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19
#218화
“이건…….”
[예티의 목걸이]를 건네받아 살펴보기를 한참, 최 팀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화가 나는군요.”
평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그다.
가만히 쭈그리고 있던 임꺽정이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 팀장,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있습니다. 커다란 문제가.”
입술을 질끈 깨문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이 아름다운 제품의 공급이 적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인에게 지탄받아 마땅한 가장 큰 문제죠.”
“……아.”
“보십시오. 고드름을 표현한 이 예술적인 자태를! 설원의 냉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마법 기능을!”
북한 TV 아나운서처럼 열렬하게 수령님, 아니 목걸이를 찬양하던 최 팀장이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진태경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뭐라 말해야 할까.
고민은 짧았다.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화가 나네요.”
“…….”
“왜 그러세요?”
“아닙니다, 그냥.”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왠지 좀. 낯선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요?”
턱을 문질렀다. 슬슬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수염이 까슬까슬하다. 그 감촉이 마치 남의 살처럼 낯설었다.
“면도를 안 해서 그런가.”
“진태경 씨, 혹시…….”
최 팀장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원명훈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야, 대단한데. 태경이 너, 진짜 잘 싸우더라.”
“……그래요?”
“창술 보니까 내가 만든 교본이랑은 완전히 딴판이던데. 훈련소에서 배운 거야?”
“아뇨.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 그 정도 수준이 아니던데, 뭘. 이거 몇 년 후면 너한테 따라잡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하하.”
나는 말 없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무도 따라 웃지 않자 웃음소리는 천천히 사그라졌다. 무안할 법도 한데, 원명훈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 일련의 모습들이 TV 속 드라마 장면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웠다.
“그런데 뭐 하고 있었어?”
입은 묻고 있지만 두 눈동자는 이미 사실 파악에 여념이 없다. 최 팀장이 쥐고 있는 [예티의 목걸이]에 그의 시선이 언뜻 스쳤다.
“빌려주신 목걸이 구경하고 있었어요. 최 팀장님이 이런 거에 관심이 많으셔서.”
“팀장님이? 하긴. 그럴 것 같긴 하더라.”
원명훈이 화려한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다닌다면 최 팀장은 그 반대다.
명품은 명품인데, 고급지면서도 깔끔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건 평소 입고 다니는 것만 봐도 이쪽에 관심이 많다는 걸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원명훈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살펴보시니 어떻던가요?”
최 팀장이 대답했다.
“직접 보니 훨씬 좋네요. 혹시 나중에 판매 의향 있으시면 연락 주십시오.”
“아쉽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 많이 아끼는 물건이라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끼는 물건이라…….
그의 말을 곱씹던 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물건인가 보네요.”
“그럼, 아주 중요하지.”
“그러시구나.”
나는 원명훈을 향해 [예티의 목걸이]를 내밀었다.
“지금 돌려드릴게요.”
“응?”
“형한테 중요한 물건이라면서요. 최 팀장님 말씀 들어 보니까 가격도 아주 비싼 것 같던데.”
“…….”
“안 받으세요?”
손에 들린 목걸이가 흔들리며 쩔그럭 금속음이 났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원명훈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태경아.”
“네.”
“형은 말이다. 물건보다는 사람 간의 인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 간의 인연.”
“그래. 오늘 같이 온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야.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거든.”
“8년 전 그때 말인가요?”
“……뭐, 그렇지. 어쨌든 형이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그깟 목걸이가 뭐 얼마나 소중하다고. 안 그래?”
원명훈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와는 다르게 그의 손바닥은 부드러웠고 손톱은 길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눈앞의 이 사람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예티의 목걸이, 사실 그거 선물이야.”
“선물이요?”
“그래. 형이 너한테 주는 선물.”
원명훈이 내게로 몸을 가까이할 때마다 독한 향수 냄새가 풍긴다.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주면 안 된다. 알았지?”
“…….”
“태경아?”
나는 목걸이를 걸며 대답했다.
“네. 아무도 손 못 대게 할게요.”
띠링.
– [예티의 목걸이]를 장착하셨습니다.
– 목걸이에서 설원의 바람이 흘러나옵니다.
전신을 휘감는 설원의 바람을 느끼며, 나는 불과 5분 전에 보았던 아이템 정보 창을 떠올렸다.
아이템창
[예티의 목걸이]종류 : 장신구
등급 : 절정
제한 : 없음
설명 : 매우 뛰어난 전사 예티만이 소유할 수 있는 목걸이. 그러나 사실은 과거 용족(龍族)의 노예이자 식용 가축임을 증명하는 족쇄이다. 이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종족에 상관없이 용족 몬스터의 표적이 된다.
효과 : [설원의 바람] 효과 발동
‘표적이라.’
결코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여러모로.
* * *
게이트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꼬박 한나절 간의 이동 끝에 밀림을 벗어나 황무지에 접어들었지만, 지금껏 마주친 몬스터라고는 가장 처음 나타난 그린 와이번과 내가 처리한 오크 무리.
그리고 지금 다른 이들이 상대하고 있는 트롤이 전부였다.
– 그워어어어!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키에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머리.
트롤은 재생력이 매우 뛰어난 몬스터다. 약방의 감초처럼 힐링 포션의 주재료로 쓰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팔과 다리를 잘라 내도 불과 몇 초 만에 재생시키는 놈이니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수밖에.
그러나 스타 길드원들도 만만치 않은 베테랑들이었다.
“머리! 머리를 노려!”
“화염 마법!”
서걱! 화르르륵!
대격변 초창기에는 불사(不死)의 괴물로 악명을 떨쳤지만 트롤의 약점은 금방 들통났다.
‘머리와 심장. 거기에 더해 마법.’
언데드 몬스터가 아닌 이상 숨이 끊기면 죽는 것은 당연지사.
트롤은 머리와 심장도 복구시킬 만큼 가공할 만한 재생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사의 괴물까지는 아니었다.
재생하기 전에 얼음으로 얼리거나 화염으로 지져 버리면 놈들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딜러, 붙어서 썰어!”
“마법사 대기!”
쉬쉬쉬쉭! 퍼걱!
– 그아아아아!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트롤의 몸뚱이가 뒤로 쓰러졌다.
곧이어 예리한 할버드(Halberd)의 도끼날이 지방과 근육으로 똘똘 뭉친 놈의 목을 갈랐다.
쿵! 서걱!
어깨 위가 허전해진 트롤의 신형이 퍼덕거렸다. 이내 상처 단면 위로 새로운 살이 꾸물꾸물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1분 남짓 정도가 흐르면 놈은 새로운 목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스타 길드원들이 아니었다.
“지져!”
화르르륵! 스아아악!
뼛속까지 얼리는 냉기와 살갗을 태우는 화염.
재생에 실패한 트롤의 몸뚱이는 한차례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3조 클리어!”
“여기 도와! 이놈 재생한다!”
3인 1개 조로 상대하니 상황은 빠르게 종료됐다.
살과 지방이 타들어 가는 악취 속,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원명훈이 중얼거렸다.
전투의 소음 때문에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내게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다.
“자식들이 꼭 냄새나게. 웬만하면 얼리라니까.”
“허.”
나는 새어 나오려는 헛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누가 그런 말을 했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만 몬스터와의 전투는 어디에서 보나 비극이다.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 트롤 살 타는 냄새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병풍 뒤에서 향 타는 냄새 맡는 것보다는 백 배 나으니까.’
하지만 원명훈에게는 남의 일일 뿐이었다.
이마를 찌푸린 채 작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던 그가 문득 시선을 느끼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태경아.”
따뜻한 목소리,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끈하게 펴진 이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더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혹시 내가 한 말 다 듣고 있었냐?’로 들리는 건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그래? 뭔데?”
“속이 좀 메슥거려서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여기 들어온 후부터 좀 그래요. 치료 마법도 받아 봤는데 별로 나아지질 않네요.”
“아. 그거.”
원명훈이 피식 웃었다.
“넌 A급 게이트가 처음이라 그런 거야. 게이트 내부에 분포된 마력의 양이 차원이 다르니까.”
“아하.”
“초보들은 원래 다들 그래. 나야 뭐, 익숙하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난생처음 들어 봤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그럼 저도 다음에는 좀 익숙해지겠죠?”
“다음?”
입꼬리를 실룩거리던 원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다음번에는 훨씬 더 익숙해지겠지.”
“그때도 형이랑 함께 왔으면 좋겠네요.”
“글쎄, 나도 언제 다시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워낙 다른 스케줄이 많아서.”
“레이드 뛸 시간도 없으세요?”
“태경이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형 같은 길드장들은 다 바빠. 전반적으로 길드를 조율해야 하거든.”
“아아.”
“연주자와 지휘자의 차이라고 할까. 마에스트로 알지?”
마치 연기하듯 지휘봉을 흔드는 시늉을 하는 원명훈에게 불쑥 물었다.
“그럼 백화점도 길드 관련 미팅 때문에 가신 거예요?”
“응?”
“인터넷 기사 떴던데요. 기사 제목이 뭐더라. 아, 기억났다.”
순간 할 말을 잃은 원명훈을 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다시 떠오르는 스타 헌터, 원명훈의 명품 싹쓸이. 뭐 그런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기사가 있었어?”
“헌터 커뮤니티 쪽에 정말 잠깐이요. 5분 만에 삭제됐더라고요.”
“그, 그래? 잘못 본 건 아니고?”
“네. 요즘 공부는 안 하고 인터넷만 뒤지고 다니는 쌀벌레가 한 명 있거든요. 기사 하나 뜨면 바로바로 알려 줘요.”
원명훈의 잘생긴 얼굴에 보조개가 움푹 패었다. 그러나 과거 TV에서 봤던 환한 웃음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죠?”
“당연하지. 내가 쇼핑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냐.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지.”
“사진도 올라왔다던데.”
“…….”
“디스패스 아시죠? 연예인들 캐고 다니는 전문 사이트. 거기서 백화점 관계자 인터뷰도 땄더라고요. 형이 일주일에 다섯 번 방문하는 VVIP시라고.”
“…….”
원명훈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느새 사라진 보조개는 이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태경아. 너 혹시 그걸 믿는 건 아니지?”
“에이, 찌라시겠죠. 형은 길드 일정 조율하느라 바쁘시잖아요. 마에스트로.”
“……그래, 마에스트로.”
격렬하게 지휘봉을 흔드는 시늉을 하는 나를, 원명훈이 건조한 눈빛으로 응시하던 그때였다.
“형님! 아니, 대표님!”
흙과 모래, 굽이진 바위 언덕이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 울려 퍼진 외침의 주인공은 스타 길드의 1팀장이었다.
아까부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와이번을 찾기 위해 정찰에 나섰던 그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느긋했던 출발과는 달리, 미친 듯이 뛰어오는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다른 애들은?”
원명훈의 물음에 1팀장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 그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일곱이 출발했는데 돌아온 것은 한 사람뿐. 그의 얼굴과 갑옷에 튀어 있는 핏방울은 짐작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새끼가. 똑바로 말 안 해!”
벼락같은 호통에 1팀장이 몸을 움찔 떨었다.
“와이번, 와이번을 발견했습니다.”
“와이번? 몇 마리나?”
“하, 한 마리요.”
“뭐? 한 마리?”
A급 헌터와 B급 헌터 여섯이라면 와이번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런데 여섯이나 죽고 혼자 도망쳐 오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지금 장난해?”
“다 죽었어요. 분명히 은신 마법을 쓰고 다가갔는데…… 놈이 알아챘어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와이번이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따따딱.
공포에 질린 눈으로 이빨을 부딪치던 그의 입에서 이윽고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네, 네임드 몬스터(Named Monster).”
“……!”
“네임드 몬스터가 분명합니다. 여기…… 변이 게이트예요.”
A급 변이 게이트. 그리고 네임드 몬스터.
두 단어가 뜻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우리 중 아무도 없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 누군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