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chkin Barbarian Warrior RAW novel - Chapter (172)
172 너희는 이제 X됐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지금의 나는 소인 나라에 온 걸리버다.
힘 조절을 잘못하면 상자갑 찌그러뜨리듯 성벽을 무너뜨리게 될 거야.
심호흡하고 침착하게… 진짜 침착하게.
마음속으로 되풀이해 중얼거리며 몸에 흐르는 힘을 팔로 미끄러뜨린다.
조급하게 튀어 나가려는 힘을 누르며 살며시 놓는 기분으로 쏘았다.
이런 식으로 되는 이유는 역시 이 힘이 온전한 내 것이 아니라 정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일 거다.
뭔가 조금 이상하지만, 이 힘은 튀어 나가 날뛰고 싶다.
여의봉 든 손오공 같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대포를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내가 기분 좋거나 나쁠 때, 흥분했을 때 심하다.
역시 아버지 말대로 제어가 가능하기 전에는 숲을 나와서는 안 돼.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게 느낀다.
한껏 조절해 풀어놓은 힘은 내 손끝에서 떠나는 순간 물 대포 나가듯 힘차게 터졌다.
총소리 나자마자 달려 나가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 같다.
역시 힘 가감은 아무리 오래 연습해도 어렵다.
이렇게 거리가 먼 곳에서 쏘는 건 특히 섬세함이 필요하고, 음, 진짜 쉽지 않다.
그냥 쓸어버리라고 하면 얼마든지 하는데, 하아.
‘조금 실패했는지도 몰라.’
내 눈앞을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정령 나비를 보면서,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정령 나비는 내가 힘을 쓰면 거기에 동조해 함께 날아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끝에서 힘이 쏟아지자마자, 엄청난 수의 정령 나비가 그걸 감싸고 빙글빙글 돌았다.
빛의 용수철이 내 힘을 둘러싼 것 같다.
사람 몸통만 한 것들이 아니라, 아파트 집채만큼 폭이 넓은, 아주 아주 거대한 용수철.
문제는 저 녀석들이 측정 외 존재라는 것이다.
섬세히 조정해 놓은 힘의 균형을 녀석들이 망가뜨린다.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문은 물론 그 근처 성벽이 몽땅 터져 나갔다.
내 힘 조절은 완벽했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일이.
할아버지가 당부까지 했는데 성벽이 와르르 무너지다니, 마음이 뚝 떨어진다.
이 바보 정령들.
하지만 내 마음과 달리 우리 군의 사기는 단박에 뛰어올랐다.
아주 잠깐의 정적이 있은 뒤, 우리 군에서 요란한 함성이 울렸다.
“와아아아아아아!”
“지금이다!”
“가자!”
“적을 죽여라!”
기뻐 펄쩍펄쩍 뛰는 병사, 두 팔을 허공에 올린 채 포효하는 병사도 있다.
대장과 무관들이 병사들 틈에서 팔을 치켜들고 적을 죽여라, 외치고 있었다.
가장 목소리가 큰 것은 할아버지다.
아니, 할아버지가 왜 저기에.
“….”
할아버지의 함성에 근처 병사들이 더욱 환호한다.
문득 할아버지가 이쪽을 보았다.
한눈을 찡긋한다.
아, 어쩌면 일부러 노린 건가.
할아버지는 병사들을 선동하며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이 나라에서 귀족은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물론 비겁하게 뒤에 숨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공작가는 그렇다.
가장 앞에서, 가장 위험한 적을 맡아 싸우는 것이 귀족의 의무라고 들었다.
영지와 영민, 가문을 지키는 게 평소 화려한 생활을 하는 대가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지난날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는 나한테 후계자 교육을 실시한 모양이다.
공작가의 전통이나 정신이라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대부분은 이미 아버지에게 듣고 배운 것들이었다.
어쩐지 너무 빡세다 했어.
나는 할아버지에 뒤질세라 달리기 시작했다.
맨몸으로.
전장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건 내게 너무 고난도의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공격에서는 말을 타지 않았다.
내 말은 전장에 익숙한 녀석이기 때문에 괜찮겠지만, 내가 안 괜찮아.
말이 놀라 날 떨어뜨릴까 봐 무섭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맨다리로 뛴다.
병사 그 누구보다도 빨리 뛰었다.
귀족은 앞장서서 적과 싸우는 자.
할아버지가 지금은 선두다.
한달음에 할아버지 곁으로 갔을 때 우리는 이미 성에 접근한 상태였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화살을 쏘던 병사들도 상당수 떨어졌던 것 같다.
가장자리에서 몇 명이 화살을 쏘았지만 수가 적다.
나는 내 주위를 팔랑거리며 나는 정령 나비를 손으로 휘저었다.
나한테 붙어 시야 가리지 말고 심심하면 저 놈들이나 좀 처리해 줘.
속으로 여러 번 중얼거리며 팔을 젓자 정령 나비들이 성벽 위로 날아오른다.
한꺼번에 파르르 허공을 치솟는 나비 떼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걸 본 적병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벽 위에 서 있던 적병이 한 놈도 보이지 않는다.
무섭기도 하겠지.
정령 나비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현재 진행형으로 벽을 부수며 올라가고 있으니까.
“이놈들! 성 부수지 마라!”
내가 소리치자 아군 병사에게서 다시 요란한 함성이 올랐다.
아니, 저 성은 우리 거니까.
결국 돌고 돌아 너희들의 피땀 흘린 돈으로 보수하는 거다.
환호하지 마.
정령 나비는 성벽의 겉면을 와그작와그작 부스러뜨리며 날아올라 그 너머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나마 성벽 자체를 모두 깨부수지 않은 게 다행이다.
“….”
응, 진짜 다행이다.
나름대로는 저 아이들도 내 말이나 명령을 신경 쓰고 있는 거겠지.
다만 완전히 의사가 통하지 않는 것만으로, 녀석들은 자기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걸 거다.
그 증거로 정령 나비는 한 놈도 내 꾸중에 우울해하지 않고 웃는 듯 날개를 떨며 계속 내 위로,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즐거워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종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건 정말 어렵다.
할아버지가 뻥 뚫린 성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다시 움직였다.
적병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쫓아 들어가면, 그 반대쪽에서 우리를 향해 적병이 우르르 몰려왔다.
며칠 사이 도시의 지리를 파악해두었는지 이 골목에서 또 다른 골목으로 적은 요령 있게 공격해왔다.
그걸 맞아 싸우며 우리는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이 도시의 적과 싸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최우선 임무는 항구와 해상에 서 있는 적함의 파괴다.
적의 함대에는 대포와 비슷한 마도구가 있는 모양이다.
안톤에 있던 마도구와는 조금 다르고, 듣기로는 총이나 화염병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마법사들도 마도구는 사용하지만 우리는 개인전, 상대는 해상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으로 발전 방향이 다르다고 한다.
어쨌든 그걸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 바람 방향은 괜찮지만, 놈들이 도시에 불을 쏘아대면 번질 위험이 있었다.
잘못하면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된다.
나는 싸우는 병사들을 뒤로 하고 항구 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안쪽에도 벽이 몇 개 세워져 있고, 골목은 구불구불하다.
집은 작고 큰 것이 연달아 있어 지나갈 틈이 없기 때문에 골목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빙빙 둘러 가게 된다.
거기에 자꾸만 이곳저곳에서 적병이 출몰해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약간 길치인 경향이 있어서 더 그렇다.
생각 같아서는 적병을 집째로 쓸어버리며 일직선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
나중에 이 도시에서 살 사람들이 곤란해진다.
나는 어머니처럼 인정사정없이 도시를 때려 부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머니가 아이 겁주는 괴물로 활용되는 이유는 아버지를 납치한 것보다, 도망치면서 여러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크다.
이미 어머니 전적이 있는데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면, 이번에는 공작가가 아무리 뒤에 있어도 무마할 수 없다.
할아버지한테 폐가 된다.
하지만 역시 힘을 가감해가며 싸우는 것은 어렵다.
개미와 싸우는 인간의 심정이 되어 봐.
커다란 손가락으로 개미를 한 마리씩 구분해서 죽인다 생각하면 진짜 힘들다.
“도련님! 저쪽입니다.”
내가 반대 방향으로 가려 했던 모양이다.
나한테 붙은 무관이 말을 타고 쫓아오며 외쳤다.
공작령에서 안톤으로 올 때 나한테 붙은 무관은 계속 내 일을 봐주고 있다.
이번에도 저 무관의 임무는 알아서 나를 따라오다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정말 도움 됐어.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갈 뻔했다.
고맙다고 한 손을 들어 보이는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적병이 오른쪽 골목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정령 나비가 있다.
내가 귀찮아하면 잠시 흩어졌다 다시 돌아오고, 또다시 날아갔다 돌아온다.
하지만 대부분 내 시야 안이다.
다소 멀리 가도 그들의 빛은 반짝반짝해 모두 시야 안에 들어온다.
한데, 이 짧은 거리 안에서 정령나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동작을 멈추고 몸을 약간 비틀었다.
쏟아져 온 병사 중 가장 먼 곳에 있는 놈이 가죽 가방을 어깨에 걸고 있는데, 내 정령 나비는 그 근처에서 없어진 것 같다.
마치 그 남자한테 빨려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조금 지위가 있는 놈인가.
주변 병사보다 의복이 좋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란 것처럼 남자가 몸을 흔들었다.
약간 겁을 먹은 것 같다.
“네놈이구나. 이상한 도구를 가지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며 한 발 앞으로 나가자, 남자가 비스듬히 어깨에 걸고 있던 가방을 두 손으로 쥔 채 내밀었다.
아하, 내 공격을 무산하려고?
겁은 먹은 것 같지만 가방 안에 있는 마도구를 굳건히 믿는 것 같다.
“너희 뭔가 잘못 알고 있구나.”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빼 들었다.
“나는 마법사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전사다. 마법 능력만 최고가 아니야.”
나를 가르친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마법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당신이 아는 것만 가르쳤다.
그러니 당연히 나도 마법 한 톨 없이 싸울 수 있다.
그것도 어머니 수준으로.
물론 어머니보다 약간, 주먹 하나 정도 실력이 모자라지만, 어머니를 빼면 내가 이 세계 최강자야.
나는 말과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평상시에 두르는 바람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근처에 정령이 있어 그게 마도구에 빨려 들어가면 곤란하니까.
물론 이미 정령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니 의미는 없을지 모른다.
정령 나비는 그 마도구 근처에 닿으면 지금도 빨려들어간다.
그래도 내가 그들을 사용함으로써 곤란해지는 건 참기 어렵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정은 들었고, 어쨌든 내 것이니까.
“썩을 놈들.”
나는 근처에 있는 놈을 향해 횡으로 도끼를 그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내 정령 내놔, 이놈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사방의 골목과 집 사이사이에서 병사가 쏟아져왔다.
아무래도 나는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내 얼굴을 본 적병들이 히익, 이상한 소리를 낸다.
내 바로 옆에 있던 무관,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아군이고 나를 계속 따라오던 사람인데, 그에게서도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입에서 샌다.
이봐, 자주 본 얼굴인데 그러면 안 되겠지. 상처받는다.
쳇.
나는 도끼를 가볍게 흔들며 적을 향해 말했다.
“함정이라는 건 말이다. 상대를 잡을 수 있을 때 거는 거다. 지금 같은 경우는 함정이라고 하지 않아. 굳이 말하자면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지.”
그렇게 말하며 도끼를 휘두른다.
내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뒤늦게 창칼을 들었지만 그대로 반토막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정령 나비가 내 동작에 맞춰 허공에서 돌아다닌다.
내가 이리 가면 이리로, 저리 가면 저리로, 나를 따라 날았다.
위험해, 너희들 잡아먹는 뭔가가 저기에 있다고.
저리 가라, 생각하는데 멀리에서 뭔가 부서지는 굉음이 울렸다.
뒤를 이어 엄청난 환호성이 들린다.
“철갑 기사단이다!”
“드디어 움직였다!”
“기사단이 우리를 돕는다!”
“우리 뒤에는 무적의 철갑 기사단이 있다!”
“죽여라아아아!”
지금까지 조용히 우리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던 갑옷 기사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왜?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허수아비처럼 얌전히 따라다니기만 하던 녀석들이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이지?
“어쨌든 너희는 이제 X됐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내 정령 내놔, 이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