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st friend is a Korean lady RAW novel - Chapter 58
57회
윤설이 당황한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해인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건 둘째 문제였다.
함께 하고자 하는 네 명 중에 자신과 민준이 포함된다는 게 이 순간, 가장 큰 걸림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세의 사람이었다.
조선과 대한민국의 간극은 몇 백 년이나 된다고 했다.
윤설은 촬영을 마친 후 그를 더 이상 마주할 일이 없어 다행이라 여기던 차였다.
이렇게 정리하면 떠날 일도 수월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속내를 알아챈 해인이 곧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맞다. 넌 좀 불편할 수 있겠구나?”
한없이 밝았던 벗의 얼굴이 시들자 윤설에게 미안함이 스며들었다.
“해인아, 이러면 어떻겠니? 넌 다녀오렴. 난 집에서 쉬는 게 좋을 듯하구나. 피곤하기도 하고….. 그간 정신없이 지냈더니 좀 쉬고 싶구나.”
“히잉. 어떻게 그러냐? 말도 안 돼. 너 혼자 두고 놀러 가면 내가 뭐 마음이 편하겠어? 윤설아, 그냥 맘 편히 가지면 안 될까? 너도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잖아. 조선에선 있을 수 없는 걸 조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아, 물론 나 좋자고 막 던지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네 맘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그래, 윤설아. 돌아갈 것을 생각해 섣불리 행동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이거 오빠 아이디어다? 준이 씨 역시 생각도 못했을걸? 오빠도 지금 준이 씨한테 물어본대. 그냥 시간 남는 사람들끼리 모처럼 바람 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완고했던 마음이 벗의 실망한 표정에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해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윤설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을 받아준 이에 대한 도리였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제 시간으로 돌아갔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윤설은 벗과 헤어지게 될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
조선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가도 조금은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 사이 흠뻑 정이 든 해인의 존재 때문이었다.
“허면…..그…..그리….하자꾸나.”
“정말? 윤설아, 정말이지? 그럼 오빠한테 전화한다. 콜?”
벗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윤설은 제 결심이 준 때문이 아닌 해인이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래야만 그를 마주했을 때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해인이 한껏 들뜬 음성으로 윤 매니저와 통화하는 사이, 윤설이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정확히 1시간 반 후, 윤 매니저는 해인이가 일하는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그나마 차를 돌릴 수 있는 자리는 거기뿐이었고 처음 데려다주던 날부터 자연스레 만남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오빠!”
해인이 웃는 낯으로 손을 흔들자 그가 곧 차에서 내렸다.
윤 매니저는 실없는 사람처럼 배시시 웃으며 제 여자 친구에게 손을 흔들더니 곧 윤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어? 차가 바뀌었네요? 준이 씨는요?”
“응, 밴은 너무 튀잖여. 준이는 회사에 있어. 가는 길에 데려가면 돼. 어서 타. 윤설 씨, 타세요.”
뒷자리에 나란히 두 여자를 태운 차량이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윤 매니저는 운전하는 틈틈이 룸미러로 뒤쪽의 해인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에 바빴다.
윤설은 서로 좋아하는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새삼 알아갔다.
‘해인이가 매니저님과 잘 되면 좋겠구나.’
한참을 달린 차량은 강남의 번잡함 속으로 들어갔고 오래지 않아 번듯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주차를 마친 윤 매니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자 금세 준이 나타났다.
주위의 이목을 고려해 윤설과 해인은 차에 그대로 앉은 채였다.
조수석에 오른 민준이 뒤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해인 씨? 오랜만이네요. 윤설 씨…..”
“네, 준이 씨, 반가워요. 히잇.”
해인이 씩씩하게 반응하자 윤설이 자그마한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안녕…하셨습니까?”
인사들이 오가자 윤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자아, 그럼 넷이서 달려볼까?”
“오빠, 어디로 갈 건데요? 저, 야간 알바가 있어서 그때까진 올 수 있죠?”
“헉, 정말? 그 알바 계속하는구나? 이런…. 안타깝구만. 어, 걱정 마. 서울 근교니까 오래 걸리진 않아. 저녁 먹을 시간은 되는 거지?”
“그럼요. 저녁은 당근 먹을 수 있죠.”
해인이 싱긋 웃자 윤 매니저가 들뜬 음성으로 대꾸했다.
“자아, 그럼 안전벨트들 매시고요…. 좋은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음화홧.”
강남의 번잡한 길에서 서다 가다를 반복하던 차량이 서울을 벗어나며 서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 국도는 한산한 편이었고 드라이브를 즐기기엔 최적이었다.
곧 도로 변으로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자태를 뽐내듯 일렁이자 해인이 감탄을 쏟아냈다.
“어멋, 정말 예뻐요. 여기 어디에요? 대박. 그렇지? 윤설아?”
“우리 해인이, 마음에 드는구나? 여긴 예쁘기로 소문난 북한강변이란다. 준아, 생각나? 몇 년 전에 말도 안 되는 행사하고 돌아가던 날 말이야. 여길 지나가는데 남자 둘이 칙칙하다고 투덜댔잖냐.”
곁에 앉은 준이 피식 웃는 동안 윤 매니저가 신난 얼굴로 수다를 이어갔다.
“그때 여자 친구 생기면 온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렇게 해인이랑 오게 됐네.”
“어머, 오빠, 정말요?”
해인이 수줍은 얼굴로 웃자 윤설이 미소 지었다.
차량 안엔 마치 그녀와 윤 매니저 둘만이 타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떨어져 앉은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이어갔고 윤설과 준은 각자 말없이 창밖을 응시할 뿐이었다.
넷이 있으나 그 안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 조금은 어색해하고 있었다.
북한강변의 물결을 따라 유유히 움직이던 차량이 어느 카페의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규모가 큰 그곳은 실내 뿐 아니라 야외에 자체 테라스를 여럿 가지고 있어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자아, 경치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 씩들 합시다.”
“콜! 좋아요. 어멋, 윤설아, 저기 좀 봐. 너무 예쁘다. 그치?”
탁 트인 강을 배경으로 푸르른 나무와 꽃들이 풍성했다.
자그맣고 복잡한 공간을 벗어난 이들의 시야가 너나 할 것 없이 시원해지고 있었다.
특별히 윤설에겐 후대로 건너와 이러한 풍경을 느껴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마지못해 나온 자리였지만 새로운 곳은 기대 이상이었고 불안했던 마음을 어느덧 편안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윤 매니저가 마실 것을 주문해 쟁반에 담아왔다.
미리 자리 잡은 야외 테라스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지만 강을 마주한 시원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곧 자리에 앉을 것 같았던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준아, 미안하지만 나랑 해인인 저쪽에 따로 앉아도 될까? 둘이 할 얘기도 있고 말이야. 흠흠…. 윤설 씨, 그래도 될까요?”
뜻밖의 양해에 해인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고 윤설과 준은 당황하고 말았다.
“어멋, 오빠도 참…..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아니, 그게….그러니까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니, 뭐 이틀 밖에 안 되긴 했지만…크윽…”
단내가 폴폴 풍기는 대화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하세요. 두 분 모처럼 만나셨는데 좋은 시간 보내셔야죠.”
준이었다.
시선을 떨군 윤설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유지한 채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 역시 벗의 연애를 응원하기에 당연히 허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과 단둘이 남을 일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양해를 구한 이들이 설레는 얼굴로 자리를 옮겼다.
대각선 방향,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긴 해인과 윤 매니저는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웃기에 바빴다.
남은 이들의 시선이 물끄러미 두 사람을 따라갔다가 되돌아왔다.
“윤설 씨….. 혹시….불편하진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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