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lasted Reincarnated Life RAW novel - Chapter 430
〈 빌어먹을 환생 431화 〉 제벨라 시티
뉴스에서는 유진과 누아르가 모종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실컷 떠들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깔끔한 영상이 전달된 것을 보면, 누아르가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패널들이 떠드는 음모론에도 누아르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리라.
이토록 빨리 퍼지리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만, 오히려 빠른 것이 유진이 바라는 바였다. 만약 소문이 퍼지지 않았더라면, 유진이 직접 대놓고 제벨라 파크를 활보했을 것이다.
음모론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불나불 떠드는 말은 길어도 결국은 확인되지 않은 억측들뿐인 데다, 유진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누아르 제벨라와 손을 잡지 않을 것을 알 테니.
‘그래도, 당분간은 이 도시에서 지내야겠지.’
문득 키옐 라이언하트 본가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무인에 떠나있던 시간까지 더하면, 본가의 자기 방에 돌아가지 않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식은 전하고 있다. 유진 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레헤인야르에 갈 때도, 제벨라 시티에 도착하기 전에도 본가에 소식을 보냈다.
가끔 세냐를 통해서 본가의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있다.
카르멘은 백염식의 8성에 오르기 위해 폐관수련 중이고, 길레이드와 기온은 차례대로 7성에 도달했다. 시안도 5성을 넘기 위해 노력 중이고, 시엘은 최근에 5성에 도달했단다.
‘본가의 힘은 충분해.’
멜키스는 본가의 숲을 드나들기 위한 핑계로 숲의 엘프들에게 정령술을 가르쳤다.
엘프는 정령술에 대한 적성이 높다. 따로 정령술을 수행하지 않아도, 하급 정령 정도는 자연스럽게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엘프란 종족이다. 그러한 적성에 멜키스의 가르침까지 더해지니, 라이언하트 숲의 엘프들은 대부분이 중급 이상의 정령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은 즉, 라이언하트는 수십 명에 달하는 중급 정령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도 증원된 백사자 기사단이 있고, 흑사자 기사단은 카르멘의 3번대와 기온의 5번대가 본가에 상주하고 있다.
‘지금의 라이언하트도 강하긴 해. 내가 없어도 카르멘 님이 있고.’
카르멘이라면 상대가 고위 마족이라도 큰 걱정이 안 된다. 심지어 지금은 백염식의 8성에 올랐다고 하니, 아이리스 토벌 때보다 더 강해졌을 것 아닌가.
거기에 길레이드와 기온도 있고, 세냐가 직접 보강한 대결계도 있다. 그 대결계는 거의 모든 공격을 방어하고, 적습이 온 순간에 즉시 세냐에게 소식을 전달해 준다.
라이언하트는 자체적으로 워프게이트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본가가 적에게 습격당하면, 대결계가 버티는 동안 아롯에 있는 세냐가 워프게이트를 통해 넘어올 것이다.
‘유폐의 마왕이 먼저 라이언하트를 칠 리는 없다…….’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멜리아 머윈인가? 궁지에 몰리면 쥐새끼도 고양이를 무는 법, 이라고들 하지만…… 아멜리아 머윈이 과연 저만큼이나 미친 짓을 벌일까?
표면적으로 나하마의 문제에 키옐은 개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아멜리아나 혹은 그녀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라이언하트 본가를 친다는 것은, 키옐 제국의 영토를 침략한다는 것. 가뜩이나 불리한 구도에서 제국군까지 적으로 돌리는 꼴이 된다.
‘내가 부재중이라고는 해도 저런 짓을 벌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유진이 본가를 비우고 있는 것, 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유진이 항상 본가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라이언하트가 베르무트의 후손이고 무가인 이상, 외부의 위협은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 유진이 굳이 강조할 것도 없이, 라이언하트란 성씨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저러한 자각이 있다.
유진은 피식 웃으며 후드를 뒤집어썼다.
“내 문제도 바쁜 것을.”
진즉에 밤이 되었지만 도저히 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떠다니는 3대의 제벨라 페이스가 알록달록한 레이저를 쏴대고, 거리도 조명이 없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밤이 없는 도시라고 하더니…… 과연 이름대로였다.
이 영지의 이름은 제벨라 시티지만 거의 대부분의 토지가 제벨라 파크에 사용되고 있고, 조금이나마 남은 토지조차도 제벨라 파크의 직원들을 위한 거주지로 쓰인다. 이 어마어마하게 큰 제벨라 파크는 총 4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지금 유진 일행이 머무르는 판타지 스퀘어. 다양한 놀이기구와 사파리, 대형 워터파크까지 딸린 어드벤처 스퀘어. 도박 등의 유흥을 내세운 겜블 스퀘어. 성적인 유흥을 내세운 드림 스퀘어.
4개의 구획은 자체적인 워프게이트로 연결되어 있는데, 제벨라 파크의 이동수단은 워프게이트뿐만이 아니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데다 관광객의 수도 어마어마한 탓에, 워프게이트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워프게이트는 이동하는 ‘재미’가 부족하다. 이러한 초대형 관광지에서는 이동하는 것에도 나름의 재미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제벨라 파크의 지하에 있는 것이 바로 ‘드림 트레인’이다. 유진은 대부분의 이름에 ‘제벨라’를 사용한 주제에, 기차의 이름에는 제벨라가 붙어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 영지의 지하에는 수십 개의 노선을 순회하는 기차들이 존재한다.
밤이 없는 도시인만큼, 제벨라 트레인은 24시간 내내 운행한다. 지금 시간에 판타지 스퀘어의 지하도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낮에 실컷 논 아이들을 숙소에 재운 보호자들이 대부분이다. 제벨라 파크 내 구역에 출입 제한이 있는 곳은 없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리고서 겜블 스퀘어나 드림 스퀘어에 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지금 유진의 주변은 그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체취에 술 냄새, 향수 냄새가 뒤섞여 욕망의 냄새를 만든다. 겜블 스퀘어로 향하는 사람들은 돈을 보고, 드림 스퀘어로 향하는 사람들은 육욕을 본다.
어느 쪽이든 노골적인 욕망이고, 모두가 누아르 제벨라가 받아먹는 공물이 될 것이다.
지하도의 모두가 기차를 타는 것은 아니다. 드림 스퀘어도, 겜블 스퀘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몸에서는 찌들고 지린 악취가 풍긴다.
지하도의 언제나 열려 있는 비상문들. 그곳에 들어가서 더욱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면, 기차 달리는 소리가 일상처럼 들리는 폐선로에 도착한다.
말이 폐선로지, 처음부터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깊고도 긴 폐선로는 제벨라 파크의 4개 구획을 모두 관통하고 있다.
이곳은 쓰레기장.
분리수거도 되지 않는 인간쓰레기들이 4개 구획에서 떨어져, 이 폐선로에 도착한다.
이 쓰레기장에 떨어진 사람들을 대부분 2종류로 나뉜다.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겜블 스퀘어에서 전 재산을 꼬라박은 사람. 육욕에 눈이 멀어 드림 스퀘어의 호스트에게 모든 것을 전 재산을 꼬라박은 사람.
어느 쪽이든 제벨라 파크에서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 그들은 밤에는 이 쓰레기장에서 잠을 청하고, 낮에는 지상으로 올라가 4개 구획을 떠돈다.
그들의 눈에도 욕망은 있다. 오히려 이 폐선로 쓰레기들의 눈에 어린 욕망이 웃으며 지하도를 걷는 사람들이 보인 욕망보다 노골적이고 질척했다.
저들은 돈 몇 푼 생기면 즉시 겜블 스퀘어에 가거나 드림 스퀘어로 향한다. 도박으로 가진 돈을 불리는 것을 꿈꾸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정신을 잠깐의 유흥과 꿈으로 도피시킨다.
제벨라 파크의 폐선로는 워낙 유명해서 유진도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폐선로의 입구에 도착한 유진은, 곧장 내려가지 않고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하도와 폐선로까지 깊이는 대략 수십 미터는 될 법했다. 몇 분 간격으로 덜컹, 덜컹하는 기차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천장과 바닥이 흔들렸다.
드문드문 떨어진 간격마다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식수는 저 물로 해결하는 모양인데, 몸을 씻을 생각은 안 하는 것일까? 표정을 구기고 폐선로를 내려다보던 유진은 곧 납득했다.
지하도로 올라가면 깔끔한 화장실들이 많지만, 이 깊은 폐선로에 화장실은 없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흐르는 수로가 화장실로 쓰이고 있기는 한데……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반짝반짝 빛이 나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제벨라 파크의 어둠. 지하 깊은 폐선로. 인간쓰레기 굴. 유진은 삐걱거리며 깜빡거리는 폐선로의 조명을 힐긋 보았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은 대부분이 불빛이 희미해서 있으나 마나였다.
“돈…….”
폐선로로 내려가던 중, 어둠에서 뻗어 온 손이 유진의 앞을 막아섰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내려오는 짧은 사이에 벌써 몇 번이나 구걸을 들었다. 유진이 뒤집어쓴 로브가 지저분하지도, 악취가 배이지도 않아 말끔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걸은 여러 번 들었지만, 돈은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유진은 저런 종류의 인간에게 혐오 말고 다른 감정은 느낄 수가 없었다.
“돈이 안 된다면…….”
앞을 막은 손이 흔들린다. 유진은 눈썹을 일그러트리고서 손의 움직임을 보았다.
“사랑을…….”
엄지와 검지가 착, 붙더니 하트를 만들었다. 그 모습은 유진에게 강렬한 살의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손가락으로 만든 하트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유진은 굳이 참지 않았다.
촤악! 직접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마나가 참격이 되어 손목을 썩둑 잘랐다.
“조금 고민이라도 하고 잘라야지,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래요?”
절단면에서 피는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데, 저렇게 말하는 뻔뻔함이 대단했다.
유진이 얇게 뜬 눈으로 어둠을 노려보고 있으니, 똑같이 로브를 뒤집어쓴 누아르 제벨라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 하멜. 지금은 기분이 꽤 괜찮아 보이네요? 아까는 되게 안 좋아 보였는데.”
“아까?”
“네, 아까, 제벨라 페이스에서 말이에요. 그때의 당신은…… 음, 솔직히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널 보면 기분이 X같아.”
“흠, 아까는 X같다기보다는 다른 의미로 안 좋아 보였는데…….”
누아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유진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이 여기 올 줄 알았어요.”
“…….”
“음,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을 감시했죠. 혹시 불쾌한가요? 에이, 이런 것으로 불쾌해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여긴 내 도시고, 당신이 머무는 곳도 내 소유의 호텔이라고요. 그러니 당신의 움직임은 모두 내게 전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뉴스.”
“아, 봤어요? 나는 당신이 그 뉴스를 본다면, 나한테 화를 내러 찾아오지 않을까도 예상했는데.”
“그렇다면 네 예상이 틀린 거지.”
“후후후. 예상이 틀릴 것도 예상했어요.”
누아르는 으스대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당신의 의도를 조금 읽었달까? 내 취향을 조금 추가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누아르는 키득거리면서 폐선로를 가리켰다.
“그래서. 어때요?”
“뭘 묻는 거냐?”
“이 도시의 구린 곳을 보기 위해 온 것 아닌가요?”
누아르의 미소가 짙어졌다.
“당신의 관점에서 생각해 봤어요, 하멜.”
“…….”
“300년 전. 당신이 살아 있던 시대에서, 인간이 마족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원망 당할 짓을 마족이 많이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 시대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유진은 뭐라 대꾸하지 않고 누아르의 말을 들었다. 누아르는 보란 듯이 양손을 들어 하트를 만들었다.
“지금 시대는 사랑과 평화의 시대라 할 수 있죠. 마족이 인간을 사냥하고, 전쟁을 벌이지도 않아요. 이곳 헬무드는 마족이 인간을 보호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고요.”
유진은 누아르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도 전에 헬무드는 돌아다녔고, 그러기 전에도 지금 시대에 마족과 인간의 관계가 어떤지는 학습했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지만, 300년이란 시간은 상식이 바뀌기에 충분하고 긴 시간이었다.
“이곳 제벨라 파크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도시에요. 딱히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있죠. 돈을 주고 꿈을 판달까? 뭐, 꿈에 매달려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것까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거고요.”
누아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유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 폐선로는 그런 멍청이들을 위한 장소죠. 제벨라 파크를 설계하는 당시부터 ‘쓰레기’가 생길 것은 예상했으니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하멜, 당신은 이 도시에서 저를 증오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 아닌가요?”
유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답. 누아르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흐흥. 하지만 말했잖아요, 저는 이 도시에서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있다니까요? 아…… 괜한 오해는 말아요. 저 쓰레기들은 내가 강제로 잡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기들이 나가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요.”
누아르는 손가락을 뻗어 폐선로의 천장을 가리켰다.
“저기 저 물줄기 보여요? 저거도 제가 미리 뚫어놓은 거예요. 여기 사람들 물은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똥덩어리가 떠다니는 수로랑 구석의 오물들도 주기적으로 인부를 보내 청소하고 있어요. 또, 원하는 사람에 한해 일자리도 주고 있죠!”
“…….”
“그 외에 필요한 최저치의 복지는 해주고 있다고요. 그래도 자발적으로 쓰레기 짓을 하는 걸 어떡해요? 집 돌아가라고 돈을 줘도 카지노나 서큐버스 클럽에 가서 날려 먹는단 말이야. 그럼 저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맞아.”
유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이 도시에서 뭔가, 작정하고 악행을 벌이지는 않는 것 같더군.”
솔직히 기대보다 한참 떨어지긴 했다. 유진은 이 폐선로에서 차라리 끔찍한 인체실험 따위가 벌어지는 것을 기대했었다. 아니면 변태적 취향을 가진 인간이나 마족을 위한 살육쇼라든가.
없다. 나름대로 찾아보고 마법도 써봤는데, 제벨라 파크는 정확하게 ‘알려진 대로’였다. 폐선로는 인간쓰레기들이 있고, 화려한 위쪽에는 욕망에 취한 사람들이 배회한다.
“내가 이 도시에서 널 더 증오할 이유를 찾던 것도 맞아.”
“흐흐흥, 아쉽게 됐네요? 지금의 저는 합법적인 장사만 하고 있어요. 불법하고 사악한 짓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게 문제야.”
유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의 헬무드, 유폐의 마왕은 인간에게 굉장히 잘해주고 있지. 헬무드 법을 따르는 이 도시도 인간에게 험한 짓을 하지 못해.”
“맞아요. 몽마가 꿈에서 정기를 뽑는 것조차 강탈이 아닌 거래를 해야 하죠. 그게 합법…….”
“그게 문제라고.”
유진은 다시 한번 누아르의 말을 끊었다.
“지금 시대가 잘못된 거다.”
“……네?”
“마족인 네가 인간을 발라먹는 것이 합법이라는 지금 시대가. 그리고 이 도시가 잘못된 거야.”
그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말에 누아르의 입술이 멍하니 벌어졌다.
“물론, 네가 이 도시에서…… 조금 더 악랄하게 인간을 발라먹었다면, 나는 너를 더욱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하겠지. 하지만 네가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너에 대한 증오와 살의가 부족한 것은 아니야.”
“…….”
“네 말대로 여기는 이 도시에서 가장 구린 곳이야. 가장 냄새나고, X같고, 없어도 되는 곳.”
유진은 눈을 찡그리면서 천장을 가리켰다.
“솔직히 저 천장이 무너져서, 저 쓰레기들이 죄다 뒈져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
“…….”
“하지만 기왕이면 내가 안 하고 네가 했으면 좋겠어.”
“왜요?”
“난 사람이고 너는 마족이니까.”
맙소사. 누아르는 웃으며 유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제가 그런 짓을 하기 전에 막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하멜, 당신은 용사잖아요.”
“나는 저 새끼들 말고도 구할 사람 많아.”
“흐음.”
태연한 대답. 누아르는 미소를 짙게 지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폐선로는 전부 죽어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때요?”
제벨라 파크는 대륙 최고의 관광지다. 당장 위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키옐 수도 시민수에 버금갈 것이다.
“하멜. 당신은 저를 죽이기 위해 이 도시에 오겠다고 했죠? 마찬가지로, 저도 제 성에서 당신을 맞이할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결국, 이 도시가 우리를 위한 전장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겠지.”
“어머나. 그럼 우리 둘의 싸움으로 수천 만의 사상자가…….”
“네가 미리 치워놔야 하는 것 아니냐?”
당연하지 않냐는 투의 질문에 누아르가 조심스레 반문했다.
“……왜요?”
“방해되니까.”
“음. 저한테는 별로 방해가 안 되는데…… 어…… 음, 네, 그래요. 헬무드 법에 따르면, 마족 간의 항쟁에서 인명피해는 철저히 금하고 있기는 한데…… 당신이 저를 죽이러 오는 상황이면 유폐의 마왕 쪽에서도 전시상황을 선포할 텐데, 그 상황에서 법이 뭐…….”
“나한테 방해가 되잖아. 너는 인명피해를 생각하며 머뭇거리고 전력도 다하지 못하는 나랑 싸우고 싶은 거냐?”
말문이 막혔다. 누아르는 동그랗게 뜬 눈동자를 몇 번 깜빡거리다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며,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하멜도 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며 살의를 불태우는 하멜을 훨씬 더 보고 싶다.
“……당신이 도착하기 전에 관광객들은 전부 내보내도록 하죠.”
누아르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관광객들 붙잡고 인질극을 할 것도 아니니, 도시에 붙잡아 둘 필요가 없기는 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유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서 누아르를 지나쳤다. 누아르는 위로 올라가는 유진의 등을 보다가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요?”
“위에.”
“왜요?”
“그럼 저 냄새 나는 쓰레기 굴로 내려갈까?”
“저거 보러 온 거잖아요.”
“더 볼 필요가 없게 됐잖아.”
“그럼…… 어…… 다시 돌아가나요? 제벨라 캐슬에.”
“꺼져.”
“그럴 순 없죠.”
누아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진에게 팔짱을 꼈다.
“기왕 나온 거, 저랑 놀아요.”
나중에 아련히 후회할 추억을 쌓을 기회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