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754
마탄의 사수 (754)
이하는 퀭한 얼굴로 보틀넥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모신나강이 사라졌어. 하얀 사신의 모신나강이…… 이거 뭐지? 혹시나 싶어서 다섯 번이나 확인했는데……. 블랙 베스에 추가 효과가 생긴 것 같지도 않고.’
모신나강이 사라지고, 블랙 베스의 모습이 비록 똑같더라도…… 이하의 기대까지 사라졌던 건 아니다.
모신나강의 공격력이야 어차피 블랙 베스보다 낮지 않던가?
그래서 딱 한 가지, 모신나강에서 꼭 옮겨와 줬으면 하는 효과가 있었다.
‘5초 이상 부동 시 주변의 지형/지물과 동화되는 것…… 말하자면 무한의 카모플라쥬! 그건?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이하는 혹시나 싶어 블랙 베스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심지어 블랙 베스의 퀘스트 숫자까지 확인했는데 그것도 동일했다.
여전히 봉인은 〈7개〉 그대로였고, 공격력이나 사거리 무엇 하나, 아니 문구 하나 달라진 게 없었다.
“아저씨이이이! 어떻게 된 거냐고요! 설명 좀 해 주세요!”
“어, 아! 어?”
“어아어 같은 소리 말고! 뭐가 어떻게 된 거냐고요! 합성된다면서요! 전설급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근데 왜 블랙 베스가 똑같냐고요!”
무엇보다…… 보틀넥 당신의 레벨 업은 뭐야?
합성을 시도한 당신의 등급이 올랐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이하가 가장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
그건 바로 실패와 함께 업적 팡파르가 울린 일이었다.
〈업적: 모루의 신의 열렬한 후원자(S)〉
축하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투입하여 모루의 신과 그 신도의 후원을 위해 힘써 주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또 한 명의 신도가 전설의 재현을 위해 힘쓸 수 있게 되었음을, 모루의 신께서는 기뻐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당신이 후원하는 대장장이가 신화 속의 모든 재료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루의 신께서 직접 강림하사 당신을 칭찬하실지도 모르겠군요.
보상: 근력 +15, 체력 +10, 후원 대장장이의 절대적 신뢰
〈모루의 신의 열렬한 후원자〉 업적의 첫 번째 등록자입니다.
업적의 세 번째 등록자까지 명예의 전당에 기록되며, 기존 효과의 200%가 추가로 적용됩니다.
효과: 근력 +30, 체력 +20
무려 S급 업적!
그러나 업적 창을 다시 살핀 이하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고작……이거? 전 재산을 때려 박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라면 역시 업적 취득 조건은 ‘전설급 아이템을 합성으로 인해 소멸당했을 때’라는 건데……. 그 대가가 고작―’
명예의 전당 등재까지 포함하면 근력 45에 체력 30.
엄청난 수치다.
‘그래, 엄청난 수치인 건 알겠는데…….’
스탯 포인트 75개는 근접 전투 직군에게 필수적인, 엄청난 수치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레벨에 따른 스탯 포인트 계산이라면 무려 레벨 15개의 상승치 아닌가?
‘아악! 하나도 안 기뻐! 차라리 스탯 포인트를 주던가. 신뢰는 개뿔이나.’
이하는 투덜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후원 대장장이는 결국 보틀넥이다. 헬앤빌에서 일하던 드워프를 이곳, 시티 가즈아까지 불러와 공병단장의 자리를 준 게 누구인가.
이하와 보틀넥 사이에는 이미 충분한 신뢰 관계가 쌓여있는 셈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절대적인 신뢰라니?
“보틀넥 아저―”
“들었어.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블랙 베스의 목소리를 들었어. 아니, 블랙 베스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군.”
“어, 네?”
보틀넥의 눈빛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마치 정신을 놓은 것처럼 흐리멍덩한 눈이었던 그의 안구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들었다고, 성주!”
“뭐, 뭐래요? 뭐라고 했어요? 응? 총은? 하얀 사신의 총은 어떻게 됐는데요?”
“블랙 베스가 분명히 말했어.”
“뭐라고요?”
“‘꺼―억’ 이라고!”
“…….”
보틀넥은 일부러 자신의 가슴팍을 때려 가며 진짜 트림 소리를 내었다. 이하는 황당해서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게 무슨…….”
“이 자식이 먹은 거라고! 하얀 사신의 총을 말이야, 우하하핫! 정말 살아 있는 총이었어. 말 그대로 정말 살아 있었다고!”
보틀넥은 달려와 이하의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고맙네, 성주! 바로 이거였어! 내가 아무리 망치를 두드려도 부족했던 마지막 한 조각이 바로 그것이었다고! 나도 이제 선조들의 뒤를 이을 자격이 생겼어!”
“우왁! 뭘 혼자 신나 가지고! 뛰고 난리예요!? 내 총은 사라졌는데!”
“응, 응, 나도 알지! 하지만 걱정 말게, 걱정 마!”
보틀넥은 희희낙락 웃으며 춤을 추다가 우뚝 멈춰 섰다.
이하는 물론이고 보틀넥 주변의 다른 드워프들조차 자신들의 보스가 미친 것 아닌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는 드워프는, 이하의 눈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성주가 원하는 도움을 줄 테니까.”
그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이하는 보틀넥의 목숨을 건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반품(?)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그래서 내 총이 사라진 건 어쩔거냐고요오오오오! 그 다짐 돌려줄 테니까 그냥 블랙 베스나 업그레이드시켜 달라고!”
한참을 날뛰던 보틀넥은 시험해 볼 게 있다며 이하를 내쫓다시피 대장간 밖으로 몰았다.
“자, 잠깐만요! 내 아이템! 내가 맡긴 거라도 줘야죠!”
“기다려 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며칠 후에 다시 와! 그건 그때까지 만들어 놓을 테니! 이거야 원! 성주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구만!”
“아니, 말귀는 보틀넥 아저씨가 못 알아듣고 있다니까―!”
쾅―!
대장간의 문이 거칠게 닫혔다.
“……그래도 이거 내 도신데…….”
도시의 성주가 해당 도시에 입점한 세입자에게 내쫓겨 나는 장면이라니!
심지어 그 세입자에게 무기마저 강탈(?)당한 입장에 있는 이하로서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하아아…… 블랙 베스 업글 기회를 이렇게 날리나?”
이하는 한참이나 보틀넥의 대장간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전설급 총기를 언제 다시 만져 볼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있기는 할까?
‘결국 블랙 베스와 나는 끝까지 같이 가야만 하는 사이라는 건가? 이 새끼, 근데 〈꺼―억〉이라고? 장난하나!’
이하는 문득 쥐고 있는 총기에 분노가 치밀었다.
총기 주제에 〈꺼―억〉?
그러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잠깐만. 트림을 할 정도로 ‘진짜 살아 있는’ 거라면…….’
하물며 젤라퐁도 트림을 하진 않는다.
이하가 보았던 ‘트림을 하는’ 유일한 생명체는 오직 꼬마뿐이다. 불곰인 녀석이 이하의 요리를 잔뜩 먹고 트림을 하는 경우를 한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깨울 수도 있다는 건가? 젤라퐁처럼 대화가 가능한 뭔가로 바뀌는……. 이거 혹시 퀘스트 단서 아냐?’
불현듯 현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블랙 베스의 봉인 퀘스트.
‘봉인을 전부 해제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른 형태로 바뀌는 건가?’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퀘스트를 통해 단순히 추가 스킬을 두 개 더 얻는 게 아니라, 일곱 개의 스킬을 다 얻는 순간 블랙 베스가 변화하는 방식이라면?
이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려던 찰나, 그 생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래 봤자 정신 승리지…… 5,000m 저격이야 어찌어찌 연습으로 갈고닦는다지만 레벨 300 이상의 몬스터를 어디서 찾나. 신대륙의 극동부쯤 가면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 5,000m 저격은 이제 보기만 한다고 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용: 5,000m 이상 거리에서 레벨 300 이상의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0/1)
“하아, 결국 당장은 퀘스트에 매달릴 수도 없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현 상태로 이고르나 파우스트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렵겠지. 그러면 남은 건 하나뿐이야.”
이하는 수정구를 꺼내어 들었다.
블랙 베스의 상태가 어떻게 된 건지, 그것도 며칠 뒤엔 보틀넥에게 들어야 한다.
결국 무기도 없는 상태가 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그걸 이렇게 날리냐고!”
그리곤 수정구를 발동시켰다.
슈와아아아……!
다시 찾아온 곳은 하얀 사신의 거처였다.
이하의 생각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이 변했다.
“하얀 사신의 업적이 있을 거야. 백사병 물약까지 사용한 사람을 여기까지 찾아오게 해 놓고 총기만 달랑 줄 리가 없어. 미들 어스가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지.”
합성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준 뒤, 허무하게 날리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뭔가 있다고 봐야 한다. 미들 어스가 지금까지 해 온 행태를 생각하면 이곳에 반드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직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아주 중요한 것이!
어쩌면 〈하얀 사신의 전설 속 모신나강〉이라는 거대한 ‘미끼’를 통해, 소탐대실을 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미들 어스에 의해 수없이 많이 속아 보고, 굴러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육감이나 다름없는 발상이었다.
샤아아아아────!
하얀 사신의 일지와 그의 정보들을 찾아 헤매는 이하의 등 뒤로, 새하얀 빛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이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날개와 같은 모습이었다.
* * *
“꺼내라.”
“응.”
람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드를 쥔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은 그것을 보조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올린다.
평소의 캐스팅과 달리 정석적인 스킬 사용 자세를 취한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심연은.”
“어두워.”
파아아아──…….
그녀의 완드 근처로 마나의 알갱이들이 모이고 있었다. 여느 때의 새파란 알갱이들이 아니었다.
파란색 사이에 숨은 검은 알갱이들, 아르젠마트는 그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둡기만?”
─────…….
마나의 폭풍은 점점 더 빠르고 강해졌다.
람화정은 입을 제대로 열 수도 없었다. 젓가락같이 얇은 팔은 완드를 쥐는 것조차 버거워, 그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어둡기만 한가?”
아르젠마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람화정은 자신의 맞은편에 선 그를 보았다.
마나 폭풍이 그녀의 푸른 머리칼을 사방팔방으로 휘날리게 만들 지경이 되어서야 마침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아니, 차갑기도.”
푸화아아아───────ㄱ!
그 순간, 람화정의 완드 근처에 모여들던 새카만 마나의 알갱이들이 모두 푸르게 변했다.
아르젠마트는 목청을 높였다.
“사용해!”
“〈심연의 얼음Ice of Abyss: 덩어리Mass〉.”
───────────────!
조각Piece에서 덩어리Mass로. 람화정의 완드 끝에 모여 있던 심연의 얼음이 발현되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떴다.
이하와 만년설산맥을 내려온 이후 오늘로서 무려 8일째였다.
람화정은 단 하루도 로그아웃하지 않았던 성과를 마침내 오늘에서야 이룩해 낸 셈이었다.
“오…… 빠…… 언…… 니…….”
지금 이 순간, 가장 생각나는 두 사람을 떠올리며, 람화정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아르젠마트의 레어에서 벌러덩 누워 버리려는 그 순간,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아르젠마트는 자연스레 감싸 들었다.
“음.”
곯아떨어지듯 기절해 버린 그녀를 보며 아르젠마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단언컨대 블라우그룬을 포함한 그 어떤 드래곤도 보지 못했던 미소였다.
잠시 후, 람화정의 육신은 그대로 사라졌다.
피로도 누적에 따른 강제 로그아웃이었지만 아르젠마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넘었다, 인간이.”
자신의 품 안에서 사라진 람화정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듯, 아르젠마트는 여전히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곧장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잠시 후, 아르젠마트가 나타난 곳은 블라우그룬의 레어였다.
“우, 우와앗!? 아르젠마트 님?”
“블라우그룬, 고맙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자, 잠시만요. 하이하 님을 불러야―”
“아니, 됐다.”
“네?”
이하를 부르려던 블라우그룬은 그대로 멈췄다.
아르젠마트는 블라우그룬을 앞에 두곤 자신이 하고픈 말을 쏟아 내었다.
마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다는 수다쟁이 아줌마 같은 태도였으나,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대로다, 그럼.”
“잠깐―”
슉―!
아르젠마트는 그대로 사라졌다.
블라우그룬은 앉지도, 서지도 않은 자세에서 책을 읽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니었던 묘한 느낌으로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미들 어스는 최소 1인 이상의 유저가 있어야 중요 사안이 진행된다.
아르젠마트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블라우그룬이 들은 모든 얘기는 이하에게 전달된다는 뜻이었다.
―하이하 님?
―어, 블라우그룬 씨. 왜요?
―방금 아르젠마트 님이 다녀갔는데요.
―그 아저씨? 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