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382
〈 빌어먹을 환생 383화 〉 귀항
수천 명 규모 해적단의 근거지답게 보물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데, 그중에서는 아이리스가 생전부터 애착을 가졌을 광란의 상징들도 몇 개 섞여 있었다.
그런 것은 특히나 주의해야 했다.
마왕이 얼마나 끈질기고 지독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분명히 죽이고 소멸시켰는데도, 살육의 마왕과 참혹의 마왕은 300년 동안 어둠의 정령이 되어 인간을 홀리고 재림을 시도했다. 광란의 마왕이 되어버린 아이리스도 그런 개수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었다.
유진은 제 손으로 죽인 마왕과 나중에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광란의 상징은 모조리 부숴 버리고, 다른 보물들도 주의 깊게 살폈다.
“이렇게 보물을 산처럼 쌓아두고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질문에 대답해 줄 아이리스는 이미 뒈졌지만, 직접 묻지 않아도 이유는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거사를 위한 군자금, 뭐 그딴 식으로 쓰고 싶었던 모양이지.”
유진은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왕관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투덜거렸다.
몇 년 동안 남해에서 노략질로 긁어모은 보물들. 기껏 마왕이 된 아이리스는 닷새도 살지 못하고 뒈져 버렸으니, 이 보물들이 군자금으로 쓰일 일도 없게 되었다.
“쟤는 왜 자꾸 저러고 있는 거야?”
뒤통수에 꽂히는 노골적인 시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벌써 몇 시간 동안 저렇게 보고 있으니 하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였다.
유진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 투덜거렸다.
“성은(聖恩)이랍디다.”
크리스티나가 대답해 주었다.
“실제로 상황이 그렇잖습니까? 유진 님은 스칼리아 공주에게 깃들었던 몽마의 여왕을 쫓아내셨지요.”
이곳에 오지도 않은 몽마의 여왕이 개입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상황이 골치 아파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정작 스칼리아 공주나 다른 사람들은 몽마의 여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세냐 네가 괜한 말을 해서 그래.”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네가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공주의 몸에 단검을 처박았기 때문이잖아.”
세냐는 두 눈을 얇게 뜨고 유진을 흘겨보았다.
그곳에서 나누는 대화는 스칼리아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스칼리아 본인도 엿들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멀찍이 선 자리를 고수하며 유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를 구했어…….’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마왕의 악의에 지배당했을 때의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을 읽기 전에, 불의를 저지르려 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부관인 디오르를 죽이고, 혈육인 자페르 왕자를 죽이려 했다.
사실 그것은 누아르 때문은 아니다. 광란의 마왕이 내뿜던 마기에 정신이 반쯤 미쳐서,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던 충동이 치솟았던 것이다.
스칼리아는 자신에게 그런 충동이 있다는 것부터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여태까지 여러 번 살인을 저질렀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죽여야 할 죄인을 구분해서 죽였단 말이다.
하지만 디오르와 제파르는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사악한 충동에 따라 그들을 죽여 버렸다면, 스칼리아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 것이다…….
‘용사…….’
스칼리아는 침을 꼴깍 삼키며 유진을 쳐다보았다.
전투가 끝나고 벌써 이틀이 흘렀다. 평소에 스칼리아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 간신히 잠들어도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하지만 용사에게 성은을 입은 후로는 수면제가 없어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악몽도 꾸지 않고 푹 잠들었다. 머릿속에서 충동질하는 속삭임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악인을 죽여서 피를 쏟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살인에 대한 충동 대신에, 용사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스칼리아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기적의 체험은 스칼리아의 가슴에 신앙심을 만들었다.
비슷한 영향을 받은 것은 스칼리아뿐만이 아니었다. 토벌대 전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유진에 대한 인지가 달라졌다.
위대한 베르무트의 후예.
대륙 제일의 무가, 라이언하트.
토벌대가 출정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유진 라이언하트’라는 이름 앞에는 저러한 인지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마왕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았잖은가.
“위대한 베르무트의 라이언하트가 아니다.”
임시로 쓰고 있는 거처에 돌아온 순간. 소파에 앉아 있던 카르멘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당대의 용사, 유진의 라이언하트인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유진의 얼굴은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헤벌쭉 웃기도 민망했다.
“크흠…… 기분은 좀 나아지셨나 봅니다?”
“내가 우울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퐁. 카르멘은 라이터의 뚜껑을 열면서 중얼거렸다.
“일련의 사태는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지. 그것을 인정한 이상, 나는 더 이상 우울해하거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예…….”
“네게는…… 감사하고 있다, 유진. 네가 오지 않았다면. 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를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이 시대는 새로이 탄생한 마왕에게 희롱당했겠지.”
퐁. 열렸던 뚜껑이 닫혔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해서 착각하고 있었을 거다.”
“착각……? 무슨 착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강하다는 착각.”
카르멘은 라이터를 어루만지며 씁쓸히 웃었다.
“유진. 개구리에 대해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냥 개구리가 아니다. 우물 안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우물 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어리석은 개구리를 말하는 것이다. 알고 있나, 유진. 우물 안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얼마나 작은지.”
“어…… 우물에 빠져본 적은 없어서…….”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과, 그곳에서 올려 보는 하늘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는 알지 못해.”
“…….”
“나는 그런,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자기 자신이 사자인 줄 착각하던 개구리였어. 하지만…… 네 덕분에 나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 개구리였는지 알게 되었어.”
유진도 우물 안 개구리가 어떤 이야기인지는 안다.
“너무 자학하시는 것 아닙니까? 카르멘 님도 충분히 강하신데. 마왕과의 전투에서도 카르멘 님은 제 몫을 다하셨습니다.”
“내가 그럴 수 있던 것은, 유진 네가 마왕의 힘을 소모시켰기 때문이다. 세냐 님과 크리스티나 성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말해버리니 유진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유진이 민망함에 헛기침을 내뱉자, 카르멘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어서 고맙다, 유진.”
유진은 카르멘의 눈동자 안쪽에서 타오르는 갈망을 보았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힘’에 대한 갈망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다. 저렇게 일직선으로 힘을 갈망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강해진다. 개중에서는 갈망이 일그러지거나, 제 자신에게 먼저 절망해 버려서 사도(邪道)로 빠져 망가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카르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유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깨달음이라 할 만큼 대단한 일은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저도, 카르멘 님도…… 그냥, 해야 할 일은 했을 뿐인데.”
“너는 평소에는 굉장히 오만하면서, 이럴 때에는 겸손해지는군.”
“크흠…….”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라이언하트와 모두의 귀감이 될 것이다. 유진…… 아니, 흑사자(黑獅子)여.”
“예?”
“라이언하트를 대표하며, 성검의 빛마저 오시하는 흑사자…… 후후. 용사인 너를 상징하는 색이 칠흑과 붉음이라. 아이러니하군…….”
“흑…… 뭐요?”
“놀라울 따름이다, 유진. 라이언하트의 역사 300년. 백염식은 언제나 순백의 불꽃을 만들었지……. 하지만 너는 달라.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네가 백염식에 새로이 색을 입혔듯, 앞으로의 라이언하트는 네 색에 물들리라…….”
더 이상은 맨정신으로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르멘의 앞에서 도망쳤다.
후후, 후후후. 스스로 내뱉은 말이 만족스러운 것일까. 등 뒤에서 카르멘의 웃음소리와, 퐁, 퐁 하는 라이터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러니라…….”
그 단어가 가슴에 꽂힌 모양이었다.
* * *
해적들에게 약탈당한 보물의 회수. 사망자의 수습. 부상자들의 치료 등. 모두가 시무인으로 귀항하기 전에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었다. 그래서 토벌대는 섬들에 며칠 동안 정박하게 되었다.
저런 문제들은 유진이 아닌 오르투스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 공적의 배분에 관해서 제파르 왕자가 감히 나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것마저도 오르투스가 정색하며 일갈을 했단다.
“왕자님께서는 전투 내내 피난선에 숨어 계셨으면서 공적을 논하시는 겁니까?!”
시엘이 킬킬 웃으며 오르투스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때 제파르 왕자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그 얼간이는 오르투스 경이 무조건 제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봐. 뭐, 제파르 왕자도 필사적이기는 할 거야. 오르투스 경이 국왕한테 보고를 올릴 때, ‘제파르 왕자님이 토벌을 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해주길 바랄 테지.”
만약 오르투스가 그렇게 보고를 올렸다면, 시무인의 왕위 계승 서열에 대격변이 일어났을 것이다.
“대신 스칼리아 공주나 챙기라고 해야겠어.”
유진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저 공주님은 도망도 안 치고 열심히 싸웠잖아.”
“왜 챙겨주는 거야?”
“내게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공주가 왕국 내에서 입지가 높아지는 거잖아. 그럼 나도 이래저래 편하지.”
“무슨 꿍꿍이야?”
“꿍꿍이랄 것은 없고, 스칼리아 공주를 시켜서 시무인에 예배일 비슷한 거나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야.”
“예배일?”
상상도 못 한 대답에 시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한 달에 한 번쯤…… 정오? 그즈음에 나를 위한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거지. 아예 작정하고 안식일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소소하게 기도 잠깐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아?”
“너 뭐 종교라도 만들려는 거야?”
“종교랄 것까지야……. 아니…… 종교 맞나?”
유진은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거창한 생각까지는 한 적이 없었다. 종교를 만들려면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경전도 적고, 교리도 세우고, 건물도 몇 개 지어야 할 것 같고…….’
아니스나 크리스티나에게 부탁하면 알아서 잘해줄 것 같지만…… 유진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흠…… 왕가 공인의 예배일까지는 무리여도, 스칼리아 공주 한 명은 널 위해 매일 기도라도 올릴 것처럼 보이더라.”
시엘은 아까 전에 지나가며 보았던 스칼리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스칼리아의 얼굴은 불면에 의한 피로와 짜증이 그득했다. 눈동자의 빛은 탁하고 눈가에는 다크서클도 짙었다. 하지만, 요즘 스칼리아의 눈에는 점점 총기까지 깃들고 있었다.
“몸은 어때?”
“나야 괜찮지. 눈도 여전히 잘 보이고. 그러는 너는?”
“아직 여기저기가 뻐근하기는 해. 하지만 마나는 잘 움직여.”
유진은 왼쪽 가슴을 몇 번 두드리며 웃었다.
“다행이네. 신년 첫날을 침대에서 보내면 우울했을 거야.”
시엘도 유진과 함께 웃었다.
오늘부터 새해다. 13살에 처음 만났던 것이 별로 멀게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느덧 시엘과 유진의 나이는 22살이 되었다. 사실 유진은 새해가 된 것이나, 나이를 1살 더 먹었다는 것에 별 감흥은 느낄 수가 없었다.
‘전생부터 기억하는데 나이가 대수인가…….’
전생의 나이를 더한다면 환갑이 넘는다……. 아니, 아가로트의 나이까지 더한다면? 아가로트가 몇 살에 죽었더라? 고대부터의 시간을…… 더해야 하나? 만약 그래야 한다면 유진의 나이는 수천 살이 넘어버린다…….
“크흠.”
억울함을 토로하던 세냐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유진은 괜히 세냐가 있는 쪽을 힐긋 쳐다보았다.
“뭘 봐?”
“보면 안 돼?”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네 눈빛, 뭔가 모욕적이야.”
세냐는 투덜거리면서 지팡이를 들었다.
ㅡ파앗! 세냐를 중심으로 복잡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유진은 공간에 녹아드는 마법을 확인하면서 크리스티나 쪽을 쳐다보았다.
마법으로 구축한 결계에 신성력이 더해졌다. 유진은 그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막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무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기껏 생긴 눈동자가 다시 퍽…….”
퍽, 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유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마안의 권능이 시엘의 눈동자를 터트릴 때 났던 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터져 버리는 건 싫단 말이야.”
“퍽 소리 내지 마.”
“어이가 없네.”
시엘은 유진을 흘겨보며 눈을 찡그리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일단 써볼게.”
“쓸 줄은 알아?”
“감각이라 해야 할까……. 의식하면 될 것 같아.”
시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며칠에 걸쳐 마안을 살폈다. 문제랄 것은…… 찾지 못했다. 시엘의 몸 안 어디에도 마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 마안은 시엘의 코어와 동조하고 있다. 즉, 마력이 아닌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세냐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안은 마족들 중에서도 가진 이가 드문데,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권능이 깃든 마안이라니. 심지어 그중 하나는 암전의 마안. 몽마의 여왕이 가진 환상의 마안, 유폐의 칼이 가진 위신의 마안과 대등한 격을 가진 마안이다.
‘눈동자를 통해 파고든 마왕의 마력이 영향을 주었다……. 아니, 아니야. 암전의 마안이나 위신의 마안에는 300년 전부터 몇 번이나 처맞았는걸.’
세냐도 얻어맞은 적이 있다.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들어 토악질을 한 적도 있었다. 당장 며칠 전의 전투에서도 그랬다.
‘베르무트의 피는 특별…… 하다지만, 유진에게 마안은 깃들지 않았어.’
아무리 고민해 본들 정답은 찾을 수 없다. 인간에게 마안이 깃들었다는 것부터가 이치를 벗어난 일.
지금 해야 할 것은, 마안이 깃든 이유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저 마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해야 한다.
“코어와 동조하고 있다면 더 조심해야지. 잘못 썼다가는 마나가 고갈되어 버릴 테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지?”
“네.”
시엘은 의식을 집중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나가 고갈되면 탈진해 쓰러지게 된다. 운이 나쁘다면 코어에 손상이 남아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
“마안의 권능은 강하고 편리한 만큼 막대한 마력을 소모해.”
이 역시 몇 번이나 했던 말이지만, 경고는 몇 번을 해도 부족한 법이다. 세냐는 걱정 어린 눈으로 시엘을 보며 말했다.
“그 아이리스도 마왕이 되고 나서야 마안을 남발했지, 예전에는 그러지도 못했어.”
가비드 린드먼은 유폐의 마왕의 마력을 사용한다. 때문에 놈은 마안을 아무리 많이 써도 마력이 고갈되지 않았다. 누아르 제벨라의 경우에는 유폐의 마왕의 마력은 사용하지 않지만, 단순 마력량을 따지자면 진즉에 마왕급에 도달했다.
아이리스는 저 둘에 비해 마력이 빈궁했다. 예전 키옐에서 싸울 때만 하여도, 아이리스는 이번처럼 마안을 난사하지 못했다.
‘시엘의 백염식은 4성.’
유진이 괴물같이 빠른 것이지, 시엘의 백염식도 나이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경지다. 당장 토벌대에서도 시엘보다 마나의 양이 많은 것은 카르멘이나 오르투스, 아이빅 정도의 강자들뿐이다.
‘마나를 사용해 마안의 권능을 일으킨다……. 유례가 없는 일이야. 어느 정도나 재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시엘의 마안이 얼마큼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저 마안이 정말로 베르무트의 선물이라면, 정말 부조리하다 싶을 정도의 권능이 깃들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아무런 소모 없이 권능만 일으키거나…….
“간다.”
시엘은 눈앞을 노려보며 내뱉었다.
화아악! 왼쪽 눈동자가 금색 빛을 발했다. 시엘이 포착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 한복판에서 시커먼 어둠이 나타났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성된 어둠을 본 순간 유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저 어둠. 아이리스가 만들어내던 암흑. 비록 크기는 주먹보다 조금 큰 정도지만, 스멀스멀 번져가는 어둠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
피슛!
시엘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수도꼭지를 연 것처럼 코피가 뿜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