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xclusive Tower Guide RAW novel - Chapter (43)
43화
현자의 상태창을 통해 도플갱어의 정보를 보니, 노사부가 말한 그대로였다.
도플갱어는 내가 8층 미션을 시작했을 때의 딱 그 수준.
현재의 내 성취를 파악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상대였다.
“본체인 너는 검술 스킬을 떼 버린 것인가?”
역시 저놈도 나의 정보를 보고 있었다.
하긴 도플갱어는 내 모든 능력을 그대로 공유하는 녀석이니까.
“그래. 덕분에 검술 스킬 없는 검투사가 되어 버렸지.”
도플갱어의 검술 스킬은 [초급 검술> Lv.4
지금 나의 검술 성취를 계량화한다면 레벨 4에는 살짝 못 미칠 것이다.
검의 현란함이나 속도감 등을 종합한 능력은 레벨 3과 4의 중간 지점쯤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현재 내 수준이 저놈과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은 내 검술의 변칙성 때문이었다.
시스템 스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율적인 움직임이 부족한 부분을 만회해 줄 것이란 생각.
“그럼 시작해 볼까?”
도플갱어가 자신 있게 나를 향해 다가왔다.
저놈의 계산으론 날 미세하게 앞설 것으로 결론을 냈을 것이다.
“들어와.”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저놈을 넉넉하게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클리어 조건은 검술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거두는 것.’
그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를 넉넉하게 잡을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도플갱어에게 반의 반 수만 앞설 수 있더라도 나에겐 의미 있는 결과로 남을 터.
휘이이익!
도플갱어의 검 끝이 날카롭게 나를 향했다.
초식의 화려함, 스피드, 검에 실린 마력, 하체의 스텝까지 모든 것들이 나보다 살짝 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층에선 아이템빨로 도플갱어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사부의 제안으로 같은 무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그런 것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후우.”
“후우.”
우리는 똑같이 거친 숨소리를 뱉어 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도플갱어는 나의 호흡 소리마저 닮아 있어 소름이 돋는다.
도플갱어와의 승부를 가린 것은 백여 합을 넘게 나눈 이후.
스으으으으윽!
검 끝에서 짜릿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내가 놈의 복부 한복판에 붉은 선을 긋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썩을! 내가 왜 진 건데!”
도플갱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내가 도플갱어였어도 당황했을 것이다.
검술 스킬 없이 Lv.4의 검술을 꺾은 것이니까.
어쨌든 눈곱만큼의 성취는 확인할 수 있었던 승부였다.
사부의 평가는 한결같았지만.
“그래 봤자 쓰레기야.”
그래, 나는 쓰레기다.
발전하고 있는 쓰레기.
일단 첫 번째 관문은 넘어섰다.
* * *
“사부님은 평생 검을 품고 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엔 무엇이 있었습니까?”
“정말로 그게 궁금한 것이냐?”
“네.”
“오만한 녀석. 여전히 쓰레기 같은 검술만 구사하는 네가 거론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거늘.”
하지만 노사부의 표정은 웃고 있었다.
내 질문이 기특해서가 아니다.
지금 저 표정은 본인의 자랑 타임 직전에 주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무림 역사상 최고의 기재로 불리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놈의 역사상 최고.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는데 그걸 오늘 또 듣고야 말았다.
그냥 질문을 하질 말걸.
“나는 스물아홉에 천마신교의 일곱 지파를 통일하며 천마의 자리에 올랐었다. 그때 사람들은 말했다. 고금제일의 천마가 탄생했다고.”
이것도 이미 골백번은 더 들은 이야기.
오늘은 자기 자랑이 몇 절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때 검의 끝을 본 것이라 생각했다. 내 나이 일흔일곱에 말이다.”
“결국 아니었던 건가요?”
“그래. 그걸 이 탑에 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아직은 약간 더 남아 있었다는 것을.”
“그럼 혹시 지금도 여전히……?”
사부는 내 질문에 그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이 또한 탑과의 맹약 때문일 것이다.
이놈의 탑은 뭐 그리 비밀이 많은 것인지.
그리고.
따악!
별안간 노사부는 나뭇가지로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예를 갖추어 구배지례를 올리거라.”
“갑자기 말입니까?”
“본좌는 이날이 오기만을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그러니 어서 예를 갖추거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노사부는 항상 이런 식이다.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너와 본격적으로 사제의 연을 맺을 생각이다.”
“그럼 지금까지는 아니었단 말씀입니까?”
“그렇다. 아직 네게 신교의 검술을 전수한 일이 없으니까.”
사부의 말은 사실이었다.
검술 스킬을 떼 낸 후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은 한 번 갔던 길의 되새김질에 불과했다.
스킬을 통해 체화된 것들을 다시 한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사부는 그것을 도왔을 뿐, 내게 그 어떤 새로운 검술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는 제가……”
“그래. 호영이 너는 오늘부터 나의 제자이자 신교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는 무영추혼검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자 이호영, 사부님께 구배를 올리겠습니다.”
나는 사부가 가르쳐 준 대로 무림식의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사부에게 구배를 올리는 것도 두 번째.
왜 이런 절차가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지만, 사부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는 없다.
이미 검술 스킬을 모두 떼 버린 내가 8층의 두 번째 미션을 통과하기 위해선 사부의 가르침이 절실하니까.
“무영추혼검의 이름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구나. 내겐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신교 제자였다면 감격에 겨워 사흘 밤낮을 울었을 일이다.”
“그것이 그토록 대단한 검술입니까?”
“말해 뭐 하겠느냐. 본좌가 신교의 독문검술을 개량하여 만든 고금제일의 검술이니라. 그리고 너는 무영추혼검의 2대 전승자가 될 것이다.”
“신교에는 저 외에도 수많은 제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차기 천마 후보들은 사부님께서 직접 가르치신다고 했는데 왜 제가 무영초혼검의 2대 전승자가 되는지 이해 못 하겠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직 신교에서는 무영추혼검을 전수해 줄 기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부의 말투는 어느샌가 엄격, 근엄, 진지해져 있었다.
그만큼 오늘 그의 결단은 심상치 않다는 의미.
그런데 기재도 아닌 내가 왜 2대 전승자로 간택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온 일개 회사원일 뿐이며, 검술이나 무도 쪽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제게 자질이 있는 것입니까?”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사부님은 천마이시니까요?”
사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슬며시 미소를 보였다.
사부가 나에게서 느낀 특별한 자질, 그것은 아마도 이 게임 시스템의 보정 때문일 것이다.
높은 확률로 현자의 상태창이 영향을 주었을 터. 지금은 감사히 사부의 호의를 받아야 한다.
“이제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절반도 남지 않았구나. 시간의 제한이 아쉬울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네가 무영추혼검의 묘리를 단 일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사부님 입장에선 도박이군요. 저에게 무영추혼검을 전수하기로 한 결단 말입니다.”
“그런 셈이지. 그러니 너도 이제부터는 죽을 각오로 수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무영추혼검은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검술이니 말이다.”
사부의 말에 절로 결연한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래시계의 절반.
앞으로 배우게 될 무영추혼검을 통해 성취를 이루어 내지 못하면, 난 이곳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냐.”
8층에서 천마라는 무림인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은 것. 이젠 이 탑에서 얻은 최고의 기연이란 확신이 들었다.
* * *
사부를 처음 만난 후 무영추혼검을 배우기 전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비록 상태창에서 검술 스킬을 떼어 버렸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검술의 잔상이 남아 있었기에 똑같은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는 검의 극의를 깨우친 사부를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 성취의 정체기는 무영추혼검을 익힌 직후에 바로 찾아왔다.
머리로는 이해한 것 같았으나,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해낼 수 없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이해한 것 같았지만 결코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유일하게 이해하는 건 사부가 무영추혼검을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검술이라 표현한 이유.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무영추혼검은 검술이되 가장 난해한 철학이었고, 높은 경지의 예술이었으며, 모든 것을 의탁해야 하는 종교와도 같았다.
“어렵습니다.”
“고금제일의 기재인 본좌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검술이다. 쉬울 리가 있겠느냐?”
정말 고금제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부가 대단하다는 것까진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익히기 더럽게 어렵게 만들어 놨다는 것.
그리고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무영추혼검을 익힌 후 저의 검술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무영추혼검은 본래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는 검술. 끊임없이 버리고 버려 어느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는 순간이 무영추혼검의 일각을 이해한 때일 것이다.”
어느덧 남아 있는 모래시계의 양은 4분의 1.
하지만 사부는 여전히 태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래가 다 떨어지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하긴 조급한 것은 오직 나일 뿐, 사부가 아니다.
내 목숨만 달려 있는 문제니까.
“오늘 다시 한번 네 놈의 도플갱어와 겨뤄 보겠느냐?”
“어느 시점의 도플갱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예전에 너와 싸웠던 그놈이지, 누굴 또 말하는 것이겠느냐?”
“지금 당장 싸우면 무조건 제가 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요즘 저의 검술은 오히려 퇴…….”
“호영아, 내가 누구인지 잊은 것 같구나.”
천마.
도대체 그놈의 천마가 뭐길래.
나는 무림이란 곳에서 천마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싸워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사부가 천마라는 이름을 걸었을 때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오냐. 그리고 항상 잊지 말거라. 넌 천마의 제자라는 것을.”
이 오그라드는 대사도 예상했다.
사부의 손짓에 오랜만에 나의 도플갱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또 나야? 한 번 이겼으면서 왜?”
내 도플갱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도플갱어 녀석은 상태창만 보고 쉽게 나를 재단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방심하지 않고 있으니 예전보다 상대하기 더 어려워진 조건.
하지만 사부는 나에게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다.
“오십 합 이내에 승부를 내거라.”
“오십 합이요?”
무영추혼검을 익히지 않았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를 조건이다.
첫 대결 때에도 백여 합 끝에는 승부를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첫 대결만큼 할 자신도 없다.
어설프게 무영추혼검을 익힌 것은 분명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너, 본체!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거냐?”
잠시 후 내 앞에서 도플갱어는 피를 토하며 물었다.
오십 합까지도 필요 없었다.
승부는 서른네 합 만에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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