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did such a good job? RAW novel - Chapter 9
9화 Chapter 4 – 출판 제의 쪽지도 잘 쓰는 김 대리! (1)
‘괜찮네?’
지금 정훈은 책상에 앉아 문스토피아를 통해 소설 하나를 보고 있다. 저번 설에 사촌 동생 민호가 추천해 줬던 『내 잘생김 무한』이라는 소설. ‘왕글이’라는 작가가 쓴 처녀작인데 나름대로 독특한 요소도 있고, 필력도 탄탄하다.
문제는 1천이 넘지 않는 선작 수. 그때 대충 봤던 대로 1화 조회 수가 낮은 걸 보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이었다.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는 제목부터 독특한 것으로 시선을 끄는 게 효과가 크니까.
김정훈은 오늘까지 업로드된 25화까지 모두 읽은 뒤에 그에게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푸른 하늘 출판사입니다.’라는 상투적인 제목이다. 다만, 이런 제목만큼 작가에게 짜릿한 쪽지는 없다. 작가의 글을 인정하고, 출판을 제의하는 글이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음, 일단 창의적인 표지와 소재를 칭찬하면서 작가를 띄워 올려 주고….’
출판사에 입사한 뒤로 계속해 온 출판 제의 쪽지지만, 늘 쉽지 않다. 이게 어렵다고 다른 작가들에게 쓰는 내용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쪽지를 보낼 경우에는 읽기만 할 뿐, 거의 답장은 오지 않는다. 작가들도 매번 같은 문구라는 걸 알고 있다.
[작가님의 글, 『내 잘생김 무한』에는 독자님들이 좋아하는 요소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특별한 스토리와 독자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가 정말 백미였습니다. 이 좋은 작품을 꼭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욕심과 김칫국 마시는 듯한 기대심에 이렇게 쪽지를 보내고 있는 지금도 계속 기쁘기도 하면서 너무 두근거립니다.]완벽하다. 어떤 작가가 보더라도 반할 만하다. 마지막에는 정훈이 속한 출판사의 대표작 몇 개를 나열하고, 연락처를 첨부했다. 대표작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대단한 작품들이 우리 출판사를 선택했다.’는 걸 보여 주면서 우리 출판사가 이만큼 괜찮다는 걸 어필하는 것이다.
정훈은 마지막으로 쪽지 내용을 점검한 뒤에 전송 버튼을 눌렀다. 신년 행사로 워낙 바빴던 탓에 2주일 만에 적어 보는 출판 제의 쪽지였다.
“으아.”
정훈은 기지개를 쭉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고 출판 제의 쪽지까지 썼더니 다리에 좀이 쑤셨다. 그는 휴게실로 가서 믹스 커피 한 잔을 탔다.
“쉬러 나오셨어요?”
정훈이 나오기 직전까지 앉아 있던 진기용 사원이 어느새 따라 나와 휴게실로 들어왔다.
“응. 기용 씨도?”
“예. 김 대리님 나오시는 거 보고 따라 나왔습니다. 하하핫.”
진기용은 어색하게 웃으며 늘 그렇듯이 블랙커피를 탔다. 그가 믹스 커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기용 씨는 블랙만 먹나? 달달한 거 안 좋아해?”
“예. 커피는 블랙이 입 냄새 제거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알고 난 뒤로 블랙만 고집합니다. 허헛.”
“블랙커피가 입 냄새를 제거해 줘?”
“네. 대신 설탕도 넣으면 안 돼요. 제가 자주 마셔 본 바로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구나.”
하나 배웠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를 따라 진기용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진기용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소설 보시는 것 같던데, 어떤 소설이었어요?”
고민하길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줄 알았는데, 약간 기운 빠지는 느낌이다. 정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문스토피아에 들어가 아까 보았던 『내 잘생김 무한』 작품을 띄우고 진기용에게 건넸다.
“이거.”
기용은 스크롤을 내려 편 수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작 컨택(contact)하시는 거예요?”
“응. 나쁘지 않아서 조금 전에 쪽지 보냈어.”
“아, 근데 이 정도면 상태가 조금 나쁘지 않아요?”
선작 수와 조회 수를 말하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쓰고, 출판사는 독자에게 팔린 만큼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이기에 잘 팔리지 않을 작품들은 계약하지 않는다. 실제 판매에 들어가기 전에 그 판매량을 예상할 수 있는 게 선호작 수, 조회 수, 연독률 세 가지인데, 이 작품은 선작 수와 조회 수가 낮기에 하는 말이었다.
“선호작 수랑 조회 수는 낮은데 연독률이 괜찮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1화 조회 수가 낮아서 홍보만 제대로 때리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볼 거라고.”
진기용은 정훈의 말을 듣고 회당 조회 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아, 그러네요. 회당 조회 수가 거의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렇지. 이런 작품은 홍보만 잘해 주면 금방 올라갈 수 있어.”
“맞아요. 예전에 『매일같이 다른 능력』이라는 작품이 완전 쩌리였다가 제목 바꾸고, 문스토피아 배너 넣으면서 확 떴잖아요.”
기용이 말한 작품은 정훈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신입 사원 시절이라서 선호작 수만 보고 읽지도 않고 포기했다. 그걸 라레테온 E&M이라는 회사에서 재빠르게 채 가서 대박을 냈다. 그래서 정훈은 며칠간 아쉬움을 삼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덕분에 그 뒤로는 연독률까지 확인하고 대박이 날 작품을 흘려보낸 적은 없으니 나름 교훈이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이 작품도 그럴 것 같아서 말이야. 대신, 표지랑 제목도 조금 바꿔야겠지만.”
“생각해 두신 제목은 있어요?”
“아니, 방금 읽었으니까 생각해 봐야지. 혹시 기용 씨도 시간 있으면 읽고 고민 좀 해 봐.”
“알겠습니다. 지금 맡은 교정 거의 끝나 가니까 퇴근 전에 읽어 볼게요.”
“고마워.”
“어려운 일 아닌데요, 뭐.”
진기용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입사 1년 차답게 성실하고,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몸에 배어서 정훈이 가장 좋아하는 신입 사원이다.
“어머, 여기들 계셨네?”
아, 제일 좋아하는 건 진기용이 아니라, 지금 인사하며 다가오는 임혜리일 것이다.
“둘이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엇, 혜리 선배님도 오셨네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좋죠. 나는 믹스로 부탁해요.”
진기용이 벌떡 일어나서 종이컵을 꺼내러 찬장으로 향했다. 혜리는 진기용에게 눈인사를 하고 정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크크큭.”
“왜 웃어요?”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에 혜리가 턱받침을 하며 이상하게 정훈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뭔데요오?”
혜리가 애교를 섞어 말하자,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단번에 무너진 정훈은 바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네가 선배 소리 듣는 게 웃겨서.”
“그게 뭐가 어때서요?”
“너 들어온 지 이제 갓 1년 넘었는데 벌써 선배 소리 들으니까 신기해서.”
“1년 3개월이거든요! 그리고 그게 비웃을 만한 일은 아닌데?”
“나 안 비웃었는데?”
“비웃었잖아요.”
정훈은 최대한 능청스럽게 부정했다. 능청스럽기가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했다.
“그런 적 없어. 내가 왜 비웃어?”
“그런 것 같았는데…. 어쨌든 저도 이제 나름 높다고요!”
혜리가 가슴을 쭉 뻗으며 나름대로 짬이 찼다는 표시를 했지만, 정훈에게는 가슴만이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그래. 그렇지.”
“아, 또 놀린다.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진기용 씨 앞에서는 그러지 마요.”
“알겠다, 알겠어. 하하핫.”
때를 맞춰, 진기용이 따뜻한 커피를 가져와 혜리에게 건네며 의자에 앉았다.
“고마워요.”
“맛있게 드세요.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계셔요?”
“별거 아니야. 하핫.”
혜리가 째려보기에 애써 시선을 피하며 커피를 마셨다. 계속해서 진기용이 무슨 이야기였나며 궁금함을 표할 때, 나이스한 타이밍에 맞추어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링.
010-3635-xxxx. 모르는 번호다.
“누구지?”
정훈이 관리하는 작가들은 전부 다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다. 아마 콜 센터, 아니면 번호가 바뀐 작가 중 하나일 것이다.
“잠깐만.”
김 대리는 손을 들어 제스처를 취하며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푸른 하늘 출판사 김정훈 대리입니다.”
-그, 쪽지 보고 전화드렸는데….
“아, 혹시 필명이?”
-왕글이요. 『내 잘생김 무한』이라는 글을 쓰는 작가인데요.
조금 전에 쪽지를 보냈던 그 작가다. 예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빨리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목소리는 중성적인 느낌이 들어, 이 사람이 판타지 작가라는 걸 몰랐다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 같다.
“아, 왕글이 작가님, 안녕하세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일단 전화는 드렸는데, 출판 쪽지라는 걸 처음 받아 봐서….
‘예스!’
예상대로다. 아직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기 전이라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이 작품이 있는 것 자체도 잘 모르겠지.
-제 글이 그렇게 반응이 좋은 것도 아닌데 출판 제의를 해 주셔서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당연히 진심입니다. 작가님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조금만 신경 쓰면 확 뜰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요.”
-아, 그런가요? 저도 인기가 없어서 긴가민가하거든요. 사실 연중(연재 중지) 하려고 고민도 하고 있었고요.
전형적인 자존감이 낮은 타입의 작가다. 이런 작가들은 곁에서 으쌰으쌰 해 주고, 멘탈 관리를 해 주면 쑥쑥 올라갈 수 있다.
“아닙니다. 크게 성공할 수 있어요. 제가 이 바닥에서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봤는데, 작가님은 일단 필력이 탄탄하셔서 몇 가지 도움만 받으시면 충분히 베스트 순위권에 가실 수 있어요.”
-아아. 그렇군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 보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예? 직접요?
당황하는 눈치가 보인다. 초면에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작가들도 꽤나 많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설득하기 쉬운 방법도 없다.
“예. 저희 출판사 소개도 해 드리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서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시는 지역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저, 엄청 멀리 사는데 직접 오시게요?
어지간히 놀란 모습이다. 이렇게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어떤 출판사는 작가들보고 직접 출판사로 오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방법이다.
계약서에서도 그렇듯이 작가는 갑, 출판사는 을이다. 방문판매원이 몇 번이고 얼굴을 비치면, 살 마음이 없던 사람도 하나 사 주는 것처럼, 열정을 보여 주면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당연하죠. 저희는 언제나 작가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작가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어디든, 언제든 직접 찾아갑니다.”
감동 멘트까지 완벽하다. 이쯤 되면 작가는 첫 만남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보다 출판에 대한 기대감과 출판사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을 터.
-저, 전남 사는데 오실 수 있으세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서 재워 드리기도 힘든데….
“걱정 마세요. 시간은 언제 괜찮으신가요?”
-음, 저, 이번 주 금요일이요.
“그때 찾아뵙는 게 괜찮을까요?”
-아, 네. 근데 제가 아직 계약하기로 마음을 굳힌 게 아니라서….
‘걱정 마세요. 어차피 만나면 계약하실 겁니다.’
정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하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나서 이야기만 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제가 커피톡으로 시간이랑 장소 찍어 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또 연락드릴게요. 이만 끊을게요.
“네, 작가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넵.
전화가 끊기고, 정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정도면 계약이 반은 성사되었다고 봐도 된다. 지방까지 가면 미안해서라도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있다.
‘작품 분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