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784
#783화
쉬이이잉!
쇄도와 동시에 섬광처럼 내뻗은 창날이 공간을 가른다. 공기를 태우고, 바람을 지우며 솟구친 화염이 짙은 어둠을 관통했다.
퍼어엉!
보이지 않는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 일점(一點).
파도처럼 덮쳐 오던 마력 중 일부가 힘없이 흩어진다. 쏘아지던 속도 그대로 마력의 틈새를 파고든 내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아니,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미카엘 실베르트는, 더 이상 미카엘 실베르트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 제법이구나.
스산한 그 목소리가 귓가에 닿은 그 순간.
쉭.
놈의 신형이 지워지듯 사라졌다.
순식간에 목표가 사라진 시야 속, 나는 당황하는 대신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틀었다.
슈확!
등 뒤에서 불쑥 솟아오른 검이 옆구리를 스쳐 허공을 꿰뚫는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심장이 관통되었을 일격. 나는 돌아서며 일장(一掌)을 뻗었다.
꽈아앙!
분명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신일진대. 두 손바닥이 부딪침과 동시에 폭발과도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폭발 이상의 충격파와 함께.
드드드득!
밀려나는 발끝을 따라 땅거죽이 뒤집힌다. 수 미터를 물러선 나와 달리 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미카엘 실베르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이제야 알겠느냐, 내게 맞선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퉤.
나는 대답 대신 입 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 냈다. 그리고 그것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힘주어 걸음을 내디뎠다.
콰앙!
발끝에 닿은 지면이 폭발하듯 부서진다.
전신을 스치는 바람과 함께 십여 미터의 거리가 단번에 사라지고, 빛살처럼 휘두른 창과 검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아앙!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주위의 공기가 터져 나간다. 넘쳐나는 마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길고 거대해진 그것은 창날을 크게 밀어 냈다.
우득.
손목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통증.
이건 신체 능력을 떠나, 품고 있는 기운의 크기에서 나오는 차이다.
마정석을 흡수한 미카엘 실베르트의 신체 능력이 훨씬 향상된 것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샘솟는 마력으로 더욱더 강화되니 내가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내가 이대로 정면 승부를 고집한다는 전제하에서만.
카드드득!
돌연 부드럽게 회전시킨 창날을 따라 검신이 미끄러진다.
분명 실린 힘에는 큰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카엘 실베르트의 검은 주인의 의지를 벗어났고, 나는 짐작이 맞았음을 확신하며 놈을 향해 일권(一拳)을 뻗었다.
화륵, 후웅!
섬광처럼 터져 나온 화염.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인 짙은 어둠이 황급히 주인의 몸을 감쌌으나, 전력이 실린 멸염신권(滅炎神拳)은 마력을 불태우며 놈의 가슴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포탄처럼 튕겨 나가는 신형.
황급히 양팔을 떨쳐 쏟아낸 마력으로 나를 견제한 미카엘 실베르트가 울컥 핏물을 토해 냈다.
쿨럭.
화살처럼 날아드는 마력을 모조리 베어 낸 나는 비틀거리는 놈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흥을 느꼈다.
비로소 확실한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 아니라, 놈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의 색이 붉다는 점에서.
“그래, 너 같은 괴물도 아직까지는 인간이라 이거지.”
혼잣말과도 같은 내 뇌까림에 미카엘 실베르트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허용한 놈의 눈동자는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나는 선선히 대답했다.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 뭐?
“이해할 필요 없다. 어차피 이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뭔가가 존나게 많으니까.”
– ……!
“그래서 나도 굳이 이해하려고 안 해. 너나, 그간 너랑 붙어먹으면서 뭔 개짓거리를 저질렀길래 저기서 싸우고 있는 건지 모를 미친놈들이나…… 죄다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거든.”
나는 미카엘 실베르트를 빤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걸 이해하는 순간 나도 똑같은 병신이 되어 있겠지.”
그 한 마디에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던 얼굴 위로, 새로운 감정이 덧씌워진다.
분노. 혹은 치욕.
한껏 일그러진 놈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이 유쾌해지는 일이었다.
“내가 아까 말했었지. 거머리는 결국 거머리일 뿐이라고. 죽었다 깨어나도 용이 될 수 없다고.”
– ……네놈.
“그래, 모든 걸 떠나서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열기를 머금은 숨결이 화룡(火龍)의 그것처럼 뜨겁다. 나는 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덧붙였다.
“넌, 내가 지금껏 만난 놈 중에서 가장 강한 거머리라는 거.”
그 한마디와 함께, 나는 역수(逆手)로 말아쥔 백염을 망설임 없이 쏘아 보냈다.
파앙-!
소닉 붐이 일어난 것처럼 겹겹이 터져 나가는 공기.
그리고 그 끝에, 미카엘 실베르트가 있었다.
콰앙! 구구구궁!
화염과 마력이 뒤섞인, 거대한 폭발.
수십 겹의 방어 마법 덕분에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고, 나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파편의 소나기를 섬광처럼 가로지르며 쌍장(雙掌)을 내질렀다.
퍼어엉!
화염을 머금은 광풍이 휘몰아쳤다.
폭발과 함께 온통 뿌옇게 물든 주위 풍경 속에서, 비틀거리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두 눈에 선명히 각인된다.
‘놈이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확신.
동시에 땅을 박차며 쇄도한 나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아니, 마음속에서 외친 명령어와 함께 그려지듯 나타난 두 자루의 창을 잡고 다시 한번 쏘아 보냈다.
쐐애애액!
공간을 가로지르는 두 줄기의 섬광.
그리고 미카엘 실베르트가 신형을 비틀며 투창을 피해 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주위를 감싼 어둠을 찢으며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 진태경!
후우웅!
분노 어린 외침 너머로 전해지는 묵직한 파공성.
무식하리만치 엄청난 마력을 공급받아 거대해진 검이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내리그어졌다.
쏴아아악! 서걱!
공간이 갈라지며 목표를 잃은 검이 지면을 쪼갰다.
그와 동시에 가슴으로부터 아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분명 마지막 순간 옆으로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에 실린 압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고 날카로웠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힘과 속도.
하지만 놈이 내가 가질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을 가졌듯이, 나 역시 놈에게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공력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
바로 무공(武功)을.
쿵! 콰드드득!
재차 검이 들어 올려지던 그 순간, 공력을 끌어올려 짓밟았다.
천근추(千斤錘)를 응용한 움직임과 함께 검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에, 미카엘 실베르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 ……!
처음 무공을 접했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나도 적천강에게 제대로 된 무공을 사사하며 매일같이 놀라움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내게 있어 놈은 스승이나 제자가 아니라, 반드시 죽여야 할 괴물이었다.
친절한 설명 따위는 해 줄 없는, 순수한 의미의 적.
화륵.
팔 성에 이른 화염신장(火焰神掌)이 끔찍한 열기를 토해 낸다.
이미 검 자루를 쥐고 있던 손을 빼기에는 늦은 상황. 놈이 황급히 다른 한 손을 내뻗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명령어를 읊었다.
‘인벤토리 오픈. 소환.’
푸푹!
굉음 대신 터져 나온 것은 핏물이었다. 마력에 이어 손바닥을 관통한 단검을 확인한 미카엘 실베르트가 이를 악물었다.
툭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뜬 두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깨달음과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
– 이건……!
철두철미한 미카엘 실베르트의 성격이라면, 이미 내가 지닌 인벤토리의 존재를 얼핏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강하고, 그 이상으로 임기응변에 능숙하다.
설령 놈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력의 크기는, 생사(生死)를 결정짓는 한 요소에 불과하니까.’
지금껏 내 손에 쓰러진 강자들이 증인이고 검사이며 동시에 판사다.
누군가는 나를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열화신룡(烈火火龍)이라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각성으로 엄청난 힘을 얻은 행운아라 부르지만.
모두 틀렸다.
F급 헌터였던 나는 흙탕물에서 태어나 숱한 죽음의 위기에서 몸부림치며 성장했다.
혼신을 다한 몸부림으로 주위를 가득 메운 이 구덩이 속의 흙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마침내 맑은 연못으로 변할 때까지.
그런데…… 사마귀도, 두꺼비도 아닌 거머리 따위에게 연못을 넘겨줄 수는 없다.
이 연못을 흙탕물이 아니라, 핏물로 가득 채울 거머리라면 더더욱.
푹, 푸푸푹!
나는 빛살처럼 손을 휘둘렀다.
단검에 관통당한 미카엘 실베르트의 손을 꽉 움켜쥔 채, 인벤토리에서 불러온 또 다른 무기로 놈의 전신 곳곳을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고, 비틀며 쑤셨다.
– 크아아악!
한껏 벌어진 입가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뒤늦게 검 자루에서 떨어져 나온 손이 마치 공성추처럼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후웅!
섬뜩하리만치 묵직한 파공성.
상대는 어지간한 S급 몬스터 두셋을 합친 것 같은 마력과 대형 몬스터도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근력을 가진 괴물이다.
아무리 내가 시스템으로 강철 같은 육체를 지니게 되었다 해도, 이대로 저 공격을 허용한다면 무사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라면.
‘인벤토리 오픈. 소환.’
우득!
강렬한 충격에 상반신이 들썩였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울컥 솟구친 약간의 핏물이 입안에 고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미카엘 실베르트가 죽을힘을 다해 휘둘렀을 일권은 살을 터트리고 뼈를 부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내 상반신을 감싼, 붉은빛이 감도는 갑옷의 일부를 파손시켰을 뿐이다.
삐빅.
– [화룡갑(火龍鉀)]의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 현재 파손율 : 44%
– 90% 이상 파손되었을 시. 인벤토리로 회수되며 자동 수복 모드에 들어갑니다.
귓가를 파고드는 알림을 들으며, 나는 멍하니 굳어 버린 미카엘 실베르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응~ 수리하면 그만이야~”
– ……!
그리고 그 순간.
푸우웃!
입 안에 고여 있던 핏물을 놈의 얼굴에 뱉었다.
동시에 면상에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본능적으로 발버둥 치는 몸뚱어리에 일권을 꽂아 넣었다.
마치, 지면에 박힌 못을 망치로 때려 박듯이.
콰앙! 콰드드득!
묵직한 굉음과 진동이 사방을 휩쓸었다. 주위의 지반이 움푹 가라앉으며 생겨난 커다란 크레이터 속, 멸염신권에 가슴을 직격당한 미카엘 실베르트가 쓰러진 채 핏물을 토해 냈다.
– 컥, 커헉……!
울컥거리며 솟구치는 핏물이 구덩이 안으로 고였다.
놈이 걸치고 있던 갑옷은 이미 박살 난 지 오래. 새하얗던 피부는 핏물과 그을림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병신 새끼.”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손을 뻗자 쏘아지듯 날아온 백염의 창자루가 손아귀에 감긴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창날을 들어 올렸다.
슈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