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840
마탄의 사수 (840)
“으! 정말! 혜인 오빠도 쇽! 가 버리고, 나만 여기 남아서 열 받아 죽겠는데! 진짜 기정 씨 위치 안 알려 줄 거예요?”
“기, 기정이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맨티코어의 피부를 뚫을 수 있는 원거리 딜러가 귀하니까 보배가 없으면…….”
“몰라요, 몰라! 이제 사람도 많은데! 나 빠져도 될 것 같은데 꼭 기정 씨는 나한테만…….”
보배가 뚱한 얼굴로 앙탈을 부리는 것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피로트-코크리를 죽이는 작업에 있어 보배를 제외시킨 것.
나름대로 별초 내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자신을 제외한 기정에게 보배는 적잖이 삐진 상태였고, 그 화풀이를 이하에게 하는 중이었다.
‘어휴, 그냥 인사나 하려고 들렀다가 이게 웬 봉변이야?! 기정이 놈도 고생 엄청 하겠구만, 삐뜨르도 설득 못 했다더니…….’
라파엘라를 제외하고 두 번째 파티원으로 섭외한 것은 혜인이었다.
이하가 알려 준 정보가 있다지만 수색의 범위가 워낙 넓어 공간과 관련된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기정이 부른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삐뜨르와 혜인을 더한 다음, 딜러 하나를 더 추가하면 딱이었을 텐데.’
이하는 그 ‘딜러 하나’가 보배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탑 텐에 준하는 랭커 중 그나마 가장 활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 바로 보배다.
길드 [별초]에 소속된 이후 줄곧 기정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적대 세력이나 라이벌 유저 등이 많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견제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치요나 다른 녀석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극소수의 인원으로만 움직여야 해. 그래서 나라 씨나 다른 랭커들을 부르기 어려웠던 걸까?’
샤즈라시안 북부에 새로운 지형이 열렸다는 건 치요 쪽의 인원들도 당연히 알 것이다.
다만 치요는 물론이고, 그녀가 이끄는 시노비구미와 야마토 모두 신대륙에서의 마왕군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아직은 그곳에 대한 정보가 적으리라.
‘그런 상태에서 주요 랭커 또는 신대륙 서부의 방어를 책임지는 막중한 인물들이 하나, 둘, 샤즈라시안 북부로 가 버리면…….’
눈치를 챌 확률이 높다.
신나라는 물론이고 카렐린, 심지어 라르크까지 염두해 본 이하였으나 그들 모두 각 국가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이다.
즉, 신대륙에서 빼낼 수가 없는 것이다.
‘뺀질이 라르크마저도 그럴 지경이니 하물며 신대륙 활동이 활발한 다른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지. 이지원 이 자식이나 연락 좀 받을 것이지.’
그나마 최근 샤즈라시안 북부로 간다던 이지원은 귓속말을 전부 차단한 상태.
신대륙 활동이 저조한 랭커들이나 솔로 플레이에 강한 유저들을 움직이는 것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그 안에 해당하는 인물은 많지 않았다.
‘람화정……이 지금으로선 제일 유력한가?’
람화연의 과잉보호 때문에 합류하지 못할 확률도 있었지만, 기정이 잘 설득하고 이하가 조금만 옆구리를 찔러 준다면 충분히 섭외가 가능하다는 게 이하의 계산이자 현 상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키킷, 하여튼 바쁜 사람이라니까. 신대륙 동부로 가려고 온 거죠?”
“어? 비예미 씨가 어떻게―”
“루거랑 키드가 지나갔는데 하이하이 씨가 안 지나가면 이상한 일이지.”
비예미는 여느 때처럼 눈치 빠르게 말했다.
“저희가 ‘아무리 몰라도’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분들은 떠난 지 꽤 됐거든요. 조금 늦으셨네요.”
이하가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쫑알대는 보배가 방해되자, 징겅겅도 두 사람 사이에 은근하게 끼어들었다.
이하는 징겅겅의 눈치에 고마웠다.
비밀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표현 때문만이 아니었다.
“으악! 징겅겅 씨! 밀지 말아요! 아직 할 말이 남았―”
이하에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보배가 징겅겅의 ‘은근한 엉덩이 밀기’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이성을 찾아가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흐흐, 고마워요, 징겅겅 씨. 아 참, 다른 사람 누구 지나간 건 없고요?”
“비행으로 신대륙 동부를 탐험하겠다는 유저들이 몇몇 있었지만…… 키킷, 아시다시피 맨티코어들의 감시망을 비행으로 통과하긴 어렵죠.”
“그럼―”
“게다가 텔레포트도 안 되는 곳이니…….”
비예미가 비웃듯 말을 덧붙였다.
“며칠 뒤에 제가 수색을 다녀왔는데 전부 시체가 되어 있더라고요.”
징겅겅은 죽은 유저들을 동정하는 표정이었다.
한때 ‘캔들 캐슬의 이상한 삼인방’으로 불렸던 동료들이지만 이렇게나 성격이 다르다는 것에 이하는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하이하이 씨도 비행으로 가는 것보단 지상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을 거예요.”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뭐, 맨티코어가 나오면 나랑 우리 블라우그룬 씨가 한 방에 기냥―”
“키킷, 잘 나가다가 꼭 이렇다니까. 맨티코어가 누구의 메신저다? 일깨워 줘야 기억나는 거예요?”
“……기브리드. 젠장, 그러네.”
맨티코어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맨티코어 한 마리를 죽이는 순간, 이하의 존재를 감지한 기브리드가 즉각 나타나리라.
즉, 오염된 세계수의 숲은 〈신성 연합〉이 서부에서 동부를 경계하는 기점일 뿐만 아니라, 〈마왕의 조각〉들이 동부에서 서부를 지켜보는 기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하이하 님, 그렇다면―”
“으, 블라우그룬 씨랑 편하게 이동하려 한 건데. 결국 처음처럼 젤라퐁으로 고생을 해야 하나?”
이것으로 블라우그룬의 비행으로 선발대를 쫓는다는 계획은 어긋나 버렸다.
이하는 별초와 헤어지고 동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그들의 전방으로 그림자가 졌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숲을 지나고, 돌산을 넘고, 계곡을 가로질러 그들은 마침내 텔레포트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주변의 마나가 동결됩니다.
모든 종류의 공간 이동 스킬이 제한됩니다.
“과연…… 이런 곳이군요.”
“어? 아! 블라우그룬 씨는 처음이구나?”
이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를 찾으러 처음 신대륙 동부를 향했을 때, 블라우그룬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따라오지 않았었다.
“네. 단순히 공간만 잠기는 건 아니네요. 마나의 움직임이 약간이지만 느리게 느껴집니다.”
“그래요? 스킬 페널티는 없던데. 뭔가 다른가.”
“으음…… 모르겠어요. 특정한 방해는 아닌데 뭔가…… 뭔가 묘하게 느낌이 다르네요. 베일리푸스 님은 괜찮으셨던 건가?”
블라우그룬은 자신의 두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하에겐 아무런 알림 창도 뜨지 않았다. 실제로 스킬 창을 열어 효과를 살펴봐도 변한 점은 없었다.
‘마법사 직업군은 다른가? 아니, 그럴 리가. 이지원도 여기서 한참 날뛰었잖아. 근데 왜 베일리푸스를 갑자기…….’
블라우그룬의 말 속에서 이하는 의구심을 느꼈다.
다른 모든 대상을 제쳐 두고 왜 여기에서 베일리푸스를 떠올린 걸까? 둘의 공통점은 물론 하나뿐이다.
‘드래곤만…… 특정한 페널티? 에이, 그건 진짜― 좀 적당히 해야지. 안 돼, 안 돼. 그럴 순 없어.’
가뜩이나 기브리드 때문에 비행조차 힘든 와중에 추가 페널티라니!
악랄한 미들 어스라도 그렇게까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문득 친구 창을 열었다.
“베일리푸스 님한테 직접 연락해 보면 되겠지. 기다려 봐요.”
“네. 이 근방이야 어차피 안전하니까요. 하이하 님이 신뢰하는 동료 인간들이 어느 방향을 통해서 지나갔는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뢰는 개뿔! 그놈들이 지나간 길 따라서 가는 중이니까 그건 걱정 말아요.”
이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베일리푸스에게 연락했다.
베일리푸스의 축복이라는 버프가 있는 이상, 통신 방해를 제외하면 이하는 언제든 그와 연락이 가능했다.
귓속말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NPC라는 뜻이다.
―베일리푸스 님! 안녕하세요!
―하이하로군. 오염된 세계수의 숲을 지난 건가.
―어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안 그래도 오늘 여기 통과해서 조만간 뵐지도 모른다고 인사드릴 겸…….
―블라우그룬에게 이상이 생겨서 연락했을 테니까.
―네?
베일리푸스는 이하의 걱정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할 때는 얼마나 슬픈 일이던가.
이하는 베일리푸스를 통해, 신대륙의 지하 곳곳에 뻗은 강력한 마기魔氣의 줄기로 인하여, 마나의 흐름이 방해를 받고 있으며 특히 마나에 민감한 드래곤들은 마법의 효력이 떨어지거나 특정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블라우그룬은 가장 강력한 쥬브나일 드래곤이지만 어덜트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이니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하아아…… 베일리푸스 님이 힘드실 정도라면 당연히 그렇겠네요.
―그렇다한들 보통의 인간에게 당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라.
〈마왕의 조각〉들을.
베일리푸스가 삼킨 뒷말을 이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하는 베일리푸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블라우그룬에게 전했다. 블라우그룬은 상심했으나 곧 회복했다.
“역시 얼른 어덜트급이 되는 수밖에 없겠죠.”
“음. 바하무트 님도 말씀하셨으니 금방 될 거예요.”
“네. 얼른 가죠!”
이하는 자신의 옆에서 씩씩하게 걷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게임상 설정이야 자신보다 한참 수명이 많았으나 이럴 때는 귀엽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길게 늘어졌던 그림자가 거의 사라질 때쯤, 슬슬 밤이 깔리고, 달빛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을 때쯤에야 마침내 이하와 블라우그룬은 첫 번째 움직임을 감지해냈다.
“하이하 님, 잡아 보신 건가요?”
“음…… 아닌 것 같은데. 그리포니아라는 녀석들이 나오기 전에는 몬스터들을 만난 적이 없었거든요.”
엘리자베스와 브라운의 임시 가옥이 있던 절벽 위, 그곳을 향할 때 만났던 여성형 얼굴을 지닌 그리폰 몬스터가 있었다.
그때는 그 지점까지 도착하기 전, 젤라퐁의 입체 기동을 활용해 빠르게 이동했던 탓일까.
적어도 지난번에 마주치지 못했던 몬스터임에는 분명했다.
이하는 가방에서 조용히 소음기를 꺼내어 총구에 장착했다.
총구 불빛이야 보이겠지만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고, 지금은 총성을 줄이는 게 더 중요했다.
“거리는 약 200m가량인데…… 키메라는 아니겠지.”
근처 어디에 기브리드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키메라여도 근처에 기브리드가 없다면 괜찮을 거예요. ‘메신저’ 역할은 맨티코어만 할 수 있으니까요.”
“좋았어, 그럼 한 발 먹여 볼까. 블라우그룬 씨, 주변 경계 좀.”
“알겠습니다.”
이하는 조심스레 포복하고 앞으로 기어 나갔다. 주변에 딱히 신경 쓸 것은 없었다.
‘직립 보행형. 높이는 2.5~2.8m, 캥거루……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한데 묘하게 원숭이 느낌도 나고.’
이하는 잠시 몬스터의 이름이 궁금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몸을 땅에 붙이며 이하는 조심스레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장전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느낌이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절대 들릴 리가 없다.
‘바람은 옅다. 풍속은 3m/s을 넘지 않을 거야. 거리가 짧으니 풍향에 대한 영향도 없다고 봐도 좋고.’
클릭을 조정할 필요도 없다.
〈꿰뚫어 보는 눈〉으로 대상을 노려보며, 이하는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었다.
“네 녀석이 눈을 뜬 블랙 베스의…….”
그러곤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첫 번째 제물이다.”
───────────────!
묵직하고 짧게 끝나는 울림 속, 무언가가 철퍽이며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탄환이 몬스터의 머리를 정확하게 관통했다는 건 이하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충전율! 충전율!”
멋진 사격 이후에 푼수같은 목소리를 내며 이하는 블랙 베스의 아이템 창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