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ighbours RAW novel - chapter 65
“아니…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줘.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실언한 것 같아.”
실언한 게 맞다. 윤소하가 누구랑 뭘 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까. 권이결 역시.
-그래.
숨 막힐 것 같은 정적 뒤로 차분한 음색이 다시 이어졌다.
-더는 논하지 마. 네 말대로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나와 윤소하가 교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나는 망연자실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라이크 어 버진’의 고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비성향자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는데 성향자들 관계는 연애가 아니에요. 관계하다 보면 연애 감정이 생겨서 연애 DS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예외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고요. 평범한 바닐라 커플이 관계 중 BDSM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커플이 성향자란 의미는 아닌 거죠.
가장 바람직한 성향 관계는 감정이 배제된, 욕구 우선의 플레이에 기반한 것이다. 성향자가 파트너를 아끼고 애정하는 것은 일반적인 연애 감정과는 다른 것이니까.
그렇기에 근본적인 성향 관계는 일반적인 로맨스와는 궤를 달리한다. 플레이가 이성끼리든, 동성끼리든, 다자연애 폴리아모리끼리든, 파트너의 성별이나 가치관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윤소하는 그 전부터 그에게 감정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성향 관계가 과연 균형 있게 유지될 수 있을까?
처음부터 한쪽은 무게가 다른데.
* * *
“엎드려.”
“…….”
권이결은 한 번 더 명령하는 대신, 케인 끝으로 소하의 등을 지그시 눌렀다. 그녀는 움찔, 바르작거리다 결국 느릿느릿 움직였다.
네, 주인님.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혀가 막혀 있어 불가능했다. 소하는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몸을 뒤집었다. 팔이 등 뒤로 묶이고 가슴 위아래가 결박된 자세에선 배를 깔고 엎드리는 것마저 쉽지 않다.
이윽고 묵직한 구두 굽이 그녀의 목덜미 뒤를 눌러 오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지며 짜릿한 쾌감이 혈관마다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흐으….”
소하의 비명이 덕트 테이프를 뚫고 새어 나왔다. 그동안 볼, 클리브 등 다양한 재갈을 써 봤지만 이렇게 입술을 천으로 덮고 그 위에 덕트 테이프를 붙이고 있을 때가 제일 스릴 넘쳤다. 실제로 강도에게 당하는 것 같은 상황이 그녀를 흥분케 했다.
소하는 숨통이 억눌린 가운데서도 고개를 최대한 옆으로 돌려 권이결을 보려 애썼다. 그녀가 택한 강도이자 주인인 남자는 처음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얼굴이다. 자신과는 달리,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고개 숙이고.”
권이결은 노래하듯 명령을 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발을 떼고 케인을 다시 집어 드는 동작은 우아했으며 군더더기 하나 없다. 흥분으로 배 속이 조여 들듯 저릿했다.
소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엎드린 채 이마를 카펫에 대고 숨을 헐떡였다. 다음 순간, 어깨 너머에서 뻗어 온 손이 턱을 부서질 듯 잡았다. 덕트 테이프가 찌익, 거친 소리를 내며 입을 가렸던 천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막혔던 숨을 고를 틈도 없었다. 지팡이 형태의 케인이 그녀의 벗은 등과 엉덩이를 뱀처럼 훑어 내리다 한 지점에 멈춰 섰다. 케인의 끄트머리가 목덜미 아래,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손자국을 쓸기 시작했다.
소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야릇한 감촉에 희미하게 떨었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희미해지는 손자국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좀 더 오래 남아 있지, 왜 자꾸 엷어지는 거야.
케이블 타이보다 맨손으로 조일 때의 흥분감이 배는 더 짜릿했다. 대부분의 돔들은 목을 조르는 것처럼 힘을 조절하기 어려운 행위는 꺼린다. 진짜 채찍을 휘두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힘 조절에 실패했다간 크게 부상을 입히게 되는데, 그럴 경우 경찰서나 병원에서 꽤나 민망한 상황에 처하는 엔딩을 맞기 일쑤라 미리부터 몸을 사리는 것이다.
“아, 흑!”
하지만 권이결은 전혀 주춤하지 않는다. 놀랄 만큼 대담하고 잔혹하면서도 힘의 강도가 지극히 섬세하고 노련했다. 아마 이만큼 완벽한 돔 플레이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악! 귀를 찢는 채찍 소리에 이어,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통각과 쾌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소하는 이를 악물다 숨을 헐떡이길 반복했다.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어. 브랫은 성가셔서 안 맞아.
송은효가 권이결을 따라 병원으로 사라진 후 그녀의 안위가 걱정된 나머지 권이결에게 연락을 했었다. 어쩌다 보니 그와 마주하게 되었고, 용기 내어 성향 플레이를 제안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그녀의 제시를 담담하게 거절했었다.
-순종적인 서브가 취향이라.
-나는 복종 서브도 될 수 있어!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권이결은 그 말에 재미있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어려울 텐데. 주인님을 도발하고 화나게 만드는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나도 순응, 복종, 노예 모두 즐겁게 할 수 있어. 브랫은 첫 남친에게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서….
권이결은 다소 회의적인 눈으로 그녀를 일별했었다. 성향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지 아닌지, 그와는 다른 의혹이었다.
-남친? 파트너가 아니라…?
-그, 그때는 연애로 시작한 거라서….
권이결은 냉담하게 웃었다. 한 점 감정도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미소에 심장 어딘가가 씹히는 흥분감을 맛봤다.
-한 번은 해 볼 수도 있겠지. 네가 정말 제대로 복종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서늘하게 덧붙였다.
-‘파트너십’의 정의를 확실히 인지하고 선을 넘지 않는 한.
그들의 관계는 철저히 비연애와 무감정에 입각한, 바람직한 성향 관계일 것이란 단서하에서였다.
그와 함께하는 모든 행위 중 그녀가 느끼는 것은 오직 육체적인 쾌락,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는 만족감이어야만 했다. 상대에게 느끼는 애착, 오롯이 갖고 싶은 소유욕,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은 연애 감정, 그중 무엇도 존재해선 안 된다.
또 하나, 그의 것을 삽입해 달라 조르는 것도 금지였다. 권이결은 늘 도구를 쓸 뿐, 그녀의 몸에 성기를 삽입하지 않았다. 아틀리에에서 두 번째 만났을 때는 흥분 끝에 사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의 거대한 좆은 눈으로만 보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점점 더 안달이 났다. 붉은빛을 띤 그 연분홍색 성기가 제 안을 꽉 채우는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아, 아아악! 흑!”
등줄기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열감에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며, 허리가 뒤틀렸다. 뺨을 누르는 카펫마저 활활 타는 불처럼 뜨겁기 그지없었다. 흥분감에 다리 사이가 하릴없이 젖어 들기 시작했다.
두려운 동시에 두렵지 않았다. 권이결은 1도 화상도 입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강도를 조절할 것이다.
그는 상대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도구처럼 험하게 다루면서도, 극한점 바로 앞에서 멈출 줄 아는 플레이어다.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돔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오가는 감각을 지독하게 즐기고 탐닉했다. 권이결이 제 골반을 뒤로 빼고 엉덩이 사이에 차디찬 플러그를 넣는 지금 이 순간도.
“아! 흐, 윽! 아앙!”
“힘주지 마.”
“아, 아파…! 아파요, 주인님! 조금만 천천히….”
안쪽 점막이 끈적이다 못해 물컹거릴 만큼 윤활제를 듬뿍 발랐는데도 이번엔 조금 아팠다. 조금만 더 세게 밀어 넣으면 피가 날 것도 같았다.
“네가 힘을 줘서 그래. 힘 빼. 천천히.”
그가 온화하게 말을 이었다. 진짜 연인에게 건넬 법한, 다정한 음색에 그녀의 심장이 아릿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봐. 너는 지금 깊은 심해에 떠 있어. 힘 하나 들어가지 않고, 축 늘어진 상태로 둥둥 떠 있는 거야.”
그의 다정한 속삭임이 귓불을 간지럽혔다. 그러자 정말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권이결의 목소리가 언령을 품은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걸 다 내려놔. 그럼 편해질 테니까.
주인님의 그윽한 명령이 그녀의 심장 한가운데를 부드럽게 관통해 들어왔다. 동시에, 묵직한 이물질이 몸 한가운데를 꿰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골이 울렸다.
“아…!”
지독한 쾌감에 시야가 하얗게 바래며 그대로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질 깊은 곳에는 딜도를, 뒤로는 플러그를 꽂은 채 소하는 한참을 떨다 첫 번째 절정을 맞았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 * *
하얀 숨이 연기처럼 입술 틈으로 새어 나왔다. 빽빽한 빌딩 숲이 없기 때문인지, 체감상 서울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서재은이 머무는 별장 겸 수련원은 예상보다 더 크고 근사했다. 주위의 야산과 논밭, 불모지처럼 보이는 평야와는 꽤 괴리된 분위기였다.
역에서 건물 앞까지 태워다 준 사람들도 무척 친절했고, 수련원 센터장인 중년 여인은 예전부터 잘 알던 사람인 것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재은 씨 친구라고요? 나는 한유주라고 해요! 어서 와요. 온 김에 며칠 쉬었다 가요.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면서. 응?”
“은효야, 오느라 고생 많았어! 잘 지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