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86
마탄의 사수 (186)
“너무 비웃지 마세요. 하이하 님 정도의 초고수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종족 특성을 살려가면서 드루이드 플레이 중이거든요.”
“비웃은 거 아녜요. 재미있어서 그렇지. 그리고 제가 무슨 초고수예요. 그냥 방아쇠 몇 번 당긴 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여전히 겸손하시네요. 그런 점이 더 멋있더라.”
“에잇, 자꾸 치켜세우지 말아요. 우리끼리 낯간지럽게 무슨.”
이하와 징겅겅은 그렇게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산기슭에 접어들었다.
산 중턱만 되어도 눈이 내려 있는 설산 지역은 정해진 등산로가 아니라면 섣불리 오르기 힘든 구조였다.
“휴우, 이제 정비 좀 하고 가요. 여기서부터 사냥터거든요.”
“아, 그래요?”
“이쪽 방면으로 가면 앙고라 오크 부락이고, 거기서 더 위로 가면 예티 서식지고. 유저들이 많긴 한데 그래도 조심해야죠.”
징겅겅은 능숙했다. 샤즈라시안 연방에서 이미 꽤 오랜 시간 있었던 사람처럼.
“그럼 이제 소환할게요.”
“오! 오랜만에 본다. 댄스댄스 레볼루션!”
“그, 그런 이름 아니라니까요.”
여전히 부끄러워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나무 뒤로 숨어 들어가진 않았다. 징겅겅의 자연과 합일되는 동작들을 보며 이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푸하학, 역시 짱이야.”
그렇게 춤을 추던 징겅겅이 하늘을 향해 손짓하며 휘파람을 불 때. 설산의 눈을 휘날리며 빠른 속도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음?”
햇빛을 등지고 실루엣만 보이는 거대한 생명체는 이하의 눈에 제법 낯이 익은 모양새였다.
“검독수리?!”
급강하 하며 공격? 이런 설산에 웬 검독수리? 이하가 허밍 버드를 들어 올리려 하자, 징겅겅이 막아섰다.
“이래서 마을에선 소환할 수 없었다니까요.”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악――!
“헐……. 뭐예요, 이게?”
“이제는 육포 같은 먹이는 먹지도 않아요, 이 녀석.”
당연히 안 먹겠지. 날갯짓 몇 번을 했을 뿐인데 헬리콥터의 로터처럼 눈을 흩날리게 만드는 거대 까마귀를 보며 이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크기는 대체 뭘까. 까마귀는 아무리 작게 봐줘도 이하보다 컸다.
까아아악――!
“우왁!”
“헷, 하이하 님을 알아보나 본데요?”
그러나 반갑지 않았다. 까악― 거리며 고개를 들이미는 거대 까마귀의 부리가 이하의 얼굴 앞까지 육박했을 때 남은 감정은 공포뿐이었으니까.
“부, 부리 치워 주세요! 눈알 파먹을 것 같아.”
“시험해 봤는데 먹지는 않더라고요. 가지고 놀다 뱉어 내던데.”
“네? 잠― 잠깐, 징겅겅 님! 같이 가요!”
징겅겅은 싱글싱글 웃으며 계속 산을 올랐다.
이하가 재빨리 징겅겅의 뒤를 쫓았고, 주인이 장난치고자 하는 마음을 안다는 듯, 초―거대 까마귀가 이하의 주변에서 푸드덕거리며 배회했다.
* * *
그렇게 다시 40여 분을 더 올라왔다. 이제는 길다운 길은 거의 끝난 상황. 설산의 중턱 부근까지 넘자 이하의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
“으으으, 춥다! 이 근처예요? 뭐가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네. 그래서 설산토끼 정도밖에 없어요. 이쪽은 몬스터도 없으니 안심이죠.”
“근데 그 설산토끼라는 게 뭔데요?”
“제가 이번에 길들여야 하는 동물이에요.”
“아……. 음, 그럼 그냥 저 까마귀랑 같이 하면 되지 않아요?”
괜히 까마귀에게 자극이 될까 눈짓만 했으나, 눈치 빠른 새는 그것도 알아보고 까아아악―! 하며 울었다.
“설산토끼는 자이언트를 싫어해요. 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인간 유저가 꼭 필요하거든요. 이제 돌아가 줘, 다음에 또 부를게.”
까악―!
징겅겅은 다시 까마귀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이하는 징겅겅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설산토끼를 끌어내는 미끼가 되어 달라?”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냥……. 어차피 싸울 일도 없거든요. 죽여서도 안 되는 거니까. 설산토끼가 나타날 때까지 계셔 주기만 하면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할게요. 도와주세요, 이하 님.”
이런 일이었나. 이하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아다만디르까지는 지도에 안 나와 있어. 이 설산 넘어 나오는 산맥의 길을 모르니, 징겅겅이랑 같이 가야겠지.’
징겅겅은 이하에게 위치를 가리키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바짝 엎드려 모습을 감췄다.
이하는 순식간에 홀로 남은 허수아비마냥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다. 칼바람이 쌩쌩 불고 바닥에 쌓인 눈가루가 휘날리는 설산 속에서 토끼를 끌어내는 미끼 역할이라.
‘나 나름대로 차세대 삼총산데 말이지.’
불평을 해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이하는 제자리에 서서 블랙 베스를 들고 이리저리 만져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아무리 정보를 알고 있다 한들, 실제로 다뤄 본 적은 없으니까. 이 무게와 길이, 조준 방식에 최대한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무겁고 길어. 당연히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서겠지만……. 확실히 기동성은 떨어진다.’
이동할 땐 머스킷, 적진에선 스킬사용을 통한 SASR로의 변화?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쿨타임도 그렇지만 마나가 부족할 수 있다. 총 마나가 1,080인데 스킬 한 방으로 500이 깎이는 거야. 거기서 차분한 마음이나 스나이프 같은 스킬, 혹 마킹 같은 거라도 쓴다고 하면…….’
게다가 지속감소도 있다. 시간당 50으로 결코 높은 건 아니지만, 마나가 0이 될 시 스킬은 자동으로 해제된다. 즉, 무기 변화와 여러 스킬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해제 될 가능성이 있다.
‘자연회복으로 마나가 충분히 찰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스킬을 쓸 수 있어. 즉, 머스킷의 형태는 아예 포기하고 계속 SASR의 형태로 들고 다니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아마 저격 포인트만 적절히 찾고 나면, 스킬 따위는 이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언제나 만약이 있지 않던가. 이하는 〈블랙 베스: SASR〉을 활용한 다양한 전투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 보았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음?’
그러던 중 멀찍이 산 아래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모습이 보았다.
설산에 걸맞는 하얀 로브들이지만, 그것들이 단체로 꾸물거리는 모습은 이질적이다.
“설마……?”
이하는 블랙 베스를 다시 어깨에 걸고, 허밍 버드의 스코프를 통해 아래를 살폈다.
‘젠장, 마킹도 안 걸린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잘 찾냐.’
그리곤 투덜거렸다. 아니, 애초에 샤즈라시안 연방을 택한 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징겅―”
“쉿―! 나타났어요! 가만히!”
징겅겅에게 짜르의 등장을 알리려 했으나, 자이언트 드루이드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자세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뀨?
“―응?”
등 뒤에서 귀여운 소리가 들려 이하는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탄식했다. 추운 지방에서는 생물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기는 미들 어스다. 설산토끼의 크기는?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군…….’
앞니가 사람 허벅지만 한 거대하고 하얀 토끼가 코를 꼼지락대며 이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 *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안 돼요!
―그럴 수가 없어요! 아래에서 짜르 길드놈들이 접근 중이에요, 얼른 도망가야―
―안 돼요! 이따 도망가는 건 어떻게든 할게요, 우선 기다려 주세요!
―그럴 시간이―
그러나 이하의 귓속말을 마저 듣지도 않고 징겅겅이 살금살금 다가오다 확, 설산토끼를 덮쳤다.
뀨, 뀨웃―!?
“잡았다!!”
잡았다? 헤드락을 걸었다! 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하의 주변을 돌며 코를 찡긋거리던 거대 설산토끼에게 매달린 자이언트. 힘 좋은 설산토끼는 지랄발광을 하며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뀨우, 뀨! 뀨뀨!
“가만히 있어! 내가 바로 드루이드란 말이야!”
“뭐하는 거예요? 아무리 산이라지만 짜르가 올 때까지 넉넉잡아 7분, 아마도 5분쯤이면 도착할 거라고요!”
“그래도― 우아아아악! 절대― 아아악, 총 쏘면― 안――― 돼요! 토끼가 도망― 그아아아앗!”
설산토끼가 머리를 흔들 때마다 자이언트의 거구가 덜렁거리며 공중에서 휘날렸다.
자이언트 자체가 인간보다 월등히 큰 존재건만, 그 거구를 흔들어 버리는 토끼의 강력함이란…….
이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잠시 놀랐지만, 그러고 있는 것도 사치였다.
‘뭐하는 거야?! 그나마 발견은 내가 먼저 했지만― 선제공격 후에 바로 도망갈 수밖에 없을 텐데.’
아직 짜르의 인원들은 수색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설산토끼 영역으로 온 사람들이 이하와 징겅겅밖에 없고, 설산에선 ‘발자국’을 따라 추적하기 쉽다.
산과 눈이 결합되어 저들의 등산속도를 낮추겠지만 그럼에도 5~6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으리라.
“착하지, 우리 토끼~? 오빠랑 친해지자~? 나 드루이드야, 자연의 친구!”
뀨규구! 뀨규우우웃!
마치 낚시꾼과 물고기의 힘겨루기처럼, 징겅겅과 설산토끼는 끈질기게 달라붙어 서로의 힘을 주고받았다. 이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드루이드는 자연 친화적인 직업, 소환수나 테이머와 다르게 그들은 여러 동, 식물과 ‘친화력’을 높이는 것으로 스킬이나 레벨을 올린다고 했다.
‘저게 친해지는 모습이라고? 뭐, 인간도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니 그렇게 보자면―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냐!’
피를 흘려 가며 설산토끼에게 매달린 징겅겅이나, 자이언트를 땅에 갈아 버릴듯 날뛰는 설산토끼를 보며 이하는 마음이 급해졌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보통 5분―――― 이면 되는데――― 이 녀석이 워낙 힘이――― 끄아앗! 조금만――― 더!”
이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빠듯하다. 한 발이라도 쏠 수 있다면 짜르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텐데.
‘그럼 토끼가 도망간다고? 빌어먹을, 토끼랑 친해지다가 우리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데.’
게다가 도망가는 건 어떻게든 하겠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이하는 징겅겅이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말이 궁금했다. 짜르의 인원, 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상황은 얼추 이해했으리라. 그게 뭐냐고 더 묻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근데도 자신감이 있다 이거지? 공간 잠금 스크롤을 모르진 않을 테고, 200m쯤까지 접근하면 이제 귀환스크롤도 못 쓸 텐데.’
이러는 와중에도 짜르는 계속 접근 중이었다. 이하는 설산토끼와 씨름하는 징겅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짜르와……? 아니다, 징겅겅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배신자의 얼굴이 아니다.
이미 사스케를 통해 뒤통수를 맞았지만 그때와도 다르지 않은가. 이하는 상황을 불리하게 만들어 가는 자이언트를 믿고는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어 확대, 주변을 살폈다.
최적의 이동 루트를 짜서 즉각 도망가야 할 테니까.
‘이쪽으로는 길이 끊긴다. 빙벽을 타고 등반하지 않는 이상 오를 수 없어. 결국 예티 존으로 빠르게 우회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아.’
그쪽 방향에서 짜르가 올라오고 있다. 내려가다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그 길은 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