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 hua's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등롱이 밝히고 있는 어두운 방 안.
붓을 놀리던 하오문 형문 지부의 지부장, 곽서(廓書)가 입을 열었다.
“팔무신의 정보를 원한단 말이군.”
탁자 너머에 서 있는 사내, 하오문도 송초광(松草曠)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간결한 답을 들은 곽서의 이마에 긴 주름이 일(一)자로 잡혔다.
‘매화신협이 있었을 줄이야.’
곽서는 붓을 고이 내려놓았다.
지금 그의 머리는 꽤나 복잡한 상태였다.
돌연 무림맹의 마차가 나타난 것에 정보를 파악하고자 송초광을 보낸 거였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의뢰를 받고 말았다.
매화신협 천휘.
현 강호에서 그 누구보다 큰 위세와 이름을 떨치는 자임과 동시에.
하오문에는 나름의 이유로 각별한 자였다.
‘얼마 전 문주님께서 매화신협이 찾아온다면, 자신이 방문한 것처럼 아주 극진하게 모시라고 전했었지.’
그는 수십 일 전, 중원 곳곳의 하오문 지부에 내려진 지령서를 떠올렸다.
사실 매우 당혹스러운 지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오문은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특별하게 취급하는 곳이 아니었다.
모두 평등하게 대했다.
그것이 정파든, 사파든.
사람이 아닌 돈.
그것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구주삼패세가 그들을 휘하에 두려고 서로 다투며 갖은 방법으로 회유할 때도, 딱 잘라서 거절할 정도였다.
그랬던 만큼, 이번 문주의 지령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하오문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지령이었기에.
‘하나 문주님께서 그런 지령을 내렸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이마에 새겨진 주름이 깊어졌다.
작금의 하오문주, 은초빈의 나이는 매우 어렸다.
아직 이립도 안 되었으니.
하오문의 기나긴 역사에서도 최연소의 문주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얕본다?
멍청한 놈들이나 할 짓이었다.
그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하오문도는 그녀를 받들어 모시기 바빴다.
암습, 암살, 악랄한 정쟁 등.
온갖 더러운 짓이 넘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문파가 하오문이었다.
한데 은초빈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오문에서 세력을 쌓아 온 노물들을 제치고, 어린 나이에 문주가 된 것이다.
아무리 전대 문주의 제자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특히나 그 두뇌가 두렵지.’
그의 눈동자가 옆으로 구르더니, 탁자 한쪽에 쌓여 있는 많은 서책 중 하나를 시야에 담았다.
지령과 함께 도착한 서책으로 팔무신의 정보가 정리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으니.’
매화신협이 찾아오면 팔무신의 정보를 찾을 것이라며 준비해 나눠 준 서책을 본 곽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이번에 무림맹을 빠져나온 것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곽서가 그 나름대로 천휘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빠르게 회전할 때였다.
“팔무신의 정보를 원한 것이었나.”
무심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곽서와 송초광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 쪽으로 홱 고갤 돌렸다.
직후 헛숨을 들이켰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구석 의자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높은 콧대에 피를 머금은 듯 고혹적인 입술, 그리고 날카로운 턱선.
흑백이 선명한 두 눈은 별을 담은 듯 반짝였고 백옥과도 같은 피부는 눈처럼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둘은 그러한 여인의 미모에 감탄하지 못하고, 긴장감에 숨을 삼켰다.
상황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귀신……?’
분명히 여인은 눈앞에 떡하니 있건만, 둘의 기감에는 그 존재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누구지? 그리고 언제부터 대화를 들은 거지? 처음부터?’
머릿속으로 그녀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문을 떠올리던 곽서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본 문과 거래하러 오신 분입니까?”
“거래라면 거래겠어.”
여인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둘의 시선이 동시에 바람에 펄럭이는 그녀의 소매로 향했다.
‘저 모습은…….’
‘외팔이?’
곽서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외팔이에 저렇게나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여인? 이 정도라면 강호에 충분히 알려졌을 법한 인물…….’
그가 재빨리 기억을 뒤져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할 때.
스륵―
돌연 그녀의 신형이 확 커졌다.
한순간에 넉 장의 거리를 격하고 곽서의 탁자 앞에 나타난 것이다.
경악스러운 보신경이었다.
‘……!’
놀란 곽서의 두 눈이 커진 그때.
“이건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그녀의 손이 서책을 향해 뻗어졌다.
‘무슨!’
팔무신의 정보가 적힌 서책을 집으려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곽서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사락―
서책은 이미 그녀의 손에 들린 상태였다.
“……의외로 정보가 많지는 않아.”
태연하게 서책을 넘기며 그 내용을 읽는 여인을 본 곽서의 눈이 굳어졌다.
“값도 치르지 않고 정보를 취하려 하다니. 본 문과 척을 질 셈이오?”
곽서가 살기를 흘리며 말했다.
하오문의 규율을 너무나 간단히 어긴 여인의 태도에 참지 못한 것이다.
“값? 값이라면 이미 치렀을 텐데.”
그런 곽서의 말에 여인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내 앞임에도 살아 있으니. 목숨을 값으로 줬잖아?”
살기를 품기는커녕, 가볍게 툭 던지듯 내뱉는 무덤덤한 음성임에도 곽서와 송초광은 등골에서부터 소름이 끼쳤다.
“……협박하는 것이오?”
“협박?”
여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입을 다문 곽서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가 순간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서책을 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그 서책이 누구에게 전해질 것인지 아시오?”
“그럼. 잘 알지.”
나직이 말한 여인은 다 읽은 서책을 덮더니, 곽서를 가만히 주시했다.
“매화신협에게 갈 것이잖아.”
“그걸 알면서 가져간 것이오?”
물음에 여인은 완전히 덮은 서책을 소매에 넣으며, 싸늘한 말을 뱉었다.
“그걸 알아서, 가져간 거야.”
* * *
우물우물―
온화한 인상의 젊은 청년이 술과 고기를 쉼 없이 입에 넣었다.
“캬아, 좋네.”
술병을 들고 그대로 벌컥 들이켠 청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빛냈다.
‘이럴 때는 역용술이 참 좋아.’
청년, 천휘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무복을 갈아입는 것으로 부족해 평소라면 과한 내공 소모 때문에 펼치지도 않는 역용술까지 사용했다.
그 덕분에 천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한참 그렇게 식사에 집중하던 어느 순간.
‘응?’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멀리서 강렬한 기파가 느껴졌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 했는데.’
술잔을 내려놓은 천휘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기파 쪽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촤라락―
주렴이 작게 흔들리며, 죽립을 깊게 눌러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시끌벅적하게 식사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객잔 주인과 점소이마저도 방금 들어온 손님, 여인을 보지 않았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는 모습이었다. 객잔 내에서 오직 천휘만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벅, 저벅.
여인은 비어 있는 한쪽 소매를 바람에 흩날리며 천휘가 앉은 탁자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눈에 다시 띄면 죽는다고…….”
탁.
여인, 암제의 제자가 품에서 책을 내놓았다.
“네가 하오문에 의뢰했었던 팔무신의 정보가 적힌 서책이야.”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지?”
“하오문에서 전달받았어.”
암제의 제자는 얼굴에 철판을 깐 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오문이? 너한테?”
천휘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 같아?”
“진짜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지 않겠어?”
천휘는 암제의 제자를 가만히 훑어보다가, 서책을 손에 들었다.
“만약 아니면?”
“내 목을 가져가.”
“그건 당연한 거고.”
천휘는 그녀의 목숨을 취하겠다는 말을 아주 담담히 내뱉었다.
“일단 이걸 읽을 동안 잠깐의 시간을 주지.”
암제의 제자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한 천휘는 서책을 손에 들었다.
‘하오문의 직인은 맞는데.’
천휘가 내용을 훑어보며 눈을 흘겼다. 서책의 하단부에는 하오문의 직인이 아주 정확하게 찍혀 있었다.
이어서 그는 곧장 손을 놀려 책장들을 넘겼다.
‘생각보다 애매한데.’
정보가 상당히 단편적이었다.
‘그래도 팔무신에 대해서 이 정도면 제일 많은 정보인 건가.’
천휘는 차분히 기나긴 글귀를 다시 읽어 보았다.
그것은 서책의 맨 처음에 적힌 글로, 팔무신을 칭송하는 글귀였다.
― 검에 통달한 무당의 신선과 용을 현신하는 곤륜의 황제가 구파일방의 명성을 빛내고 있고, 천하를 아우르는 제갈의 패도적인 군자와 독에 통달한 당가의 제왕이 팔대세가를 빛내고 있으니. 이를 두려워한 하늘은 천하의 사공을 모두 통달한 황제와 사야의 지존을 내렸도다.
정과 사, 혼란이 도래한 시대에 어둠을 지배하는 제왕과 온통 비밀에 부쳐진 무의 제왕이 홀로 세상을 주유하니.
여덟의 무신이 기나긴 혼란을 잠식시키고, 천하를 지배하는구나.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같잖은 미사여구를 참 많이도 붙였어.’
얼핏 시와 같아 보이는 책의 서두를 다시 보면서, 피식 웃을 무렵.
“정보가 부족하지 않겠어?”
나지막한 물음이 들려왔다.
죽립을 살짝 치켜든 암제의 제자가 두 눈을 광명하게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은은한 암기가 일렁거렸다.
“뭐가?”
“팔무신에 대한 정보 말이야.”
“알고 있는 것이 있나 봐?”
“사부님께 들은 것이 있거든.”
듣던 천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고 보니 암제의 제자였지?’
따지고 보면, 작금의 천하에서 누구보다 팔무신의 정보를 잘 아는 인물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정보를 줄 리가 없지.’
천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목적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암제의 제자는 곧장 입을 열어 답했다.
“너와 동행하게 해 줘.”
“뭐?”
천휘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유가 뭔데?”
“구천회가 널 노리고 있어서.”
“구천회?”
천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암제의 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니라, 구천회라면…….’
천휘는 그녀의 답변에 따라 그 목적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당했다.
즉 원수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자신을 노리기보다는, 동행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우수를 잃어, 한시라도 바삐 요양이 필요한 와중에.
‘구천회가 무엇보다 급하단 뜻.’
천휘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그녀의 의중을 알아챈 것이다.
‘천상탈혼령을 노리는 거네.’
씩 웃은 천휘가 입을 달싹였다.
“팔무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지?”
“그들이 익힌 무공과 자잘한 정보들 정도 알고 있어.”
“호오.”
천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안 그래도 가장 알고 싶던 정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좋아.”
천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동행은 곤륜까지만이야.”
“……그 뒤에 쫓는 것은?”
“귀찮게만 안 한다면 몰래 쫓아다니는 것 정도는 허락하지.”
암제의 제자는 잠시 고민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 정도면 나도 아쉬울 것 없어.”
“그럼 협상 완료네.”
이어서 천휘가 검지를 까딱였다.
“앉아.”
암제의 제자는 담담한 눈빛을 흘리며 그의 맞은편에 고이 앉았다.
동시에 둘은 공력을 끌어 올렸다.
촘촘히 일어난 공력의 기파가 반구형으로 둘의 공간을 빠르게 감쌌다.
기로 이루어진 벽, 기막이었다.
일순간 그들의 주변으로 시끌벅적한 객잔 내의 소리가 씻은 듯 사라지고, 고요해졌다.
오직 둘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지고의 영역에 오른 고수들이 펼쳐 낸 기막이었다. 그로 인해 둘이 있는 공간이 다른 세계인 것처럼 단절된 것이다.
“어떤 것을 듣고 싶어?”
기막이 완전히 펼쳐지자 암제의 제자가 물음을 흘렸다.
“일단 팔무신에 대해 알아야겠어.”
천휘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목소리에 내공이 실려 내뱉는 말이 묵직했다.
“팔무신은 구파일방, 팔대세가, 사파, 정사 중간에서 두 명씩 존재해.”
압박해 오는 천휘의 기파에도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녀 또한 경지에 오른 절세고수.
압박 정도는 화할 수 있었다.
직후 그녀는 머릿속에 정리해 둔 팔무신의 정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무당검선, 곤륜용황이 구파일방에 속하고, 패군과 귀천독제(歸天毒帝)가 팔대세가에 속하지. 사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