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98
#297화
스읍. 후우.
최민우는 길게 심호흡했다.
대기에 스며들어 있는 기(氣)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아랫배에 잠들어 있던 기의 덩어리를 깨웠다.
‘마나(Mana).’
각성자에게 주어진 힘의 원천. 몬스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
그러나 그에게 진가 심법을 가르쳐 준 이, 진태경은 마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공력(功力).’
진태경은 볼수록 신비한 사람이었다. 남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실행에 옮겼고 성공시켰다.
그런 사람이 알려 준 것들이 평범할 리가.
단전, 공력, 운기조식, 진가심법…….
그의 새로운 일면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움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마나 연공법을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알려 주다니.’
최민우는 진가심법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알고 있었다.
아니, 헌터는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일반인들조차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헌터가 한 자루의 검이라면, 진가심법은 숫돌이다.
아무리 무딘 검이라 해도 숫돌에 갈면 예리해지는 법.
진가심법의 효능에 희소성까지 감안한다면…… 그 가치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일 것이다.
‘그런 엄청난 비전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배포, 네임드 몬스터를 홀로 처치하는 실력, 이정룡과 아레스 길드의 이름에도 물러서지 않는 배짱……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최민우는 나날이 깨닫는 중이었다. 진태경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아인지.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지.’
그것이 바로 최민우가 잠자는 시간마저 아껴 가며 진가심법의 수련에 몰두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성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스아아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운기조식에 집중하기를 한참, 거대한 기운은 수백 개의 혈도를 이동하며 아주 미세하게 그 크기를 부풀렸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던 기운이다.
순간 최민우의 뇌리에 그날 진태경과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이야, 팀장님.’
‘네?’
‘혹시 어릴 때 좋은 거 드신 적 있어요? 산삼이라거나, 동그란 단환 같은 거.’
‘전혀요. 식사는 항상 유기농이었지만 따로 뭘 먹은 적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흔한 감기 한 번 걸린 적도 없었겠고. 맞죠?’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근골이…… 아니, 몸이 워낙 좋아서요.’
‘그런가요? 하지만 헌터라면 누구나 몸이 좋을 텐데요.’
‘헌터라서 그런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체가 매우 뛰어나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 조부님께서 손자를 위해 손을 쓰신 게 아닌가 싶은데.’
‘제 할아버지께서……요?’
‘네. 뭔가 짚이는 부분은 없으세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걸요. 김 집사님께 듣기로는 아주 가끔 절 보러 오셨다고는 하는데…… 그뿐입니다.’
‘흐음.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게 유일한 해답으로 보이는데.’
최민우는 문득 자신의 조부를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마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가?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은 흐릿했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선명했다. 그들 두 사람은 분명 사이좋은 조손(祖孫)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커다란 기운이 숨어 있었다는 것은…… 역시 할아버지께서 손을 쓰신 걸까?’
뜻하지 않게 발견된 조부의 흔적에 최민우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에 감응하듯, 몸속을 누비던 기운이 부르르 떨었다.
진태경이 ‘일 갑자’라고 부르는 거대한 기운은 마지막으로 크게 한 바퀴를 빙글 돌더니 배꼽 아래, 단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찌릿한 쾌감과 함께 최민우는 눈을 떴다.
“후우.”
긴 날숨에 운기조식의 여운이 묻어 나왔다.
최민우는 알지 못했지만, 그는 지금 막 진가심법의 사 성(成)에 도달한 상태였다. 일주일만의 성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파른 속도.
그러나 일 갑자라는 막대한 공력과 진태경이 고개를 끄덕일 만큼 뛰어난 근골을 지닌 최민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이군.’
주위를 둘러본 최민우의 시선에 운기조식에 열중하고 있는 세 사람이 들어왔다.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앉은 그들은 김 집사와 송송이, 임꺽정이었다.
네 사람이 진가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극비 중의 극비.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철통 보안이 갖춰진 최민우 개인 소유의 트레이닝 룸이었다.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위험한 현상에 대해서는 진태경에게 이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온 최민우는 잠시 꺼 놨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입을 떡 벌렸다.
그의 핸드폰 액정에는 인터넷 속보가 눈부신 속도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 네임드 몬스터의 재출현! 위기의 대한민국!
– A급 게이트, [흑마법사의 검은 숲]에서 일어난 이변.
– 스스로 미끼를 자처한 진태경. 목격자들의 증언, ‘그는 숭고한 희생정신의 소유자’, ‘평생 잊지 못할 은인’.
– 헌터 협회, 대책 수립 및 구조대 출발 준비.
– 평화 길드 대리인, ‘현재 수뇌부와 연락이 닿지 않아…….’
– 네티즌, 지지부진한 협회 대응에 비난 폭주. 진태경 고립 20분째.
–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
“이, 이게 무슨?”
희생은 뭐고, 고립은 또 뭐란 말인가.
길드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돌고 있어야 할 진태경이 희생이라니.
난데없이 네임드 몬스터라니!
눈을 부릅뜬 채 굳어 있던 최민우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진태경의 실력은 그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미끼를 자처해 길드원들을 먼저 탈출시킬 정도라면 엄청난 위협에 직면했음이 틀림없었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핸드폰을 으스러져라 움켜쥔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트레이닝 룸의 문이 열리더니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상쾌하다.”
“아저씨. 저 피부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
“아, 도련님. 이미 나와 계셨…….”
“김 집사님!”
다급한 외침 한마디면 충분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세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 집사가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진태경 씨에게 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 * *
A급 게이트, [흑마법사의 검은 숲]의 입구는 이미 모여든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안전을 위해 파견된 협회 소속 헌터들과 타 길드 소속의 헌터들. 목숨을 걸고 특종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까지.
수백 명이 훌쩍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로 사방이 웅성거렸다.
“진태경, 죽었을까요?”
“어렵지. 벌써 한 시간째 감감무소식이잖아.”
“그래도 이미 한 번 네임드 몬스터를 처치한 저력이 있는데…….”
“아, 그때 그 와이번? 대단하긴 하지. 대단하긴 한데…….”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선배 기자가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너도 명색이 헌터부 기자면 생각을 좀 해 봐라. 아까 진태경이랑 같이 있었던 평화 길드원 인터뷰 못 들었어? 네임드 몬스터 하나가 아니라 몇백 마리가 더 있었다잖아. 경우가 달라.”
“그 정도입니까?”
“마, 그나마 진태경이라 이 정도인 거야. 다른 놈이었으면 ‘아마도’나 ‘어렵다’ 같은 말 따위는 입 밖에도 안 내. 어떤 헌터가 혼자 한 시간을 버틴다고 생각하겠어? 구조 준비는 개뿔이. 이미 죽었고 시신이나 수습할 준비 중이었겠지.”
후배가 나직이 신음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군요.”
“좆 된 거지, 아주. 그 와중에 기사 좀 끄적여 보겠다고 여기 있는 우리도 미쳤고.”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됐으니 취재 허락 나온 거 아닙니까?”
“저기 안 보이냐? A급 헌터만 서른 명이 넘게 온 거.”
선배 기자가 턱짓한 곳에는 척 봐도 대단해 보이는 헌터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검과 방패가 교차된 엠블럼을 가슴에 차고 있는 헌터들이었다.
“아레스 길드에서도 파견 나왔군요.”
“방금 막 왔어. 견적 안 나온다 싶으면 정부에서 부탁해도 씹어 버리는 놈들인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진태경을 구조하기 위해서 온 걸까요?”
“글쎄다. 그럴 수도 있고. 네임드 몬스터를 꿀꺽하려는 생각일 수도 있고.”
네임드 몬스터는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
가장 최근에 진태경이 처치했던 와이번, ‘외눈박이 카루스’도 이제 막 각성한 네임드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조 단위에 달하는 가치를 지녔다.
“그런데…… 이 정도면 이제 구조 작전 시작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전력은 충분하잖아요.”
“충분하지. 그런데 저놈들 생각은 다를걸?”
“예?”
“아니다. 됐어.”
선배 기자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언 20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구른 베테랑 중의 베테랑. 사방에 눈과 귀가 널려 있었고, 그만큼 보고 듣는 것도 많았다.
‘진태경이 거슬렸겠지.’
최근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묘한 소식을 들었다.
명동과 평화, 두 길드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포착되었다는 정보였다.
아는 사람도 몇 안 되고, 금방 사그라진 찌라시로 판명 났지만…… 오랜 세월 연마한 기자의 촉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아레스 길드가 나타난 것도 그렇고.’
네임드 몬스터의 등장에 국내 최대 길드가 나서는 것은 전혀 이상한 그림이 아니다.
하지만 찝찝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수뇌부가 모여 있는 쪽을 바라보던 기자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손바닥 닳겠다, 닳겠어. 이 인간아.’
이번 일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서울지부 협회장은 3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손바닥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저 친구 이름이 뭐였지? 석고상? 석고준?’
아레스 길드의 경호 팀장이라던가. 사실상 길드장이나 다름없는 이정룡의 수족이라고 들었다.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알랑거리는 서울지부 협회장의 모습을 보니 구조대 투입이 느려지는 이유를 얼핏 알 것 같았다.
“이 새끼들 참, 재밌게들 노네.”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선배 기자가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비벼 끈 그 순간이었다.
“평화 길드다!”
“뭐? 어디!”
“야, 야! 카메라 준비해!”
술렁이는 분위기, 방송사 사람들의 외침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향해 쏠렸다.
단 네 사람. 3남 1녀로 이루어진 그들은 홍해를 가르듯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 게이트 앞에 섰다.
서울지부 소속의 헌터들이 그들을 막아서기 전까지.
“비키십시오.”
선두에 선 청년, 최민우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황급히 달려온 서울 협회장이 대답했다.
“아직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네. 구조 작전을 실행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
“시간? 여기서 더 말입니까?”
“잠시, 아주 잠시면 충분하네.”
“이미 한 시간 가까이 지났습니다.”
침착한 목소리. 그러나 눈동자는 불길로 일렁였다. 그의 뒤에 있는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구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닐세. 방침을 따르게.”
“누구의 방침입니까? 협회? 아니면…….”
찰나의 순간, 최민우의 시선이 협회장의 뒤에 서 있는 석고준을 훑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가 말을 이었다.
“협회 헌터들을 물려 주십시오. 우리 평화 길드만이라도 돌입하겠습니다.”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권위적인 어조로 대답한 협회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서울 협회 소속의 헌터들이 마뜩잖다는 얼굴로 평화 길드원들을 둘러쌌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게.”
그 한마디에 최민우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그는 불덩어리를 토해 내듯 외쳤다.
“저 안에! 내 친구가 있단 말입니다!”
찰칵, 파팟!
카메라가 그 모습을 담고, 눈부신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최민우는 개의치 않았다. 분노에 찬 외침이 이어졌다.
“죽을 수도 있다고!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수백의 스켈레톤 부대를 이끄는 네임드 몬스터. 그에 맞서 죽을 위기를 넘기고 있을 진태경을 생각하자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당장 비켜, 이 개새끼들아!”
* * *
스켈레톤 워로드가 위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사령관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일어나라. 나의 충실한 수하들이여. 군단의 강인한 병사들이여!
그 순간, 누군가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워로드의 두개골을 후려쳤다.
빡!
“염병 진짜. 주문 하나는 쓸데없이 더럽게 길어요. 내가 빨리 하자고 했지.”
– …….
“대답 안 하냐?”
– ……옙.
워로드가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자, 자라나라. 해골 해골…….
솨아아악!
워로드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검은 숲을 잠식했다.
공터에서 쑥쑥 솟아오르는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는 청년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맺혔다.
“이야, 이번 농사도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