.
언젠가 은근하게 치요가 제시했던 ‘내 편에 붙어라’는 배신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그들은 아직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 와중에 근거지인 시티 페클로가 완전히 털렸으니 마음 한구석이 영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앞으로 어디를 가야 할까요? 시티 페클로에 정말 녀석들이 왔으니…….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한 군데뿐인 것 같은데.”
치요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러네. 일단 잠시 나와 있자는 제안 때문에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어디 가지? 시티 페클로가 박살 났으면 우리도 끝 아냐?”
“마왕의 조각을 찾아야 하지 않나?”
주변의 유저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메데인과 칼리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도 일반 수준보다는 훨씬 우수한 두뇌를 지닌 유저들이기에, 마침내 치요의 무서움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정보들을 우리에게 챙기라고 한 거였어. 어차피 본인이 단서를 찾지 않아도 되니까!’
시티 페클로를 잃은 상태에서 그저 신대륙 동부를 떠돌기만 할 것인가?
벌써 동요하는 마왕군 소속 유저들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두 분께서 우리가 갈 새로운 장소를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안내 좀 해 주시겠어요?”
치요는 시티 페클로 안에 있던 단서와 정보들을 조합하여, 마왕의 조각이 위치한 장소가 어디인지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한 번 얽히면 벗어날 수 없는 마성의 지략.
메데인과 칼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걸 알아서 어쩌려는 거지?’
‘본인이 마왕의 조각들을 터치하려고?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없다. 아무리 마탄의 사수, 이 NPC가 강력하다지만 그럴 리 없어.’
현시점에서 마왕의 조각을 건드린다면, 마왕군 소속 유저들 전원이 퀘스트 실패가 된다.
그 자리에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장소를 요구하는 걸까?
설령 마왕군 소속 유저들에게 이긴다 해도 마왕의 조각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
그들을 중간에 건드리면 마왕 소환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현재 힘을 쏟고 있는 마왕의 조각들은 어떻게 되는가.
‘도대체 이 여자가 노리는 건 뭐지.’
‘빌어먹을, 마왕군 페널티가 예전이랑 비슷하다면……. 이제 며칠 후에 파우스트가 접속할 텐데, 그 안에 뭐라도 정해야 하는 건가.’
치요와 카일이 나타나기 전까지, 〈백룡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메데인과 칼리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휘둘리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닌 카드는 모두 내비쳤고, 적이 지닌 카드는 무엇인지, 심지어 카드가 몇 장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게임을 하는 셈이었으니까.
치요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마왕군 유저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 * *
―어떻게 됐다냐.
―우선 네 명 모두 살아 있다곤 합니다. 다만……. 건진 정보는 없는 것 같다고 하네요.
신나라는 〈신속의 기사〉 스킬을 활용, 서로의 손을 맞잡게 하여 시티 페클로의 최외곽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렇게 딸려 가는 도중에도 페이우는 스킬 캐스팅을 멈추지 않았고 그들을 뒤덮친 화마를 향해 자신의 범위 스킬을 사용했다고 한다.
프레아가 대지의 정령을 이용해 황급히 방벽까지 사용하여 힘과 힘의 맞대결에서 퍼지는 후폭풍을 막았으나, 대폭발이 일어난 시티 페클로의 지하 공간 전체는 매몰되어 가는 상황!
이미 후폭풍의 여파로 HP의 상당수를 잃은 그들이 시티 페클로의 잔해로 다가가 무언가를 건질 겨를은 없었다.
만약 프레아의 무지개의 정령이 웬만한 수준의 〈공간 잠금〉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면, 그들은 무사 복귀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
―쩝, 아쉽군. 그나저나 치요 그 여자, 제갈공명도 아니고……. 대담하구만. 성문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으면 아주 그림이었을 텐데.
김 반장의 말에 이하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먼저 성을 포기하고 그곳에 함정을 설치한 후 자신들을 기다리는 전략을 취할 거라는 건 이하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내가 갔어도 별 수 없었겠지.’
프레아 외 3인 중 이하 자신이 포함되었다 해도 그것을 완벽히 간파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다. 〈꿰뚫어 보는 눈〉이라고 모든 걸 밝혀내는 건 아니니까.
‘그럼 이제 엘리자베스 잡고 가는 방법밖에 없나? 카일도 상대해야 할 텐데. 마왕의 조각을 언제 찾을 수 있지? 고작 79일 남았는데, 이젠 시티 페클로가 목표도 아니야!’
애당초 목표는 시티 페클로였다.
엘리자베스를 잡든, 침투를 하든 시티 페클로에서 추가 정보를 알아내고자 했던 게 〈신성 연합〉의 목표였다.
그러나 시티 페클로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마왕의 조각들이 숨은 위치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것도 치요와 카일을 상대하는 도중에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그 일에만 시간을 오롯이 쏟아도 79일은 부족할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엘리자베스 사살’부터 끝을 내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갑작스런 목표의 상실로 인해 이하의 머릿속에서 모든 계획이 엉키고 있었다.
이하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김 반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장님?”
“뭘 꾸물대? ‘그쪽’이 실패한 이상, 당장 사용할 카드는 너 하나밖에 없는 거 몰라?”
“그, 그거야 그렇지만―.”
“어쨌든 머리 좋은 인간들이 많으니까 분명 여러 가지 수가 나올 거다. 재정비 시간이야 좀 필요하겠다만,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돼.”
이런저런 계획이 꼬인다? 아니, 꼬아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쪽은 그쪽대로 하게 두면 된다. 그리고 이쪽은 이쪽대로 움직이면 된다.
처음부터 ‘이쪽’의 목표는 오직 하나, 엘리자베스 사살 뿐.
이하는 눈을 끔뻑였다. 그의 표정이 점점 평소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죠. 애당초 투 트랙으로 굴리자고 했던 건 저였으니까.”
〈신성 연합〉이 이대로 이하의 성공만 기다릴 리는 없다.
람화연과 라르크는 반드시 다른 방법을 찾아, 치요를 추격할 기틀을 마련할 것이다.
“그래, 이 셰끼야. A전장에서 아군이 당했다고 B전장까지 사기를 잃을 필요는 없는 거다. 우선 엘리자베스가 노리는 타깃들 거처부터 한 바퀴씩 돌아보자.”
어느 때보다도 큰 압박감이 느껴져야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이하는 부담을 갖지 않았다.
“넵, 반장님.”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주점 밖을 향하는 김 반장의 등이 이하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주점 밖으로 나가려는 이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하이하 님이시죠? 지금 밖으로 나가시면 곤란할 겁니다.”
“누구―.”
“쉿.”
후드를 뒤집어쓴 인물은 이하의 팔을 잡으며 그의 입을 막았다. 젤라퐁의 촉수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