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374
마탄의 사수 외전 (23)
“저 정도의 실력이면서도―.”
브로우리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2분대 분대장. 그런 그녀도 자신의 실력에는 만족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않은가.
놀란 건 이하도 마찬가지였다. 이하가 기억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하가 처음 엘리자베스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이미 완성형―천재 저격수였다.
괜히 전대의 [명중]이라 불리는 자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숨어 버렸다고 생각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며, 저격수가 가장 조심해야 할 근거리 접근전에 대한 방비도 완벽했다.
하물며 이하 자신을 가르칠 때에는?
카즈토르의 손아귀에서 도망친 그들을 쫓았을 때, 〈커브 샷〉을 가르치던 엘리자베스는 이하에게 있어서 ‘큰 스승’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단순히 NPC니까, 미들 어스의 시스템이 부여한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김 반장님과도 통하는 저격의 묘. 그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어.’
믿고, 쏜다는 것.
이하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큰 역할은, 어쩌면 김 반장이 아니라 엘리자베스가 이뤄 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재능파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천재가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천재지. 천재는 맞아. 다만 천재이면서도―.’
노력의 중요성을 아는 자였구나.
‘하긴 당연한 건가. 연습이 아니면 안 된다니까. 반복 노력은 기본 중의 기본! 여윽시 엘리자베스다.’
이하는 뿌듯한 감정으로 체력 단련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충분한 재능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그 재능의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자. 이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서도 브로우리스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이하는 보았다. 당연히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읽을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그는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는 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도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저토록 노력한다. 그런데 브로우리스 자신은?
실전에서 사용될 능력의 차이는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제도상의 채점 기준’으로 보아, 자신은 일반적인 〈총사대〉 훈련 단원보다도 못하지 않은가.
‘제도를 바꿔 버릴 수 없다면…… 적어도 여기가 실전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자신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당장 〈총사대〉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고 자신에게 그것이 필요하다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어떻게든 보완할 수밖에 없다.
이하는 그제야 깨달았다. 조금 전 봤던 테스트가 의미하는 게 바로 그것일지도 몰랐다.
시험의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모두가 같은 시점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동은 어떠했는가.
브라운은 자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달리며 일부 장전 절차를 진행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을 해냈다.
게거품을 물 정도로 힘든 일이었으나 그는 남들에게 티 하나 내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신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우 얇은 차림새로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여, 그녀 스스로가 부족하다 느낀 ‘신체 능력’을 보완했다.
브로우리스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속도를 증명해 냈다. 하지만 ‘장점을 드러내는 것’이 이번 시험의 목표가 아니었다.
‘단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 설령 해당 시험 내에 그것을 풀지 못했더라도―.’
그 이후에 그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내라는 것.
찰스와 류드밀라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우선 이걸 느낀 정도로 끝나는 게……. 엥?’
“어? 엘리자베스가―.”
벤치 옆 덤불 뒤에 숨어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던 브로우리스와 이하의 자세가 다시금 낮아졌다.
그것은 지금 막 그들이 있던 위치를 지나간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달리던 그녀는 갑자기 연병장 옆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이하, 브로우리스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엘리자베스는 그 상태로 어딘가를 보았다.
두 사람은 그녀의 시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또!?’
“한 사람이 더…….”
기숙사에서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조금 더 건장한 실루엣에는 머스킷의 기다란 형태까지 포함된 모습이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기숙사에서 나온 실루엣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후다닥 움직이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쪽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구역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고…….
“어, 어떻― 잠깐―.”
‘브로우리스 소장님! 으아아아, 엘리자베스가 온다! 아니, 엘리자베스만이 아니라―.’
하필 바로 그 구역이 브로우리스와 이하 그리고 엘리자베스 모두가 숨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이리라.
파사삭, 와사사삭―!
수풀이 짓밟히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리스? 너도 개인 훈련하러?”
“그, 저기, 아뇨.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우선 숨자!”
브로우리스가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저었으나 엘리자베스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곧장 행동부터 취했다.
그녀는 브로우리스를 완전히 제압하듯 막으며, 그의 자세를 더욱 낮게 만들었다.
‘이런, 이런― 이거 완전…….’
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황당하면서도 어쩐지 즐거운 감정이 일었다.
엘리자베스와 브로우리스가?
하물며 현재 상태의 ‘신체 능력’으로는 엘리자베스의 제압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올 수 있는 브로우리스가 순순히 당해 준다고?
이하의 입가에 이유 모를 흐뭇한 미소가 걸릴 무렵, 검은 실루엣은 엘리자베스―브로우리스로부터 15m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두고 보자……. 헤스콕 집안이라고 나댔겠다. 그년, 훈련소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어.”
중얼중얼거리는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달빛을 제법 밝게 반사시키는 금발에 가까운 갈색 헤어 컬러.
브라운은 기숙사의 창문에서 보이지 않을 시야각에 선 후, 머스킷을 들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근본 없는 그 자식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그렇게 뛰는 거지? 교관님도 마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빌어먹을 망할 놈.”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그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흑색 화약을 밀어 넣고 그것이 가지런히 되도록 흔들어 준 후, 꽂을대로 꾹꾹 누르는 일련의 동작…….
거의 1분 가까이 한 그 동작 이후, 그는 머스킷을 뒤집어 다시 모든 화약과 탄환을 빼내는 식이었다.
‘장전 훈련……. 그리고 집안이 잘 산다고 했음에도 ‘연습’일 때에는―.’
심지어 그 화약 중에서도 대부분은 다시금 종이 포장에 쏟아 부어, 재활용을 한다.
비록 그가 훈련을 하게 만든 이유(?)는 불순했을지 몰라도 훈련의 방식이나 내용 그리고 모두가 녹초가 된 시점에서도 개별적으로 연습하려는 모습 자체는 대견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풉, 브라운 가문이라 콧대만 높은 도련님인 줄 알았더니…… 근성은 있네. 그치?”
“……그, 그러네요.”
“하지만 재수 없는 건 맞는 것 같아. 지가 먼저 너한테 시비건 거는 생각도 안 하나?”
엘리자베스와 브로우리스도 브라운의 연습을 훔쳐보고 있었으니까.
다만 제3자의 시점에서 보는 이하에게는 브로우리스의 시선은 두 군데를 번갈아 왕복하고 있다는 게 엘리자베스와의 차이일 것이다.
브라운을 한 번 보고, 엘리자베스를 한 번 훔쳐보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억울하지도 않았니? 입단 시험 때 어떻게 그리 당하고만 있어?”
갑작스레 휙, 고개를 돌린 엘리자베스와 브로우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브로우리스는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평소의 목소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그, 그게― 당하려고 한 건 아닌데요. 제가 실제로 잘못한 거기도 하고…… 못 맞혔으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뭐라고?”
웅얼거리는 그에게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가까이 했다. 브로우리스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그게― 그러니까…….”
“하긴, 생각해 보면 한 발 실패한 와중에 한 발을 더 쏴 버린다는 게 대담한 걸지도 모르겠다. 으음, 근데 그 정도 타깃도 못 맞추는 거 보면……. 아! 이렇게 하자!”
브로우리스를 몰아치는 건지, 달래 주는 건지 엘리자베스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 기쁜 표정으로 브로우리스의 손을 잡았다.
“앗, 아아!? 저, 저기, 이러시면…….”
“응? 뭐가 이러시면이야? 그게 아니라! 너는 맞히는 걸 못하고, 나는 뛰는 걸 잘 못하니까! 우리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서로 가르쳐 주기 어때? 너도 분명 숨겨 놓은 게 있을 거 아냐. 나도 더 잘 [명중]시키는 법 알려 줄 테니까! 응?! 좋지? 괜찮지?”
푸우우우웁―!
이하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은신 계통 스킬이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엘리자베스와 당황해서 손도 빼지 못하고 있는 브로우리스.
그리고 그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장전 훈련을 하는 브라운의 그림이라니!
“그, 그렇게 하기로. 네, 그래요, 그럼.”
“좋아! 아참, 근데 왜 계속 존댓말이니? 너 몇 살이야?”
“스, 스물둘…….”
“나랑 동갑이네! 말 놔, 친구야. 나도 앞으로 편하게 불러도 되지? 리스?”
이하는 다시 한 번 껄껄거리며 웃었다.
지금까지는 편하게 부른 것도 아니었다는 이야기인가?
‘하여튼 엘리자베스 선배답구만!? 아니, 어렸을 때는 더 심한 것 같은데……. 큰일이네, 큰일이야.’
이하가 거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고 있을 때, 브로우리스가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말 놓으라니까 그러네.”
“그……래…….”
“그치!”
“……요.”
끝끝내 존댓말을 하는 브로우리스와 답답하다는 듯 하지만 아군을 만들었다는 기쁨으로 오묘한 표정을 짓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씩씩대며 장전하는 브라운의 모습. 그것이 메모리얼 던젼 2항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화면이 암전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이하는 낯선 천장을 보고 있었다.
“흐, 흐흐…… 음?”
“고객님, 이제 곧 착륙 예정입니다. 시트를 제자리로 돌린 후, 벨트 착용 부탁드리겠습니다.”
“시트…… 아. 아아!? 네, 넵!”
스튜어디스의 안내에 따라 이하는 좌석을 바로 잡았다. 복도 너머에서 모친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잘도 잔다, 무슨 꿈까지 그렇게 꾸니?”
“어우, 그러니까요. 깜빡 졸았네.”
“깜빡은 무슨. 두 시간도 넘게 자 놓고……. 하여튼 머리도 단정히 하고! 준비해. 예비 사돈댁 만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메모리얼 던젼의 기억이 그토록 강렬했던 것일까. 아니면 출발하기 직전까지 미들 어스를 즐겼기 때문일까.
이하는 괜스레 멋쩍었다. 그냥 놀러가는 자리도 아니고, 상견례를 하러 가면서 이렇게 푹 잠을 잘 수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는 웬만한 게 다 있다는 점이었다.
이하 또한 람화연이 공항에 나와 있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기름종이로 얼굴을 닦아 내고 눌린 머리에 어떻게든 볼륨을 주며 외모에 신경을 썼다.
곧이어 비행기가 착륙했다.
거친 바퀴 소리와 에어 브레이크 소리가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이하는 다시금 모친에게 당부했다.
“아참, 엄마, 말씀드렸지만 아마 여자 친구가 나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음……. 느낌상 썩 조용하게 나와 있지는 않을 테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놀랄 일이 뭐 있겠니. 얼른 보고 싶은데.”
모친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이하는 어느 정도 안심했다.
실제로 람롱 그룹이나 람화연, 람화정에 관한 일들은 이미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겠지…….’
일등석 우대에 따라, 이하와 모친은 기정, 보배, 나라보다 먼저 입국 수속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작성해 두었던 입국 신고서를 내고, 입국장을 향해 걸어가며 이하는 묘한 기분을 받았다.
그것은 이하의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홍콩 공항은 어쩐지 무섭네. 왜 이렇게들 쳐다보는 것 같지?”
통일된 정장에 인-이어를 착용한 덩치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인천 공항의 가드와는 사뭇 다른 차림이었으나 그 숫자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게요……. 뭔가……. 경비들이 예민해 보이네요. 쩝, 우리 일등석 손님이라 특별히 문제 일으키는 사람들도 아닌데.”
하물며 그 많은 인원들이 이하 자신과 모친을 감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에는 기분이 상할 지경이었다.
물론 타국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할 이유는 없다. 어서 공항을 빠져나가고픈 마음에 재빨리 짐을 찾으며 발걸음을 서두를 뿐.
그렇게 쫓기듯 공항의 입국장 게이트를 빠져나올 때, 이하와 이하의 모친은 깨달았다.
그 수많은 경비가 홍콩 공항의 공식 치안 요원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설 경호 업체 요원이었다는 것을.
“……이하야? 이거였니?”
“글……쎄요.”
입국장에는 다른 사람이 설 자리도 없었다.
그리고 곧 이하도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압도적인 크기의 현수막과 현수막도 압도해 버릴 수의 경호원들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환― 하이하 ―영]한국에서 오신
귀중한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林龍]람화연이 상기된 얼굴로 현수막 아래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