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63)
269화. 은원의 덫 (7)
후우우욱.
서걱, 콰앙, 콰아아아앙!
이벽의 몸이 솟구쳤다.
붕괴하는 건물의 잔해를 돌파하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날아오르는 그 모습은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 같았다.
기실 창공비검을 앞세운 이벽에게는 머리 위를 뒤덮는 그 어떤 장애물이라 한들 한낱 물결과 아무런 다를 바가 없었다.
콰아아아앙, 서걱.
심지어는 오른팔이 잘린 채 온몸이 축 늘어진 사람 하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음에도.
무너지는 건물 따위는 여전히 이벽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으며, 생채기 하나 남기지 못했다.
콰득.
“……!”
허나 그때였다.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불현듯 목덜미에 따끔한 통증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상황을 이해했다.
어깨에 들쳐업은 채 함께 날아오르고 있던 모가장주 모란이… 자신의 목덜미를 송곳니로 ‘물어뜯은’ 것이다.
울컥.
뿐만이 아니었다.
그 상처를 타고 서늘한 독기가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움찔, 이벽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콰아아아앙, 퍼억, 퍼억!
일순 창공비검의 기세가 흔들리자 파편들이 이벽의 몸을 두드렸다. 물론, 파편에 휩쓸린 것은 모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이벽에게는 별것 아닌 충격이었으나 팔 하나가 잘린 모란에게는 하나하나가 불에 지진 듯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퍼억, 퍼어억.
파편에 두드려 맞는 모란의 몸이 움찔움찔 흔들렸다. 허나 그 와중에도 그녀는 앙다문 이에 힘을 풀지 않았다.
“…지독하군.”
이벽이 말했다.
칠독문주의 딸 모란은.
조금 전의 당려옥과 마찬가지로, 입 안에 숨기고 있던 독단을 ‘최후의 공격수단’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허나 날아오르는 와중에 이벽의 기세가 흔들리면 본인 또한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콰드득.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있는 힘껏 이벽의 목을 물었다.
애당초.
이 한 수를 위해 건물을 붕괴시키고, 불구대천의 원수인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 목숨을 구걸했던 모양이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바위마저 녹일 듯한 독심이었다.
허나.
우우웅.
이벽의 상단전에서 선천의 힘이 빠르게 일어났다. 혈로를 스치자 독기는 빠르게 불타 없어졌다.
창공비검은 기세를 되찾았고.
이벽은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소저, 미안하지만 독으로 날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독왕 정도일 거요.”
콰득, 콰득.
허나 모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듭해서 이벽의 목을 깨물었다.
“…….”
마음먹는다면 내력을 사용해 이가 살갗에 박히지도 않게끔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독단을 깨문 시점에서 더는 그녀의 목숨을 건질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져버렸으므로.
정보를 토해내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더 이상 어깨에 짊어지고 있을 이유조차 없었다.
다른 악적들의 시신과 마찬가지로, 붕괴하는 저 지하 속으로 팽개쳐버리면 그만이다.
“…….”
허나 내키지 않았다.
콰득, 콰득.
어찌 되었건 이벽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덧없는 시도를 반복하는 죽어가는 여인을 안은 채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슥.
그리고 이내 모란의 입이 떨어졌다. 마침내 물어뜯을 기력조차 쇠한 모양이었다.
“비룡대주, 당신을 저주해요.”
희미한 호흡이 목소리를 냈다.
“그날… 당신은 내 아버지를 죽이고 칠독문을 무너뜨렸죠. 전각 안에서 산 채로 파묻혀서 죽어갔을 내 오라비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는 퍽 또렷했다. 이벽은 그녀의 목숨이 회광반조에 접어들었음을 이해했다.
“집안이 멸문하고… 흑시에 스스로를 팔아넘긴 어린 계집이 어떤 수모를 겪고 능욕을 당했을지, 상상할 수 있냐구요?”
“…나더러 어쩌란 말이오?”
“버러지들의 목숨 하나하나에는 그렇게나 연연하면서… 왜 내 삶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거죠? 왜 나한테는 구해주는 협객이 없었냐구요?”
“…….”
이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칠독문을 멸문시킨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허나 조금은 어려운 기분이 스쳤다.
“…저주해요. 저주하고 저주하고 또 저주해요. 지옥 밑바닥에서 당신을 저주하고 있겠어요.”
다시 모란이 말했다.
—크하하, 어림도 없지! 당신은 ‘적폐’요. 비룡대주! 어디, 당신의 잘난 의협심이 얼마나 갈지 내 지옥 밑바닥에서 지켜보고 있겠소! 크핫, 으하하핫!
불현듯.
이벽에게 베어지기를 거부한 채 스스로 독단을 씹어 삼켰던 칠독문주 모간의 광기 어린 최후가 스쳤다.
실로 지독한 핏줄이었다.
후욱, 콰아아아앙.
창공비검이 마침내 지붕을 부수며 날아올랐다. 이내 이벽의 머리 위로 새벽녘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탓.
이벽은 상승을 멈추었다.
이내 발이 잔해 위를 디뎠다.
그리고 마당을 포함한 모가장의 일대 전체가 모조리 아래로 주저앉은 것을 확인했다.
허나.
지하에 남아있을 당려옥과 정연화, 그리고 양민들을 생각했다.
그곳이 붕괴를 대비한 비밀공간이라면, 지상과 이어진 통로 또한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었다.
“소저, 아래로 이어진 통로는 어디에 있소?”
고로 이벽은 물었다.
허나 대답은 없었다.
모란의 숨은 이미 끊어진 뒤였다.
* * *
덜컹덜컹.
마차가 나아갔다.
모가장의 붕괴 이후.
이벽은 잔해 속에서 감춰진 통로를 찾고자 했다. 허나 채 날이 밝기도 전에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당려옥을 업은 정연화를 필두로, 아래에 남았던 양민들 모두가 외곽의 산 중턱에서 통로를 열고 스스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벽과 정연화는 납치된 이들을 인근 도시로 데려간 뒤, 의원에 맡겼다.
우선은 몸을 회복한 뒤, 관의 도움을 얻어 각자가 자신의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일행으로선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쭈우욱.
“아~, 지루하다.”
문득 마차 반대편에 앉은 당려옥이 두 팔 벌려 기지개를 켰다.
“…소저, 몸은 괜찮소?”
“아, 그럼요. 중독이야 당가의 핏줄에겐 그냥 감기 같은 거죠. 개운하게 한잠 잘 자고 일어난 기분이에요~”
“…….”
도시의 의원에 도착한 뒤.
이벽은 그때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던 당려옥의 등에 손을 얹고서 추궁과혈을 시도했다.
과거, 이벽은 파진성과 공손수, 언미희를 비롯한 비룡대원들을 상대로 이미 추궁과혈을 통해 소환단의 흡수를 도왔던 경험이 있었다.
허나 그때와는 달리.
의식을 잃은 당려옥은 스스로 운기를 할 수 없었으므로, 이벽으로서도 그 내력의 경로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가 비전 만해환의 효능은 퍽 놀라웠다.
내력을 통해 당려옥의 몸 안을 살핀 이벽은 이내 녹아든 약 기운이 스스로 독을 쫓아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벽이 할 일은 그저 그 뒤를 따르며 약 기운이 제힘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정도였다.
“…쿨럭!”
그렇게 한 시진 정도 끝에.
당려옥이 죽은 피를 토해내었고, 무사히 독기를 배출해냈다. 물론 적잖은 내상이 남았으나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튿날 당려옥은 곧장 의식을 차렸고, 일행은 마차를 수소문하여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흥, 같잖게 허세는.”
그때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향한 채 짐짓 혼잣말하듯 정연화가 쏘아붙였다.
훅, 당려옥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덥석.
“덕분에 살았어요. 정 소저~”
“……!”
당려옥이 정연화의 손을 낚아챘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놔요!”
“에이, 왜 그래요. 단약 한 개도 나눠 먹은 사이끼리~ 서로의 목숨을 믿고 맡겼잖아요?”
“아 친한 척하지 말라고!”
훅, 정연화가 손을 떨쳐냈다.
휘청.
“…윽!”
그 순간, 당려옥의 몸이 흔들렸다.
일순 현기증에 휩싸인 듯 이마를 움켜쥔 채 마차의 반대쪽으로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헉!”
덥석.
허나 당려옥이 벽에 부딪히려던 찰나였다. 정연화가 황급히 당려옥의 허리를 붙들었다.
이로 인해 마치 정연화가 당려옥을 안아 든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어머, 고마워요 정 소저. 난데없이 여인들끼리 포옹이라니, 조금 부끄럽네요.”
“…큭!”
훗, 당려옥이 웃었다. 반면 정연화의 얼굴에는 아차 하는 표정이 스쳤다.
“…….”
이벽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가는, 당려옥은 아미를 쳤다.
제아무리 목숨을 잃은 이가 없다고 한들, 당려옥은 정연화에게 있어 충분히 ‘원수’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여정 속에서 물방울이 바위를 깎아내듯, 당려옥에 대한 정연화의 태도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당려옥이 양민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독단을 씹으며 목숨까지 건 모습을 본 이후, 정연화는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사람의 옳고 그름이란.
칼로 자르듯 명확하지 않다.
덜컹덜컹.
이벽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가장 내에 붙들려있던 양민들을 구해냈으나, 기실 ‘흑시’라는 세력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악행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뿌리를 뽑고 싶었다.
허나 뒤를 쫓으려고 해도 단서는 전무했다. 모란을 살려서 정보를 토해내게 하려 했으나 끝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이벽에게는 달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물론 스승의 원수를 쫓는 일이었다.
‘…혈마.’
과거, 흑천방의 하부 세력이었던 칠독문의 모란은 스스로 흑시의 소속임과 동시에 ‘의혈맹의 일원’이 되었노라 밝혔다.
물론 귀혼파의 종인욱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남궁세가의 무인인 남궁천수가 보란 듯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것은 즉.
과거, 사패련을 점령했던 혈교 세력의 잔당들이 의혈맹에 대거 흡수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뿐만이 아니었다.
곤륜 제일 고수인 서천무존 정룡은… 대뜸 의혈맹과 황보세가를 가리켜 ‘마교도’가 되었노라 말했다.
물론, 진위여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작금의 상황을 돌이켜보았을 때 최소한 의혈맹에 무언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음은 분명했다.
허나 그에 대해 물었을 때, 당려옥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고로 이벽은 더 캐묻지 않았다.
당려옥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건, 최소한 그녀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마교, 혈교, 흑시, 의혈맹.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벽은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는 이제부터 자신이 ‘무얼 뒤쫓아야 하는지’조차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려웠다.
허나 어찌 되었건.
지금으로서는 개방과 접촉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
“저기… 소협?”
그때였다.
“소협은… 왜 협행을 하고도 하루 종일 계속 그런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나요?”
맞은편의 당려옥이 말했다.
“어찌 되었건 수십 명의 무고한 목숨을 구해냈는데… 조금은 뿌듯해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여전히 그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단순히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을 죽였기에 그런 건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오.”
이벽은 모란과 그 수하, 그리고 남궁천수와 종인욱을 죽였다.
모두가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은원들이었고, 결국은 손에 피를 묻히고 말았다.
허나 그런 것은 물론, 다시 무림행을 결심했을 때부터 충분히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오히려.
후회는 다른 측면에서 찾아왔다.
이벽은 스스로 몸에 화탄을 두른 채 사술에 놀아나 폭사했던 양민들을 생각했다.
많은 목숨을 구해냈으나.
‘모두’를 구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자들을 과거에 진작 죽여버렸더라면… 무고한 양민들이 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이벽이 쓰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은 그들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살려 보냈고, 그 결과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벽은 못내 책임감을 느꼈다.
어쩌면… 최소한의 목숨만을 죽이고자 했던 자신의 방식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뇨, 그건 아니라고 봐요.”
허나 그때였다.
“소협은 잘못되지 않았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최소한 소녀만큼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어요.”
당려옥이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무슨 말씀이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소녀 역시 소협이 살려 보내준 목숨이잖아요?”
“……!”
“그리고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이번 일, 소녀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양민들이 죽었겠죠? 그쵸?”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당려옥은 스스로 인질이 되었고.
이벽에게 ‘한순간’을 벌어주었다.
“용서를 구한 뒤, 그 뒤에 어떤 교훈을 얻고 어떤 삶을 사느냐는…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고, 책임이에요.”
“…….”
“그러니까 소협은 잘못되지 않았어요. 협행의 결과가 언제나 옳을 수만은 없겠지만… 부디 낙심하지는 마세요.”
당려옥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이벽은 잠시 그 눈을 바라보았다.
물론, 당려옥과 모란의 처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었다. 허나 어찌 되었건 분명한 것은.
자결용 독단으로 누군가는 다른 목숨들을 살리고자 했고, 누군가는 함께 죽고자 했다.
“…그렇군.”
이내 이벽이 답했다.
“고맙소. 꽤 위로가 되는군.”
“별말씀을요.”
훗, 당려옥이 웃었다.
“…흥, 말은 잘하네. 교훈을 얻어서 남의 문파 개울물에 독이나 풀어놓고선.”
정연화가 입을 삐죽였다.
“…….”
드물게도 당려옥이 입을 다물었다.
덜커덩, 덜컹.
어쨌거나 마차는 소림이 위치한 숭산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몇 개의 도시를 거쳐오며 이내 일행은 서서히 자신들을 뒤따르는 시선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