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aughter Is the Final Boss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아깝다. 나도 다 맞힐 수 있었는데.”
“맞아요! 아빠도 활 잘 쏴요.”
“바람만 아니었어도. 그치?”
활을 다룬 건 처음이 아니다.
처음 건 못 맞히더라도, 나머지는 맞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풍이 불어오는 바람에 화살 몇 발이 표적에 닿지 못했다.
“좀 더 바람을 계산할 걸 그랬어.”
“서준아,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거야.”
은혜는 세상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대사다.
“산~ 토끼 토끼야~.”
설아는 토끼 인형을 품에 꼭 안은 채 걸었다.
집에서도 가끔 곰 인형을 저렇게 들고 다닌다.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현역 사냥꾼이 나오는 건 좀 양학이 아닐까 싶긴 한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퍼펙트 골드.
마나를 담지 않아도, 은혜의 사격 솜씨는 대단했다.
강사가 양궁 선수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은혜의 활약 덕에 경품을 타는 데 성공했다.
“설아도 활 쏴 보고 싶었는데.”
“일곱 살 되면 다시 오자.”
“조아요! 설아가 아빠보다 잘 쏠 거예요!”
“어찌 그리 확신하니.”
“엄마 딸이니까!”
외적으로 설아는 나보단 은혜를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낯을 전혀 안 가리는 성격은 내 쪽을 닮았지만.
금방 글을 익힌다든지, 공부는 또 은혜처럼 잘한다.
어쩌면 활이나 창을 잘 다룰지도 모른다.
‘내 쪽은 재능은 아니지만.’
어차피 설아에게는 마법이 있다.
다른 무기를 고려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이 많아졌다.
‘마법을 다루는 법도 익히긴 해야 하는데.’
자제하는 법만 배웠지, 다루는 법은 아직 모른다.
설아가 이따금 사용한 마법은 그저 의지에 반응한 느낌이었다.
정제되어 있지 않은 힘.
‘아는 마법사가 없으니.’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희소하다.
전체 사냥꾼 중 1% 남짓한 사람만이 다룰 수 있는 게 마법이다.
제대로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라고 부를 만한 사냥꾼은 더 적다.
아직 개인 시스템의 업데이트가 안 됐기 때문에, 직업 보정을 못 받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순수하게 학문과 같은 개념으로 마법을 익혀야 한다.
생각해 보면 윌리엄 테일러가 참 대단한 거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적어도 아직은 내가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다.
설아가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내 욕심이었다.
“저기 뭐 한다.”
“아빠, 얼른 와요.”
사람들이 몰린 곳을 보고, 은혜가 가 보자는 듯 나를 봤다.
설아가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지금은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잠깐 걱정을 미뤄 두고, 이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 * *
민속촌에서 한참을 놀고 돌아오는 길.
은혜는 곯아떨어진 설아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였다.
한복을 반납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운전은 내가 하고 있었다.
“운전하는 거 보니까 어색해.”
“내가 면허 시험 만점자야. 베스트 드라이버.”
“묘하게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그야 운전 경력은 꽤 긴 편이다.
진짜 초보 운전자보다는 훨씬 운전을 잘할 것이다.
회귀하니 이런 점에서 참 편했다.
운전이 정말 처음이었다면 긴장해서 거북이처럼 갔을 거다.
나 혼자가 아니라 은혜와 설아까지 타고 있었으니까.
“서준아, 강해지려면 어떡해야 할까?”
“응? 갑자기 왜?”
“그냥…… 튜토리얼 타워에서 느꼈거든.”
“뭐를?”
“되게 약하구나. 하고.”
“누가?”
“내가.”
나는 힐끔 은혜를 확인했다.
설아가 깰까 봐 조곤조곤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얼굴은 진지했다.
‘다른 사냥꾼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 부족이 이유다.
은혜와 같이 라이선스를 취득한 사냥꾼들은 지금 개미굴 같은 데서 고전하고 있을 거다.
자력으로 튜토리얼 타워를 올라간 은혜와 비교하는 건 실례를 넘어 무례에 가깝다.
“왜 그런 생각을 해?”
“마지막 층에, 나는 아무것도 못 한 것 같아서.”
아무래도 은혜는 비교 대상을 나로 잡은 것 같았다.
그야 같이 라이선스를 취득했고, 옆에 오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조금 잘못된 거다.
‘15년을 더 굴렀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나와 은혜는 무력에 있어 격차가 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확실히 스펙터의 어느 길드원보다 강하다.
하지만 그만큼 격차를 벌리는 데 걸린 시간이 15년이라고 생각하면.
격차는 터무니없이 좁은 수준이었다.
‘노력 안 하는 것도 아니니까 금방 올라올 텐데.’
참 아이러니했다.
여태껏 재능 있는 사람을 선망한 나다.
그런데 이제는 재능 있는 사람이 나를 선망하고 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그래도. 너무 너 혼자 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
“나 혼자였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걸.”
차를 세웠다.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은혜가 설아를 안아 들고 내렸다.
“먼저 들어가 있어. 나는 차 돌려주고 올게.”
“어디서 렌트한 건데?”
“어, 하이람 씨?”
“뭐? 이거 하이람 씨 차였어?”
“빌려준다길래.”
민속촌까지 오가는 데 탄 차는 화려한 스포츠카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가격대가 조금 저렴한 편인 일반 승용차였다.
당연히 렌트 업체에서 빌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은혜는 묘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 * *
“이 사람은 왜 전화를 안 받는담.”
하이람은 도통 전화받을 생각을 안 했다.
시간은 조금 애매했다.
아직 회사에 있을까.
직접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이테크 본사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서준 씨?”
“아, 안녕하세요.”
입구 앞에서 익숙한 경호원과 마주쳤다.
이름은 아직 모른다.
명찰이 없나 찾아봤지만, 경호원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이 먼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경호 팀 오승훈이라고 합니다.”
“사냥꾼 이서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가씨를 만나 뵈러 오신 거죠?”
“네. 맞습니다. 전화를 안 받아서요.”
“그렇습니까? 아마 자택에 계실 텐데요.”
아무래도 벌써 퇴근한 모양이었다.
맨날 회사에 있는 이미지였는데.
그래도 집에 돌아가긴 하는 모양이다.
하긴 튜토리얼 타워 공략으로 지쳤을 테니까.
하이람에게도 힐링이 필요하겠지.
“무슨 용무로 아가씨를 찾으시는 겁니까? 급한 일입니까?”
“그건 아닌데, 빌린 차를 돌려주려고요.”
“아가씨께서 차를 빌려주셨습니까?”
“네. 뭐 문제 있나요?”
오승훈은 조금 놀란 듯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재는 듯한 눈으로 나를 훑어본다.
“드문 일인데요. 신기하네요.”
“그렇습니까? 선뜻 빌려주던데.”
“실례지만, 혹시 아가씨와 관계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관계요? 길드장과 길드원입니다.”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라는 듯 눈을 굴린다.
그리고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괜한 질문 같군요.”
“아니, 죄송할 것까지야.”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자택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민폐 아닐까요?”
“괜찮습니다. 자택에 배치된 경호원에게 연락하는 거니까요.”
“아,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오승훈은 잠깐 양해를 구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를 힐끔힐끔 본다.
“저, 이서준 씨.”
“예.”
“자택에 오시라고 하십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회사까지 왔는데 조금 귀찮긴 했지만.
하이람과 상담할 것도 있었다.
어차피 한번 볼 거, 이번에 처리해 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차로 가려는데, 오승훈이 나를 붙잡았다.
“저, 자택 주소는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실언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이람의 자택 주소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이야기.
현재의 나는 하이람의 자택 주소를 전해 들은 적이 없다.
오승훈은 의문 섞인 시선을 내게 보냈다.
“네? 어떻게…… 아!”
그리고 혼자 뭔가 깨달은 듯 주억거렸다.
나는 그럴싸한 변명을 찾아 둘러댔다.
“내비게이션에 찍혀 있더라고요.”
“……그렇군요.”
“못 믿으시나요?”
“믿습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뭐를 이해한단 말인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설명하기 입 아프다.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 * *
편하게 타고 돌려주라고 했지만, 어쨌든 신세 진 입장이다.
그냥 가기 뭐해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선물 같은 것도 샀다.
서울에서도 부자 동네로 유명한 성북구 성북동.
드라마 같은 데서나 보던 단독주택들이 즐비해 있었다.
‘저런 집은 얼마나 하려나.’
그런 생각이 안 들려야 안 들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호화로운 저택들이었다.
그사이에 유독 큰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이곳이 하이람의 자택이었다.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삐익.
부잣집 초인종 소리다.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덜컥 열렸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냥 열어 주는 걸 보면 이미 얘기가 끝난 것 같았다.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긴 봐도 봐도 호화롭네.’
자갈 깔린 길이 현관으로 쭉 이어져 있다.
모던한 느낌의 신축 주택은 통유리로 마당과 연결된다.
마당에는 연못까지 있었고, 싱그러운 식물들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멈춰 세웠다.
“이서준 씨?”
“아, 네. 맞습니다.”
“신분증 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 번거롭지만, 힘든 건 아니었다.
경호원은 사냥꾼 라이선스의 사진과 내 얼굴을 대조했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 귀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신원 확인됐습니다.”
“들어가면 되나요?”
“그것들은 뭡니까?”
“어, 선물? 그런 건데요.”
“잠시 검사 좀 하겠습니다.”
선물까지 검사받은 후에야, 나는 겨우 하이람의 자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래 어느 정도 경호를 두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꽤 빡빡한 편이었다.
경호를 강화한 걸까.
“아, 차는 앞에 세워 놨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선물을 한가득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들어갔다.
초인종을 또 눌러야 했다.
문이 열리더니, 중년 여성분이 나를 반겼다.
“어머,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뭘 그렇게 바리바리 들고 오셨어요?”
“아,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요.”
“내 정신 좀 봐. 얼른 들어오세요.”
하이람의 어머니, 백미경.
상당히 우아한 느낌의 사모님이었다.
다행히 사근사근하신 편이었지만.
하지만.
‘밉보이면 나중에 귀찮아진다.’
어떻게 보면 하정수 회장보다 더 눈이 까다로운 사람이다.
똑같은 일가 아니랄까 봐, 이미 평가를 시작했을 거다.
지금 내 행색을 생각하면 마이너스 요소가 많겠지.
선물도 변변찮은 걸로 준비했다.
이럴 땐, 필살기를 쓰는 수밖에 없다.
“저, 죄송하지만 하나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혹시, 하이람 씨 언니분이신가요?”
“어머.”
백미경의 입꼬리가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